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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담장에 동네 꼬마 녀석들이 방앗간 지붕에 줄지어 모여 있는 참새처럼 앉아 있다. 꼬마들 앞으로 예쁜 여성 하나가 지나간다. 꼬마들이 외친다. “뜨로뽀 벨라!” “차오 벨라” “세이 벨리시마!” 띠동갑을 훌쩍 넘긴 나이 든 여자에게 꼬마들이 ‘정말 예쁘다, 너 미치게 예쁘다, 정말 예쁘다’라며 추파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이 모습을 영화 <말레나>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지금도 여전히 이탈리아 꼬마들은 어디에서 건 예쁜 여자만 봤다 싶으면 ‘뜨로뽀 벨라’를 외친다. 커서 뭐가 되려고 그러는지. 학원에서 수학 공식을 외우는 것보다 예쁜 여자를 눈여겨 보는 안목을 키운 이탈리아 꼬마들은 지금 세계에서 가장 멋진 남자가 됐다. 이건 내 생각이 아니다. <로마인 이야기>를 쓴 시오노 나나미는 <남자에게 고함>이라는 책을 통해 세상 남자들에게 ‘남자라면 이쯤 되어야 한다’며 훈계했다. 이탈리아에 다녀온 여자들치고 이탈리아 남자들의 멋스러움을 증언하지 않는 여자는 없다. 한국의 상황도 많이 달라졌다. 이제 스타일 가이를 꿈꾸는 풋내기들이 흉내내는 대상은 런더너나 뉴요커가 아니라 이탤리언들이다. 단지 옷만 잘 입는 한량들이었다면 이탈리아 사내들에 대한 찬사는 지속되지 못했을 것이다. 과연 그들은 뭐가 다른 걸까. 이탈리아 남자에 대한 평가는 기존의 멋진 남자를 평가하는 공식과는 다르다. 이탈리아 남자들은 스타일리시하고, 매너좋고, 여자를 배려하는 등의 잘 훈련된 습관과 한참 거리가 멀다. 밀라노에서 4년간 유학생활을 했던 선컨템포러리 큐레이터 송민경이 말한 이탈리아 남자의 매력은 ‘나쁜 남자’의 조건에 더 가깝다. “결단코 매너가 있다고 볼 수는 없죠. 예쁜 여자한테만 잘해 주거든요. 안 예쁜 여자에게 못한다는 건 아니지만 예쁜 여자에겐 너무 잘 해요. 가령 이런 것. 예쁜 여자라면 모든 걸 주겠다는 마음 같은 거 있잖아요.” 얼핏 ‘작업’의 의도가 보이지만, 단지 그것 때문은 아니다. 노인에서부터 꼬마까지 이탈리아 남자라면 몸에 밴 습관이라고 해야 맞다. 이탈리아에서는 예쁜 여자는 관공서 같은 곳에서 줄을 설 필요가 없다. 남자 직원이 먼저 공무를 볼 수 있도록 돕기 때문이다. ‘예쁜 여자는 줄을 서는 게 아니다’라는 말을 빼놓지 않는 건 애교 축에도 끼지 못한다. 먼저 줄 서 있는 사람의 시선 따윈 아랑곳하지 않는다. 내 여자까지는 아니더라도 ‘나에게 호감을 준 여자’는 당연히 배려해야 한다는 넓은 오지랖, 그게 바로 이탈리아 남자다. 노골적이고 직설적인 면도 이탈리아 남자들의 특징 중 하나다. 흥미로운 건 ‘너랑 자고 싶다’는 말을 거침 없이 하는데도 전혀 민망하지 않게 표현한다는 것. 피렌체에서 패션 디자인을 전공한 김나현은 그들의 뛰어난 언변이 인상적이라고 말한다. “가령 식당에서 밥먹고 계산서 달라고 할 때 레스토랑 매니저가 이런 말을 던지기도 해요. ‘니가 나가면 이 식당의 빛이 사라질 거야. 더 남아서 이곳의 빛이 돼 줘’라구요.” 마음에 든 여자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하는 표현은 가히 신기에 가깝다는 게 그녀의 증언이다. “한 남자가 지나가다 문뜩 서서 이렇게 말해요. ‘미유미유가 너랑 너무 잘 어울려. 이렇게 깜찍하고 신비로워 보일까. 너처럼 예쁜 여자는 나처럼 멋진 남자랑 다녀야해. 난 도도한 남잔데 너 때문에 발걸음을 멈췄어.’ 순간, 청혼을 받는 느낌이 이런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숨이 막히더라구요.” 이탈리아 사내들은 이렇게 인연을 맺으면 사귀는 사이가 아니더라도 상대를 공주 대하듯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여자의 스케줄에 자신의 일정을 맞추는 것 역시 기본이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자신의 마음이 동할 때에 한해서다. 언제까지나 사랑스러운 귀염둥이일 것 같은 이 남자들에게 결별을 통보하면 완벽하게 다른 남자가 된다. 로마에서 6년을 지냈던 한 친구는 이렇게 말한다. “쿨할 것 같죠? 전혀 아니에요. 화낼 때는 얼마나 불 같은지 몰라요. 내 인생에서 사라져버리라는 둥, 못된 말도 잘해요. 하소연도 하죠. 끝까지 간다는 느낌이라고 할까. 열정적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한편의 격렬했던 오페라가 끝난 느낌이라면 설명이 될까요.” 물론 세 여성의 말이 이탈리아 남자의 모든 것을 말해 주진 않는다. 다만 뉴요커와 런더너, 파리지엔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지 않나? 그들에겐 시크, 쿨, 또는 시니컬하다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다. 이탈리아 남자들에 대한 그녀들의 코멘트를 듣고 떠올린 단어는 ‘애착’이다. 이탈리아 남자들에게 자기 주변의 것은 사랑하고 보호해야 할 대상이다. 여자를 대하는 태도만 봐도 호불호가 분명하다. 아마도 이런 분명한 성향이 이탈리아 남자의 매력으로 진화된 건 아닐까. 모르긴 몰라도 이탈리아 남자들의 옷맵시가 딱 떨어지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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