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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를 조심할 것!

혹자는 인도가 세상에서 가장 느긋한 땅이라고 했다. 누구는 세상에서 가장 게으른 땅이라고 했다. 최근 인도를 다녀온 다니엘 튜더는 인도에 대해 섣불리 정의하지 않았다. 단, 몇 가지 조심할 것들이 있다고 했다.

프로필 by ELLE 2014.12.12

 

인도 뭄바이 공항에서 마주친 택시 운전사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물었다. “헬로! 어디로 가세요(Hello! Where are you going)?” 다들 내가 어딜 가는지 궁금해했다. 당시 시각은 새벽 2시, 목적지로 연결되는 비행기를 타려면 오전 10시까지 기다려야 했다. 나는 지친 상태였고 눈을 붙일 곳이 필요했다. 그래서 흥정을 시작했다. “25달러?”라고 묻자, 운전사는 거절했다. “노(No)!” “ 30달러?”에도 “노!” 그러더니 “맥시멈(maximum) 35달러!”란다. 만약 내가 이 금액에 고개를 끄덕였다면 아마 근사한 호텔의 침대에 누울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의심을 거두지 못하고 손을 내저은 뒤 허기나 달래고자 공항 외곽의 레스토랑을 찾았다. 나는 그곳에서 꽤 친절해 보이는 웨이터를 발견했다. 그에게 물었다. “인근에 저렴한 호텔이 있나요?” 5분쯤 기다렸을까. 배가 불룩하지만 쾌활해 보이는 친구가 차를 타고 왔다. 다시 흥정이 시작됐다. “맥시멈 3,000루피!” 난 바보처럼 얼떨결에 승낙해버렸는데 숙소로 향하는 길 위에서 가격은 ‘맥시멈 3,500루피’로 올라가더니 그가 데려간 숙소에 도착한 뒤엔 4,000루피, 그러니까 한화로 약 7만원까지 치솟아 있었다.

 

페인트조차 제대로 칠하지 않은 숙소의 방은 가축우리 같았다. 딱딱한 싱글 침대 하나가 달랑 놓여져 있을 뿐 별다른 가구도 없이 헐벗은 전구 하나가 코드에 연결되어 있었다. 화장실도 제대로 사용할 수 없었다. 하지만 옆엔 배가 불룩한 운전사와 그의 친구를 포함한 네 남자가 버티고 있었고, 썩 유쾌하지 않은 그들의 어투를 염두에 뒀을 때 4,000루피(7만원)를 건네는 편이 훨씬 현명할 것 같았다. 평소 신중하다고 자부했던 게 무색할 정도로 사기를 당해버린 꼴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룸은 안에서 잠기지도 않았다. 반대로 밖에서 빗장을 걸어 잠글 수 있는 형태였는데 이는 내가 잠들어 있는 동안 누구라도 나를 이 방에 가둘 수 있다는 뜻이었다. 덕분에 거의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내가 인도에 간 건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서였다. 다음 날 현지 팀과 합류해서 전날의 사연을 들려주니 그중 한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그 정도면 착한 거예요.” 그러곤 호러에 가까운 끔찍한 이야기를 술술 이어나갔다. 강도를 당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부터 사기꾼에게 걸려들어 장기를 추출당한 사람의 이야기까지, 열흘간의 여행 동안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걱정이 앞서기 시작했다.

 

며칠 후 우린 면직물 생산으로 유명한 마을에서 촬영을 진행했다. 마을의 노동자들은 온종일 베틀을 돌려가며 면실을 뽑았는데 전체적인 공정 방식은 200여 년 전과 다르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그들이 기계를 사용하지 않는 건 인간의 노동력이 비용 면에서 훨씬 싸기 때문이다. 공장 대표에게 물었다. “마을의 노동자들이 생산한 면을 모두 팔면 한 달 동안 얼마나 벌 수 있나요?” 그는 ‘맥시멈 5,000루피 정도’라고 답했다(인도에서 ‘맥시멈’이란 단어의 사용 방식만큼은 확실히 각인돼버렸다). 그러니까 10만원 이하란 말이다. 심지어 내가 사기를 당한 금액과도 별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는 마을 어른들은 물론 아이들까지 모두 이 일을 한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한국이나 영국에선 당연한 일, 예를 들어 아이들이 학교에 간다는 것이 이 마을 사람들에겐 사치나 다름없다. 심지어 공장의 대표조차 부유해 보이진 않았다. 서울의 유명 브랜드 매장에서 높은 가격으로 판매되는 옷의 수익이 원재료를 생산하는 인도나 방글라데시의 노동자들에게 충분히 돌아가지 않는 까닭일 것이다. 사실 우리가 방문한 마을이 인도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은 아니었다. 오히려 콜카타(Kolkata, 구 캘커타)의 도시 빈민들이 더 힘겨운 삶을 사는 것처럼 보였다. 거리 곳곳에 장애인 거지들이 있었고, 다리 밑엔 더러운 바닥을 기어 다니는 아이들이 있었다. 한때 인도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였다던 과거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런 변화는 콜카타가 인도의 다른 도시들에 비해 더 오랫동안 영국의 지배를 받아온 것과 무관하지 않다. 그래서 영국인으로서 죄책감을 느끼기도 했다. 반대로 하이테크 산업의 중심지인 방갈로르(Bangalore)에 사는 신흥 중산층은 콜카타의 가난한 빈민들과 동떨어진 부유한 삶을 살고 있는데 이런 격차를 직접 목격하니 “인도는 국가가 아닌 대륙이다”라는 말이 실감났다. 인도를 다녀온 뒤 수많은 사람들이 내게 인도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왔다. 나는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 인도는 워낙 거대하고 다양한 세계이기에 쉽게 규정하거나 결론을 내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인도에서 이루어지는 여성 차별과 성적 학대에 관해 들어본 이들도 있겠지만 이런 문제도 지역에 따라 편차가 심하다. 여성들에게 가장 위험한 장소로 손꼽히는 북부 델리의 지하철에선 많은 남자들이 공공연하게 여성을 성추행하고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하지만 남부에선 이런 행위가 혐오스럽게 여겨진다. 실제로 그래야 마땅한 것이 당연하지만 말이다. 인도의 북부 사람들보다 남부 사람들이 훨씬 느긋하고 다정하며 편안하다는 것만큼은 확실히 느꼈다.

 

델리와 콜카타 사람들은 차가운 맥주를 마시길 좋아하지만 동남아시아와 유사한 인상의 남부 케랄라(Kerala) 주에선 알코올을 발견하는 것조차 어렵다. 그 어떤 레스토랑도 술을 팔지 않으며 바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린 그곳에서 정부가 운영하는 가게에서 간신히 맥주 몇 병을 살 수 있었는데 거긴 그 지역에서 유일하게 술을 파는 곳이었기 때문에 줄이 100m쯤 늘어서 있었다. 심지어 호텔 레스토랑 직원에게 우리가 사온 술을 마실 수 있는지 물어보았을 때 ‘노!’라는 대답을 들었다. 우린 주중 내내 콜라를 마실 방법조차 찾을 수 없었다. 대신 각자의 호텔 룸에선 술을 마시는 게 가능했기에 우린 어렵게 구해온 귀한 맥주 다섯 병을 룸에 풀었다. 하지만 그중 한 병이 기포를 품으면서 테이블 위에 쏟아지고 말았는데 다들 그만한 비극이 없다는 듯 침통해했다.

 

내가 방문한 인도의 모든 지역에서 확인한 공통점이 있다. 음식만큼은 항상 만족스러웠다는 것이다. 일단 커리를 좋아한다면 어디서든 결코 언짢은 식사를 하지 않을 것이다. 길가의 주유소에 붙어 있는 작은 푸드코트에서 점심을 두 번 먹었는데, 그들이 서빙하는 요리는 한국에서 파는 김밥보다 저렴했지만 맛은 값비싼 인도식 레스토랑 못지않게 만족스러웠다. 서울의 어느 인도식 레스토랑에서 치킨 머커니(Chicken Makhani)를 먹기 위해 2만원을 지불한 게 분하게 여겨질 정도였다. 인도에서 숱한 희한한 일에 도전해야 했지만 그런 음식을 통해서 충분히 보상받았다. 그리고 난 누구라도 한 번쯤 인도를 방문하면 좋으리라 생각한다. 다만 안전한 여행을 위해선 반드시 남부에서 벗어나지 말길 권하고 싶다. 그리고 꼭 술은 가능할 때 충분히 챙기고, 절대 이상한 택시에 탑승하지 말길! ‘맥시멈’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주의할 것!

 

 

Credit

  • writer Daniel Tudor
  • illustrator 김현영
  • editor 민용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