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무>결점을 누를 만한 연기적 세기 | 엘르코리아 (ELLE KOREA)

바다 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는 이들에게 말하자면 &lt;해무&gt;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끔찍하고 참혹한 영화다. 그러나 동시에 유려하고 낭만적인 여운을 남기는 영화다. 보면 안다.::해무,김윤석,박유천,한예리,이희준,문성근,김상호,유승목,정인기,영화리뷰,영화추천,민용준,엘르,엘르걸,elle.co.kr:: | 해무,김윤석,박유천,한예리,이희준

&nbsp 드넓은 망망대해 위에 떠있는 배 한 척 위의 사람들. &lt해무&gt의 배경은 이처럼 광활하면서도 비좁습니다. 마치 바다 위에 떠있는 작은 무대라고 해도 좋겠죠. 하지만 그 무대에 오르는 이들에게 얼마나 극적인 연기가 필요할지 예감하긴 어렵습니다. 그저 평범한 어부들에게 무슨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입니까. 물론 거대한 파도에 맞서는 스펙터클을 상상할 수도 있겠죠. 실제로 저는 최근에 한 상영관에서 자신의 동행인과 대화하던 어떤 관객이 &lt해무&gt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태풍 때문에 고생하는 이야기 아냐?’라고 속삭이는 걸 들었습니다. 그만큼 &lt해무&gt라는 영화에 대해서 사람들이 쉽게 짐작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일 수도 있겠죠. &lt해무&gt라는 제목처럼 안개 같이 느껴지는 영화라고 할까요.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어쨌든 &lt해무&gt는 제목 그대로 ‘해무’ 속에 갇힌 선원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물론 그 바다 위 안개가 &lt미스트&gt처럼 이 세상 것이 아닌 무언가로 인해 불거지는 위기를 소환하는 매개가 되는 건 아닙니다. 진짜 말 그대로 안개, 해무이지요. 해무는 그저 장르적 연막을 강화하게 위한 수단에 불과합니다. 중요한 건 그 해무 속에 놓인 한 척의 배 위에 있는 사람들이 무엇을 하느냐입니다. 그 해무 속에 갇히게 되는 선원들이 그 바다 위에서 단지 고기만 잡는 게 아닙니다. 평소에 하지 않던 일을 시도하게 되죠. 하지만 그 시도는 그들이 스스로 원해서 자청한 일이 아닙니다. 폐선 위기에 몰린 상황을 타계하고자 선장 홀로 독단적으로 결정을 내렸고, 그 상황에 수긍한 선원들이 불가피하게 수긍한 결과였던 것이죠. 그리고 그 불가피한 계획이 생각했던 것처럼 진행됐다면 &lt해무&gt라는 영화의 존재 이유가 없겠죠. &nbsp ‘공해 상에 떠있는 배 한 척’이 처한 상황이란 것은 생각 이상으로 잔혹해집니다. 평생 그물이나 던지고 만선의 꿈이나 꾸던 뱃사람들이 고기가 아닌 무언가로 배를 채우게 되는데 그로 인해 벌어지는 위기라는 것은 그들이 정작 이런 일을 할만한 그릇이 되는 이들이 아니거나 이런 일을 할만한 그릇이 되는 이조차도 해본 적이 없는 경험이기 때문이죠. 결국 이들은 감당하기에 버거울 만한 일에 뛰어든 이들에게 닥칠 필연적인 결과로 종착합니다. 다만 그것이 당사자들 스스로가 생각했을 어떠한 참극보다도 보다 끔찍한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이죠. 그리고 급작스럽게 돌변해버리는 상황 속에서 사람들도 점차 돌변하기 시작합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조직적 윤리와 제도적 규범에 묶여 있었던 본질이 튀어나오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이죠. &lt해무&gt는 바로 그 지옥도에 관한 영화입니다. 스스로를 더 이상 제어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인간들의 아비규환이 그 드넓은 바다 위에 유일하게 머무를 수 있는 배 한 척의 한정된 공간 안에서 펼쳐진다는 것이죠.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본래 동명 연극이 원작이었던 것처럼 영화 역시 어선이라는 한정된 공간을 일종의 무대처럼 활용합니다. 다만 연극 무대와 달리 상하의 층위가 존재하며 사실적인 공간성을 두르고 있다는 점에선 확실히 영화가 보다 유리한 조건을 지니고 있는 셈이죠. 게다가 ‘공해 상에 떠있는 배 한 척을 에워싸는 해무’라는 설정 자체가 그 연극적인 무대 조건을 더욱 완벽하게 봉인합니다. 게다가 그런 무대 설정 자체가 선악의 경계에 아슬아슬하게 걸친 인물들이 점차 윤리적인 무국적 상태로 끌려들어가는 듯한 인상을 부여하는 것도 같습니다. 그야말로 효과적인 무대 장치의 역할인 셈이죠. 하지만 그래서 연극적인 성향과 계산적인 연출로 인한 인위적 인상도 강해집니다. 영화에서 해무가 드리우기 시작하는 건 중반부 즈음부터인데 영화의 전후반 온도차가 크게 달라진다는 직감만큼이나 전반적인 속도감도 차이를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만큼 영화가 품은 환경적인 특이성이 도드라져 보이는 느낌인데 사실 이게 그리 좋은 역할만을 하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그 특이성을 체감하는 장점도 존재하지만 반대로 영화의 말미에 다다를수록 그 특이성이 영화적 한계로 작동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적지 않습니다.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무엇보다도 인물들의 급박한 심리적 변화가 &lt해무&gt를 위기와 절정으로 끌고 올라가는 동력 노릇을 하는데 그 과정에서 몇몇 인물의 변화엔 모종의 개연성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물론 단순히 인과적인 개연성 유무가 결여됐음을 겨냥하는 것이 아닙니다. &lt해무&gt의 몇몇 인물은 단순히 심리적 변화라기 보단 병리학적인 변화에 가까운 심리적 충격을 드러내는데 그런 변화에 대한 극적인 배려가 없다는 것이 때론 플롯의 공백처럼 여겨질 때가 있습니다. 이를 테면 갑작스럽게 인물의 심리가 정신병 수준으로 돌변하는데 이에 대해서 관객 스스로가 ‘저 인물은 원래 저런 과거가 있으니까 그럴 수도 있을 거야’라고 이해해야 하는 식이죠. 물론 누군가는 그렇게 이해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모두가 그럴 순 없을 겁니다. 이럴 경우엔 문제의 시발점은 그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관객도, 그 상황을 연기하는 배우도 아닐 겁니다. 바로 그런 상황을 배우와 관객에게 제시한 영화이고 작가이며 감독이겠죠. 게다가 종반부에 다다라 한 인물은 좀처럼 합의되지 않는 사적인 욕망으로 길길이 날뛰며 상황을 만신창이로 만드는데 그 욕망이 극대화되는 상황의 특수성을 인정할 이유를 찾을 길이 없습니다. 그 전체적인 상황의 너비를 고려했을 때 그러한 개인의 돌발적인 심리로 출구를 잡았다는 게 안이해 보일 정도입니다. 게다가 서스펜스가 극대화되는 후반부가 진행되면서 중반부까지 확장됐던 다중적인 심리의 입체감이 급격하게 비좁아진다는 점에서 흥미가 떨어지는 것도 같습니다. 아무래도 후반부에 다다라 그 비좁은 무대의 제한성이 창작력의 한계로 작동하는 인상이랄까요.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하지만 &lt해무&gt는 그러한 영화적 결점들이 배우들의 연기적 세기로 잘 메워지고 있는 인상의 영화입니다. 그만큼 배우들의 호연이 대단히 돋보이는 작품이며 그것이 이 영화가 최전선에서 자랑할만한 거리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오프닝 시퀀스부터 어부의 얼굴로 등장하는 배우들은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저마다의 얼굴로 파도보다도 강렬한 스펙터클을 제시합니다. 김윤석을 비롯한 중견배우들은 기대했던 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훌륭한 연기력을 드러내며 &lt해무&gt의 방향을 제시하는 키로서, 평형을 유지하는 닻으로서 자리를 지킵니다. 한편 출연만으로도 화제가 된 박유천은 대단히 헌신적인 열연을 선보이며 전문 배우로서의 맨 얼굴을 발견했다고 해도 좋을 만한 결과를 선보입니다. 아마 &lt해무&gt는 박유천에게 있어서 두고두고 언급될 작품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론 &lt해무&gt에 서스펜스와 스릴의 돛을 달아주는 동시에 멜로라는 나침반을 제시하는 한예리의 잔상이 깊게 남습니다. 이처럼 많은 배우가 출연하면서도 낭비적이라는 인상을 주지 않는다는 건 그만큼 캐릭터의 조율이 탁월하게 이뤄져 있고, 저마다의 배우가 자신에게 주어진 캐릭터의 옷을 충실히 입고 있다는 반증일 겁니다. &nbsp 장단점이 뚜렷한 영화이지만 결과적으론 흥미로운 야심작이라는 호감이 깊게 남는 작품입니다. 특히 대단히 시적인 은유가 돋보이는 명장면들이 더러 보이는데 그 중에서도 어창 신의 그로테스크한 풍광은 그 참혹한 상황에 대한 판단을 눌러버릴 정도로 미학적인 강렬함이 깊게 새겨지는 명장면입니다. 이렇듯 &lt해무&gt엔 심도 깊은 아이러니와 딜레마가 뒤엉키며 점차 서스펜스의 강도로 반영되는데 그러한 감정적 공포의 기반이 멜로를 설득하는 과정으로 이어진다는 것도 흥미롭거니와 그 과정이 어느 정도 설득력 있게 전개된다는 점에서 보다 흥미로운 작품입니다. 특히 선과 악에 대한 선택이 아니라 생과 애라는 절실한 본능을 두고 대립하고 끝내 파멸적인 갈등으로 첨예해지는 관계의 흐름도 흥미롭습니다. 멜로적인 여운이 깊게 남는 문학적 결말과 그 낭만성도 도취될만한 것입니다. &lt해무&gt는 일정 부분에 장르적인 외피를 두른 영화이지만 본질적으로 문학적 감수성에 어울리는 야심작에 가깝습니다. 이 영화를 지지하고 싶은 건 바로 그 비범한 야심으로 길어낸 일정 부분의 성과가 대단히 흥미로운 양상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론 주목 받는 작품이 됐으면 좋겠어요. 그럴 만한 작품이니까요. &nbsp &nbsp &nb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