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좋은 친구들]사골처럼 우려낸 비극

우정은 쉽게 낭만이다. 그런 낭만을 그린 영화들은 많다. 하지만 <좋은 친구들>은 낭만적인 영화가 아니다. 성실하고 정직하게, 깊은 우정으로 우려낸 진한 비극을 그린다.

프로필 by ELLE 2014.07.04

 

여자들에게 있어서 남자들의 우정이란 이해할 수 없는 구석일지도 모르겠지만 오래된 친구가 있다는 건 분명 좋은 일일 겁니다. <좋은 친구들>은 ‘좋은 친구들’에 관한 영화입니다. 반어나 역설이 아닌 진짜 ‘좋은 친구들’ 말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친구들의 우정에 관한 아름다운 드라마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 좋은 친구들의 우정이 개미지옥 같은 비극으로 빠져들어서 허우적대는 과정을 그린 누아르입니다.

 

 

 

 

 

 

소방수인 현태(지성)는 결혼도 했고, 어린 딸도 있습니다. 그런 현태에겐 매우 가까운 친구 두 사람이 있죠. 보험사 팀장인 인철(주지훈)과 작은 슈퍼를 운영하는 민수(이광수)가 그들입니다. 두 친구는 현태의 딸 생일 선물까지 챙길 정도로 절친한 사이입니다. 나이를 먹었어도 술을 진탕 마시고 함께 뒹굴어 잘 수 있을 만큼 허울 없는 친구들입니다. 사실 이 관계를 뒤흔들 만한 사건이 발생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세 친구들은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비극의 문을 박차고 여는 건 한 친구의 사소한 욕망입니다. 다만 그것이 악의에서 비롯된 일은 아닙니다. 오히려 호의에 가깝습니다. 단지 자신의 호의를 이용해서 자신에게 다가온 위기에 탈출구를 마련하려 했던 거죠. 문제는 그 의도가 완벽한 실패로 돌아가고, 끔찍한 실수를 낳는다는 점입니다. 굳건했던 우정이 진동하기 시작합니다.

 

 

 

 

 

 

<좋은 친구들>은 지극히 평범한 이들에게 닥쳐온 쓰나미 같은 비극을 그린 영화입니다. 다만 그것이 관계 외부에서 밀려온 재앙이 아니라 내부에서 발화된 인재라는 점이죠. 게다가 악의도 아닌 호의에서 비롯된 실수라는 아이러니는 극의 진행과 함께 점차 거대한 페이소스로 진화합니다. <좋은 친구들>은 묘사나 화술면에서 특별한 인상을 보여주는 영화는 아닙니다. 하지만 정직한 묘사와 성실한 화술에 담아낸 이야기를 명확한 너비 내에서 풀어낸다는 점이 상당히 인상적인 작품이죠. 현실성 있는 환경과 캐릭터를 제시하면서 사실성을 기반으로 둔 허구의 단서들을 충실히 수집해 나간 뒤, 이야기의 가능성을 최대한의 너비로 벌려냅니다. 영화가 보여주는 상황에 대한 설득력을 증폭시키고 생생한 실물감을 주입하는데 성공합니다. 최근의 한국영화들이 장르적인 겉멋에 심취하며 자아도취와 허장성세의 자충수에 탐닉하던 경향을 생각한다면 대단히 의미 있는 성과라고도 여길 수 있을만한 작품입니다.

 

 

 

 

 

 

무엇보다도 배우들의 연기를 칭찬하지 않을 수 없는 작품입니다. <좋은 친구들>에서 각본과 연출은 허구의 틀을 짜주고, 판을 깔아주는 최소한의 역할에 충실한 인상입니다. 그렇다면 남은 건 배우들의 몫이죠. 그리고 배우들은 그 틀 안에서, 그 판 위에서 최선의 역량을 발휘합니다. 상당히 잘해내고 있죠. 그 중에서도 주지훈은 ‘발견’을 넘어서 ‘성취’라 해도 좋을 만큼 캐릭터와 동화된 인상을 드러냅니다. 마치 인철이란 캐릭터가 그냥 주지훈처럼 느껴질 만큼 완전히 포개지는 인상이죠. 껄렁한 허세와 치기를 지닌 인철은 <좋은 친구들>에서 아이러니와 페이소스를 한 몸으로 이끌고 가는 축과 같은 인물인데 주지훈은 이 캐릭터가 지닌 역설 자체를 완벽하게 소화하고, 객석에 온전히 이입시킵니다. 주지훈의 대표작으로 불릴만한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한편 예능에서의 이미지에서 탈피한 이광수는 단순히 변신이라는 수사를 넘어서 배우로서의 이빨을 제대로 드러낸 인상이고 지성은 정직하게 제 자리를 지키는 댐처럼 자리합니다. 주지훈이 골문을 두들기는 공격수라면 이광수는 패싱에 충실한 미드필더이며 지성은 안정적인 수비수에 가깝습니다. 공수주 삼박자가 제대로 맞아떨어지는 셈이죠.

 

 

 

 

 

 

다만 에필로그에 가까운 결말부에서 지나치게 증폭되는 노스탤지어적인 감성은 사족 같습니다. 낭비적인 느낌이랄까요. 한편 마틴 스콜세지의 <좋은 친구들 Good Fellas>의 카피 타이틀인 듯한 제목은 지극히 평범한 인상이라 아쉽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특별한 대안을 제시하긴 어렵게 느껴집니다. 어떤 의미에선 정직한 제목이란 생각도 들고요. 개인적으론 주변의 오래된 친구들과 함께 보고 싶기도 했습니다. 보고 나면 할 말이 많아질 것 같아요. 앞서 말했지만 오래된 친구가 있다는 건 분명 좋은 일이죠. 하지만 언제나 좋은 의도가 좋은 결과를 낳는 건 아닙니다. 무책임해질 정도로 치기 어린 남자들의 낭만엔 현실 감각을 일깨울만한 울림도 있어야 하는 법이죠. 어쨌든 자기가 정한 주제의 범위를 명확하게 알고, 현실 감각이 살아있는 이야기를 만난다는 건 반가운 일입니다. 한 마디로 주제를 아는 이 영화가 보다 주목 받았으면 좋겠어요.

 

 

 

Credit

  • EDITOR 민용준
  • DESIGN 오주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