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포매니악] 만약 당신도 변태라면
단순히 야한 영화를 기대했다면 조금 난감해질 수도 있겠다. 물론 <님포매니악>은 변태적인 욕망을 충족시키는 영화다. 다만 그것이 단순히 성적 욕망을 지칭하는 게 아닐 뿐이다.
전체 페이지를 읽으시려면
회원가입 및 로그인을 해주세요!

 
길바닥에서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던 여인과 조우한 남성은 그녀에게 다가가 도움이 필요하냐고 묻는다. 여자는 밀크티나 한 잔 마시고 싶다고 말한다. 남성은 그 여인을 부축해서 자신의 집으로 데려간다. 그리고 침대에 여자를 눕히고 밀크티를 가져다 준 후, 피를 흘린 채 길바닥에 쓰러져 있게 된 사연을 묻는다. 그녀는 자신이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긴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남자는 듣고 싶어한다.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녀의 유년시절로부터 시작되는 그 이야기 대부분은 그녀가 탐닉한 섹스에 관련된 경험담들이다. 그리고 그녀의 사연을 진지하게 듣던 남자는 중간마다 박식한 지식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해석을 내놓는다. 라스 폰 트리에의 신작 <님포매니악>은 이런 영화다.
 
‘색정광 여인’이라는 의미를 지닌 <님포매니악>이라는 제목의 이 영화는 단 하룻밤 동안 섹스에 중독된 여성에게서 듣게 되는 보기 드문 인생사에 관한 ‘일일야화’다. 하지만 이 영화가 섹스에 대한 영화는 아니다. 물론 이 영화에서 감상적인 자극을 이끌어내는 소재는 섹스 그 자체일 것이다. 그리고 노출의 수위가 적나라하고 끊임없이 언급되는 소재라는 점에서도 이 영화에 선정적인 요소가 다분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님포매니악>은 선정적인 자극을 요구하는 포르노그래피의 욕망으로서 섹스를 소비하는 에로티시즘의 영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강도 높은 섹스신이 등장하고 뿌옇게 블러 처리가 됐음에도 만만치 않은 노출의 수위를 자랑하는 영화다. 하지만 화자인 여성 조(샤를로트 갱스부르)의 섹스 탐닉기를 재현하는 영상의 과감성에 비하면 선정적이라는 감상을 좀처럼 부추기지 않는다.
 
어쩌면 그건 이 영화가 표현하는 강도가 시작부터 만만치 않기 때문일 것 같다. 유아기 시절부터 섹스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던 소녀가 직접적인 섹스를 체험하기까지의 서사를 목격하기까진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빠른 시간 안에 자극의 강도를 훅 끌어올린다. 초반부터 강한 훅을 날린다. 그만큼 감각이 얼얼해진다. 자극의 역치가 단번에 상쇄되니 실무율에 가까운 자극적 담담함이 유지되는 것 같다. 한편으론 믿을 수 없는 섹스 탐닉기를 고백하는 조의 맞은 편에 앉아있는 남자 샐리그먼(스텔란 스카스가드)의 태도 역시 영화의 선정성을 중화시킨다. 조의 파격적인 경험담을 듣고 끌어내는 청자로서의 역할을 하는 샐리그먼은 시종일관 다양한 지식을 동원해서 그녀의 경험에 거창한 의미를 부여한다. 샐리그먼은 극 속에서 조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입장으로 자리한 캐릭터이지만 동시에 객석에 앉은 관객의 대리인이기도 하다. 조의 고백보다도 샐리그먼의 반응이 관객의 반응에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다. 그만큼 일관성 있게 유지되는 샐리그먼의 이성적인 태도는 관객의 감각을 제한하는 방향으로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물론 <님포매니악>은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끊임없이 언급되고 적나라하게 노출되는 섹스를 통해서 언급되기 쉬운 영화다. 하지만 어떤 노출 수위보다도 영화에서 등장하는 섹스의 역할이 보다 중요하게 이야기될만한 영화다. 성적인 흥분을 전이시키기 위한 기교가 동원되기 보단 무감각한 시선에 담긴 행위가 빈번하게 치고 빠지는 인상인데 이야기가 진전될수록 섹스라는 행위에 대한 목격이라기 보단 그 행위의 내면에 깔린 의식에 대한 발견이 보다 중요하게 여겨진다. 그리고 결국은 그러한 발견과 해석을 부추기는 조와 샐리그먼의 대화 양상에 주목하게 된다. 샐리그먼은 조의 첫 번째 섹스가 피보나치 수열과 연관돼 있다고 말한다. 또한 그녀에게 인상적인 섹스 상대로 기억되는 세 남자가 그녀에게 있어서 오르간 연주의 정선율을 이루는 존재들이었다고 말한다. 물론 피보나치 수열과 정선율과 조의 섹스 라이프 사이의 연관관계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여기서 중요한 건 해석의 결과가 아니라 해석을 하는 행위처럼 보인다.
 
<님포매니악>은 ‘볼륨 1’과 ‘볼륨 2’라는 부제로 구분되는 전편과 속편의 형태로 나뉘어 개봉된다. 하지만 사실상 4시간의 러닝타임을 지닌 한 편의 영화다. 이는 8개의 챕터로 구분된다. 챕터를 채우는 건 님포매니악을 자처하는 여성 조(샤를로트 갱스부르)가 스스로 고백하는 그녀의 섹스 탐닉기다. 유년시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녀가 겪어왔던 섹스에 관한 사연이 두서 없이 나열된다. 그런데 그녀의 입을 통해 들려지는 서사는 그 이야기를 듣는 남자 샐리그먼(스텔란 스카스가드)의 침실에 놓인 오브제들이거나 그의 해석을 통해서 언급되는 어떤 지식을 소재로 삼아서 진전된다. 사실상 조의 이야기에 모티프를 제공하는 건 샐리그먼이다. 이를 테면 샐리그먼의 침실에 걸려 있던 낚시바늘을 보고 자신의 남다른 유년 시절을 설명하거나 섬망에 시달리다 죽은 애드거 앨런 포의 소설책이 놓인 것을 보고 아버지의 죽음이 자신에게 미친 성적인 영향을 설명하는 식이다.
 
이건 마치 순발력이 좋은 이야기꾼의 재담을 듣는 것과도 유사하다. 그래서 가끔씩은 그녀가 내뱉는 경험담이 과연 진짜 경험담인지 막 지어낸 거짓인지, 혹은 그 진짜 경험을 바탕으로 허구의 살을 덧붙인 허풍인지, 모호해진다. 물론 중요한 건 진실 게임이 아니다. 다만 범접할 수 없는 경험담 즉 이야기 자체를 간접체험하는 흥미가 극대화된다는 것이다. <님포매니악>은 섹스에 탐닉하는 여성에 대한 이야기에 탐닉하게 되는 영화인 셈이다. 조의 이야기에 자신의 해석을 덧붙이는 샐리그먼은 가끔씩 좀처럼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내보이는데 그 순간마다 굉장한 유머가 발생한다. 사실 조만큼이나 샐리그먼 역시 범상한 인물이 아니다. 조의 극렬한 체험기 앞에서 이성적인 해석들을 늘어놓는 샐리그먼은 감정적인 반응이 거세된 인물처럼 여겨진다. 실제로 영화는 그를 무성애자에 가깝게 묘사한다. 조가 감각적인 쾌락의 끝에 서있는 인물이라면 샐리그먼은 이성적인 사고의 끝에 서있는 인물이다. 양극단의 인물이 만나 나누는 대화는 괴리돼있지만 그래서 서로를 확실하게 보존한다. 완벽한 대비를 이루는 존재로서의 남녀라는 상징성은 고대 그리스 시대에 쾌락을 추구했던 에피쿠로스 학파와 감정의 절제를 추구했던 스토아 학파의 대립성과 닮아있다. 대비적인 관점이 어울려 이루는 아이러니한 대화의 양상을 지켜보는 것 자체가 이 영화의 본질처럼 느껴진다. 동시에 거창한 해석을 동원하는 샐리그먼의 반응은 때론 지적인 허영심 자체로서 와닿는 경우가 적잖은데 이를 통해서 강력한 블랙코미디로서의 기운을 발산하기도 한다.
 
 
 
 
 

 
사실 <님포매니악>은 대단히 두서 없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 두서 없음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앞서 말했듯이 조의 고백엔 일정한 목적이 없고, 서사의 밀도도 단단하지 않다. 그저 그녀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생각나는 대로, 단 서사의 흐름만큼은 유지하며 밀고 나갈 뿐이다. 8개의 챕터는 서로 분리돼 있고, 무게감도 각기 다르다. 그녀의 삶을 추측할만한 중요한 단서도 존재하지만 순간의 재미를 위한 해프닝도 존재한다. 하지만 조가 사연의 뼈대를 제공하면 샐리그먼은 해석의 살을 붙인다. 평범하지 않은 사연에 거창한 해석이 덧붙어 그들의 행위 자체를 비범하게 수식하기도 하고, 우스꽝스럽게 넘어뜨리기도 한다. 이런 희화화는 영화가 고의적으로 유도하는 풍자적인 태도에 가깝게 느껴진다. 창작자와 비평가의 관계에 대한 은유 같기도 하다. 그렇다면 여기서 풍자의 대상이란 결국 청자인 샐리그먼 즉 비평가일 것이다. 그건 마치 극렬한 허구를 제공하는 자신의 영화를 보고 거창한 의미를 해석해내는 비평가들을 겨냥하는 라스 폰 트리에의 직접적인 풍자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님포매니악>은 라스 폰 트리에가 관객을 도발하는 자아도취 혹은 나르시시즘의 극단처럼 여겨진다. 물론 그 태도는 극렬한 비난이라기 보단 일종의 농담 혹은 장난에 가깝다. 다만 그 농담의 강도가 만만치 않을 뿐이다.
 
사실 <님포매니악>은 <안티크라이스트>의 연장선상에 있는 소품처럼 보이기도 한다. 쾌락과 이성의 대비성을 이루는 남녀의 역할, 신성모독에 가까운 소재들의 활용, 철학적인 기호와 종교적인 해석을 동원해서 이루는 과장된 해석력과 그 거창함을 통해서 되레 웃음기를 유발하는 블랙코미디로서의 자장. 하지만 <님포매니악>이 <안티크라이스트>와의 거리감을 두는 건 이 영화가 실제론 비어있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님포매니악>은 특별히 어떤 주제를 전달하고자 하는 욕망이 없는 이야기다. 이 영화에서 섹스는 프로파간다의 도구가 되지 못한다. 그저 존재할 뿐이고, 언급될 뿐이며, 전시될 따름이다. 그저 이야기를 이어나가기 위한 중심 소재로서 파괴력 있게 동원되는 인상이다. 물론 혹자는 이 영화가 극단적인 경험을 통한 여성으로서의 페이소스를 전달하는 작품이라고 여길 수도 있다. 실제로 그런 감정이 전달되기도 한다. 하지만 <님포매니악>에 어떠한 해석을 덧붙이고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에 심취할수록 낭비적이라는 확신이 강해진다. 그럼에도 이 거대한 사기극에 기꺼이 투신할 수밖에 없는 건 라스 폰 트리에가 해석하고 싶게 만드는 기호들을 이 영화의 곳곳에 장식해놓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악랄한 조롱에 가까운 영화의 결말부에 배신감을 느낄 이도 있을 테다. 하지만 한편으론 제대로 농락당했다는 변태적인 만족감이 여운처럼 남는다. 그러니까 <님포매니악>은 라스 폰 트리에라는 이야기꾼의 재능이 관객을 제대로 낚는 거창한 농담이지도 모른다. <님포매니악>은 그저 라스 폰 트리에 그 자체인 셈이다.
 
어쩌면 이 글 자체가 <님포매니악>이다. 라스 폰 트리에가 설계한 거대한 농담을 거창하게 해석하고 있는 이 글은 결국 변태적인 만족감을 느꼈기 때문일 테니까. 물론 그나마 필자는 샐리그먼과 같은 극단적인 변태는 아닌 것 같다. 무슨 말인지 궁금하다면, 영화를 꼭 보시라. 4시간여의 여정의 끝에서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을 테니. 만약 당신도 변태라면 이 체험에 어느 정도 만족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Credit
- EDITOR 민용준
- DESIGN 오주희
엘르 비디오
엘르와 만난 스타들의 더 많은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