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는 사람을 자연적인 환각 상태로 이끈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말했다. "달리기는 정신 위생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 작업"이라고. 심장 전문의 겸 작가 조지 쉬언도 애기했다. "달리기는 사람을 자연적인 환각 상태로 이끈다." '달리는 맛'은 이렇다.

프로필 by ELLE 2009.11.01

 

달리기라는 행위의 오묘함에 대하여
떨어지는 벚꽃이 수북하던 봄밤이었다. 석촌호수 근처를 지나던 중 기이한 풍경을 보게 됐다. 사람들이 마치 4열 종대를 한 듯이 빽빽히 호숫길을 채우고 있었다. 어둔 길에 다들 앞만 보고 뛰는데 흡사 좀비처럼 보였다. 여기서 받은 묘한 감상은 그 이후로도 종종 떠올랐다. 한 번쯤 그 대열에 끼여 보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기회는 갑자기 찾아왔다. 계절이 두 번 바뀌어 서늘한 공기가 돌던 최근의 일이다. 금요일 밤에 친구가 문자를 보냈다. “내일 양재천 뛰자.” 표면적인 이유는 ‘운동의 연장’이었지만 실제로는 ‘짜증 나는 일이 하도 많아서’였다. 양재천에 가는 이유는 주로 강아지 산책 내지는 풍경 감상이었고, 피트니스 클럽 밖에서 뛰어본 기억은 체력장이 유일하기에 은근히 걱정됐다. 휴대전화는 주머니에 넣으면 덜컹거리다 떨어질 텐데? 전대(?)라도 둘러야 하나? 행사장에서 받아온 운동화가 있는데 그게 조깅화였던가? 지금이라도 스텔라 맥카트니가 디자인한 운동복을 사야 할까? 별 걱정을 다하며 만난 우리는 정작 길가를 어슬렁거리기만 했다. 매일같이 되풀이되는 주제, “그래서 어떻게 살 거야?”에 대해 얘기하면서. 결론은 “아, 몰라! 나중에 생각해!”
별 소득 없는 달밤 접선 이후, 달리기 생각이 났다. 그날 밤 ‘쉭쉭’ 바람 소리를 내며 우리 옆을 지나가던 러너들, 지난봄 석촌호수를 되새기면서. 이때 <달리기와 존재하기>가 기억났다. 미국의 심장 전문의이자 작가 겸 러너인 조지 쉬언(George Sheehan)의 책이다. 5년 전에 읽었을 때는 별 감흥이 없었다. 오히려 ‘옮긴이의 말’(옮긴이는 김연수다)을 더 자세히 본 것 같다. 다시 후다닥 펼쳤다. 그저 ‘달릴 때’가 된 건지(누구나 달릴 때가 있는 것 같다) 나이를 먹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꽤 마음에 와닿았다.
달려 보기도 전에 너무 생각만 많았던 것 같다. 사실 달리기를 포함해 많은 일들이 누가 호루라기로 출발 신호를 내려주는 것도, 코스를 정해주는 것도 아니다. 그저 어느 방향으로 갈 것인지, 어느 지점에서 꺾을지, 어떤 속도로 뛸지 스스로 결정하면 된다. 표준 시간에 맞춰 돌아가는 일상과는 달리 온전히 스스로의 시간표와 지표대로 움직일 수 있는 거다. 느리게 살기 혹은 내 식대로 살기를 가장 잘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우선 달리는 이들을 관찰했다. 이들을 인구통계학적 집단으로 묶을 만한 단서는 없었다. 특징이라면 자전거를 타거나 걷는 사람들은 대개 무리 지어 다녔지만 달리는 이들은 열에 여덟은 혼자라는 것. 그밖에 눈에 띈 점은 MP3 플레이어가 필수일 거란 생각과는 달리 음악을 듣지 않는 러너들도 상당히 많다는 것 정도. 그리고 다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듯 모를 듯한 얼굴로 지나갔다. 달리는 시늉을 하며 이 길에 섞여 있자니 왠지 은밀한 기분이 들었다. ‘이 사람들이 평일 낮에는 다들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 때문이다. 이렇게 두리번거리다 본격적으로 달리기 시작하자 풍경은 잘 보이지 않고, 몸에 부딪치는 공기만 오롯하게 느껴진다. 수영할 때 앞뒤 사람, 옆사람 구경하기보다 물과 내 몸이 맞닥뜨리는 저항에 집중하게 되는 것처럼. 그리고 모든 감각이 극대화됐다. 슬슬 걸을 때는 은은한 나무 향이 났다면 달리면서 숲을 흠뻑 들이마시는 것 같았다. 나의 들숨과 날숨도 분명히 느껴졌다.
다음날엔 종아리가 당겨 고생 좀 했다. 제대로 리서치하고 계획을 세우지 않은 채 덤벼든 게 화근인 듯싶었다. 종아리를 조물락거리며 러너 감상기를 고백하자 친구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번에 우리 회사에서 사내 마라톤을 했는데 일등한 사람 보고 다들 깜짝 놀랐잖아. 달리기랑 완전히 거리가 멀게 생긴, 그러니까 회사에서도 햇볕 한 번 안 쬐고 허여멀건 얼굴에 안경을 쓴 채 일만 하는 사람이거든. 조깅한 지 3년 넘었다는 것도 처음 알았지 뭐야. 하긴 그런 건 완전히 사생활이니까.” 다른 자리였지만 한 선배도 비슷한 경험을 꺼냈다. “학교 다닐 때 전형적인 오렌지족 같은 선배가 있었는데 저녁마다 달리기를 한다더라구. 그때 참 새롭게 보였다.”
달리기가 가지는 이런 위엄은 확실히 보통의 운동과는 다르다. 이건 달리기가 운동 이상으로 감정적이고 심리적인 행위이기 때문일 거다. 누구와 함께 길을 나서도 달리는 동안 만큼은 온전히 자신과 마주하는 걸 피할 수 없을 테니까.

달리는 당신에게 평화를
그래도 핵심으로 들어가면 달리기의 이유와 목적은 단순 명료하다. 몸과 마음의 건강 때문이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달릴 때 심신이 받는 요양을 이렇게 설명했다. “하루에 1시간쯤 달리며 나 자신만의 침묵의 시간을 확보한다는 것은 나의 정신 위생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 작업이다. 적어도 달리도 있는 동안은 누구와도 얘기하지 않아도 괜찮고, 누구의 얘기도 듣지 않아도 된다.” “매일 운동을 하고 있으면 자신의 적정 체중이 자연스럽게 정해진다. 몸을 가장 움직이기 쉬운 지점이 보이기 때문이다.” 믿을 만한 얘기다. 그는 30대 초반부터 20년 넘도록 매일같이 조깅을 하고, 매년 적어도 한 번은 마라톤 풀코스를 달리고, 세계 곳곳에서 열리는 장·단거리 레이스에 참가하는 ‘달리는 소설가’니까(참고로 그는 묘비에도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 (그리고 러너).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는 글을 새겨 달라고 했단다. 동료 에디터 중 한 명은 하루키의 영향을 받아 퇴근 후 산책을 시작했다. 아직 달리고 있진 않지만 가능성은 농후해 보인다).
달리기의 효과를 좀 더 살펴보자. <엘르> 프랑스판에 따르면 달리기는 심장, 호흡, 혈액순환, 근육, 뼈, 신진대사, 소화, 기분 전환에 좋다. 살이 빠진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처음에는 고되다는 느낌 뿐이겠지만 6주째부터 몸 자체가 순환 과정에 들어간다. 일상생활에서도 더 많이 움직이게 되고, 같은 행동을 해도 열량을 더 많이 쓰게 된다. 살짝 욕심을 낸다면 아침 공복에 달리는 게 지방 연소에 좀 더 보탬이 된다. 가시적인 결과를 보려면 3개월은 기다려야 한다. 하루키가 얘기하는 ‘러너의 몸’도 이때 만들어진다. 또 달리기는 생각을 떨쳐내기에도, 몰두하기에도 유용하다. 이젠 고전이 된 <섹스 앤 더 시티>만 떠올려 봐도 그렇다. 심기가 불편할 때면 여지없이 바람막이 점퍼를 입고 센트럴 파크를 내달리는 샬롯 양이 있다. 영화 <번 애프터 리딩>에서 조지 클루니도 그렇다. 그는 틸다 스윈튼과 바람을 피운 후 곧장 운동복을 입고 일정한 거리를 달린다. 찜찜한 기분을 날려보내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을 둘러싼 상황과 변수를 꼼꼼히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리고는 다시 유쾌하고 단순한 캐릭터로 돌아온다.
여전히 시큰둥한 이도 있을 거다. 단순한 달리기에 뭘 그리 의미와 감상을 부여하느냐고. 글쎄, 한 번이라도 달려본 사람이라면 알지 않을까? 달려본 적 없다고? 에이, 하다못해 운동회라도 복기해보면 쿵쿵 울리던 심장이 떠오르던데. 일명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라는 것도 은연중에 경험했을지도 모른다. 달리기 시작하면 20분 후에 엔돌핀이 분비되기 시작하고 몸이 땀에 흠뻑 젖을수록 오히려 정신적으로는 쾌감을 경험하게 되는 상태다. 이에 관해 웹사이트를 뒤지던 중 미국의 한 대학교 게시판에 이런 표현도 있었다. “파일럿이 된 듯 발 밑으로 땅이 저절로 지나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시기.” 조지 쉬언의 말도 이와 비슷하다. “하루에 한 시간씩 길에서 달리면 알코올을 통해 느꼈던 정신 상태를 맛보게 된다. 달리기는 사람을 자연적인 환각 상태로 이끈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다.” 아무리 되짚어봐도 이런 경험은 없다고? 잘 됐다, 그럼 오늘밤에 한 번?

mini  interview
달리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는 선배 러너들의 이야기.
 ●이유신(30세, 스포츠 브랜드 재무 담당자)
달리기 시작한 계기. 군인일 당시 매일 아침 운동을 하도록 돼 있었다. 이때  흥미를 갖게 됐다. 그 때부터 6년 정도 달린 듯. 마라톤 대회 참여 경험이 있는지? 하프 마라톤 두 번, 지난해에는 나이키에서 주최한 마라톤 대회 ‘휴먼레이스’에 나가 10km를 뛰었다. 운동 시간과 장소. 주중에는 피트니스 클럽에서 30분씩 뛰고, 주말에는 집 근처 한강변 조깅 코스를 4km 정도 뛴다. 달리기가 생활 속에 자리 잡은 단계는? 내 경우엔 일종의 심화 단계가 있었다. 일단 취미로 시작했다. 그 다음엔 달리는 즐거움, 일명 ‘러너스 하이’를 경험했고 그 이후에는 정기적으로 달리게 됐다. 그 다음엔 기록에 관심이 생기고 얼만큼 줄이겠다는 목표가 생겼다. 하다 못해 실내에서 트레드밀을 뛰어도 동일한 시간 안에 좀 더 많은 거리를 가려고 했고. 달리기 자체에 꽤 자신감이 생긴 후에는 마라톤 도전 욕망이 생겼는데, 쉽게 오는 생각은 아닌 것 같다. 운동 후 집에 돌아갈 때의 기분. 몸은 피곤한데 뿌듯하다. 몸매 관리를 했다는 것 자체도 뿌듯하고, 목표만큼 달린 것도 뿌듯하다. 이런 사람에게 추천. 첫 번째는 소극적인 성격의 사람들. 운동을 열심히 하고 또 잘하게 되면 자신감이 생기고 긍정적으로 변한다. 두 번째는 오래 앉아 있는 직업의 사람들. 손쉽게 시작할 수 있는 운동이 달리기 아닐까?
●최서연(32세, PR 에이전시 브랜드 매니저)
달리기 시작한 계기.
20대 마지막을 앞두고 뭔가에 도전하고 싶었다. 먼저 마라톤이라는 목표를 세우고 규칙적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피트니스 클럽은 잘 안 맞는지 안 가게 되더라. TV 화면을 보면서 뛰는 게 좀 답답하기도 하고. 그 전에도 운동을 했는지? 스포츠 마니아까지는 아니어도 원래 움직이는 걸 좋아한다. 마라톤은 또 다른 차원일 듯한데? 뭐, 어디 가서 배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전담 코치가 있는 것도 아니니 막막했지. 일단 관련 기사를 많이 찾아봤다. 호흡법, 자세, 뛰고 걷는 시간 분배 등을 여기서 참고했다. 조깅 첫날을 떠올려 본다면? 친구와 같이하다 보니 운동이라기보다 수다 시간이 되더라. 그 다음부터는 혼자 나갔다. 처음엔 좀 어색해서 걷다가 누군가 뛰면 그 뒤를 쫓아 뛰는 식이었다. 달릴 때 무슨 생각 하는지? 무념무상! 사실 굉장히 집중해야 되거든. 자전거도 피해야 하고, 걷기 운동하는 사람들도 피해야 하고. 몸에 부딪치는 바람결은 온전히 느껴진다. 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걸으면 여기저기 둘러볼 텐데, 뛸 때는 거의 앞만 보고 뛴다. 대신, 잘 뛰는 사람들은 눈에 잘 보인다. 옷 태나 근육이 남다르다. 은근히 멋있는 남자들도 있다. 앗, 그럼 달리다 인연이라도? 여자보다 남자가 월등히 많긴 하다. 멋있는 남자를 본 적도 있는데 다시 마주치진 못했지. 그리고 달리기 자체가 그다지 예쁜 운동이 아니어서…. 땀 흡수가 잘 되는 옷이라 해도 목둘레나 소매 등에 땀 자국이 생길 수밖에 없다. 초보를 위한 조언. 휴대전화는 안 가지고 오는 게 사실 좋다. 손에 들고 다니면 은근히 예민하게 무게가 그쪽으로 쏠린다. 달리는 이유. 마라톤에 도전했을 때, 숨이 턱까지 막히던 순간을 가까스로 극복한 후 호흡이 고르게 바뀌면서 숨이 편안해졌다. 처음 경험해보는, 말하기 어려운 평온함과 희열을 잊을 수 없다. 달리는 여자들에 대한 생각. 마라톤할 때 중년의 아주머니들도 꽤 있었다. 아주 멋지고 탄탄한 근육을 보면서 순간 내 몸이 부끄러웠다. 그런 의미에서, 달리는 여자들이야말로 자기 관리의 대표자들이 아닐는지!
●안은정(29세, 공기업 인사 담당자)
조깅 경력.
지난가을에 시작했으니 1년 남짓. 시작한 계기. 인생이 지지부진했다. 안정적인 직장을 포기할 수 없고 집안 문제 등이 있어서 유학을 포기했고, 남자친구와도 끝났다. 왜 달리기를 택했는지? 수영이나 요가 등 고요한 운동은 성에 차지 않을 듯했다. 친구가 킥복싱을 배운다기에 분풀이에 제일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등록하러 가기가 너무 멀더라. ‘해야지’ 생각만 하다가 또 시간이 흘러갔고 안 되겠다 싶어서 즉흥적으로 집 앞으로 뛰어나갔다. 달리기 습관이 정착되기까지. 한 3주? 사실 첫날 뛰고 또 근 2주를 안 나갔다. 벼르고 벼르다가 주말 한낮에 뛰었다. 집 근처 공원에 갔는데 확실히 그냥 길가를 달리는 것보다 좋더라. 일단 운동용 공간이니까 길도 편하고, 간단히 손을 씻을 수 있는 수도가 있는 것도 좋고, 운동하는 사람들이 워낙 많아 남을 의식할 일도 없었다. 첫 조깅의 추억. 이 날은 본격적으로 운동하기보다 일종의 답사였다. 어떤 코스로 몇 분 정도 뛰면 될지 정할 수 있었다. 그리고 주중 저녁에 2번, 주말 오전에 1번 10분 걷고 40분 달리고 10분 걸었다. 3주 정도 하면 제법 익숙해지는 것 같다. 계획을 세울 때 도움을 받은 곳은? 딱히 없다. 어찌 보면 좀 ‘무대포’ 다. 걷고 달리고 마무리로 걷는 시간 분배는 피트니스 클럽 다닐 때의 운동법을 적용한 거다. 실내 자전거나 트레드밀 할 때 보통 그렇게 하니까. 예상과 달랐던 점은? 막연히 종아리가 아프겠지 생각했는데, 무릎에 충격이 제일 많이 온다. 허리와 골반도 많이 쓰고. 그리고 처음엔 다리에 맞춰 팔을 규칙적으로 흔들어야 한다는 걸 너무 의식해 어깨가 뭉쳤다. 마라톤 계획은? 없다. 아직은 별다른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꾸준히 달린다는 것 자체를 스스로 대견해하고 있는 정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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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 김보미
  • 사진: 김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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