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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묘> 감독, 장재현이 파헤친 이야기들에 대하여
"영화관을 나와 집에 갔을 때, 이 영화가 전혀 생각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장재현이기꺼이 파헤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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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첫째 주까지도 <파묘> 후반작업을 했다고요. 2월 22일 개봉을 앞둔 기분은
5년 동안 붙잡고 있던 작품을 손에서 떠나보내야 할 시점이 되니 마음이 복잡합니다. 2022년 10월 크랭크인해서 2023년 3월에 촬영이 끝났으니 후반작업과 편집을 또 1년 가까이한 셈인데 헛헛하기도, 누군가 영화를 빼앗아가는 느낌도 들어요. 제가 통솔자 유형인 ENTJ인데, 일이 없으면 우울해하는 MBTI라고 하더라고요.
장편영화 데뷔작이었던 <검은 사제들> 개봉이 2015년입니다. 이후 한국 콘텐츠산업에서 일어난 변화 중 하나가 영상물이나 웹툰, 소설 등 창작물에서 ‘한국형 오컬트’가 장르로서 명확하게 자리 잡았다는 점 아닐까 싶은데요. 창작자 입장에서도 감지되는 변화일까요
한국에서 오컬트 영화는 드물게 여겨지지만 쌓여 있는 시나리오는 이전부터 제법 있었던 걸로 압니다. 다만 자주 만들어지지 않았던 거죠. 최근 몇 년 새 ‘한국형 오컬트’로 불릴 만한 드라마와 영화들이 꽤 나왔는데 대중이 이런 소재와 장르를 의외로 좋아하는구나, 마니아 층이 넓어지고 있구나 싶어 반갑습니다. 이 토대를 만든 사람들에게 고맙기도 하고요.
인상 깊었던 작품은
근작 중에서는 <천박사 퇴마연구소 : 설경의 비밀>을 재미있게 봤어요. 큰 줄기는 제 작품과 비슷하지만 스타일은 다른 영화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죠. 마침 <검은 사제들>에 함께했던 강동원 씨가 나오기도 하고요.
‘한국형 오컬트’라는 분류에는 동의하나요
각본을 쓰고 영화를 직접 만드는 입장에서는 사실 하나하나 다른 영화로 여겨지긴 해요. 오컬트라는 용어가 공포영화를 가리키는 한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게 아니라면 사실 크게 상관하지 않아요. 그렇게 호명돼서 편한 지점도 있고요. 일부러 공포스러운 영화를 만들려고 하지도 않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초자연적 현상을 소재로 삼는 작품들. 예를 들어 제 기준에는 <사랑과 영혼>이나 <신과 함께>도 오컬트 영화거든요. 다만 이 장르의 매력은 현실에 한 발 붙였을 때 극대화된다고 생각합니다. 그 한 발을 떼면 판타지가 되는 거죠.

<검은 사제들>(2015)과 <사바하>(2019)로 ‘한국형 오컬트’라는 장르를 구축해 낸 장재현의 세 번째 영화 <파묘>는 제74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 초대되기도 했다
‘한국형 오컬트’라는 표현을 떠나 <파묘>의 장르를 정의한다면요. 영화는 LA에 사는 한 가족에게 불운이 지속되자 젊은 무속인들이 조상 묫자리 이장을 권하고, 그 파묘 과정에서 ‘험한 것’이 세상에 나온다는 내용이죠
<파묘>를 준비하면서 많이 찾아본 건 미라와 관련된 것이었어요. 관련 소설과 영화를 많이 봤죠. 동양에서는 그게 강시일 수도 있고요. 의외로 우리나라에도 특유의 장례문화로 인해 의도치 않게 발견된 미라들이 심심찮게 존재하거든요.
풍수사 상덕(최민식)과 장례지도사 영근(유해진), 무당 화림(김고은)과 봉길(이도현)이 영화의 중심입니다. <파묘>는 풍수와 의례, 무속신앙 같은 민속 요소를 활용한다는 점에서 천주교(<검은 사제들>)나 개신교, 불교(<사바하>)가 전면에 나섰던 전작과는 또 다릅니다. 종교 교리적 측면을 정확하게 전달하려는 책임감에서 벗어난 자유로움도 있었을지
전작들은 종교가 소재다 보니 조심스러운 부분이 많을 수밖에 없었죠. 이번에는 시나리오에 돌입하기 직전에 한국장례협회를 찾았습니다. 그곳에서 협회 대표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이런 소재를 다루려면 어떤 사람을 만나야 할지 소개받았어요. 풍수지리사, 경력이 풍부한 장의사, 이 소재와 가장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무속인을 찾아가 조언을 받기도 하고, 주인공들의 세계를 꽤 깊게 파고들었습니다. 실제로 장례지도사 공부를 하며 이장에도 여러 번 참여했어요. 그 과정을 통해 제가 ‘본 것’보다는 ‘느낀 것’을 영화에 담고자 했죠.
어떤 걸 느꼈나요
한국 장례문화는 서양과 핵심이 달라요. 서양의 장례는 죽은 자가 살아 있는 사람을 맞이해요. 화학약품을 써서 살아생전의 모습과 닮은 모습을 근접하게 구현하죠. 한편 한국 장례는 죽은 사람을 이승에서 보내기 위한 일련의 의식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장을 몇 번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과거를 들춰내는 느낌이 확 오기도 해요.

현대사회에서 이장이 일어나는 경우는 보통 어떤 이유 때문이던가요
고속도로가 생기거나 땅을 팔게 돼서 이장하는 경우도 있지만, 제가 참여했던 건 급하게 나쁜 일이 생겼을 때가 대다수였어요. 잘못된 일의 원인을 찾아내는 거죠. 그게 가장 ‘영화적인’ 이장의 순간이기도 합니다. 오래된 묘를 파서 과거를 들추고 잘못된 것을 파헤치는 행위와 과정에서 느낀 감정을 주제로 한 것이 이 영화의 중심입니다.
잘못된 것을 눈으로 확인하고 바로잡듯이 영화의 결말도 명쾌할지
해석의 여지를 관객에게 남기는 의문성 결말을 좋아하지 않아요. 주구장창 설명만 할 수 없으니 다소 불친절할 수 있지만, 결말에 이르러 관객이 정확하게 뭔가를 느끼길 바라죠. 그게 연출 방향이 되기도 하고요. 예를 들어 <사바하>는 슬퍼하길 바랐어요. 내가 이 모든 과정을 겪고 죽어가는데 정작 그토록 믿었던 신은 대답이 없으니 얼마나 마음 아픕니까. 그런데 <파묘>는 기본적으로 잘못된 것을 파내는 이야기잖아요?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오락성, ‘화끈함’을 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게 장르적으로 진입 장벽이 있는 이 영화를 용기 내어 보러 와준 관객들에게 해줄 수 있는 선물이라고 생각해요. 기껏 영화관까지 왔는데 답답한 마음으로 극장 문을 나오기를 원하지 않아요. 집에 돌아가서는 이 영화에 대한 생각을 아예 안 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의 엔딩이 제법 뭉클하기는 해요. 등장인물들에게 고생했다는 말을 해주고 싶기도 하고요.
찍는 게 아니라 그냥 귀신이 찍혔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어요. 헛발질을 하더라도.
지난 1월 <파묘> 제작발표회에서 모든 것을 전작과 다르게 하려고 노력했다고 했어요. 잘하던 것을 하지 않는 것은 모험이자 고행이기도 한데
전작에서는 정제된 영화를 찍었다고 할까. 정확한 그림을 그리고, 배우의 연기를 상상하며 스토리를 만든 다음에 그걸 촬영하고 이어 붙이는 과정을 따랐죠. 그런데 관객은 영화를 본다기보다 느끼거든요. 관객은 의외로 한 컷 한 컷 다 보지 않아요. 그렇다면 ‘느낀다’는 것을 어떻게 담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많이 했고, 그런 고민 끝에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작업했습니다. 이 방향성에 맞는 스태프를 고르고, 일단 많이 찍은 다음에 가장 힘 있는 것들을 모아 한 신을 만들었어요. 현장에서는 당연히 불안했죠. 그런데 이 쌓이고 쌓인 것들이 편집실에서 응축되고 음악을 입혔을 때 생겨나는 이상한 에너지들이 있더군요. 초자연적 현상을 담는 장면을 촬영할 때는 귀신을 찍는 게 아니라 그냥 귀신이 ‘찍혔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어요. 의도적인 헛발질을 하더라도.

전작에서도 기억에 남을 만한 굿 장면이 한 번씩 등장했습니다. <파묘> 예고편에도 김고은 배우의 강렬한 대살굿 장면이 눈길을 사로잡았어요
굿 장면을 찍을 때 중요시하는 건 비주얼이 아니라 목적입니다. 수많은 종류의 굿에는 그에 따른 과정과 목적이 정확하거든요. 동작과 의도를 정확히 구현하고자 하죠. 또 알고 봤을 때 오는 재미가 있기에 그걸 관객에게 전하고 싶기도 해요. 촬영할 때는 오히려 분위기를 삼엄하게 하지 않습니다. 나쁜 에너지에 ‘기가 빨리는’ 느낌이 들어서요.
사실 오컬트 영화 팬이라면 무조건 좋아하는 게 굿 장면일 거예요(웃음). 연출작들의 장르적 면모가 강조되지만 출연진도 항상 화려했죠. 박소담, 이재인 같은 신인 배우가 발굴되기도 했고 특히 이정재 배우의 필모그래피에서 박 목사(<사바하>) 역할은 이질적이기도 해요. 왜 배우들이 당신의 작품에 끌릴까요
배우들은 항상 새로운 걸 원해요. 이미지나 캐릭터를 떠나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은 거죠. 저 또한 영화를 기획하고 시나리오를 쓸 때 새로운 걸 하고자 최대한 노력하기 때문에 그런 부분을 배우들도 좋아하는 것 아닐까요. 실제로 “살면서 이런 역할, 이런 작품을 언제 해보겠냐”는 말을 자주 듣곤 합니다.
화림 역할로 김고은 배우를 처음부터 원했다고 하더군요. 원래 구체적으로 인물을 상상하고 작업하는편인가요
조금 웃긴 이야기인데 기획 단계에서는 대강의 나잇대 정도만 생각한다면 시나리오 단계에 들어설 즈음에는 할리우드 배우들을 구체적으로 상상합니다(웃음). <파묘>의 경우 최민식 선배는 알 파치노, 유해진 선배는 사무엘 L. 잭슨, 김고은은 짧은 머리의 크리스틴 스튜어트, 이도현은 니콜라스 홀트를 상상하며 썼죠.
엄청난 스케일인데요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며 쓰면 마치 대단한 작업을 하고 있는 기분이 들어요(웃음). 우리나라 배우를 생각하고 썼는데 캐스팅에 실패했다, 그럼 대사 톤을 비롯해 많은 것을 바꿔야 할 것 같거든요. 한국말 하는 할리우드 배우를 생각하면서 쓰면 그럴 염려가 없죠.
<검은 사제들>은 바티칸의 장미십자회, <사바하>는 티벳 불교, <파묘>는 LA의 가족이 등장합니다. 관객 입장에서는 한국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에 이런 이질적인 요소들이 등장하는 게 재미있게 느껴지기도 해요
의도치 않았는데 돌아보니 그렇더군요. 구마사제 이야기는 천주교가 당연히 토대가 돼야 하고, 엑소시즘 영화를 기획할 때 그런 요소가 없으면 ‘근본 없어’ 보일 것 같기도 했어요(웃음). <사바하> 때는 실제로 제가 티벳트 불교에 푹 빠져 있었죠. 영화에 등장한 스님들 모두 실제 인물이 모티프였고요. <파묘>의 경우 취재를 위해 만났던 무속인이 마침 다음 주에 일본 ‘출장’을 간다고 하는데 그 말이 재미있더라고요. 그래서 영화의 첫 장면을 무속인들의 해외출장 신으로 해야겠다 싶었죠.
봉길의 팔에 그려진 한자들은 어떻게 탄생한 아이디어인가요
<사바하> 때 만난 잘생긴 남자 법사님이 대학생 때까지 야구선수를 하다가 신병이 온 사람이었어요. 몸이 안 좋은 원인을 도통 몰랐는데 한 스님이 축경을 읽으라고 해서 읽었더니 괜찮아져서 그걸 온몸에 문신을 한 뒤 신내림을 받았다더군요. 듣는 순간 ‘힙한데?’ 싶어 언젠가 쓰려고 했죠. 물론 멋으로만 쓴 건 아니고, 전개에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처럼 전문가들을 만나 이야기하다 보면 거기에 항상 답이 있어요.

무속인 역할과 달리 장례지도사와 풍수사는 상대적으로 연령대가 높은 배우들을 택했습니다
실제로 풍수지리사와 장례지도사는 저물고 있는 직업입니다. 장례지도학과를 졸업한 이들이 상조회사에 취업하는 등 양적으로는 늘어났지만 도제식으로 의례를 배운 장례지도사는 지금 나이 드신 분들이 거의 마지막 세대라고 봐도 될 정도죠. 그리고 풍수지리는 미신이 아닙니다. 동양 사상이에요. 풍수지리사 분들을 만나면 지질학과 교수님 같기도 하고, 본인 스스로를 과학자라고 여기죠. 유해진 배우의 영근도 교회 장로라는 설정이지만 원래도 교회나 성당 다니는 분이 많고요. 그리고 지금 한국에서 제일 ‘비싼’ 무속인들은 실제로 젊습니다. 굉장히 기세가 있고, 커뮤니케이션 기술도 좋죠. 비즈니스적으로도 영민하고요.
이처럼 준비 과정에서 수많은 관계자와 업계 종사자를 만나잖아요. 짧고 잦은 만남 속 직업인들의 어떤 면모에 호감이나 존중을 느끼나요? 취재 노하우도 궁금합니다
혼자 다니기 때문에 섭외는 직접 하는데요. <검은 사제들>이 흥행해서 섭외가 편해진 것도 있습니다. 다들 생각보다 마음의 문을 빨리 열어주세요(웃음). 제가 귀만 기울인다면 경력이 풍부하고 누적된 분들은 정말 말해줄 게 많지 않겠습니까? 구마사제, 신부님, 스님, 한국종교문제연구소 소장, 티벳 스님들, 장의사 등…. 수많은 이들을 만나며 공통적으로 느깐 것은 어느 한 분야의 전문가들은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직접 체득한 자신의 철학도 확실하고요. 동행하며 배우는 일이 즐겁고 영광이죠.
한국적인 오컬트 요소를 다루다 보면 사라졌거나 사라져가는 풍습 혹은 민속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하게 될 것 같은데요. 안타까운 지점도 있나요. 개인적으로는 많은 마을 굿들이나 장승들이 사라지는 아쉬움이 큰데 김은희 작가의 <악귀>에 그런 지점이 잘 드러나서 좋았어요
사라진다는 개념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는 것 같아요. 하지만 그런 생각은 항상 합니다. 무신론자에게는 종교도 미신이잖아요? 하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데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중요하다는 생각이죠. 사랑과 우정, 의리, 슬픔처럼 보이지 않지만 인간이 추구하는 것들을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느낌이 듭니다. 종교와 사랑은 교회에 걸린 십자가에 있는 게 아니라 오늘도 나를 위해 새벽기도를 하는 엄마의 마음에 있는 것 아닐지, 그런데 그런 것들을 과학적으로만 판단하고 그 무게감을 너무 가볍게 여기는 건 아닌지 개인적으로 안타까운 지점이 있어요. 그게 이런 장르에 몰두하게 된 이유 같기도 합니다. 이런 작품을 만들다 보니 귀신을 믿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기도 하는데요. 저는 귀신을 한 번도 본 적 없어요. 그런데 귀신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게 무섭든 어떻든 인간이 죽고 나면 끝이라는 게 슬퍼요.
사람이 살아가는 데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귀신을 한 번도 본 적 없어요. 그런데 귀신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런 영적인 존재를 믿는 게 많은 부분에서 우리를 겸손하게 만들기도 하죠
저는 제가 너무나 사랑했던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이후에도 어딘가에서 저를 지켜보고 있으면 좋겠어요. 그게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유일한 특권 아닐까요. 우리가 그냥 사라질 무기질 같은 것이라면, 뭐 하러 고생하며 착하게 삽니까? 편하게 살면 되는데. 그게 극단적으로 가서는 안 되겠지만 이처럼 보이지 않는 어떤 것을 몰두하고 파헤치는 게 제 영화 작업의 여정 같아요.
장례지도사 공부를 하며 실제로 관에 누웠을 때 기분은
관에 누우면 일단 불편합니다. 불편하고요(웃음). 사람들은 보통 좋은 관에 시체를 집어넣는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명당에 묻을 때는 관 밑에 칸을 빼서 땅과의 접촉면을 늘립니다. 빨리 땅과 일체가 되도록 말이죠.

그러고 보니 티벳 불교에는 어쩌다 빠졌나요
어릴 때부터 신앙생활을 해온 제가 갖고 있던 종교에 대한 고정관념을 다 부숴버렸어요. 그 매력에 흠뻑 빠져 두 명의 교수님과 오랜 시간 공부했습니다. 의외로 또 우리 일상 가까이에 있어요.<사바하>를 촬영했던 곳도 월곡역 근방에 있는 커다란 밀교 절이고, 부산을 비롯해 곳곳에 있는데 우리가 무관심해서 보지 못할 뿐이죠. <검은 사제들>의 수도원도 알고 보면 정동 한복판에 있거든요.
내 눈에 보이는 것, 내 귀에 들리는 말이 진짜인지 거짓인지 판단해야 하는 순간이 이전 작품에 주요하게 등장했습니다. <검은 사제들>에서는 영신(박소담)의 말이 실제 영신의 말인지, <사바하>에서는 진짜 신의 전언이 무엇인지 끝없이 고뇌하는 것처럼요
<파묘>에도 그런 장면이 많습니다. 이른바 ‘선문답’이라고 부르는 순간이죠. 비밀을 하나 말하면 그 모든 것들이 영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정보라는 거예요. 영화를 러닝 타임에 맞춰 편집하다 보면 꼭 필요한 ‘엑기스’만 남게 돼요. 쓸데없는 장면에 쓸 시간이 없거든요. 그리고 저는 매일매일이 의심의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스태프들이 이 장면이 더 좋다고 할 때 이 말을 믿어야 되나 말아야 하나 같은 거죠(웃음).
신앙은 절대적 믿음을 요구합니다. 믿음이 있는 삶과 아무것도 믿지 않는 삶 중에서 어떤 게 낫다고 생각하는지
그건 MBTI에 달려 있는 것 같습니다.
인터뷰를 시작할 때도 바로 본인 MBTI를 소개해서 내심 당황했는데 혹시 MBTI 신봉자인지
완전 신봉자죠(웃음). 제가 뭔가를 믿고 안 믿느냐는 내게 도움이 되냐 되지 않느냐에 달린 것 같아요. ENTJ인 저는 도움이 된다면 내 뇌를 개조해서라도 믿지만 도움이 안 된다면 어떻게 해도 믿지 않아요. 감정형인 F들은 많이 흔들리겠지만.
돌아가신 할머니가 나를 어딘가에서 지켜보고 계시면 좋겠다는 이야기는 감동적이었습니다만
할머니의 존재를 믿는 것은 저에게 도움이 되는거죠. 교회에 다니지만 영화 크랭크인 전에는 무조건 할머니 산소에 가서 영화 잘되게 해달라고 기도를 올립니다. 그렇게 해서 내 마음이 좋아진다면 그건 결국 좋은 일인 거니까요. 신앙 생활은 워낙 어릴 때부터 습관화된 면도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생각해요. 인간이 살면서 신앙을 갖는 게 얼마나 재미있는 일인가. 신을 완전히 믿고 그 대답을 기다리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건 진즉에 깨달았죠. 하지만 신앙생활이 일상을 풍성하게 만들고 마음에 안정을 주는 것은 사실입니다.
<파묘>의 감독으로서 혹시 본인의 장례 방식에 대해 생각해 봤나요
저는 화장할 겁니다. 명당에 묻힐 게 아닌 바에야 뒤탈이 일어날 가능성도 없고 제로섬으로 돌아간다는 점에서 화장이 제일 깔끔해요. 실없는 이야기 같지만 이게 우리 영화에 제법 중요한 영향을 미쳐요.
Credit
- 에디터 이마루
- 사진가 김태구
- 아트 디자이너 이소정
- 디지털 디자이너 오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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