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땅의 이야기를 품는, 네임리스건축

네임리스건축은 지형과 재료에 집중해 자연의 진가를 포착한다.

프로필 by ELLE 2023.11.21
 
 
 
 
오케스트라로 유명한 동화고등학교를 위해 만든 어울림동의 공연장. 간결한 인테리어는 조명과 음향 설비를 최대한 매입하는 디테일로 완성됐다.

오케스트라로 유명한 동화고등학교를 위해 만든 어울림동의 공연장. 간결한 인테리어는 조명과 음향 설비를 최대한 매입하는 디테일로 완성됐다.

 
 
주택 프로젝트 ‘아홉칸집’을 만들면서 나은중 · 유소래 소장은 여지를 남기는 건축을 고민하게 됐다.

주택 프로젝트 ‘아홉칸집’을 만들면서 나은중 · 유소래 소장은 여지를 남기는 건축을 고민하게 됐다.

 
 
파빌리온 고온리는 향리의 옛 지명을 딴 작품으로 물이 수로로 떨어지면서 파장을 만든다.

파빌리온 고온리는 향리의 옛 지명을 딴 작품으로 물이 수로로 떨어지면서 파장을 만든다.

 
 
 
 ‘콘크리트 월’은 자연의 돌과 인공 콘크리트를 교차해 다채로운 질감으로 실험했다. 아래는 콘크리트 월의 돌빛정원. 천장의 빛 구멍을 통해 직광이 떨어질 때 자연의 돌 위로 또 다른 빛이 깃들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콘크리트 월’은 자연의 돌과 인공 콘크리트를 교차해 다채로운 질감으로 실험했다. 아래는 콘크리트 월의 돌빛정원. 천장의 빛 구멍을 통해 직광이 떨어질 때 자연의 돌 위로 또 다른 빛이 깃들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올해 9월 정식 오픈한 카페 ‘콘크리트 월’은 건축 재료에 집중했습니다
사이트를 보러 제천에 갔을 때 우연히 도로확장공사를 하는 걸 봤어요. 파헤쳐진 산속이 죄다 돌인 걸 보니 호기심이 생기더군요. 제천은 금수산 정산에 오르면 돌기둥이 있는 곳이기도 하고, 아시아 최대 규모의 시멘트 공장을 가진 도시기도 해요. 땅이 가진 근본적인 속성인 ‘돌’에 집중해 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설계를 시작했어요. 콘크리트는 액체로 된 돌이에요. 성분을 살펴보면 자갈과 물, 시멘트인 모래, 돌가루인데 자연의 돌과 크게 다르지 않거든요. 진짜 돌과 가짜 돌 사이의 경계를 찾아가며 만든 공간입니다.
 
 
지형이 가진 특징부터 설계를 고안하면서 발견한 게 있다면
입구에 들어서면서 마주하는 빛과 계단 속 어둠, 물 떨어지는 소리, 새 소리 역시 공간 여정입니다. 눈에 보이는 요소 하나하나가 정확히 어디에 놓여야 하는지보다 경험과 이야기에 몰두하고 있어요. 자연은 늘 아름답지만, 익숙한 풍경으로 받아들이면 그 진가를 인지하지 못할 수 있잖아요. 오히려 사람이 만든 구획과 물질로 더 돋보이기도 하죠. 건축이 빛과 그림자를 극적으로 그려내면서 자연의 오감에 집중할 수 있는 가이드를 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공간태리는 건물 두 동의 중앙 마당을 비워 계룡산 산책로 초입과 이어지도록 설계했다.

공간태리는 건물 두 동의 중앙 마당을 비워 계룡산 산책로 초입과 이어지도록 설계했다.

 
카페 ‘공간태리’는 언뜻 보면 공공건축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카페라는 공간은 뭘까’ ‘카페가 공공성을 띨 수 있을까’를 고민했습니다. 공간태리가 들어선 대전 유성에는 계룡산 진입 산책로 앞에 빈 땅이 있었어요. 주변에는 간판 여러 개가 쫙쫙 붙어 있는 건물이 즐비했고요. 최대한 큰 면에 간판을 노출한 상업공간이 형성되고 있었는데, 저희는 오히려 각도를 90°로 틀어 중앙 마당을 비웠어요. 산책로로 가는 동선 흐름을 막지 않고 길처럼 연장될 수 있도록 구성하겠다는 전략이었죠. 두 개의 동 사이에 있는 마당을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오가는 길목으로 만들었어요. 이제 한국의 카페 공간은 상업적인 동시에 공공성을 가진 공간이 된 것 같아요. 약 1만 원 내외면 계층과 지위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나 점유할 수 있으니까요.
 
 
양천구 신목고등학교 도서관 역시 땅과 연결되는 곡선을 가진 건축물로 완성했어요
설계 전 가장 먼저 땅이 가진 이야기에 집중합니다. 건축은 어쩔 수 없이 지형, 도시의 컨텍스트와 관계를 맺게 되거든요. 땅이 가진 속성을 살피고 그 위에 무엇을 만들어야 할지 고민하는 게 저희의 시작입니다. 신목고등학교는 일반적인 학교와 달리 구령대와 벤치가 없었어요. 건축물이 독립적으로 서 있는 것도 멋지겠지만 운동장과 관계를 맺으면서 학생들이 앉고 기댈 수 있는 역할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자연스럽게 땅 위로 벽이 흘러내리는 형태를 떠올렸고 건물 전면이 학생들이 걸터앉을 수 있는 입면이자 벤치가 될 수 있도록 구성했습니다.
 
건축가로서 지금 하고 있는 고민은
처음 설계사무실을 만들고, 본격적으로 작업하기 전에 누군가가 “건축가가 뭐 하는 사람이에요?라고 물으면 “꿈꾸는 사람”이라고 답하곤 했어요. 프로젝트에 많이 부딪히면서는 “조율해서 이끌어가는 사람 같아요”라고 했거든요. 최근에 다시 꿈꾸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건축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사람들의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다고 믿어요. 일상 너머에 영감을 건넬 수 있는 공간을 만들려면, 만드는 사람이 꿈꾸고 있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요.

Credit

  • 에디터 김초혜
  • Courtesy Of Roh Kyung / Kim Dong Gyu
  • 아트 디자이너 김려은
  • 어시스턴트 이서진
  • 디지털 디자이너 장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