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실로 감싼 파이프가 전하는 한 줌의 온기

금속과 실의 이토록 따뜻하고 명랑한 조우.

프로필 by 윤정훈 2023.10.14
‘Tension Gray 30’.

‘Tension Gray 30’.

‘7 Square loops’.

‘7 Square loops’.

윤정희 작가는 별다른 도구 없이 두 손에 실을 쥐고 알루미늄 혹은 스테인리스스틸 파이프를 감싼다.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실로 촘촘히 감긴 오브제를 만든 동기는 아이러니하게도 덜어내려는 마음 때문. 물질과 이미지, 정보 등 모든 것이 과잉된 도시에 살며 윤정희는 단순하고 간결한 것에 마음이 기울었고, 최소한의 요소로 구성된 흥미로운 작업을 추구하게 됐다. “지나가다 건물의 빈 공간을 발견하면 한참 들여다봐요. 비어 있는 공간은 제게 빈 캔버스나 다름없죠.” 이런 그의 의식은 간결함과 조용함 같은 정서로 치환돼 작품에 담긴다. 
 
 비트리갤러리 <면의 리듬>에서 선보이고 있는 ‘Square stripe’.

비트리갤러리 <면의 리듬>에서 선보이고 있는 ‘Square stripe’.

‘3 Orange Knots’.

‘3 Orange Knots’.

공간 위에 드로잉하듯 완성한 조형들은 한껏 정제돼 있는 동시에 자유분방하다. 엉성하게 구부러진 곡선부터 건드리면 ‘툭’ 하고 풀릴 것 같은 매듭, 질끈 부여잡고 싶은 고리 형태의 손잡이는 모두 벽과 바닥, 천장 등에 아슬아슬하게 걸려 경직된 공간에 신선한 파동을 일으킨다. 단단함과 부드러움, 규칙과 변주, 편안함과 긴장. 양가적 감각이 공존하는 그의 오브제에서는 모종의 해방감마저 느껴진다. 
 ‘Tension black’과 ‘powder 50’.

‘Tension black’과 ‘powder 50’.

 
10월 21일까지 열리는 개인전 <면의 리듬>에서 윤정희는 엄격한 사각형에서 은은히 발하는 리듬감이 특징인 신작 ‘스퀘어 스트라이프’와 ‘오블리크’ 등을 통해 선에서 면으로 확장을 꾀했다. “근현대 건축에 사용되는 자재들은 주로 차가운 물성입니다. 저는 지금 시대의 많은 공간에서 유독 찬 기운을 느껴요. 제 작품이 그런 장소에 약간의 온기를 더할 수 있길, 그런 역할을 해내길 바라고 있어요.”

Credit

  • 에디터 윤정훈
  • COURTESY OF B-TREE GALLERY
  • COURTESY OF HPIX
  • 아트 디자이너 구판서
  • 디지털 디자이너 오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