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더 재킷은 Gucci. 도트 블라우스는 Saint Laurent by Anthony Vaccarello. 이어 커프는 Keep’em.
‘봄봄봄’이 거리에서 들려오던 계절이 막 지났어요. 지난봄은 어떻게 보냈나요
새 싱글 앨범 준비를 했어요. 그동안 기타로 써왔던 음악들이 요즘 대중음악과 어떻게 접목될 수 있는지 고민하는 실험 정신에서 비롯했는데요. 제법 여름과 어울리는 곡이 될 것 같아요.
페스티벌 무대를 통해 오랜만에 관객들을 잔뜩 만나고 있습니다. 콘서트와는 또 다른 기분일 텐데
지난 겨울 4년 만에 단독 콘서트를 열었을 때 많이 떨렸었어죠. 다시 무대에 서는 것도 감사하고 개인적으로 소중함이 컸거든요. 지금은 어느 정도 긴장감이 자연스러워진 상태에요. 페스티벌 무대에 설 때면 팬들이 일부러 더 크게 응원해 주시기도 했고요. 다들 고맙고 귀여웠습니다.
빈티지 블라우스는 Varka. 부츠 컷 팬츠는 FromArles. 선글라스는 Gentle Monster. 롱 네크리스는 Dolce & Gabbana. 이어 커프는 Keep’em. 스니커즈는 Vans. 슬리브리스 티셔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10월에 발표한 4집 〈그리고〉 소개 글이 생각나요. 데뷔 이후 10년간 아껴온 멜로디들과 내일이 마지막이라면 남기고 싶은 가사를 모은, 가장 소중한 마음을 담은 앨범이라고 했죠. 그렇게 진심을 다해 소진했던 경험은 어떻게 남았나요
정말 ‘소진’이라는 표현에 걸맞게 제가 갖고 있던 이야기와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다 배출했어요. 제 음악 인생에서 꼭 나왔어야 했던 앨범이었다고 생각해요. 10년, 20년이 흐른 뒤에도 계속 큰 의미를 가질 것 같은, 아쉬움도 후회도 없이 소중한 앨범이죠. 이러다 시간이 지나면 ‘아, 아무것도 모르면서 이렇게 썼네’ 할 수도 있겠지만. 아직은 부끄럽지 않아요.
부끄러워할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웃음). 새삼 로이킴의 노래를 들어보며 놀랐어요.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이름을 알린 순간부터 대중적으로 친근한 존재였고, 가만히 있어도 곡이 들리는 가수였기에 노래를 따로 찾아 듣지 않았는데 이렇게 진심 어린 가사를 쓰고 부르는 사람이구나 싶어서요
어떤 식으로든 들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감사할 따름입니다. 잘 알려진 제 곡을 듣고, 다른 곡까지 찾아 듣는 팬이 돼주셔도 좋고요. 많은 사람이 공감하고 호응할 수 있는 곡을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하되, 결과에 감정을 많이 소모하지 않으려 해요. 어떤 곡이 어떻게 사랑받을지는 정말 우주의 기운이 필요한 일이라서(웃음).
군입대를 앞둔 2020년 5월에 발표했던 ‘살아가는 거야’와 등대가 돼준 곡이라고 했던 4집 수록곡 ‘시간을 믿어봐’는 더 나은 내가 될 것이라는 믿음에 대해 이야기해요. 이런 향상심은 어디서 오나요
주변 사람이 저로 인해 행복해지길 바라며 살아왔어요. 의도와 상관없이 그렇지 못했던 시기도 있었지만요. 아마도 저는 멈추기 싫은 것 같아요. 자신을 객관화하고, 돌아보면서 안주하지 않으려 하죠. 그런데 다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하지 않나요?
레더 베스트는 Matin Kim. 티셔츠는 FromArles. 이어 커프는 Keep’em. 체인 네크리스는 Off-White™. 별무늬 커프 뱅글과 반지는 모두 Cody Sanderson. 실버 브레이슬릿은 Tiffany & Co.
내가 아닌 외부 요소에서 원인을 찾는 사람들도 있죠. 그런 간극은 분명 존재하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제 향상심의 근원은 저를 아껴주는 주변 사람 덕분인 것 같아요. 나를 여기까지 이끌어준 가족과 주변 사람들, 팬들. 예전에는 팬이 공기처럼 느껴졌어요. 꼭 필요하고 소중하다는 걸 알지만 그들의 고마움을 실감하지는 못했다는 점에서요. 지금은 나날이 그 존재가 소중해져요.
예전에 했던 말을 살펴보면 음악 말고 다른 진로나 꿈에도 관심이 있는 것 같았어요. 지금은 음악이 중심에 단단히 자리 잡은 것처럼 보입니다
대학교 1학년이던 스무 살에 데뷔했기 때문에 방학 때 한국에 오면 가수 활동을 하고, 미국에 돌아가면 학생의 삶에 집중해야 했어요. 다소 기계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던 시기였죠. 그런 의무가 사라진 지금 비로소 가수라는 직업에 몰두하게 된 것 같아요. 가장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스스로 자문해 보면 역시 음악이거든요. 군대 포함해 4년에 걸친 공백기 동안 어떤 음악을 하고 싶은지 충분했어요. 마음먹고 다시 데뷔한 느낌도 들어요.
4년이라는 길다면 긴 시간 동안 음악을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안 했나요
음악을 더 소중하게 느꼈던 시간이었죠. 그동안은 하고 싶은 음악을 내가 하고 싶을 때만 했어요. 그런데 내 음악을 선보이기 어렵다는 경험을 하면서 더 정성 들여 음악을 만들게 된 것 같아요.
음악을 하고 무대에 서면서 가장 행복하고 충만했던 시간을 꼽는다면
4년 만에 열었던 단독 콘서트죠. 음악을 하고 싶고,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고 싶어 한다는 걸 절감했어요. 예전에 상도 받고, 음악적으로 인정받으면서도 그게 음악 인생의 클라이맥스로 와닿지 않았거든요. 한 번도 누구 앞에서 울어본 적 없었는데 콘서트 때는 조절이 안 되더라고요.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어요. 다른 일을 하면서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아요.
첫 곡 시작하는 순간부터 스무 곡이 넘도록 내내 그랬어요. 와 주신 분들을 생각하면 노래를 더 잘 부르고 싶었는데 눈물의 이유를 하나의 감정으로 표현할 수 없어라고요. 슬픔과 반가움, 벅참…. 그때라서 가능한 감정이었던 것 같아요. 소중한 경험이었죠.
뒤집어 착용한 트렌치코트는 Navy by Beyond Closet. 니트 슬리브리스 톱은 Bottega Veneta. 부츠 컷 팬츠는 FromArles. 레드 스니커즈는 Converse. 이어 커프는 Keep’em. 진주 네크리스는 Dolce & Gabbana. 펜던트 네크리스는 Dior.
지금 느끼는 행복과 순간에 충실하라는 메시지도 곧잘 던지죠. 사람들이 인생에서 간과하거나 낭비하고 있는 게 뭐라고 생각하나요
스스로 되새기고 싶어서 그런 말을 자주 하나 봐요. 진부한 이야기지만 저는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살면서 안 힘들 수 없잖아요. 매일 행복한 것도 말이 안 되죠. 본인이 행복하지 않다는 사람이 많은데 그 힘듦 속에도 반짝이는 행복에 집중하면 또 괜찮게 잘 사는 사람이 될 수도 있거든요. 모두 지금 잘 살고 있다는 걸 잊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별것 아닌 일에도 감동과 의미를 부여하라.’ 인스타그램 계정 ‘로이노트( roy_note)’에 썼던 말이 떠오르네요
작은 일, 당연한 일에도 감사하게 되면 세상이 조금 더 예뻐질 것 같아요. 어제 아는 형으로부터 ‘잘 지내? 좋은 하루 보내’라는 문자를 받았어요. 뜬금없고, 어떻게 보면 별 의미 없는 연락이지만 기분 좋던데요.
노트처럼 남겨온 생각을 글로 엮어보고 싶다는 이야기는 예전에도 했죠. 개인 인스타그램에 ‘아름다운 에세이를 써볼 거야’라는 문구를 올렸던데 기대해도 될까요
아, 그건 영화 〈더 웨일〉을 보고 썼던 글이에요. 본인을 부끄러워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영문학 교사가 주인공인데, 그는 일반적 기준에서 옳지 않다고 할 수 있는 것에서도 아름다움을 찾아요. 우리 삶은 솔직한 에세이가 될 수 있고, 그런 솔직함이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면서요. 인생은 기복이 있죠.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 수도 있고, 실패할 수 있어요. 그 모든 일이 벌어져도 결국 내가 눈을 감을 때, 내 삶이라는 에세이의 끝은 아름다울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생겼어요. 언젠가 책도 낼 수 있다면 좋겠네요.
워싱턴 DC의 대학에서 사회학과를 전공했고, 해병대를 만기 전역했어요. 이것이 로이킴에게 미친 영향은
스무 살 때 얼굴이 알려졌어요. 그때 한국에서 학교를 다녔다면 평범한 대학생활을 하기 어려웠겠죠. 대다수가 저를 알아보지 못하는 곳에서 학생처럼 지낸 덕분에 나는 그냥 가수가 직업인 사람이라는, 어떤 현실감을 가질 수 있었어요. 사람들이 나를 지켜보는 방식에 흔들리지 않고요. 해병대 선후임들과 지난겨울에 스키장을 다녀오기도 했는데요. 해병대 생활이 힘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에요. 하지만 그 덕에 끈끈해졌죠. 다 저보다 8~9살 어린 친구들인데, 제 신곡이 나오면 카카오톡 배경음악을 제 음악으로 바꾸기도 하고 적극적으로 홍보해 줘요. 정말 아름다운 일이죠! 지금 저는 거의 해병대 전도사예요. 비록 성공한 적은 없지만(웃음).
저로 인해 주변 사람들이 행복할 때 진심으로 행복해요. 반대로 저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힘들어하면 극도로 힘들어지죠. 가끔 타인이 되어 나를 보고 싶기도 해요. 나는 주관적으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데 내 자신은 판단이 안 되잖아요. 그래도 누가 “로이 불러도 돼?”라고 했을 때 “아, 좋지”라는 말이 나올 수 있는 사람 정도는 되고 싶어요. 인정과 사랑을 갈구하는 건 아니에요. 그런데 내가 잘될 때와 잘되지 않을 때를 겪어보니, 다들 내가 잘될 때 행복해하더라고요. 그럼 더 잘돼야죠. 소중한 사람을 위해서라도.
레터링 티셔츠는 Dsquared2. 데님 팬츠는 Bonbom. 이어 커프는 Keep’em. 체인 네크리스는 Off-White™. 펜던트 네크리스는 Dior. 웨스턴 부츠는 Bottega Veneta. 시퀸 톱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음악이 가진 힘에 대해 의심하지 않고 믿는 게 있다면
음악의 힘은 결국 가사에서 온다고 생각해요. 노래가 타인의 마음에 깊게 들어가는 데 큰 역할을 하죠. 편지나 DM을 확인해 보면 힘들어하는 분이 많아요. 그런 분들이 제 노래를 듣고 ‘울었다’ ‘힘을 얻었다’ ‘공감했다’며 자신의 이야기를 그냥 가수일 뿐인 제게 진지하게 털어놓을 때 음악의 힘을 느껴요. 내가 누군가에게 용기를 주는 사람이라는 걸 보며 저 또한 힘을 얻고요.
그럼에도 음악이 어렵고, 지긋지긋했던 적도 있었을 것 같은데
제가 알려져서 힘들 수는 있어요. 목 상태가 기대보다 좋지 않고, 원하는 소리가 나지 않아 스트레스를 받을 때도 있죠. 그런데 창작 과정에서 힘들다고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힘들었던 것도 음악 때문은 결코 아니에요.
곧 발매될 싱글이죠. 그리고 이번에 작업실이 생겼어요. 작업실은 처음으로 가져보는 건데요. 이 장소에서 많은 것이 나올 수 있을 것 같아 설레요.
세상에 대해 잃지 않는 믿음이 있나요? 희망적이어도, 냉소적이어도 좋습니다
긍정적이어야죠. 잃기 싫은 믿음인데! 진심을 다하면 진실을 알아봐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지금은 그 정도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