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O ANIMALS WERE HARMED IN MAKING
」 오트 쿠튀르 위크의 첫 문을 연 스키아파렐리 쇼에는 볼거리가 넘쳐났다. 엄청난 무게의 비즈가 달린 드레스부터 커다란 어깨의 투우사 재킷, 고대 유물처럼 보이는 황동 가면 등. 그중에서도 가장 주목받은 작품은 바로 동물 시리즈! 샬롬 할로, 이리나 샤크, 나오미 캠벨. 세 명의 슈퍼모델은 사자, 표범, 늑대의 얼굴이 커다랗게 달린 옷을 입고 등장했다. 이후 동물애호가들의 질타를 받았지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다니엘 로즈베리는 곧바로 해명에 들어갔다. “이 모든 것은 핸드 페인팅, 울과 실크, 페이크 퍼로 완성한 트롱프뢰유다. 단테의 ‘신곡’ 지옥 편에 나오는 아이코닉한 동물을 형상화한 것이다. 사자는 자존심, 표범은 욕정, 늑대는 탐욕이다. 혼란의 시대에 필요한 것은 판타지다.”
달콤한 마카롱이냐, 눈부신 형광펜이냐, 당신의 선택은?
1월 23일 오전 10시. 스키아파렐리 쇼장은 눈부신 빨간 아우라를 뿜으며 등장한 여인 때문에 한순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얼굴부터 머리, 어깨, 손까지 노출된 모든 피부가 빨간 크리스털로 뒤덮여 마치 외계 생명체 같았다. 관객은 누구인지도 모른 채 카메라부터 들이대기 시작했다. 옷인지 피부인지조차 알 수 없는 엄청난 분장의 여인은 금방 SNS에 도배됐다. 정체 모를 그녀는 바로 도자 캣! 더욱 놀라운 점은 옷이 아닌 메이크업으로 완성한 것. 메이크업 아티스트 팻 맥그래스에 의해 5시간 동안 3만 개의 크리스털을 피부에 부착했다. 팻은 새벽부터 일어나 꼼짝하지 않고 의자에 앉아 분장을 한 도자 캣의 인내심에 경의를 표하기도. 이후에도 그녀는 빅터 앤 롤프, 장 폴 고티에, 발렌티노 등의 쇼에 새로운 분장을 하고 나타나 쿠튀르 퀸으로 등극했다.
첫 쇼를 선보인 디자이너가 유독 많았던 이번 오트 쿠튀르 시즌. 런던 베이스의 로버트 운(Robert Wun)은 기상천외한 컨셉트를 선보였다. 공포영화의 두려움을 모티프로 컬렉션 룩을 하이패션으로 승화시킨 것. 우산을 썼지만 다 젖은 레인코트, 흰 드레스에 흘려버린 와인 자국, 담뱃불에 탄 웨딩드레스까지. It’s Horrible!
쿠튀르 위크가 끝난 주말 아침 9시, 기다렸다는 듯이 구찌 후임자가 발표됐다. 7년간 구찌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알레산드로 미켈레가 떠난 자리를 채워줄 신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사바토 드 사르노(Sabato De Sarno)를 임명했다. 1983년생의 이름도 생소한 사바토는 이탈리아 출신으로 프라다, 돌체 앤 가바나, 발렌티노를 거쳐 구찌에 안착했다. 보다 대중적인 컬렉션을 위한 케어링의 선택인 만큼 이번 9월에 선보일 밀란 패션위크의 모습은 어떨까?
이제 쿠튀르 드레스도 남자들이 입는 시대. 남자의 치마 패션이 핫 이슈로 자리 잡은 지금, 쿠튀르 피스도 남자들이 입기 시작했다. RVDK 로널드 반 데르 켐프(RVDK Ronald van der Kemp)는 플래그 맥시 스커트부터 슬리브리스 드레스, 맥시 가운까지 여성의 전유물이었던 쿠튀르 드레스를 남성의 것으로 탈바꿈시켰다. 특히 일반인 모델을 앞세워 라이블링한 런웨이를 기획한 것도 오트 쿠튀르 위크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방식.
오트 쿠튀르 기간의 마지막 밤, 뮈글러의 뒤늦은 2022 F/W 기성복 패션쇼가 열렸다. 시기는 늦었지만 효과는 대단했다. 바이럴 영상에 남다른 애착을 가진 뮈글러의 디렉터 케이시 캐드월라더는 마치 영화 세트장을 연상케 하는 카메라가 수십 개 달린 돌리 트랙 카메라 슬라이드를 설치했다. 무대 한편에서 모델들은 섹시한 캣 워킹으로, 다른 한 켠에서는 슬라이더를 타고 미끄러지듯 이동했다. 이동 중에는 슬라이더에 달린 수십 개의 카메라를 향해 농염한 눈빛과 몸짓을 더한 채. 영상은 쇼장의 거대한 스크린을 통해 생중계됐고, 이후에는 SNS와 유튜브에 재편집된 한 편의 뮤직비디오 같은 클립이 탄생했다. 이런 영상이 탄생한 TMI 스토리는? 모델이 트랙에 올라 요염한 포즈를 취할 때 엄청난 무게의 수레를 맨손으로 끌고 달려간 카메라 기사들이 있어 가능했다는 점. 전자동 시스템 아니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