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디움에서 거리로 '블록코어' 룩 || 엘르코리아 (ELLE KOREA)
FASHION

스타디움에서 거리로 '블록코어' 룩

‘블록코어’ 룩을 입고 어느 때보다 패셔너블한 훌리건의 시대가 왔다.

손다예 BY 손다예 2022.12.15
 
무심코 달력을 더듬어보니 월드컵이 코앞이다. 살면서 스포츠팬이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지만 월드컵 기간만큼은 온 국민이 일시적 ‘축덕(축구 덕후)’이 된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라운드를 내달리는 선수들의 움직임을 눈으로 좇으며 손에 땀을 쥐고, 최선을 다하는 이들이 흘리는 구슬땀에 가슴 한구석이 뭉클했다가, 마침내 공이 골대로 빨려 들어가는 순간 터져 나오는 환호성을 지르다 보면 어느새 우리 모두 축구에 진심인 걸 발견한다. 함께 울고 함께 웃으며 보냈던 지난날의 월드컵 장면을 들춰보니 조건반사처럼 도파민이 샘솟는다. 어쩌면 이번 월드컵이 팬데믹과 전쟁, 경기불황을 연달아 겪으며 침체된 세상을 떠들썩한 축제 분위기로 바꿔놓을지도 모르겠다는 기대가 슬금슬금 고개를 든다. 미래를 내다본 것일까? 이날만 기다렸다는 듯 패션계도 축구 유니폼이 트렌드로 부상 중이다. 축구팀의 유니폼을 일상적인 패션 아이템과 매치하는 ‘블록코어(Blokecore)’ 스타일이 등장한 것. 재미있는 사실은 이 트렌드가 한 틱토커의 위트에서 시작됐다는 점이다. 23세 틱토커 브랜던 헌틀리(Brandon Huntley)는 2021년 12월 26일, 전설로 남을 하나의 동영상을 포스팅했다. 파란 축구 유니폼에 청바지, 아디다스 삼바 스니커즈를 매치한 자신의 모습에 ‘Hottest Trend of 2022: Blokecore’라는 제목을 붙였다. 여기서 블로크(Bloke)는 영국에서 남자를 지칭하는 말로 ‘Bro’ 또는 ‘Dude’와 비슷한 의미. 축구를 유난히 좋아하는 영국 남성 중에서도 주말이면 어김없이 유니폼을 입고 스타디움과 펍에 모이는 하드코어 축구 마니아들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한 말이다. 그런데 이 짧은 영상이 가져온 파급력이 어마어마했다. 순식간에 26만 회가 넘는 조회 수를 기록하며 틱토커 사이에 엄청난 화제가 됐고, 결과적으로 하나의 밈이 된 것. 챌린지라도 열린 것처럼 사람들은 너나없이 각자의 옷장에서 축구 유니폼을 꺼내 자신만의 스타일을 공유했고, 축구에 열광하는 젊은 남성을 중심으로 블록코어가 본격적인 패션 트렌드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서브 컬처를 발 빠르게 흡수하는 영민한 이들이 이 흐름을 놓칠 리 없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벨라 하디드. 벨라는 여러 축구팀의 유니폼을 쇼츠, 트레이닝팬츠, 데님 팬츠 등 다양한 하의와 자유자재로 매치해 블록코어를 대중적으로 널리 알렸고, 패션 인플루언서이자 DJ로 활동하며 패션계의 ‘핵인싸’로 알려진 시미 & 헤이즈 카드라 자매는 FC 마르세유의 저지 유니폼에 카고 팬츠와 까르띠에 러브 브레이슬렛, 팬더 워치를 매치한 스타일링을 보여주며 스트리트와 럭셔리 패션의 믹스매치를 제안했다.
 
국내에서는 뉴진스의 데뷔곡 ‘Attention’의 뮤직비디오를 계기로 많은 사람이 블록코어를 인식하기 시작한 듯하다. 높고 파란 하늘 아래 펼쳐진 초록 잔디 그라운드를 무대 삼아 찰랑이는 생머리를 휘날리던 다섯 소녀의 청량함을 배가시킨 건 다름 아닌 저지 유니폼이었다. 짧은 트랙 팬츠 그리고 니 삭스와 함께 매치해 미니 원피스처럼 연출하기도 하고, 허리를 고정해 크롭트 톱처럼 입은 뒤 데님 쇼츠를 더하는 등 뉴진스가 보여준 유니폼 스타일링은 하이틴영화에 나올 법한 순수하고 쾌활한 청춘의 스포츠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블랙핑크의 신곡 ‘Pink venom’ 뮤직비디오가 공개됐다. 곡의 하이라이트인 랩 구간이 나오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유니폼을 입은 제니가 등장했다. 허리가 드러나게 크롭트 톱으로 연출한 유니폼 위에 비비안 웨스트우드 초커 네크리스를 비롯해 진주 목걸이를 주렁주렁 레이어드한 제니의 블록코어는 뉴진스의 청량함과는 정반대로 카리스마 넘치는 강인함을 발산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제니가 입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팀가이스트 저지’가 시즌 초반이라 물량이 넉넉했음에도 불구하고 6시간 만에 품절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뿐 아니다. 하이패션도 블록코어를 주목하고 있다. 지난 오트 쿠튀르 컬렉션에서 레알 마드리드 소속 축구 선수 에두아르도 카마빙가(Eduardo Camavinga)를 모델로 세워 축구에 대한 관심을 드러낸 적 있는 발렌시아가의 뎀나 바잘리아는 지금 이 트렌드를 견인하는 선두주자. 특히 뉴욕증권거래소를 배경으로 열린 2023 리조트 시즌 패션쇼에서는 아디다스와 협업해 본격적인 블록코어 스타일을 선보였다. 온몸을 뒤덮을 만큼 큼직한 실루엣에 엠블럼을 장식한 오버사이즈 저지 티셔츠, 실제로 축구 선수들이 들 법한 익숙한 디자인에 가죽을 적용해 반전을 꾀한 더플백, 무릎까지 올라오는 도톰한 로고 디테일의 양말까지. 스타디움에서 걸어 나왔다고 해도 믿을 만큼 현실감 넘치는 아이템이 등장해 신선함을 더했다. 최근 공개된 구찌와 팔라스의 협업 컬렉션에선 한눈에 첼시 FC의 유니폼이 떠오르는 그래픽 프린트 저지를 만날 수 있었고, 이어진 팔라스와 Y-3 컬래버레이션 캠페인에는 전설적인 축구 선수 지단이 등장해 트랙수트를 입고 드리블하는 장면이 공개됐다. 한편에선 몽클레르가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와 손잡고 경기장 밖에서도 입을 수 있는 팀 시그너처 아이템을 내놓기도 했으니 그야말로 스트리트부터 하이패션에 이르기까지 전방위로 에워싼 블록코어의 빈틈없는 포메이션에 꼼짝없이 골 문을, 아니 옷장 문을 열어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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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손다예
    COURTESY OF BALENCIAGA/ GETTYIMAGESKOREA
    COURTESY OF INSTAGRAM(@simihaze)/ SPLASH NEWS
    디자인 김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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