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코 달력을 더듬어보니 월드컵이 코앞이다. 살면서 스포츠팬이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지만 월드컵 기간만큼은 온 국민이 일시적 ‘축덕(축구 덕후)’이 된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라운드를 내달리는 선수들의 움직임을 눈으로 좇으며 손에 땀을 쥐고, 최선을 다하는 이들이 흘리는 구슬땀에 가슴 한구석이 뭉클했다가, 마침내 공이 골대로 빨려 들어가는 순간 터져 나오는 환호성을 지르다 보면 어느새 우리 모두 축구에 진심인 걸 발견한다. 함께 울고 함께 웃으며 보냈던 지난날의 월드컵 장면을 들춰보니 조건반사처럼 도파민이 샘솟는다. 어쩌면 이번 월드컵이 팬데믹과 전쟁, 경기불황을 연달아 겪으며 침체된 세상을 떠들썩한 축제 분위기로 바꿔놓을지도 모르겠다는 기대가 슬금슬금 고개를 든다. 미래를 내다본 것일까? 이날만 기다렸다는 듯 패션계도 축구 유니폼이 트렌드로 부상 중이다. 축구팀의 유니폼을 일상적인 패션 아이템과 매치하는 ‘블록코어(Blokecore)’ 스타일이 등장한 것. 재미있는 사실은 이 트렌드가 한 틱토커의 위트에서 시작됐다는 점이다. 23세 틱토커 브랜던 헌틀리(Brandon Huntley)는 2021년 12월 26일, 전설로 남을 하나의 동영상을 포스팅했다. 파란 축구 유니폼에 청바지, 아디다스 삼바 스니커즈를 매치한 자신의 모습에 ‘Hottest Trend of 2022: Blokecore’라는 제목을 붙였다. 여기서 블로크(Bloke)는 영국에서 남자를 지칭하는 말로 ‘Bro’ 또는 ‘Dude’와 비슷한 의미. 축구를 유난히 좋아하는 영국 남성 중에서도 주말이면 어김없이 유니폼을 입고 스타디움과 펍에 모이는 하드코어 축구 마니아들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한 말이다. 그런데 이 짧은 영상이 가져온 파급력이 어마어마했다. 순식간에 26만 회가 넘는 조회 수를 기록하며 틱토커 사이에 엄청난 화제가 됐고, 결과적으로 하나의 밈이 된 것. 챌린지라도 열린 것처럼 사람들은 너나없이 각자의 옷장에서 축구 유니폼을 꺼내 자신만의 스타일을 공유했고, 축구에 열광하는 젊은 남성을 중심으로 블록코어가 본격적인 패션 트렌드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서브 컬처를 발 빠르게 흡수하는 영민한 이들이 이 흐름을 놓칠 리 없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벨라 하디드. 벨라는 여러 축구팀의 유니폼을 쇼츠, 트레이닝팬츠, 데님 팬츠 등 다양한 하의와 자유자재로 매치해 블록코어를 대중적으로 널리 알렸고, 패션 인플루언서이자 DJ로 활동하며 패션계의 ‘핵인싸’로 알려진 시미 & 헤이즈 카드라 자매는 FC 마르세유의 저지 유니폼에 카고 팬츠와 까르띠에 러브 브레이슬렛, 팬더 워치를 매치한 스타일링을 보여주며 스트리트와 럭셔리 패션의 믹스매치를 제안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