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라브와 원형 철근 콘크리트를 적용해 붉은 벽돌을 쌓아 지은 건물.
깊은 가을에도 수북이 쌓인 낙엽을 치우지 않는 길. 운치와 멋이 흐르는 정동길 한가운데 자리한 신아기념관은 항상 궁금한 건물이었다. 돌출된 출입구와 양 옆으로 이어지는 짧은 계단, 톡 튀어나온 출입구 위로 보이는 작은 테라스, 반지하 층으로 들어서는 출입문까지. 한 번쯤 슬쩍 들어가 보고 싶은 다정한 인상을 가졌다.
돌출된 출입구에서 양 옆으로 연결되는 짧은 계단이 인상적이다.
건물은 구한말 덕수궁 궁역이던 땅에 처음 들어섰다. 1920년대 중반 상하이에서 가져온 붉은 벽돌로 짓기 시작했다. 철근 콘크리트 구조의 반지하 층과 지상 2층으로 이뤄진 건물은 광복 후 신아일보사가 매입한 후 3, 4층이 증축돼 지금 모습이 됐다. 1920년 근대적 지적제도에 따라 정동 1번지를 부여받았는데 처음에는 독일인 외교 고문과 영국인 세무총사 등 외국인 고문관들이 임시 숙소 겸 사무실로 사용했다.
2년 전까지 사용했다는 은색의 라디에이터를 비롯해 건물의 옛 시절을 살필 수 있는 구조와 마감, 설비들이 남아 있다.
미국과 영국, 러시아 등의 공사관이 이웃에 빼곡한 정동에서 건물은 외교관의 아지트가 되고는 했다. 그들이 이곳을 부르는 애칭도 있었다. ‘졸리 하우스(Jolly House)’, 즐거운 집. 신아기념관 입구에는 건물이 살아낸 역사가 단출히 쓰여 있다. 가장 앞머리에는 국내 최초로 판매된 추억 속의 미싱 브랜드 ‘싱거(Singer) 미싱’의 이름이 보인다. 건물은 한국전쟁 직후까지 싱거 미싱의 한국 본사로 사용되다가 미 군정기에는 미 군정경제원조처로, 이후 미 국무성 산하기관들의 사무실로도 쓰였다.
2년 전까지 사용했다는 은색의 라디에이터를 비롯해 건물의 옛 시절을 살필 수 있는 구조와 마감, 설비들이 남아 있다.
1967년 신아일보사가 편집국과 문선, 정판 등이 있는 사옥으로 사용하면서 1975년 건물을 증축했다. 〈신아일보〉는 한국 최초의 상업 신문이었다. 순수하게 신문에 의한 운영을 목표로 했다. 1980년 신군부의 언론기관 통폐합 조치로 〈경향신문〉에 흡수되기 전까지 〈신아일보〉는 신문 한 장이 상품으로서 가치 있도록 한국 최초로 다색도 컬러 인쇄를 도입해 컬러 지면을 구성하고 신선한 레이아웃을 선보였다.
2년 전까지 사용했다는 은색의 라디에이터를 비롯해 건물의 옛 시절을 살필 수 있는 구조와 마감, 설비들이 남아 있다.
신문이 강제 폐간된 이후 건물은 창업주 장기봉과 〈신아일보〉를 기억하기 위한 기념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관공서가 아닌 민간 건물로서는 국내 최초로 슬라브와 원형 철근 콘크리트가 적용된 붉은 벽돌 미식 쌓기 구조다. 이 시기의 철근 콘크리트 건물에서만 발견되는 디테일이 있다. 1층 로비의 천장을 살피면 콘크리트 속에 일정한 간격으로 심어둔 작은 목재 조각이 보인다. 신아기념관은 이곳에 사무실을 차린 공간 디자인 회사 ‘오드33’과 함께 건축물을 손봤는데, 100세 된 건축물의 지난 세월과 역사를 살필 수 있는 구조와 마감, 시설을 선택적으로 잘 살렸다.
2년 전까지 사용했다는 은색의 라디에이터를 비롯해 건물의 옛 시절을 살필 수 있는 구조와 마감, 설비들이 남아 있다.
시간이 흐르며 계속해서 덧댄 것들을 벗기자 좋은 디자인이 나타나기도 했다. 오드33 그리고 18년 전부터 이곳에서 운영돼 온 프랑스 기반 디지털 에이전시 ‘아지앙스코리아’ 사무실은 그렇게 벗겨낸 천장에서 발견된 오래된 목 구조를 철거하지 않고 그대로 두어 이 건물의 헤리티지를 그들의 정체성과 어우러지게 했다.
2년 전까지 사용했다는 은색의 라디에이터를 비롯해 건물의 옛 시절을 살필 수 있는 구조와 마감, 설비들이 남아 있다.
“우리에겐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장소가 아주 중요하니까요.” 아시앙스코리아 공동 대표인 올리비에 무루가 이곳을 선택한 이유다. 정동은 조선 왕조부터의 한국 근현대사가 응축된 지역이다. 서구 문명을 받아들이고 융합한 곳이기도 하다. 그 가운데 신아기념관이 있었다. 신아기념관이 품은 역사는 건물이 지나온 시간의 가치와 에너지를 알아본 창의적인 크리에이터들을 끌어모았다.
얼마 전 신아기념관 2층에는 ‘소일 베이커’가 문을 열었고 오드33의 사무실이 자리한 3층에는 강예림 소장이 이끄는 건축사사무소 ‘SoA’가 또 다른 사무실을 준비하고 있다. 언론사 통폐합 소용돌이가 몰아친 언론 역사의 현장이라는 점에서 근대문화유산으로 인정받아 등록문화재가 된 신아기념관. 격변의 시대를 산 건축물은 마음을 울리는 장소를 찾던 사람들이 각자의 일과 일상을 위한 자리가 돼 새로운 시간의 겹을 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