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제58회를 맞은 백상예술대상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했습니다. 특히 TV 부문이 그랬죠. 넷플릭스 등의 OTT 오리지널 드라마와 출연진이 무려 30개 부문에 후보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오징어게임〉이 대상, 연출상, 예술상 등 트로피 3개를 가져갔고 〈D.P.〉가 작품상, 신인상, 조연상에서 3관왕에 등극하는 등 OTT 약진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모습이었어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다소 주춤했던 영화 부문에서는 코시국에도 360만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들인 〈모가디슈〉가 대상, 작품상, 예술상을 거머쥐었습니다. 〈킹메이커〉는 대상과 최우수 연기상, 조연상을 수상했고요.
지난달 30일 전역한 박보검의 MC 복귀로도 화제가 된 백상예술대상에선 감동의 순간도 여러 차례 연출됐습니다. JTBC 〈뜨거운 싱어즈〉의 나문희와 김영옥 등이 뭉클한 축하 무대를 선사했고, 최근 별세한 영화인 방준석 음악감독과 김성진 메이킹팀 실장의 추모도 있었죠. 7일 끝내 세상을 떠났지만, 수상자들은 행사 당일인 6일까지 입원 중이던 故 강수연을 언급하며 쾌유를 빌기도 했습니다.
이날 보는 이들의 마음을 울린 소감은 또 있었어요. 넷플릭스 오리지널 〈D.P.〉에서 군대 폭력 피해자 조석봉을 연기한 조현철은 TV 부문 조연상을 받고 무대에 올라 아버지인 조중래 명지대 교통공학과 명예교수의 이름을 꺼냈습니다. 고마웠던 사람들을 호명하며 수상의 기쁨을 나누는 대신, 현재 투병 중인 부친 단 한 사람에게 보내는 메시지로 소감을 갈음한 건데요.
그런데 이 짠한 '아버님 전상서'에는 뜻밖의 인물들이 거론됐습니다. "죽음을 앞둔 아버지에게 조금 용기를 드리고자 잠시 시간을 할애하겠다"라고 말문을 연 조현철은 "아빠가 눈을 조금만 돌리면 마당 창밖으로 빨간 꽃이 보이잖아. 그거 할머니야. 할머니가 거기 있으니까, 아빠가 무서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죽음이라는 게 단순히 존재양식의 변화인 거잖아"라고 말을 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작년 한 해 동안 내 첫 장편영화였던 〈너와 나〉라는 작품을 찍으면서 나는 분명히 세월호 아이들이 여기에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라고 한 조현철은 "그리고 그 영화를 준비하는 6년이라는 시간동안 나에게 아주 중요했던 이름들, 박길래 선생님. 김용균군, 변희수 하사. 그리고 잠시만요, 기억이 안 나네요. 이경택군, 외할아버지, 할머니. 외삼촌.…그리고 세월호의 아이들…나는 이들이 분명히 죽은 뒤에도 여기 있다고 믿어"라고 했습니다.
조현철이 말한 故박길래, 故김용균, 故변희수, 故이경택,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은 모두 사회적 죽음의 당사자들이었습니다. 박길래 씨는 집 주변의 연탄공장에서 날아온 분진 탓에 진폐증에 걸린 한국 첫 공해병 환자이자 환경운동가였습니다. 조현철의 큰아버지 故조영래 변호사가 박길래 씨를 법적으로 돕기도 했죠. 故김용균 씨는 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로 혼자서 야간 근무를 하던 중 숨졌고, 故변희수 씨는 국내 첫 트렌스젠더 직업 군인으로 강제 전역 후 당국과 법적 다툼을 하다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故이경택 씨는 학교 폭력 피해자로 조현철의 학교 후배이기도 합니다.
조현철은 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읊으며 "그러니까 아빠, 무서워하지 말고 마지막 시간 아름답게 잘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요 소란스러운 일들 잘 정리하고 저도 금방 가겠습니다. 평안하게 잘 자고 있으세요. 사랑합니다"라고 소감을 맺었습니다. 그는 이날 시상식에 한국 첫 여성 영화감독 故박남옥의 모습이 프린트된 셔츠를 입고 등장해 눈길을 끌기도 했죠. 생의 끝으로 향하는 아버지와 함께 이미 떠난 이들을 기억한 조현철의 말들은 소멸해 가는 모든 아픔들을 위무한 기록적 소감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