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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했던 백상예술대상 TV 부문, 'D.P.' 조현철 수상 소감이 유독 빛났던 까닭

그가 소감에서 언급한 이름들의 공통점.

프로필 by 라효진 2022.05.10
올해 제58회를 맞은 백상예술대상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했습니다. 특히 TV 부문이 그랬죠. 넷플릭스 등의 OTT 오리지널 드라마와 출연진이 무려 30개 부문에 후보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오징어게임>이 대상, 연출상, 예술상 등 트로피 3개를 가져갔고 <D.P.>가 작품상, 신인상, 조연상에서 3관왕에 등극하는 등 OTT 약진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모습이었어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다소 주춤했던 영화 부문에서는 코시국에도 360만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들인 <모가디슈>가 대상, 작품상, 예술상을 거머쥐었습니다. <킹메이커>는 대상과 최우수 연기상, 조연상을 수상했고요.
 
지난달 30일 전역한 박보검의 MC 복귀로도 화제가 된 백상예술대상에선 감동의 순간도 여러 차례 연출됐습니다. JTBC <뜨거운 싱어즈>의 나문희와 김영옥 등이 뭉클한 축하 무대를 선사했고, 최근 별세한 영화인 방준석 음악감독과 김성진 메이킹팀 실장의 추모도 있었죠. 7일 끝내 세상을 떠났지만, 수상자들은 행사 당일인 6일까지 입원 중이던 故 강수연을 언급하며 쾌유를 빌기도 했습니다.
 
이날 보는 이들의 마음을 울린 소감은 또 있었어요. 넷플릭스 오리지널 <D.P.>에서 군대 폭력 피해자 조석봉을 연기한 조현철은 TV 부문 조연상을 받고 무대에 올라 아버지인 조중래 명지대 교통공학과 명예교수의 이름을 꺼냈습니다. 고마웠던 사람들을 호명하며 수상의 기쁨을 나누는 대신, 현재 투병 중인 부친 단 한 사람에게 보내는 메시지로 소감을 갈음한 건데요.
 
 
그런데 이 짠한 '아버님 전상서'에는 뜻밖의 인물들이 거론됐습니다. "죽음을 앞둔 아버지에게 조금 용기를 드리고자 잠시 시간을 할애하겠다"라고 말문을 연 조현철은 "아빠가 눈을 조금만 돌리면 마당 창밖으로 빨간 꽃이 보이잖아. 그거 할머니야. 할머니가 거기 있으니까, 아빠가 무서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죽음이라는 게 단순히 존재양식의 변화인 거잖아"라고 말을 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작년 한 해 동안 내 첫 장편영화였던 <너와 나>라는 작품을 찍으면서 나는 분명히 세월호 아이들이 여기에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라고 한 조현철은 "그리고 그 영화를 준비하는 6년이라는 시간동안 나에게 아주 중요했던 이름들, 박길래 선생님. 김용균군, 변희수 하사. 그리고 잠시만요, 기억이 안 나네요. 이경택군, 외할아버지, 할머니. 외삼촌.…그리고 세월호의 아이들…나는 이들이 분명히 죽은 뒤에도 여기 있다고 믿어"라고 했습니다.
 
 
조현철이 말한 故박길래, 故김용균, 故변희수, 故이경택,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은 모두 사회적 죽음의 당사자들이었습니다. 박길래 씨는 집 주변의 연탄공장에서 날아온 분진 탓에 진폐증에 걸린 한국 첫 공해병 환자이자 환경운동가였습니다. 조현철의 큰아버지 故조영래 변호사가 박길래 씨를 법적으로 돕기도 했죠. 故김용균 씨는 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로 혼자서 야간 근무를 하던 중 숨졌고, 故변희수 씨는 국내 첫 트렌스젠더 직업 군인으로 강제 전역 후 당국과 법적 다툼을 하다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故이경택 씨는 학교 폭력 피해자로 조현철의 학교 후배이기도 합니다.
 
조현철은 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읊으며 "그러니까 아빠, 무서워하지 말고 마지막 시간 아름답게 잘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요 소란스러운 일들 잘 정리하고 저도 금방 가겠습니다. 평안하게 잘 자고 있으세요. 사랑합니다"라고 소감을 맺었습니다. 그는 이날 시상식에 한국 첫 여성 영화감독 故박남옥의 모습이 프린트된 셔츠를 입고 등장해 눈길을 끌기도 했죠. 생의 끝으로 향하는 아버지와 함께 이미 떠난 이들을 기억한 조현철의 말들은 소멸해 가는 모든 아픔들을 위무한 기록적 소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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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 라효진
  • 사진 넷플릭스/백상예술대상 사무국
  • 영상 백상예술대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