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노력은 시계 업계에서도 이어진다. 파네라이는 재활용 고철을 사용한 신소재 eSteel™을 적용한 케이스와 재활용 패브릭을 활용한 스트랩 등 세심한 부분에서 자원의 순환을 고민했고, 오리스는 2019년 페트병을 업사이클해 만든 메달로 케이스 백을 장식한 이후 재활용 소재의 다이얼을 꾸준히 개발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올해는 리사이클 다이얼의 제작 과정을 소개하는 부스를 워치스 앤 원더스에서 따로 선보이기도.
날렵한 검은 고양이처럼 도도한 매력을 뽐내는 블랙 워치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까르띠에는 대표 클래식 워치인 ‘탱크 루이 까르띠에’와 ‘탱크 머스트’의 블랙 버전을 선보이며 ‘탱크’ 마니아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고, 샤넬은 바게트 컷으로 가공한 블랙 세라믹을 시계 전체에 사용한 12점 한정판 ‘J12 블랙 스타’를 공개해 올 블랙의 카리스마는 변치 않는다는 것을 보여줬다.
다이아몬드와 핑크 · 옐로 · 오렌지 사파이어를 사용해 장미꽃을 표현한 쇼파드 ‘레드 카펫’ 컬렉션 주얼리 워치, 이슬을 머금은 듯 청초한 푸른 꽃이 가득한 롤렉스 ‘오이스터 퍼페추얼 데이트저스트 31’ 등 손목 위에 꽃이 만발했다. 그중에서 반클리프 아펠 ‘포에틱 컴플리케이션’은 조금 더 특별하다. 시간을 알고 싶을 때마다 다이얼에 핀 꽃송이를 세어야 하기 때문. 1시에는 한 송이, 12시에는 열두 송이 꽃이 피고 케이스 옆면에 분을 표시하는 눈금 디스플레이가 있어 시와 분을 읽을 수 있다. 꽃을 세며 시간을 읽다니 그야말로 로맨틱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우리의 시간은 하늘에서 왔다. 하루는 해가 뜨고 지는 데서, 보름은 달이 차고 기우는 데서, 일 년은 별자리가 하늘을 한 바퀴 돌아 제자리로 돌아오는 데서 왔다. 그래서 시계와 천체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오늘밤에 뜨는 달 모양을 알려주는 문페이즈 기능을 탑재한 바쉐론 콘스탄틴의 ‘트래디셔널 퍼페추얼 캘린더 울트라-씬’ 워치부터 다이얼 위에서 별똥별이 무작위로 떨어지는 예거 르쿨트르의 ‘랑데부 스타’에 이르기까지. 워치메이커들은 시간의 근원인 우주에 무한한 찬사를 보내고 있다.
보는 것만으로도 서킷을 질주하는 굉음이 들리는 듯한 옐로 컬러의 주인공, 포르쉐가 태그호이어의 대표적인 레이싱 워치 ‘까레라’에 스며들었다. 기본적으로 전체에 블랙 컬러를 사용한 뒤 베젤의 포르쉐 로고, 크라운의 옆면 그리고 스트랩의 스티치 등 곳곳에 이 상징적인 옐로 컬러로 포인트를 줬다. 전 세계 1500점 한정 판매를 예고해 ‘오픈 런’하고 싶은 질주 본능을 자극한다.
주로 시계 뒷면에서 무브먼트의 움직임을 보여주는 투명 창 역할을 했던 사파이어 크리스털이 신분 상승을 했다. 케이스 전체에 사파이어 크리스털을 사용해 투명함을 강조한 샤넬의 ‘J12 X-RAY 레드 에디션’과 위블로의 ‘빅 뱅 투르비옹 오토매틱 퍼플 사파이어’ 덕분. 두 제품 모두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스켈레톤 다이얼을 사용해 시계가 뻥 뚫린 듯한 착시효과를 줬다.
지름이 4cm 남짓한 다이얼이 누군가에게는 광대한 캔버스가 된다. 열기구 모티프로 가벼움의 미학을 담은 에르메스 ‘아쏘 레 폴리 뒤 씨엘’, 바닷속을 유영하는 거북의 모습을 에나멜링 기법으로 표현한 바쉐론 콘스탄틴 ‘캐비노티에 그리자이유-터틀’, 말라카이트 다이얼에 공작석과 자개, 다이아몬드, 오팔을 사용해 꽃을 향해 날아오르는 벌새를 표현한 쇼파드 ‘해피 스포츠 메티에 다르’까지. 예술의 경지에 오른 장인의 손길을 거치면 시계도 작품이 된다.
세계에서 가장 얇은 기계식 시계는? 그 기록을 놓고 팽팽한 경쟁이 벌어졌다. 두께가 2mm에 불과한 피아제 ‘알티플라노 울티메이트 컨셉’이 왕좌를 굳건히 지키고 있었지만, 올해 초 불가리가 1.8mm 두께의 ‘옥토 피니씨모 울트라’ 워치를 공개하며 기록을 경신한 것. 불가리는 이번 워치스 앤 원더스에 참여하지 않았음에도 같은 기간에 제네바에서 독자적인 이벤트를 열고 신기록 경신을 축하했다. 이 왕좌의 게임은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까.
사진 COURTESY OF BVLGARI, CARTIER, CHANEL watches, CHOPARD, HERMES, HUBLOT, IWC, JAEGER-LECOULTRE, ORIS, PANERAI, PIAGET, ROGER DUBUIS, ROLEX, TAG HEUER, VACHERON CONSTANTIN, VAN CLEEF & ARPEL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