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과 흙을 사랑하는 91세의 아티스트 #ELLE그린 || 엘르코리아 (ELLE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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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과 흙을 사랑하는 91세의 아티스트 #ELLE그린

동물을 떠올리며 흙을 주무를 때 가장 행복한 스웨덴 세라믹 아티스트 리사 라르손. 아르켓, 세계자연기금과 함께한 그의 새 협업이 드디어 공개됐다.

류가영 BY 류가영 2022.04.22
 
노인과 동물의 유대는 마음을 평온하게 하는 구석이 있다. 두 약자가 마음을 주고받는 광경이 애틋해서일까. 올해로 아흔 살을 훌쩍 넘긴 세라미스트 리사 라르손이 고양이 오브제에 집중해서 수염과 무늬를 그려넣는 모습을 볼 때 드는 감상도 마찬가지다.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기와 조각에 소질이 있던 리사 라르손은 1953년, 스웨덴을 대표하는 세라믹 브랜드 구스타프스베리에 몸담으며 본격적으로 동물 조각 오브제를 만들기 시작했다. 머지않아 들소와 여우, 고양이, 말, 닥스훈트 등으로 구성된 첫 번째 동물 컬렉션 ‘릴라 주(Lilla Zoo)’가 탄생했고, 동물 시리즈는 그의 대표작이 됐다. 덩달아 높아진 그의 인기는 북유럽을 넘어 일본에서까지 치솟았지만, 리사 라르손은 괘념치 않았다. “저는 작업할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 작품으로 부자가 되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 없어요.” 최근까지도 스웨덴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아르켓, 세계자연기금(WWF)과의 협업으로 바빴던 그이지만 리사 라르손은 그저 더 다양한 동물을 만들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할 뿐. 언제나 예술과 함께였던 그와 봄기운이 한껏 스며든 어느 날, 사랑스러운 동물 조각품을 앞에 두고 이야기를 나눴다. 그야말로 힐링 같은 시간이었다.
 
아르켓, 세계자연기금(이하 WWF)과의 협업으로 탄생한 ‘리사 라르손의 피규어(The Figurines of Lisa Larson)’ 컬렉션이 공개됐습니다(국내에는 3월 중순 론칭 예정). 호랑이가 특히 중요한 캐릭터라고요
1975년부터 1981년까지 WWF 후원을 받아 멸종 위기를 주제로 한 동물 시리즈를 작업했어요. 검독수리, 시라소니, 바다표범, 고슴도치 등을 만들며 동시에 멸종 위기종에 대한 관심도 커졌죠. 그래서 이번 협업에서는 호랑이를 주제로 삼아볼 것을 제안했습니다. 컬렉션에 포함된 티셔츠와 에코백, 아동복에는 다른 동물도 많이 그려져 있지만 ‘그레타’라 이름 붙인 호랑이만큼은 특별히 세라믹 오브제로도 만날 수 있어요. 아르켓에서 올해 동안 판매되고, 피규어 한 개가 팔릴 때마다 300크로네(약 4만2000원)가 WWF의 호랑이 보호 활동 기금으로 기부됩니다.
 
이 협업이 마무리되자마자 내년 열릴 일본에서의 네 번째 개인전 준비로 다시 바빠졌다고 들었어요. 일에 대한 끝없는 열정이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작업할 때가 가장 기쁘니까요. 제 머릿속은 늘 아이디어로 가득합니다. 하나의 작업이 끝나면 곧바로 다음 작업으로 마음이 쏠리죠. 나이를 아무리 먹어도 항상 똑같아요.
 
어릴 때부터 예술가적 기질이 남달랐나요
여동생 티티와 함께 그림을 많이 그렸어요. 주로 커서 갖고 싶은 것들을 그렸죠. 커다란 이층집과 늠름한 말 같은 거요. 옷 입히기 놀이를 할 땐 인형부터 옷과 신발까지 전부 손수 만들어 놀았죠. 그러다 세 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그때부터 아버지께서 그림에 대한 저의 흥미를 보다 적극적으로 북돋워주셨어요. 당시 사회 분위기 속에서 그리 흔한 일은 아니었답니다. 아버지의 주선으로 어느 날부터 작은 아버지의 목공소에서 나무를 깎아 만든 모형에 색을 칠하는 일을 하게 됐는데 그걸로 처음으로 돈을 벌었죠!

 
하지만 대학교에서는 도자기 공예를 전공했어요

열여덟 살 때 다니던 학교 미술 선생님의 추천으로 예테보리 디자인공예 대학교 총장님과 면담을 하게 됐어요. 저의 그림과 조각 작품을 보시고 도자기 공예가 잘 맞겠다 싶으셨는지 그 과에 배정해 주셨죠. 다행히 적성에 맞았어요. 마치 수련하는 듯한 평화로운 작업방식이 특히 마음에 들었고요. 점토가 구워지는 냄새도 좋았어요(웃음). 입학 후 1년이 지나 전공을 바꿀 기회가 있었지만 그럴 필요를 못 느꼈어요. 그렇게 5년 동안 도자기를 빚었죠.
 
대학시절을 함께한 도시 예테보리에 대한 애정이 크더군요
예테보리에서의 모든 일이 미술교육의 연장선이었던 것 같아요. 수업 후 예테보리 민족학 박물관을 수없이 드나들며 본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정교하고 신비로운 수공예품, 크리스마스 시즌마다 교내 바자회에 내놓기 위해 만든 고양이와 요정 인형…. 무엇보다 사랑하는 남편 군나르를 만난 곳이라 의미가 깊어요. 미술관도 자주 가고, 서로의 미대 친구들과 우르르 몰려다니며 많은 영감을 주고받았죠.

 
작업 중인 리사 라르손.

작업 중인 리사 라르손.

평소 작업에 대한 영감은 어디에서 찾는지
항상 점토 자체에서 굉장히 큰 영감을 받아요. 백지에서 시작하는 것 같아도 흙을 주무르다 보면 곧바로 만들고 싶은 것이 떠오르죠. TV를 보며 스케치 작업을 하는 습관도 소재 찾기에 도움이 되는 것 같고요.
 
그래도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는요
여태까지 작업한 것을 정돈하거나 아예 다른 일을 합니다. 어린 시절의 스케치북을 다시 훑어보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기도 하지요.
 
동물을 작품의 주요 모티프로 삼게 된 특별한 사연이 있나요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에요. 다만 어릴 때부터 동물 사진집을 자주 봤기도 하고, TV 앞에서 그림을 그릴 때 자연과 동물과 관련된 프로그램을 자주 봤어요. 동물도 사람처럼 표정과 포즈에 따라, 또 바라보는 사람의 시선과 마음 상태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데 그런 점이 저에겐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모티프로 느껴집니다.
 
리사 라르손과 아르켓, 세계자연기금의 협업으로 그레타 호랑이 피규어가 탄생했다.

리사 라르손과 아르켓, 세계자연기금의 협업으로 그레타 호랑이 피규어가 탄생했다.

그중 고양이를 가장 자주 만들어왔어요
오랫동안 고양이를 키워왔으니 자연스러운 일이죠. 말도 좋아하는 동물인데 그보다 고양이가 훨씬 만들기 쉽답니다(웃음).
 
첫 번째 동물 시리즈 ‘릴라 주(Lilla Zoo)’ 컬렉션 스웨덴을 대표하는 세라믹 회사 구스타프스베리에 디자이너로 채용된 후 탄생했습니다. 이후 30년 가까이 이곳에서 일하며 수백 가지 제품을 디자인했어요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당시 구스타프스베리의 예술감독이던 스티그 린드베리에게 편지를 받았어요. 제게 1년간의 유료 견습생활과 개인 작업실을 제공하고 싶다고요. 저와 남편은 예테보리를 떠날 생각이 없었지만 남편의 지도교수가 그 제안을 승낙할 것을 적극적으로 권유하셨죠. 수많은 예술가가 몰리는 곳이기 때문에 저희에게도 좋은 자극이 될 거라고요. 일하면서 주로 독특한 조각상과 꽃병, 접시와 식기를 만들었는데, 힘든 일도 많았지만 과정 자체는 충분히 즐거웠습니다.
 
여성 아티스트로서 부당한 처우를 받는다고 느꼈던 순간이 있나요
일하게 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시점에 그간 회사에서 받아온 급여가 굉장히 낮았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됐어요. 출산 후 더 큰 집으로 이사 가야 할 때가 오자 고민이 깊어졌죠. 그러자 회사에서 저희 가족이 살 집을 지어줬는데 물론 감사한 일이었지만 그것 역시 회사 입장에서는 남는 장사가 아니었을까 싶네요(웃음). 다행히 1950년대를 기점으로 회사에 여성 예술가가 많아지면서 급여 수준도 조금씩 나아졌어요.
 
‘리사 라르손의 피규어’ 컬렉션의 바탕이 된 동물 스케치.

‘리사 라르손의 피규어’ 컬렉션의 바탕이 된 동물 스케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회사에 꾸준히 몸담은 경험이 당신에게 남긴 것은
회사에서 일하며 가장 좋았던 것은 새로운 작업에 도전할 기회가 많았다는 사실이에요. 혼자였다면 제가 좋아하는 것만 주야장천 만들었겠죠. 또 아티스트지만 사용자 입장에서 생각해야 하는 환경에서 깨달은 것도 많아요. 큰 회사를 통해 제품이 생산되는 과정에서 더 많은 일거리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도 좋은 일이지요.
 
내 작품이 전 세계 가정에 놓여 있다고 생각할 때 드는 기분은
때때로 작품을 구입한 사람들로부터 편지를 받을 때가 있어요. 제 작품으로 인해 많은 영감과 에너지를 받았다고요. 물론 정말 기쁘고 뭉클한 이야기입니다만 인기로 인해 수요가 갑자기 불어날 때 한편으로는 작품의 예술성이 덜 인정받는다는 생각도 듭니다. 맨 처음 인기를 얻고 몇 년이 지나 인기가 갑자기 수그러들면 그런 예감이 증명되곤 하죠.
 
살면서 경험 한 실패의 기억을 나눈다면
대학교 때 즐겨 만든 키가 크고 늘씬한 소녀 오브제를 어느 날 한 도자기 회사에서 표절한 일이 있었어요. 그때 얼마나 상심했는지 몰라요. 회사에 다니기 시작한 뒤로는 협업이 마음처럼 되지 않을 때가 숱하게 있었고요. 하지만 그걸 결코 실패로 생각하진 않았던 것 같아요. 내 선택에 대해 후회하고 싶진 않았거든요.

 
세 아이를 낳은 ‘워킹 맘’으로 살아가는 것도 녹록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저는 밖에서 일할 때가 많았지만 다행히 남편은 집에서 일하는 걸 선호하는 편이었기에 많은 부분을 의지할 수 있었어요.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야 항상 있지만, 가족 여행을 많이 한 덕에 함께 나눌 추억은 충분하다고 느낍니다. 아이들이 모두 예술 분야에 몸담은 뒤로 서로의 작품에 관해 의견을 주고받거나 작업과 관련한 고민을 나눌 땐 정말 행운아라는 생각이 들곤 했어요. 최근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로 더욱 애틋하게 느껴지는 기억들이죠.
 
작업실 한 켠에 놓인 리사 라르손의 동물 조각 오브제.

작업실 한 켠에 놓인 리사 라르손의 동물 조각 오브제.

예술가를 꿈꾸는 모든 사람에게 하고 싶은 말
좀 더 이기적이어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작업 말고는 모든 걸 경시하라는 말이 아니라 스스로를 좀 더 믿어도 좋다는 말입니다. 다른 사람의 말에 흔들리지 말고, 내 마음에 들 때까지 작업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여기며, 나만의 확고한 기준으로 자신의 예술을 정확하게 평가할 줄 아는 사람이 되세요. 모험 속에서 의지할 곳은 자신밖에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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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류가영
    글 LUNDSTROM LOVISA
    디자인 김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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