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스피드스케이팅에 누구보다 진심인 이상화가 베이징에서 또 다른 오랜 인연과 만났습니다. 바로 일본의 고다이라 나오였는데요. 13일(이하 현지시각) 베이징 국립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린 여자 500m에서, 두 사람은 경기 해설위원과 현역 선수로 조우했죠.
이미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대회 최고의 감동적 순간들을 만들었던 이상화와 고다이라 나오. 당시 500m 경기에서 고다이라는 14조, 이상화는 15조에 배치됐는데요. 14조 경기를 올림픽 신기록 경신으로 마무리한 고다이라가 흥분한 관중석을 향해 '쉿'이라는 제스처를 취하며 정숙을 요청했어요. 다음 경기는 이상화의 차례였습니다.
해당 경기는 고다이라 금메달, 이상화 은메달로 마무리됐습니다. 고다이라에게는 첫 올림픽 금메달이었고, 이는 이상화의 올림픽 3연패를 저지한 성적이기도 했습니다. 어깨에 일장기를 두르고 승리의 세리머니를 하던 고다이라는 이내 이상화에게 다가갔습니다. 두 사람이 경기장에서 만난 순간 이상화는 끝내 눈물을 터뜨렸고, 고다이라는 그를 끌어 안으며 한국말로 "잘했어"라고 말했어요.

경기 이후에도 국경과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뛰어 넘은 이상화와 고다이라의 우정은 계속 전해졌습니다. 2019년 이상화가 강남과 결혼할 당시 고다이라가 한국어로 축하 인사를 건네 보는 이들에게 감동을 안기기도 했죠.
베이징 올림픽에서 고다이라는 500m 17위라는 아쉬운 성적을 냈습니다. 이를 현지에서 지켜보던 이상화는 눈물을 글썽이며 "무거운 왕관의 무게를 이겨낼 줄 알았는데 심리적 압박이 컸던 것 같다"라고 아쉬움을 토했습니다.
경기 후에는 "고다이라 선수의 첫 스타트와 반응 속도가 좋았다"라면서도 "중간부터 흐름이 끊기며 상위권에는 들지 못할 것 같다는 예감이었다. 그 동안 제가 보지 못했던 고다이라의 모습을 봐서 힘들었다"라며 다시금 절친의 부진에 안타까움을 드러냈죠.
고다이라도 이상화를 언급했습니다. 경기를 마치고 취재진 앞에 선 그는 한국 기자들에게 "이상화는 어딨냐"라고 물었어요. 그리고는 이상화가 있다는 쪽을 바라보며 "상화, 잘 지냈어? 보고 싶었어요"라고 한국어로 안부를 전했습니다. 또 "이상화가 경쟁하지 않는 가운데서도 '(고다이라) 나오라면 할 수 있다'고 응원을 해줘 마음이 든든했다"라며 "상화가 2연패 했을 때처럼은 잘되지 않았다"라고 자평하기도 했죠.

일본 언론도 이를 조명했습니다. 요미우리신문은 14일 고다이라의 경기를 중계하던 이상화의 눈물을 거론하며 '우정에 국경이란 없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어요. 두 사람이 보여주고 있는 진짜 스포츠맨십, 진짜 우정이 여전히 세계에 뭉클함을 주고 있는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