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씨(Nossi)’ 대표 & 보자기 아티스트 ‘노씨’는 어떤 물건을 눈이 시릴 정도로 ‘쨍’한 네온 컬러의 보자기로 감싸기도 해요. 한국인이 보자기라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에서 노씨는 자유로워 보여요. 당신에게 보자기란 어떤 가능성을 가진 것일지
패브릭은 어느 문화권에나 존재해요. 아기가 태어나면 제일 먼저 천으로 감싸죠. 인간이 탄생과 동시에 가장 먼저 하게 되는 경험 중 하나가 보자기예요. 보자기에는 인종과 무관하게 누구나 쉽게 다가가서 풀어낼 수 있는 인문학적 이야기들이 무궁무진해요. 패브릭으로 무언가를 감싸는 행위 자체가 주는 매력도 굉장하고요.
LA를 닮은 색채의 천으로 감싼 보자기 오브제. 누구나 쉽게 묶을 수 있는 나비 매듭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과 스토리텔링, LA 날씨, 문화의 다양성이 함께 어우러져 표현되고 발전하는 중인 것 같아요. LA 특유의 자유로움, 제멋대로인 것 대한 관대함과 포용성이 노씨의 색으로 표현되기도 하죠. 아트워크의 영감은 매일 일상에서 보고 느끼는 모든 것들, 충격이나 감동받았던 기억이 모여 즉흥적으로 드러나요. 저는 하나하나의 작업을 창의력을 잃지 않는 훈련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무심한 사이 톡 피어 오를 봄의 새싹을 닮은 보자기.
보자기를 만지고 다루는 작업을 하며 얻는 기쁨은
무엇이든 보자기로 감싸 묶으면 갑자기 멋있어져요. 거의 마술을 부린 것 같죠(웃음). 누군가에게 사랑과 정성스러운 마음을 어렵지 않게 전할 수 있는 방법이에요. 집에 보자기가 없다면 아무 천이나 물건을 둘러 감싸보세요. 그냥 둘둘 말기만 해도 됩니다. 누구든 감동하게 만들 수 있거든요. 그런 경험이 무척 놀랍고 기쁘게 느껴질 거예요.
맞습니다. 이름 정하기 어려워 고민하다 ‘그냥 노씨로 할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어요. 친정 아버지는 절대 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더 나은 아이디어가 없어 노씨로 지었습니다(웃음). 노씨는 LA를 베이스로 하는 보자기 워크숍 브랜드예요. 워크숍을 통해 보자기 매듭법을 소개하고, 보자기의 상징적 의미와 함께 한국 문화를 전달하고 있어요. 노씨의 보자기 워크숍은 아름다운 보자기를 만지고, 묶고, 경험하는 신나는 파티예요. 늘 웃다가 끝나요.
하늘거리는 천으로는 네 모서리를 모아 촘촘히 땋아준다. 튼튼하기 이를 데 없는 단단한 줄기가 된다. 꽃도 되고 새싹도 되는 보자기.
유쾌한 호스트이군요! 당신의 이메일 서명 부분에는 ‘노씨 설립자 & 아티스트’ 외에 ‘푸드 스타일리스트’라는 이름도 있어요
2000년에 LA로 이주했고 2005년부터 푸드 스타일리스트로 일했어요. 2006년부터는 미주 〈한국일보〉에 요리 칼럼을 연재했는데 이를 계기로 푸드, 라이프스타일, 타운 비즈니스 부문 객원기자로 일했습니다. 여전히 푸드 스타일리스트로도 일하고 있어요. 다양한 고객, 파트너와 함께요. 노씨는 2019년에 시작했습니다.
〈한국일보〉 객원기자로 12년간 일하면서 한류의 급성장을 체감했어요. 이곳 ‘코리아타운’과 사람들에 대한 애정도 깊어졌어요. 오래전부터 외국인 친구들이 저를 통해 한국 문화를 알고 싶어 했고, 제 뿌리를 존중해 주는 모습을 접해왔어요. 한국을 제대로 소개해야겠다는 생각을 항상 품고 있었습니다. 또 한국에 살 때는 외국 문화와 생활방식을 동경했는데, 거꾸로 외국에 살다 보니 한국 것을 그리워하게 됐어요.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새로 바라보게 됐어요. 그것이 내 강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할까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시작됐어요.
보자기 하면 으레 떠오르는 작은 비단 보따리.
‘한국계 미국인’인 정체성과 문화적 인식이 성장하는 시기와 맞물렸군요
세 식구인 저희 가정은 이민 1.5 세대인 남편, 이민 1세대인 저, 이민 2세인 아들까지 다양한 세대로 구성돼 있죠. 세대차는 곧 문화의 차이예요. 외국에 살다 보니 모국에 대한 그리움, 모국 문화에 대한 이해도도 다르고, 정체성에 대한 고찰도 다르다는 걸 알았죠. 한국인으로서 자아를 단단히 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고 이를 예술과 일상을 넘나드는 보자기로 소개하기로 마음먹었어요. 저는 이 일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어요.
노씨는 미주한인사회 최초이자 유일한 보자기 아트워크 스튜디오죠. 그곳에서 노씨를 이끌며 당신 역시 보자기에 관해 다시 알게 된 점이 있나요
보자기와 보자기 오브제는 어느 문화권에나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일상 예술이라는 점이에요. 아름다움과 실용성을 겸비한 보자기는 예술을 생활에 끌어들여 삶을 풍요롭게 하는, 손쉬운 방법이에요. 접고, 묶어서 입체적 오브제를 만들 수 있고, 매듭이 풀리면 이내 평면의 천으로 되돌아가죠. 저에겐 늘 고맙고 기특한 존재예요. 외국인들은 한국의 보자기를 보통 ‘조각보’로 인식합니다. 박물관에 전시된 보자기의 대부분이 옛 아낙네들이 한 땀 한 땀 손으로 이어 만든 조각보이기 때문이죠. 이렇게 이미 예술 영역으로 인정받고 있는 한국의 조각보는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가져요. 덕분에 제가 다루는 일반적인 천 보자기도 한국 문화를 대표하는 아이콘이자 실용예술로 비교적 쉽게 인정받았어요.
간단히 묶고 접어서 만드는 심플한 형태지만 보자기로 감싸면 무엇이든 특별해진다.
당신의 집 안에 놓인 한국의 소반, 반닫이, 유기 등도 돋보여요
개인적으로 수집하는 물건들이에요. 한국의 앤티크 소반, 반닫이와 청동 유기를 모으고 있어요. 미국에서 접하기 어려운 한국의 골동품을 직접 사용하고,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늘 새로운 감동을 받습니다. 문화적 힘도 얻고요. 또 친구로 지내는 아티스트 한인 2세 배우 겸 화가 조셉 리
(@joeyunlee)의 페인팅, 먹을 수 있는 예술을 만드는 렉시 박
(@eatnunchi)에게서도 다양한 자극과 영감을 얻고 있어요.
언젠가는 더 많은 사람들이 경험할 수 있는, 흥미로운 공공 설치미술작업을 해보고 싶어요. 이민 2, 3세대의 교육과 관계된 프로젝트도 더 많이 할 수 있기를 바라요.
〈엘르〉에 노씨 보자기를 소개할 수 있게 된 거요. 어마어마하게 즐거운 사건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