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LIFE

나는 남자도 여자도 아니다

남성과 여성이 아닌 또다른 존재로 존재할 수 있다고, 온몸으로 증언하는 모델 올리 엘리

BY이마루2021.07.05

Outside 

of

Gender 

목걸이와 반지는 모두 CelineHomme by Hedi Slimane.

목걸이와 반지는 모두 CelineHomme by Hedi Slimane.

 
〈엘르〉 영국의 6월호 커버 모델은 ‘논바이너리(Non-Binary)’ 모델 올리 엘리(Olly Eley)였다. 생물학적 신체와 별개로 정신적으로는 사회가 구분 지어놓은 남성과 여성 어느 쪽에 포함돼 있지 않은 이들을 의미하는 ‘논바이너리’ 존재가 가시화된 가운데, 〈엘르〉 영국 인스타그램에 업로드된 올리 엘리 사진에는 응원과 함께 비난의 댓글도 달렸다. “왜 자꾸 요즘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거야? 왜 자기가 어떻게 불리고 싶은지 떠드는 거냐고.” “남자 혹은 여자로 태어났으면 둘 중 하나를 따라야지. 그 중간을 고를 수 있다는 건 말이 안 돼.” “차라리 그냥 나는 관종 나르시시스트라고 떠들지 그래?” 사회적으로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남성과 여성의 외향과 역할에 딱 맞아떨어지지 않는 사람들을 향해 쏟아지는 익숙하고 흔한 비난들. 그러나 성이 이분법으로 나뉜다는 오랜 대전제는 이미 물리적으로도 틀렸다.
UN 발표에 따르면 ‘간성(Intersex)’의 비율은 전체 인구의 1.7%로, 1000명당 1.7명이라는 것은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패션 모델 한나 개비 오딜은 간성 아이들이 어린 나이에 부모의 결정에 따라 성별이 정해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며 자신 또한 몸 속에 XY성염색체를 갖고 태어났음을 밝혔다. 개인적으로는 2020년 뉴욕에서 열렸던 나이키 컨퍼런스에서 스스로의 편견을 마주해야 했다. 패널로 등장한 육상선수 캐스터 세메냐 때문이었다. 2009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여자 800m 부문에서 우승을 차지한 캐스터 세메냐는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은 ‘간성’이라는 이유로 출전 때마다 성별 논란에 휩싸여왔다. 실제로 본 세메냐는 얼굴 골격과 손발 크기, 키 그리고 목소리까지 정말 놀랍게도 사회적 합의에 따른 성별적 특성을 대입하기 어려웠다. 그렇다면 남자의 몸에 사회적인 여성의 정체성을 가졌다거나 혹은 전형적인 남녀 역할의 규범과 2차 성징으로 발현되는 특징을 제 것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들의 존재 여부를 인정하는 것 또한 포용력과 상상력의 문제 아닐까?
올리 엘리가 〈엘르〉 영국 커버에 등극한 때와 비슷한 시기, 미국 〈타임〉지 커버는 엘리엇 페이지가 장식했다. 엘런 페이지라는 이름으로 〈주노〉 〈인셉션〉 등에 출연하며 커리어를 쌓아온 그는 성전환 수술을 하고 가슴을 절제하며 ‘남성화’되는 과정을 세상에 드러냈다. 〈타임〉 매거진 사상 최초로 커버에 등장한 트랜스젠더 남성이 된 그는 ‘나는 지금 온전히 나로서 존재한다(I’m fully who I am)’라며,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였다. “사람들이 매일 트랜스젠더의 존재에 대해 논쟁한다. 하지만 우리는 진짜 존재한다.” 그리고 실제로 존재하는 여기 또 다른 몸의 증언이 있다. 생물학적 성(Sex)과 사회규범적인 성(Gender) 사이에 우리의 상상보다 더 많은 이야기가 놓일 수 있음을, 그리고 그들의 존재에 대한 부정을 멈춰야 할 때다. 다음은 실재하는 논바이너리 여성, 올리 엘리의 이야기다.
 
타인이 나를 보는 방식이 곧 나를 이해하는 방식이었던 때가 있다. 내가 갖고 태어난 몸을 수년에 걸쳐 혐오한 끝에 나는 비로소 사회가 각 성별에 할당한 역할과 진짜 나 사이에 전혀 연관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나는 세상에 내 존재를 납득하는 법을 스스로 터득해야 했다. 나는 나를 ‘여자’라고 느껴본 적 없었다. 그렇다고 ‘남자’라고 느꼈던 것도 아니다. 두 성별 사이의 가느다란 연결선이 있다면, 나는 어쩌면 그 주변에서 표류하는 작은 점 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나를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그것뿐이다. 이분법적 성별이 아닌 그 너머에서 내 존재를 발견하게 된 것은 살면서 내가 얻은 가장 큰 수확 중 하나다.
 
재킷과 쇼츠, 운동화와 삭스는 모두 Celine Homme by Hedi Slimane.

재킷과 쇼츠, 운동화와 삭스는 모두 Celine Homme by Hedi Slimane.

 
내가 자란 곳은 호주의 작은 마을이었다. 가장 가까운 이웃이 집에서 수 킬로미터 떨어져 있었고, 도시로 가려면 차로 몇 시간 달려야 했다. 그곳에서 나는 스스로를 ‘말괄량이(Tomboy)’라고 생각했다. 결혼식에 참석할 때만 원피스를 억지로 입었고, 머리카락은 길었지만 남자애들처럼 골격이 크고 에너지가 넘쳐 겉으로도 남성성 강한 아이였다. 7남매 중 첫째인 나는 다섯 명의 남동생들과 밖에서 함께 뛰어다니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축구, 나무 타기, 달리기 등. 내 몸에 일어나는 변화가 내가 동등하다고 느꼈던 남자애들과 다르다는 것, 제약이 점점 늘어날 때마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많은 소녀가 2차 성징으로 달라지는 몸에 대해 수치심을 느낀다는데, 내게는 그걸 느낄 만한 ‘여성성’의 기반이 전혀 없었다. 몸과 자아가 항상 따로 노는 느낌에 지배당하며, 이유를 알 수 없는 내면의 분노가 치밀었다. 남동생들이 나무 뒤에 서서 소변을 보는 것을 보면, 그 몸이 작동하는 형태와 그들이 자신의 몸을 다루는 방식이 얼마나 간편해 보이는지 내심 부러웠다. 그리고 그러지 못하는 내 몸에 대해 심각한 좌절감을 느꼈다. 가족에게 습관적으로 화를 냈다. 진정한 자신을 찾기 전, 나를 ‘딸’로 여기는 엄마에게 스트레스를 풀었던 것이다. 아마도 엄마 속을 가장 많이 썩인 자식 아닐까. 나는 변화하는 몸 앞에서 무기력했고, 그 반작용으로 폭력적이 됐다. 툭하면 부모님에게 소리를 지르고 문을 세게 닫았다. 심지어 내 형제들을 ‘게이’라고 놀리기까지 했다! 가족들의 혼란은 당연했다. 내가 왜 그러는지, 이토록 비참해 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을 테니까. 가슴은 계속해서 커졌다. 형제들의 근육 진 몸에 비해 물렁물렁한 내 신체적 특징을 받아들이기가 점점 더 힘들었다. 학교에서는 괴롭힘을 당했다. 주로 남자애들과 어울렸지만 그렇다고 그들과 있을 때 편안함을 느끼는 것도 아니었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존재, 잘못된 장소에, 잘못된 몸에 살고 있는 것 같아 스스로가 외계인처럼 느껴졌다. 주변 사람들과 전혀 다른 주파수로 작동하는 기계가 된 기분이었다고 하면 이해가 될까? 2000년대 초반 호주의 시골에서 동성애는 여전히 금기에 가까웠다. TV에서 미국의 유명 토크쇼인 〈엘런 드제너러스 쇼〉가 방영될 때, 나는 부모님이 레즈비언인 사회자 엘런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는지 지켜봤다. 아니나 다를까, 아빠는 TV를 꺼버렸다. 당시에 내가 아는 동성애자는 엘턴 존 같은 유명인이 전부였다. 사회에서 인정받는 자들은 낙인으로부터 스스로 보호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트랜스젠더는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다. 그나마 가장 가까운 캐릭터인 코미디언 데임 에드나 애버리지는 여자 옷을 입고 사람들에게서 비웃음을 받았다.  
 
10대 초반부터 나는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비욘세 같은 여성 팝스타를 사랑했다. 16세에 첫 여자친구를 사귀었는데 아마도 우리는 동네에서 유일한 ‘퀴어 커플’이었을 것이다. 처음에 내가 레즈비언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내 몸을 받아들이는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이 레즈비언 커플이라고 부르는 것이 불편했던 이유를 나중에 알았다. 그 표현이 ‘여성성’과 결합돼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나는 생물학적 성(Sex)과도 문제가 있었지만 사회학적 성(Gender)과도 갈등이 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내 정체성 문제는 더욱 복잡해졌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레즈비언이 아니다. 스스로를 여성으로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시드니로 터전을 옮기기 전까지 나는 내 감정을 이해할 수 있는 언어나 롤 모델을 찾지 못했다. 내가 원한다면 얼마든지 ‘정체성 문제’를 제어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질 기회가 그 전에는 전혀 없었다.
그러나 시드니에 온 이후로 모든 것이 달라졌다. 그 전까지 존재할 거라고 상상하지도 못했던 ‘퀴어 커뮤니티’가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마음의 문이 활짝 열리고, 빛으로 넘쳐났다. 누군가 자신을 ‘He’도 ‘She’도 아닌 ‘그들(They)’이라는 대명사로 소개했을 때, 나는 비로소 안전함을 느꼈다. 지금까지 내가 생각했던 정답이 그곳에 있었다! 온전한 내가 될 자격이 있다는 것, 정체성을 어떻게 표현할지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내게 알려준 사람들. 이들과 있을 때면 한계 없이, 상대를 자신의 잣대로 판단하지 않고 탐험할 수 있었다. 누군가는 ‘He’라는 대명사를 썼을 때 스스로 어떤 느낌이 드는지 알기 위해 시험 삼아 그렇게 부르는 기간을 갖기도 했고, 소수의 사람들은 덜 일반적인 표현인 ‘-ze, -xe, -ve’로 끝나는 이름을 사용하며 언어 유희를 즐기기도 했다. 이런 시도가 ‘허용된’ 공동체 안에서,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세상에 나를 드러내는 방식이 스스로 가능했다고 여겼던 것보다 훨씬 더 다양할 수 있다는 것을. 호르몬을 투여하는 사람, 자신의 정체성과 더 가깝다고 여기는 몸을 갖기 위해 수술을 받는 사람, 둘 다 하거나 둘 다 하지 않는 사람….  이 세상에는 트랜스젠더가 되기 위한 정당한 권리와 절차 또한 갖춰져 있었다. 열린 마음으로 새로운 존재 방식에 대해 듣고 배웠다.
 
 
하루는 시드니의 한 클럽에서 퀴어 파티가 열렸다. 기상천외하게 차려입고 젠더와 섹슈얼리티의 경계가 모호한 사람들을 한참 구경했다. 타협 불가능한 ‘끼’와 에너지를 발산하는 그들의 얼굴에서 진정으로 순수한 기쁨을 볼 수 있었다. 그 기쁨은 확실히 전염성이 있어서 옆에 있는 사람까지 덩달아 즐거워졌다. 그것은 수용과 인정의 분위기였다. 나 또한 이 세상의 일부로 받아들여진 기분. 왜 이런 장소를 조금 더 일찍 발견하지 못했을까? 인생의 새로운 목적을 찾은 기분이었다. 내 다음 세대는 내가 겪은 유년기보다 훨씬 더 수월하게 어린 시절을 보냈으면 좋겠다는 바람. 그 이후 모든 게 달라졌다. 나를 칭하는 대명사를 ‘They’로 바꾸고 ‘올리(Olly)’라는 이름을 택했다. 가슴 축소 수술을 예약한 뒤 호주에서 북미로 가는 비행기 편도 티켓도 구매했다. 호주보다 퀴어 인구가 더 많은 곳이라면 더 제대로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아서. 자신의 몸을 편안하게 느끼기 위해 트랜스젠더가 선택하는 수술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그러나 나는 그 어떤 성별도 나와 단절된 것처럼 느껴졌다. ‘유방절제술’ 대신 ‘가슴축소술’을 택한 이유다. 내 신체를 혐오했던 건 아니지만 내가 원하는 실루엣을 선택할 수 있다는 자율성에서 편안함을 느꼈다. 누군가는 내가 성별과 대명사 사이를 멋대로 오간다고 여길 것이다. 솔직히 지금 사회는 남성과 여성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하는 것에 가깝다. ‘혼란스럽지 않은’ 외모를 가질수록 공공장소에서 신변에 위협을 받을 가능성도 줄어든다. 태어나면서 생물학적으로 여성의 성을 배정받았지만 스스로 어느 성에 속한다고 여겼던 적이 없기에 그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라도 외적으로 더 남성적인 모습을 보여야 했던 셈이다.
 
타투는 신체에 대한 내 위화감을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됐다. 18세 때 첫 타투로 남동생의 생일을 갈비뼈 근처에 새긴 이후 지금까지 타투는 내게 외향을 통제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자 일종의 보호막으로 작용한다. 가족과의 관계 역시 나아졌다. 여전히 내 문제를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지금의 나는 그들 앞에 당당하다. 성별에 대해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고 여기는 통념을 뒤집도록 요구하는 것이 얼마나 복잡하고도 힘든 일인지 안다. 각자가 보고 자란 것을 단번에 바꿀 수 없기에, 지금 이 과정은 모두를 위한 긴 여정이 될 것이다. 누군가 나를 특정한 성별로 바라보고 지적해도 화내지 않고 정정을 요청하는 이유다. 분노는 어떤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다른 세상이 있음을 이해하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나는 인간에게서 최고의 모습을 끌어내고 싶다.
 
남성도 여성도 아닌 성적 소수자에 대해서는 여전히 많은 반발과 혼란이 존재한다. 트랜스젠더는 사람들이 ‘남성’과 ‘여성’이라고 정의한 틀을 계속 사용하기 때문에 오히려 이해하기 쉬운 면이 있다. 그러나 나처럼 나는 남자도 여자도 아니라고, 남성과 여성의 이분법적 세상에서 그 바깥 유형에 속한 사람이라고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그런 회색 지대의 존재를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 괴로웠던 10대 시절, 이 ‘중간’ 장소의 존재가 있다는 걸 알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누군가가 내가 되고 싶은 존재가 될 수 있고, 하고 싶은 대로 존재할 권리가 있으며, 나 또한 존재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고 말해 줬으면 좋았을 것이다. ‘논바이너리’ 정체성을 가진 아이들이 자신 또한 아름답고 사랑받아 마땅한 존재라는 것, 행복한 삶을 살 가치가 충분하다는 말을 들으며 자라길 바란다. 다른 평범한 사람들이 그렇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