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안경을 쓰는군요. 드라마 〈카이로스〉에서 안경 쓴 모습은 서도균의 캐릭터를 위한 소품이라고 생각했어요
시력이 안 좋아요. 정말로 눈에 보이는 게 없다는 말이 맞아요. 그래서 아까 촬영도 더 겁없이 했나 싶어요(웃음).
완연한 여름날에 만났네요. 드라마 〈유미의 세포들〉(이하 〈유미〉) 촬영이 한창이 아니라면 이 계절을 어떻게 즐기고 있을까요
‘크롱’이는 원래 더운 날씨에 더 진가를 발휘하는 친구거든요. 루프 위에도 올라갈 수 있고, 차 문도 다 개방돼 고요. 같이 강원도까지 달려서 바다낚시 혹은 서핑을 하지 않았을까요. 혹은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어딘가에서 캠핑해도 좋겠죠. 나름 호화로운 방식으로 만끽했을 거예요.
반팔 티셔츠와 스윔 팬츠, 배스 타월은 모두 Dior Men.
니트 베스트와 카고 팬츠는 모두 Montsenu.
1996년식 갤로퍼를 캠핑용 차량으로 개조한 ‘크롱’은 ‘차박’이나 캠핑에 관심 없는 사람이 봐도 탐낼 만해요
실제로 8년 동안 탔던 제 생애 첫 차예요. 쌈짓돈이 생길 때마다 하나하나 꾸며나갔죠. 정말 소중한데 사실 요즘 고민이기도 해요. 알아보는 분이 많아지며 도로 위에서 돌발상황이 몇 번 있었거든요. 취미를 즐기기 위한 필요와 애정으로 태어난 차인데, 사용에 제약이 생기니 계속 소유하는 게 맞나 싶어요.
캠핑도 하고, 서핑도 하고. 여름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네요. 부산 영도의 체육고등학교에서 보냈던 고교시절 이야기를 듣고 지금 34세인 남자의 학창시절 이야기가 맞나 싶기도 했습니다. 바다 수영을 하고, 홍합도 따서 먹었다고요
인공적으로 꾸며진 해변보다 비린내 나는 부둣가를 좋아하는 감성도 그 시절에서 비롯된 것 같아요. 영도는 제게 향수 그 자체예요. 할머니와 어머니도 영도 출신인데 한동안 다른 곳에 사시다가 얼마 전에 다시 또 이사하셨죠. 지난 어버이날에도 다녀왔어요.
지난해에 처음 가봤는데 생각보다 번화하더라고요. 영도대교를 건너면 바로 자갈치시장과 광복동이고요
진짜 많이 바뀌었죠! 재개발된 곳을 가도 저는 예전 지리를 잘 아니까 또 여기가 이렇게 바뀌었구나 곱씹게 돼요. 어릴 때부터 곧잘 가던 해변도 있고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마이 네임〉에 이어 지금 촬영 중인 〈유미〉까지, 체력 관리는 어떻게 하고 있나요? 워낙 건강할 것 같긴 합니다만
아뇨, 저는 진짜 관리를 해야 해요. 요즘 내가 좀 버거운 상태구나 하고 촬영장에서 느낄 때가 있어요. 어릴 때 식습관이 좋지 않아서 자칫 방심하면 몸이 안 예쁘게 커지거든요.
유튜브 ‘브라보현’ 속 캠핑 브이로그를 보면서 그 생각을 하긴 했어요. 혼술 안주로 ‘아폴로’를, 차에서는 컵라면을 먹더라고요(웃음)
요즘은 인스턴트식품보다 몸에 좋은 걸 많이 먹으려 하고 있습니다. 꾸준히 움직이려고 자전거도 다시 많이 타고요.
몸을 쓰는 데 굉장히 익숙한 사람처럼 보여요. 그래도 아무것도 안 하고 늘어져 있던 시기가 인생에 한 번쯤 있지 않을지
진짜 없어요! 그래서 어떨 때는 제 ‘몸뚱이’에 미안하기도 해요. 쉬는 날 침대나 소파에 가만히 누워 있으려 해도 도무지 안 되더라고요. 지금 사는 집에 운동 기구를 모아둔 작은 방이 있는데, 아무리 피곤한 날도 어차피 샤워는 하고 자야 한다는 마음으로 20분이라도 움직여요. 아, 생각해 보니 딱 한 번 병원에 입원했을 때는 꼼짝 못하고 누워 있었네요. 복싱 선수였던 학창시절에는 부상이 많았거든요. 그때도 정말 너무 갑갑했어요.
〈유미〉의 구웅은 원작 웹툰에서 ‘구남친’의 정석 같은 캐릭터예요. 가발에 수염까지,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기에 아주 좋은 선택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원작에서 유미(김고은)의 연애사에 등장하는 세 남자. 구웅과 바비, 순록, 이 셋 중에서 고를 기회가 있었어도 전 구웅을 택했을 것 같아요. 헤어진 남자친구라는 설정이 구웅의 어떤 면을 ‘구질구질’하게 만들었을 뿐이지, 제일 인간미 넘치는 캐릭터 같거든요. 사고방식도 이해가 가요. 유미를 좋아하는 마음도 진심이고요.
짝사랑(〈그녀의 사생활〉 〈이태원 클라쓰〉)과 불륜(〈카이로스〉)을 하다가 드디어 평범한 연애를 하네요
제 필모그래피가 다양하지는 않지만 이렇게 연애가 이어지는 과정을 연기하는 건 처음 같아요. 또 구웅의 표현법이 남다른 면이 있다는 생각도 들어서 빨리 시청자분들이 알아차려주었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있어요.
유튜브와 예능 프로그램 출연을 통해 개인적 취향이 많이 알려졌어요. 출연 이후 사람들이 ‘안보현은 이럴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느낌을 받은 때도 있나요
아뇨, 없어요. 오히려 작품 속 제 모습은 작품을 본 사람들만 아는데, 안보현 본체가 가진 다른 면모를 보여줄 수 있는 통로가 됐기에 긍정적이죠. 특히 제 라이프스타일을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분이 많아서 개인적으로 〈나 혼자 산다〉 출연은 아주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캠핑 정보에 ‘안보현이 갔던 캠핑장’ ‘안보현이 썼던 장비’ 같은 내용이나 해시태그가 보이면 흐뭇하고요.
너무 일차원적인 연상이라 부끄럽지만 ‘책에는 관심 없지 않을까’ 하는 개인적 편견이 있었습니다
푸하하! 그럴 수 있죠. 최근 들어 책이랑 좀 친해진 게 사실이고요. 에세이나 다소 이상적이지만 편안하게 공감할 수 있는 책을 주로 읽고 있어요. ‘경상도 남자는 무뚝뚝하다’는 말은 핑계이고, 그냥 고맙고 미안한 마음은 드러내는 게 좋다는 생각이 어느 순간 들어서 친구들에게 표현도 좀 해요. 직접 찍은 필름 사진 뒤에 네임 펜으로 편지를 써서 주기도 하고, 기프티콘 메모란에 한 마디 짧게라도 쓰고요. 저도 이런 제 모습이 어색한데 저를 오래 알던 사람들이 보면 웃기겠죠(웃음).
저는 확실히 아날로그적인 행위에서 기쁨을 얻는 것 같아요. 추억이나 지난 일을 돌아보는 것. 이런 게 하나하나 쌓여서 안보현이라는 사람을 구축하죠.
블루종 점퍼와 하프 팬츠는 모두 Gucci. 블랙 컬러 스니커즈는 Vans.
데님 재킷과 팬츠는 모두 Montsenu. 안에 입은 슬리브리스는 Boss Men. 캡은 Isabel Marant Homme.
실제로 바쁜 일정과 별개로 대중에게는 모습이 덜 비춰지고 있다는 데서 비롯한 초조함도 있지 않을지
지난해 신인상도 받고 ‘라이징 스타’라는 이야기를 듣다 보니 사람들이 제게 갖는 기대치가 확실히 있는 것 같아요. 누군가는 그사이 잊혀졌다고 할 수도 있죠. 예능 프로그램이나 SNS를 더 잘 활용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 중요한 건 작품에 몰입하는 일이라는 게 제 결론이에요. 작품이 연이어 공개될 하반기가 다가오는 지금 심정은 더 그래요. 노를 계속 잘 저었으니까 이제 더 넓은 곳으로 가면 되겠다.
작품에 대한 확신과 애정이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이네요
〈유미〉 이후 〈마이 네임〉이 공개될 텐데, 구웅은 원작 캐릭터와 외형적인 싱크로율을 높이는 게 연기하는 입장에서도 재미있어요. ‘쟤 안보현 맞아?’와 같이 제가 기대하는 지점의 반응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한편 액션 누아르 〈마이 네임〉에서 경찰 역할로 제가 잘할 수 있는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겠죠. 우연히도 〈마이 네임〉 촬영팀과 지금 〈유미〉를 함께 촬영 중이거든요. 〈마이 네임〉 후반 작업에 다녀온 카메라 감독님이 〈유미〉 촬영장에서 저를 보고 그러세요. “진짜 둘이 너무 다르다. 완전히 다른 사람이야!” 전 그거면 됐다는 기분이에요. 그 이상의 칭찬은 없을 것 같아요.
〈그녀의 사생활〉과 〈이태원 클라쓰〉를 통해 대중에게 각인됐을 때는 30대였어요. 천천히 가도 괜찮다는 말은 연예계에서는 쉽지 않죠. 그 이전까지의 시간을 버텨낸 자신을 돌아보면 어떤가요
지금 스물일고여덟 살이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 당연히 해요.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바람일 뿐이잖아요. 저는 연기영화학과를 졸업한 것도 아니고, 어릴 때부터 배우가 꿈이었던 것도 아니에요. 무일푼으로 서울에 올라와 지금까지 온 것, 과거를 돌아봤을 때 그 시간 덕에 여기까지 온 것 같아서 예전의 저를 토닥토닥 안아주고 싶어요. 위만 바라보고 비교하면 끝도 없다고 생각해요.
기회가 찾아왔을 때 잡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요
진짜 키라도 안 컸으면 어쩔 뻔했을까(웃음). 운동으로 쌓아온, 저만의 구력이 확실히 있죠. ‘안보현’ 하면 ‘피지컬이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데 지금 제 몸이 벼락치기로 만들어진 건 아니니까 그건 인정해 줘도 괜찮지 않을까요. 노력한 만큼 돌아오는 게 있구나, 세상이 어떤 부분에서는 공평하구나 싶기도 해요.
그 구력을 이제 본격적으로 목격하게 되겠죠. 이 여름이 지나면
그런데 그 외의 장점은… 정말 잘 모르겠어요. 없는 것 같아요.
시스루 스트라이프 셔츠 Montsenu. 데님 팬츠는 Gucc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