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에너지를 담뿍 머금은 10대 박지민은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또렷하게 구축한 20대 제이미로 성장했다. 상대방을 기분 좋게 만드는 장난꾸러기 같은 면모를 보여주다가도, 무대 위에 서면 단 하나의 실수도 하지 않기 위해 바짝 긴장하는 10년 차 아티스트. 매 순간을 제이미다운 시간으로 탈바꿈하며 살아가는 뮤지션 제이미와 아주 사적인 대화를 나눴다.
〈GOOD GIRL: 누가 방송국을 털었나〉와 〈비긴어게인 오픈마이크〉 무대를 인상 깊게 봤어요
〈K팝스타〉 이후로 오랜만에 대결 구도로 나가는 프로그램이어서 출연하기 전에 많이 고민했어요. 무대에 선 지도 오래돼서 자신도 없었고요. 그런데 PD님이 진짜 멋진 무대를 만들어주겠다고 해서 도전했죠. 덕분에 진짜 좋은 언니, 동생을 알게 됐어요. 〈비긴어게인〉은 저보다 팬들이 오랫동안 원했던 프로그램이었어요. 가족들도 “왜 안 나가니? 언제 나가니? 연락 없었니?”라며 자주 물었는데 다행히 불러주셨어요. 진짜 긴장하면서 준비한 두 무대였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좋아서 자신감을 많이 얻었어요.
무대 올라가기 전에 진짜 많이 떨고 긴장도 많이 해요. 작은 실수가 저한테는 너무 크게 다가와서 섬세한 부분까지 다듬느라 들이는 시간이 많아요. 누군가는 “야, 10년 차가 무슨 신인이야?”라고 말하겠지만, 저는 항상 신인 마인드였어요. 음원 위주로 활동했기 때문에 새롭게 시도해야 할 일이 아직도 많아요.
아리랑TV에서 MC로 활동한 걸 보고 팬들은 제이미가 ‘세계적인 MC가 될 거다’라고 말하더군요
데뷔 초에 저는 엄청 활발한 편이었어요. 카메라 감독님이 “지민이 너는 어찌 된 게 3초 이상 잡을 수가 없다”고 말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MC 경험이 오히려 제 에너지를 많이 줄여줬어요. MC는 제 위주가 아니고 게스트가 주인공이잖아요. 저라는 존재를 지우고 상대방을 돋보이게 하는 법을 배웠죠.
긍정 에너지가 느껴져서 좋아했는데 나름대로 고민이 있었군요
처음엔 게스트와 어떤 주제에 관해 얘기하다가 “아, 저도 그거 좋아해요!”하고 대화하느라 정신없었어요. 초대한 아티스트들을 너무 좋아했고, 친해지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해당 아티스트 팬에게 혼도 많이 났죠. “아니, 왜 MC가 진행은 안 하고 네 얘기를 해?”하고요. 지금은 어느 정도 중간 지점을 찾게 된 것 같아요.
솔로 앨범 활동 후에 약 2년간 혼자 시간을 보냈어요. 어떤 시간이었나요
어릴 때 저는 태국에서 자랐는데 학교에서 항상 ‘해피상’을 받았어요. 너무 행복한 어린이였으니까요. 인생에 우울한 시간 같은 건 절대 없을 거라고 확신했죠. 그런데 난생처음 벌컥 눈물 나는 시기를 맞이한 거예요. 그때는 ‘그냥 노래하지 말고 내가 좋아하는 빵집이나 차릴까’라고 생각했어요. 음악이 제 길이 아니라고 단정 지으면서요. 사람 만나는 것도 귀찮고, 혼자 있고 싶었어요. 거울을 봐도 한숨밖에 안 나오더라고요. 지금 생각하면 정말 감사해야 할 일들이 나에게 왜 벌어진 걸까 고민했어요.
그냥 음악이 싫었어요. 친구들이 “아니다. 너는 음악을 해야 한다”고 말하면 그때는 막 화를 냈어요. “아, 하기 싫다는데 왜 음악을 하라고 하냐”면서 못되게 굴었죠(웃음). 진짜 그 친구들 아니었으면 지금 뭘 하고 있었을까 싶어요. 제가 어떤 음악에 도전하고 싶은지, 왜 음악을 해야만 하는지 고민했던 시간이었어요.
유리 같던 제가 강화유리가 됐죠(웃음). 그 시간 덕분에 강해질 수 있었고, 원하는 걸 가질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었어요.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계기가 됐죠.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그렇잖아요. 못된 사람인데 진짜 잘 풀린 사람도 있고, 착한데 왜 잘 안 풀릴까 싶은 사람도 있고요. 사실 착한 사람을 미워하긴 어려워요. 그렇지만 자기 것을 욕심내지 않으면 또 바보가 돼요. 그러니까 적당한 지점을 찾아야 해요. 항상 그 싸움인데 이게 정말 어렵죠.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하되 대중이 듣고 싶은 음악도 해야 하고요. 나와 일하는 사람들을 내 편으로 만들어야 하지만, 또 그 사람들에게 내 모든 걸 빼앗기면 안 돼요.
저는 10대 때의 제 모습에도 만족해요. 그런데 이제 20대가 된 거죠. 후회하지 않는 삶, 내가 원하는 삶이 어떤 건지 고민해 봤어요. 그래서 제가 내린 답은 ‘일단 해보자. 욕먹더라도 그냥 해보자였어요.’ 옳은 선택이 아니더라도 일단 저질러보고 싶더라고요. 그게 틀린 거라면 다시 반복하지 않으면 되니까요. 코 피어싱이나 타투도 그래요. 이게 저한테 엄청난 변화는 아니거든요. 나답다고 생각해서 한 일에 사람들이 크게 반응하면 여태까지 사람들 눈에 내가 다르게 비쳤나 싶기도 해요.
자기가 만든 틀에 갇혀 타인을 평가하는 일도 많죠
노래하는 사람인데 참 신기하죠. 오히려 음반을 발매했을 때보다 제 몸에 관한 뉴스가 훨씬 많았어요. 옛날에는 속상하기도 하고, 화도 났어요. 사실 스스로 몸에 대해 만족하면 끝이에요. 저는 정말 그게 다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연예인은 보여지는 직업이니까 다이어트해야 한다’는 것도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에요. 그렇다고 무작정 욕하거나 악플을 달면 안 되죠.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없는 사람들이 아직도 너무 많아요. 이런 말에 상처받지 않고 스스로 단단해지는 것밖에 답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도전 중이에요. 가수는 음악을 들어줬으면 하고, 배우는 연기를 봐줬으면 하죠. 그 마음이 가장 커요.
직접 쓰고 부른 노래 중 사람들이 기억해줬음 좋겠다고 생각한 곡이 있나요
‘Stay Beautiful’이 가장 먼저 떠오르네요. 사실 이 곡은 발매 전부터 잘 될 거 같다고 생각했거든요. 결과가 약간 아쉽지만, 노래를 듣고 위로받았다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30대 때는 글로벌하게 음악 활동을 하고 싶어요. 40대에는 지금 목소리를 유지하면서 큰 문제 없이 노래하고 있으면 좋겠고요. 뮤지션으로서 마지막 목표는 음악 아카데미를 만드는 거예요. 음악을 배우고 싶지만, 여건이 안 되는 친구들이 원 없이 음악할 수 있는 아카데미를 만들고 싶어요. 물론 저 먼저 음악으로 믿음직스러운 사람이 되어야겠지만요.
저 역시 부족함 없이 자랐다고 말할 정도로 넉넉한 환경에서 자란 건 아니에요. 부모님 두 분 모두 음악을 사랑하셨기에 제가 음악 활동할 수 있도록 모든 걸 쏟아부으신 거죠. 그런데 이런 여건조차 되지 않는 친구들이 주변에 많았어요. 음악이 너무 하고 싶은데 공부할 수 없는 거죠. 물론 음악을 배우지 않아도 잘하는 친구들도 있겠지만, 배움의 기회가 있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잖아요.
저희 엄마요. 엄마는 정말 독립적인 여성이에요. 아주 어릴 때부터 한국이 아닌 나라에서 진정한 홀로서기를 하셨다고 생각해요. 꿈을 가지고 행동하고 책임지는 사람이에요. 도전하고 변화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점은 정말 닮고 싶은 부분이에요. 그리고 음악을 너무너무 사랑하세요. 이런 마음은 도저히 지어낼 수 없잖아요.
“제이미 몸이 열 개야?”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열심히 활동하고 있어요. 다른 아티스트 분들이 제 목소리를 많이 찾아준 덕분에 바쁘게 지내고 있죠. 한편으로는 자연스럽게 살자는 생각도 많이 해요. 저는 감정이 풍부한 편인데 언젠가부터 이를 억제하고 느끼지 않으려고 하더라고요. 어쩌면 감정을 많이 숨겨야 하고, 행복해 보여야 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요. 너무 기계처럼 굴지 않고 사람답게, 자연스럽게 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