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UTY

역사가 증명하는 전설의 화장품들_선배's 어드바이스 #35

신제품 출시 열풍 속에서도 고고한, 절대 배신하지 않을 클래식 화장품들.

BY김초혜2020.10.19
  
어느 날 백화점 글로벌 브랜드 화장품 브랜드 매장에서 할머니 몇 분과 직원 사이에 작은 소동이 생긴 걸 봤다. 궁금해서 살짝 들어 보니 평생을 그 브랜드 파운데이션만 썼는데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직원은 ‘리뉴얼’ 돼 더 좋아졌으니 바꿔 보시라고 했고 할머니들은 “이 느낌이 아니다, 얼굴이 편안하지가 않다”며 왜 좋은 제품을 없앴냐는 것이었다. ‘헤리티지’를 강조하는 브랜드들조차 젊은 소비자들을 잡기 위해 패키지 디자인, 모델뿐 아니라 제품 라인도 대대적으로 정비하는 일이 비일비재해 수십 년 단골인 할머니와 직원 모두 안타까웠다.  
 
팬데믹에도 불구하고 신제품은 매주 쏟아진다. 신제품 출시 주기가 짧기로 유명한 한국에선 어떤 제품에 적응할 만하면 단종 또는 리뉴얼돼서 재구매 자체가 어렵기도 하다. 그렇다면 최소 수십 년에서 백 년 넘게 소비자 곁을 지켜온 화장품엔 뭔가 대단한 비밀이 있는 게 아닐까? 당신이 할머니, 할아버지가 돼도 배신하지 않을 전설적 제품들이 여기 있다.
 

니베아 크림 - 19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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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도 왕이나 제사장이 기름을 바르고 제단에 나아간다는 표현이 수없이 등장하듯 수천 년, 아니 수만 년간 인류에게 보습제는 동식물의 기름이었다. 흐르든 액체든 단단하게 굳힌 왁스든 거의 100% 기름이라 열심히 펴 발라야 한다는 건 공통적이었다. 그러니 기름 공장 지성 또는 여드름 피부는 보습하기에도, 안 하기에도 무척 곤란하지 않았을까? 물과 기름은 섞이지 않는다는 게 정론이었고 일시적으로 섞인다 해도 오랫동안 그 상태로 유지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화학자 이작리프슈츠(Isaac Lifschütz) 박사가 물과 기름을 섞어 눈처럼 흰 크림으로 유지하는 혁신적 유화제를 개발했다. 화학자이자 바이어스도르프의 공동 창립자인 오스카 토플로위츠(Oscar Troplowitz)가 이에 주목, 1911년 마침내 ‘눈의’란 뜻 라틴어 'nivis'에서 이름을 딴 니베아 크림이 탄생했다. 기름과 물이 완전히 유화돼 하얗고 폭신한 니베아 크림은 곧 주부, 워킹 우먼, 아이, 운동선수까지 모든 사람이 쓰는 산뜻한 피부 보호제가 됐다. 1925년 파란 통으로 용기가 바뀐 이래 저렴한 가격까지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데 타 브랜드 초고가 크림과 기본 성분이 비슷한 거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샤넬 윌 드 자스민 – 1927년

1927년 패션으로 성공 가도를 걷던 마드모아젤 샤넬은 자신의 철학을 담은 스킨케어 라인을 출시한다. 단순한 유리병에 사용 목적이 뚜렷이 적힌, 자신처럼 현대적인 화장품이었다. 그중 하나가 윌 드 자스민, 남프랑스 그라스 밭에서 손으로 하나하나 채취한 재스민 꽃을 담은 페이셜 오일이다. 호호바 호일, 스쿠알란, 동백 오일 등 고급 오일로 구성된 오일은 몇 방울만으로도 실키하게 발리며 은은하게 재스민 향이 나서 호사스러운 기분에 빠지게 한다. 탄생 70주년을 맞이해 돌아온 이래 부티크에서 판매되고 있다.  
 

엘리자베스 아덴 에잇 아워 크림 - 193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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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레종 도뇌르 훈장을 받고 미국 〈타임〉 지에 실린 시대를 앞서간 여성 사업가, 엘리자베스 아덴이 1930년에 최초로 자신의 이름을 달고 만든 것이 에잇 아워 크림 스킨 프로텍턴트였다. 여덟 시간 만에 아들의 타박상을 가라앉히는 데 도움이 됐다는 소비자의 후기 때문에 처음엔 별명이, 나중엔 공식 명칭이 ‘에잇 아워 크림’이 됐다. 이렇듯 처음엔 ‘기적의 크림’으로서 화장품이라기보다 약처럼 쓰였다고 한다. 현재도 페트롤라툼, 라놀린, 미네랄 오일 등 강력하게 수분 증발을 막는 유분이 주성분이고 피부에 좋은 식물 추출물이 섞여 있어 실제로 가벼운 상처 보호 효과까지 있을 것이다. 심한 건성 피부여서 겨울엔 이 제품으로만 제대로 보습이 된다는 사람들이 있을 만큼 무려 90년째 지위를 유지 중이다.
 

도브 뷰티 바 - 1957년

지금은 발에 채일 만큼 흔한 게 폼 클렌저지만 1950년대까지는 그렇지 못했다. 선택의 여지 없이 누구나 써야 하는 게 비누였다.  비누는 기름기를 지우는 덴 좋지만, 알칼리성이라 피부가 너무 땅기게 하고 물속 금속 성분과 만나 비누 때를 남겼다. 물이 경수이기까지 하면 매일 비누를 쓴 건성 피부인 사람은 너무나 힘들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도브 등 ‘뷰티 바’는 엄밀히 말해 비누가 아니다. 순한 합성 세정 성분들과 일부 비누 성분, 보습 성분이 합쳐져 중성인 고체형 폼 클렌저에 가깝다. 유니레버는 1957년 도브를 내놓을 때부터 꾸준히 ‘1/4 클렌징크림’이 들어 피부가 건조해지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세안 후 뽀드득해지지 않고 보들보들하게 보습 성분이 남는 클렌저는 도브가 처음이었다.  
 

슈에무라 클렌징 오일-196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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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의 우에무라 슈 선생을 기억한다. 마치 무사처럼 결의에 찬 표정으로 자신의 이름을 단 제품을 한 단어, 한 단어 소개하곤 했다. 그의 인생과 브랜드 탄생을 보면 납득이 간다. 10대였던 20세기 초 도쿄 미용 학원 학생 130명 중 유일한 남학생이었다고…. 그렇게 혼자만의 길을 떠난 우에무라는 1950년대 흑백영화 시대에 미국 할리우드로 건너가 분장사 일을 한다. 1962년 영화 〈마이 게이샤〉, 1965년 프랭크 시내트라 주연 〈논 벗 더 브레이브〉 등을 통해 인기 분장사로 떠오르는데 이미 1960년에 자신만의 화장품을 만들었다. 아무리 두꺼운 분장도 한 번에 지워 주며 보습 효과가 있는 클렌징 오일이었다. 1964년엔 일본에 자신의 이름을 딴 메이크업 스쿨을, 1967년엔 화장품 회사를 설립했다. 수십 년 후 슈에무라 클렌징 오일이 국내에 처음 들어왔을 때까지도 마른 피부에 오일을 문지르고 물로 유화시켜 흘려보내야 되는데 젖은 얼굴에 바르거나 티슈로 닦은 후 다시 폼 클렌저를 쓰는 사람이 속출할 정도로 혁신적인 제품이었다. 각종 식물성 오일 등 미용 성분을 더해 클렌저 가격을 극적으로 끌어 올린 제품이기도 하다.
 
 

크리니크 드라마티컬 리디퍼런트 모이스춰라이징 로션 – 1968년

1967년 8월 미국 〈보그〉 지의 수석 에디터 캐롤 필립스가 피부과 전문의 노만 오렌트리히 박사를 인터뷰한 기사를 에스티로더사 레너드 로더가 읽고 의사가 말한 간단하며 전문적인 스킨케어 브랜드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한 게 브랜드 탄생의 계기였다. 의사가 만들고 까다롭게 테스트했으며 100% 무향이라니 최근 들어 알레르기 우려 때문에 유럽에서 사용을 금지한 향료들이 많은 걸 생각하면 수십 년을 앞서간 결정이었던 것. 크리니크 일명 ‘노란 로션’은 피부에 필수적인 보습 성분만 들어갔고 당시 흔하던 크림이 아니라 로션 타입이어서 끈적임에 대한 두려움 없이 남녀노소 누구나 쓸 수 있었다. 2013년에 들어서야 히알루론산, 글리세린, 우레아 등이 추가돼 좀 더 보습감이 느껴지도록 조성이 업그레이드됐다.  
 

에스티로더 어드밴스드 나이트 리페어 - 198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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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전후 미국의 자신감과 여유로움이 폭발할 때 에스티로더에서도 여러 색 병들이 탄생했다. 토너와 크림 하나 정도로 스킨케어를 끝내던 여성들을 신비롭고 전문적인 스킨케어 세계로 끌어들인 세럼들의 탄생이었다. 그중 현재까지 꿋꿋이 살아남은 건 ‘갈색병’, 어드밴스드 나이트 리페어 싱크로나이즈드 멀티-리커버리 콤플렉스다. 1982년 나이트 리페어 셀룰러 리커버리 콤플렉스로 출발해 현재 7세대까지 업그레이드됐으며 2033년까지 기술 특허가 설정돼 있다. 출시 당시 모델이었던 카렌 그라함은 ’80년대와 아메리칸 뷰티의 상징이었다. 진보적인 어머니들이 카운터로 달려가 갈색 병을 찾았고 지금은 딸, 아들 모두가 이어 쓰는 세럼의 전설이 됐다. 약국에서 쓰는 병과 스포이드에서 영감을 얻은 용기는 실제로 성분 보호에 도움이 된다.
 

지방시 프리즘 비사지 -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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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을 화장품으로 옮기면 이런 제품이 되는구나’ 싶었던 게 지방시. ’80년대 지방시는 색과 형태에 거침이 없었다. 아이섀도, 블러셔, 립스틱, 파우더 같은 화장품은 그 대담한 콘셉트와 형태, 색 대비를 용기와 제품에 그대로 담았다. 1989년 탄생한 '프리즘 비사지(Prisme Visage)' 파우더는 4가지 다른 색 파우더를 브러시로 섞거나 따로 쓰는 혁신적 제품이었다. 사람 피부를 한 가지 색으로만 표현할 수 없다는 게 그 이유여서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색 블록들을 섞으면 또 한 겹의 피부가 된다. 당시 트렌드 세터들은 프리즘 비사지를쓱쓱 섞고 얼굴에 펼치는 걸 스타일링을 마무리하는 의식으로 삼았다. 질감은 상당히 보송한 편이어서 번들거림을 잡아주는 효과가 뛰어나다.
 

세이키세 - 198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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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키세는 최초의 글로벌 한방 화장품이다. 일본과 중국의 한방 성분을 블렌딩 해 동양의 미적 기준인 눈처럼 희고 깨끗한 피부를 만들어준다는 콘셉트로 마츠시마나나코, 아라가키 유이, 하뉴 유즈루까지 수많은 간판 모델이 등장했지만, 탄생 35년째 파란 용기와 제품 라인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세이키세 이후 국내에서도 현대적인 한방 화장품 붐이 불어 전통 성분을 고기능성 화장품 원료로 개발하는 등 큰 발전이 있었다.
 

아이오페 에어쿠션 –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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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이 만든 전설적 화장품이자 베이스 메이크업의 역사를 바꾼 제품 유형이 쿠션 파운데이션. 주차증에 도장을 찍는 원리로 스펀지에 액상 파운데이션을 묻혀 찍으면 피부에서 건강한 광이 나면서 빠르게 화장을 끝낼 수 있고 자외선 차단까지 되는 혁신적 제품이었다. 처음엔 아이오페였지만 곧 아모레퍼시픽의 전 메이크업 브랜드로, 국내 경쟁 브랜드로, 마침내 세계적 브랜드들도 출시하는 광풍이 됐다. 생산 라인을 따로 만드느니 기술력과 설비를 이미 갖춘 한국에 맡기는 게 빨라서 한 화장품 OEM 회사에 갔을 때 세계 유수의 브랜드 쿠션 파운데이션 용기가 쌓여 있던 걸 발견한 적이 있다. 탄생 12년째지만 수십, 수백 년이 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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