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ETY

극장가에서 갈팡질팡할 당신을 위한 조언

강추위가 기승을 부린다. 미끄러운 눈길이 몹시 귀찮거나 이런저런 연말 행사로 분주해도, 극장 가는 재미를 포기할 수 없는 법이다. 알짜 정보없이 영화 전단지나 뒤적이며, 영화를 고르는 당신을 위해 엘르가 좀 나섰다. 고양이 입맛에 따라 멋대로 발바닥 평점까지 매겼다. 심심할 때 슥 한번 훑어봐도 좋고, 자신만의 독특한 취향이 있다면 무시해도 상관없다. 이건 어디까지나 당신을 위한 가벼운 조언이다.

프로필 by ELLE 2010.12.30

 

크리스마스 시즌의 박스오피스는 박빙의 승부였다. 하드보일드 <황해>가 하정우와 김윤석의 연기를 내세워 5일 동안 105만 명을 모으며 1위를 차지했다. 기록상으로만 따지면 <추격자>보다 훨씬 좋은 출발이다. 그러나 <황해>는 순제작비만 100억 원을 넘게 쓴 영화라는 점이 여전히 발목을 잡는다. 3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다 해도 이렇다 할 수익이 없는 셈이다. 효율로 따지면 저예산 코미디 <헬로우 고스트>보다 못할 수밖에 없다. <과속 스캔들>로 800만 신화를 세운 차태현의 <헬로우 고스트>는 88만 명을 모았다. 유머는 약하지만 드라마는 성공했다는 것이 관객들의 반응이다. 특히 마지막 반전을 예상치 못한 관객들에게 눈물을 선사한 것이 주효했다. 지난 주, 4일 동안 105만 명을 유혹했던 워너의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1부>도 '약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황해>, <헬로우 고스트>와 삼파전을 펼치며 213만 명을 모았다. 29일부터는 언론에 '영구 열풍'을 몰고 온 심형래의 <라스트 갓파더>와 월트 디즈니의 야심작 <트론: 새로운 시작>이 박스오피스 전쟁에 가세한다. 따라서 <황해>의 독주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다시 3편의 영화가 파이를 나눠 먹을 가능성이 높다. 지금의 상황이라면 <황해>가 <추격자>(513만 명)을 기록을 경신할 가능성은 아주 희박해 보인다. 상당히 우려되는 점은 이번 박스오피스 전쟁에 진정한 승자가 없을 지도 모른다는 데 있다. <라스트 갓파더>의 순제작비는 150억 원이나 된다. 심형래의 코미디를 사랑하는 분들(혹은 <디 워> 마니아들)이 500만 명이 모여도 국내에서 본전은 어렵다. 결국 <황해>나 <라스트 갓파더>는 많은 관객을 모아 놓고도, 아무런 이득이 없는 상황에 처할 지도 모른다. 이야 말로 '피도 눈물도 없는' 전쟁이자 실속 없는 장사다. 참 의리 없다. 이러다가 영화계가 통째로 '통큰 치킨(역마진)'이 되는 걸까?


고양이 세수: 28년 전 천재박사 케빈(제프 브리지스)이 컴퓨터 속으로 사라져버린다. 그의 아들 샘(개럿 헤들런)은 아버지를 찾아 사이버 세계로 여행을 시작하고, 아버지 케빈이 그가 창조한 크루 때문에 그리드 안에 잡혀 있음을 알게 된다. 샘은 사이버 세계로부터 탈출을 시도한다.
고양이 기지개: 컬트 SF <트론>이 다시 돌아온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사건이다. 올해 최고의 기대작이자 엄청난 제작비를 쏟은 블록버스터지만 호불호(?)가 확 갈릴 수 있는 영화다. 원작을 보지 않아도 좋을 정도로 쉽게 만든 기획(<스타워즈>처럼 부성애 강조)은 이해하지만, 마니아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주기에는 부족하다. <아바타>의 3D에 미친 사람들은 이 영화의 테크놀로지를 다소 과소평가할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일치하는 건, 여전사 쿠오라(올리비아 와일드)에 대한 의견이다. 그리드 안에서 발광 슈트를 입었을 때는 찬란하더니 현실 세계로 오니 어찌나 평범한지! 하여튼 유저의 삶이 꼭 좋은 건 아니다.
궁극의 그르릉 포인트: <트론>은 시대의 아이콘이었다. 3D로 진화한 그리드의 비주얼 디자인 역시 최고다. 추억의 광선 바이크가 업그레이드되면서 묘한 쾌감을 이끈다.

고양이 세수: 연인조차 냉정하게 죽이는 전문 킬러 잭(조지 클루니)은 사진작가로 신분을 위장한 채 이탈리아로 향한다. 이곳에서 새로운 임무를 맡지만 고독한 삶에 싫증을 느낀 나머지 은퇴를 결심한다. 하지만 어느새 자신이 타깃이 되었음을 직감한 잭은 위기에서 탈출하고자 한다.
고양이 기지개: 안톤 코르빈이 아트 좀 하셨다. 이건 무늬만 스릴러다. 내용을 오목조목 뜯어보면 고독한 남자의 이야기다. 조지 클루니가 킬러로 등장한다고 해서 섹시한 킬러를 연상해서는 곤란하다. 제이슨 본처럼 빠르게 뛸 리가 없지 않은가! 클루니는 총을 들었을 뿐, 행동하는 것이 <인 디 에어>의 라이언 빙햄과 다를 게 없다. '천 만' 마일리지의 남자처럼 킬러 잭도 너무나 외로운 사나이다. 킬러나 기업 해고전문가나 모두 '출장의 달인'이라는 사실에 새삼 놀라게 된다. 레옹은 마틸다도 있고 화분도 있지만, 잭에게 무미건조한 섹스 외에는 허락되는 것이 없다. 그나마 남들처럼 살겠다고 마음 바꾸었으니 살아남을 리가 없다.
궁극의 그르릉 포인트: 90분을 참고 기다려야 만날 수 있는 클루니의 짧은 액션, 허무함만큼이나 냉정하고 비정한 최후가 기다리고 있다.

고양이 세수: 마피아 대부 돈 카리니(하비 케이틀)에게 숨겨진 아들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영구(심형래). 영구는 조직의 후계자로 지목되어 마피아 수업을 받지만 늘 사고만 친다. 그러던 영구는 우연히 위험에 처한 본판테의 외동딸 낸시를 구해주면서 친구가 된다.
고양이 기지개: 영구의 머리(얼큰이)가 하비 케이텔보다 크다는 것보다 더 놀라운 게 있다. 영구가 영어를 잘 안다는 사실이다. "what?"하며 당황하는 설정은 없다. 영어권 진출을 노린 <라스트 갓퍼더>는 영어가 기본이다. 따라서 "영구 없다~" 같은 대사는 없다. 영구의 몸 개그(슬랩스틱 코미디)는 흔히 봤던 방식이다. 새롭기보다는 다분히 추억의 코미디다. '미스터 빈'이 들어갈 자리에 영구를 집어넣어다고 생각하면, 바로 그림이 그려진다. 심형래가 감독한 영화 중에 가장 높은 완성도를 자랑한다. 영구가 상납금을 걷으러 나서 상가 주인들을 괴롭히지만, 오히려 미니 스커트와 빅맥을 만든다는 설정엔 웃음이 절로 난다.
궁극의 그르릉 포인트: 웃음의 달인 조엘 코헨(각본)이 참여한 코미디. 심형래가 제대로 된 시나리오를 받아들였다는 사실만으로도 감동(?)적이다. 애국주의 논쟁은 사절.
고양이세수: 사고로 아내를 잃은 브레인(고천락)은 교묘하게 사고로 위장해 사람을 죽이는 살인 청부 그룹의 보스다. 청부 살인을 진행하던 중 동료가 갑작스런 사고로 죽음을 맞이하자, 그는 누군가 자신을 궁지에 몰아 넣기 위해 사고를 조작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고양이 기지개: 홍콩 느와르의 대부 두기봉(조니 토)이 제작한 영화다. 두기봉이 공동 연출했던 <매드 디텍티브>(2007)가 그랬던 것처럼 아이디어가 빛나는 느와르다. 거울과 빛을 사용하는 영상미나 사고를 가장해 암살을 수행하는 킬러라는 설정이 독특하다. 주인공 브레인은 동료의 죽음을 목격한 후 점점 의심에 빠진다. 더글라스 서크의 영화로 표현하자면 '거대한 강박관념'이라고 부를 만하다. 결국 스스로 자신의 동료들을 제거하는 지경에 이르고, 그 모든 것에 어떤 비밀이 있을까 풀어내는 것이 이 영화의 핵심이다. 안타깝게도 신선한 결말을 보여주진 못하고 해프닝으로 끝난다. 그러나 반전이 핵심은 아니다.
궁극의 그르릉 포인트: <데스티네이션>의 '우발적인 사건'이 계획이 될 때, 섬뜩한 호러가 향수 그윽한 느와르로 변한다. 두기봉 스타일의 영상미는 이제 트렌드!

고양이 세수: 연희(김윤진)는 심장이 약한 딸 예은을 살리기 위해 기증자를 애타게 찾는다. 한편 양아치 휘도(박해일)는 유일한 돈줄인 엄마에게 돈을 요구한다. 그러다가 갑자기 엄마가 쓰러져 뇌사 상태에 빠졌다는 연락을 받는다. 연희는 휘도 엄마의 심장을 간절히 원한다.
고양이 기지개: 김윤진과 박해일이 대결을 펼친다는 전제만으로도, <세븐 데이즈> 류의 스릴러를 떠올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상상은 금물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엄마다. 그녀는 엄마이고, 그는 자신의 엄마에게 죄책감을 갖고 있다. 누구는 엄마라서, 누구는 엄마를 살리기 위해서 고군분투한다. 딸을 살리기 위해 연희에게 휘도 엄마의 심장이 필요하다는 것 외에는 특별한 논리는 없다. 그저 딸을 살리기 위해서는 괴물이나 악마도 될 수 있는 '엄마'만이 있을 뿐이다. '엄마'라는 존재가 얼마나 강한지 혹은 비굴함조차 품을 수 있는지 보여주지만, 안타깝게도 관객의 심장까지 쿵쿵 뛰는 법은 없다. 눈물도 나지 않는다.
궁극의 그르릉 포인트: 박해일은 한량(<연애의 목적>의 유림)이 제격. 뻔뻔한 양아치 캐릭터는 빤짝이 드레스 코드를 고른 것처럼 어딘가 부자연스럽다. 해일을 돌려줘.

고양이 세수: 메트로 시티에는 영웅 메트로맨과 악당 메가마인드가 존재한다. 어느 날 메가마인드는 얼떨 결에 메트로맨을 제거하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승리의 기쁨도 잠시다. 숙적이자 자신을 대적할 유일한 상대였던 메트로맨이 사라지자 메가마인드는 무료함에 빠진다.
고양이 기지개: 수퍼 히어로 이야기는 어디까지 계속 될까? 히어로에 대한 <메가마인드>의 놀라운 발상은 <행콕>을 뛰어넘는다. 지쳐 버린 히어로 메트로맨은 평범한 삶을 선택하고, 오로지 악당만이 홀로 남는다. 권태에 빠진 악당은 스스로 영웅을 만들어 내고, 그와의 결투를 계획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악당 메가마인드가 새로운 영웅으로 탄생한다. <매가마인드>는 슈렉이 선남선녀로 가득 찬 디즈니의 동화를 비튼 것처럼, 기존의 히어로 장르를 해체하면서 마음껏 가지고 논다. 한마디로 포스트 히어로 물이다(어떤 식으로든 히어로는 영원하리라!). <드래곤 길들이기>에 이어 드림웍스가 인트루 3D의 위력을 선보인다.
궁극의 그르릉 포인트: <수퍼맨>의 삶을 따른 히어로와 <화성 침공>에서나 나올 만한 외계인 악당과의 결투. 이 진부한 승부를 빛나게 만드는 건 역시 아이디어의 힘!

고양이 세수: 제약회사에 취직한 바람남 제이미(제이크 질렌할)는 자신의 끼를 적극 활용해 영업에 나선다. 우연히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매기(앤 헤서웨이)를 만나 잠자리 친구로 발전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매기의 매력에 끌린 제이미는 사랑을 고백하나 그녀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고양이 기지개: 참 희한한 일이다. 앤 헤서웨이가 처음 벗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길렌할과는 첫 섹스(?)가 아니다. 이미 <브로크백 마운틴>(2005)에서 트위스트 부부로 나와, 카 섹스(여상 상위 시대!)를 선보인 바 있다. 그러나 <브로크백 마운틴> 이후의 재회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 걸 보면, 동성애의 아련한 추억을 이 영화에 덧붙이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이 영화를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로 식으로 표현하자면 '섹스, 약 그리고 파킨슨 병' 쯤 된다. 의외로 '약'에 관한 이야기가 길다. 스토리 놓고 보면 식상한 로맨스 영화다. 그럼에도 이런 장르가 지속되는 것은 스토리보다는 배우의 '약발'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궁극의 그르릉 포인트: 헤서웨이의 누드가 궁금한 사람이 있나? 이미 그녀를 스타가 아니라 '배우'로 인정했다. <레이첼, 결혼하다>의 꼴초 연기가 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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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 전종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