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패러다임은 변이한다
Z세대는 옷을 쉽게 입는다. 몇몇 온라인 쇼핑몰에서 사서 집, 학교, 직장에서 어디에서나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번화가에서 메종 키츠네 후디에 헐렁한 면바지, 오프화이트 스니커즈를 신은 청년을 보고 X세대인 지인이 “요즘 애들은 옷에는 투자를 안 하나 봐? 데이트할 때도 저렇게 입네?”라길래 “저거 다 디자이너 브랜드야. 비싸.” 했더니 “저게??”라며 놀라워했다. ’90년대 초 미국에서 유학 생활을 한 그에겐 추억 속 기숙사에서 입던 옷차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것이다.

패션의 패러다임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2백년 전통 브룩스 브라더스가 지난 7월 초, 마침내 파산 보호 신청을 냈다. 링컨, 루스벨트, 케네디, 트럼프에 이르기까지 대통령이면 당연한 듯 입었던 아메리칸 클래식이 스러지는 시대를 목도 중이다. 코로나19 때문이라곤 하지만 그건 치명타였을 뿐 브랜드는 2천 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잽, 훅을 맞아 왔다. 제이크루는 5월, 먼저 파산보호신청을 했다. 〈비즈니스 인사이더〉지는 “코로나19가 관 뚜껑에 못질을 했을지언정, 제이크루의 문제는 훨씬 오래전부터 계속된 것이다.”란 냉정한 논평을 냈다.

Z 세대는 타이에 익숙하지 않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 보면 1990년대까지 색채의 마술사, 프랑스의 자존심이라 불렸던 크리스티앙 라크루아가 유명무실해졌고, 20세기 패션사에 큰 획을 그은 이브 생 로랑, 알렉산더 맥퀸, 칼 라거펠트는 작고했으며, 쿠튀르의 ‘마지막 황제’ 발렌티노가 은퇴하고 브랜드는 카타르 왕실에 인수돼 로고와 스터드가 거대한 스니커즈와 가방, 티셔츠가 대표 상품이 됐다.
패션 패러다임의 변이는 불쾌하게도, 마치 바이러스의 그것처럼 신속하다. 집과 직장, 런치와 디너, 야외와 실내를 구별해 옷을 차려입던 세대가, 아니 시대가 저물고 있다.
환경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패션, 행동이 필요하다
지난 4월 22일, 50주년 지구의 날은 유독 특별했다. 코로나19가 세계적으로 창궐 중이었고 공장 폐쇄나 여행 금지로 맑아진 하늘을 잠시 체험할 수 있었다. 패션산업은 환경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유엔환경계획(UNEP)은 전체 탄소 배출량의 10%, 폐수 배출량의 20%가 패션산업에서 나온다고 밝혔다. 그 뿐이 아니다. 주원료가 플라스틱인 합성섬유는 빨 때마다 미세 플라스틱을 배출해 매년 5십만 톤을 바다로 흘려보낸다. 패션산업의 환경에 대한 해악은 한두 해 입고 버리는 ‘패스트 패션’이 등장하면서 급속도로 커졌다. 2016년 인디텍스 그룹의 아만시오 오르테가 회장은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를 제치고 〈포브스〉 지 실시간 부호 1위 자리에 올랐는데 자라, H&M 등 SPA 브랜드들이 얼마나 대규모로 성장했는지를 알 수 있는 지점이다.

빠르게 인조 모피로 대체되고 있는 천연 모피.
온라인 패션 쇼핑 플랫폼 파페치가 얼마 전 ‘중고 패션 구매의 환경적 절감 효과 이해(Understanding the environmental savings of buying pre-owned fashion with QSA, ICARO and LWARB)’란 연구 보고서를 냈다. 지난 1년간 최소 중고 패션상품 한 개 이상을 산 미국, 영국, 중국 소비자 총 3천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42%는 가격, 30%는 희소성, 13%는 환경, 11%는 좋은 과거 경험을 위해 중고를 구입했다. 환경 보호란 대답은 아직 13%에 불과했지만 분명 소비에 반영되고 있었고 이는 새 제품 57%의 생산을 막는 효과가 있는 걸로 드러났다. 물건 하나당 평균 쓰레기 1kg, 물 3040리터, 이산화탄소 22kg를 절감한다. 한편 럭셔리 상품 재판매 시장은 규모가 240억 달러(약 29조 원) 이상이며 기존 럭셔리 시장보다 4배 빨리 성장 중이라고 한다.

버려진 폐그물로 만든 부레오 햇, 파타고니아.
패션산업의 자정 노력도 이어지는데 파타고니아(Patagonia)는 70% 이상의 제품을 플라스틱 병 등 재활용 소재로 만들고 프라이탁(Freitag)은 트럭 방수 덮개로 몸체를, 폐차될 차 안전 벨트로 어깨 끈을 만들기로 유명하다. 대규모 재고 소각으로 악명 높았던 버버리는 소재의 유기물 함량, 재활용 천연 섬유 비율, 생산 과정의 탄소 배출량, 노동자의 처우까지 고려한 ‘친환경 보증 기준’을 2022년까지 전 제품에 적용할 계획이다. 올봄 출시된 버버리 ‘에디트’는 친환경 소재를 활용하고 에너지 사용을 최소화한 라인이다. 2016년 럭셔리 브랜드 중 처음으로 재생 나일론 '에코닐'을 사용한 구찌는 순환 생산 비전을 담은 '서큘러 라인'의 첫번째 컬렉션으로, 지속 가능한 소재만 사용한 ‘오프 더 그리드’를 내놨다. 루이비통, 프라다, 멀버리, 알렉산더 맥퀸 역시 재고 소재나 생산 과정 부산물을 활용한 재활용 제품을 본격적으로 내놓고 있다. H&M과 앤아더스토리 같은 SPA 브랜드마저 소비자들로부터 중고 옷을 수집하고 재활용한다.

원단 1야드당 플라스틱 물병 9개를 재활용한 레스포색 리사이클 컬렉션, 레스포색.
그래서 뭘 입고 살 것인가?
세계가 S/S 시즌 세일 기간이다. 코로나19란 재난으로 수요 예측에 완전히 실패한 패션 브랜드들이 보낸 초대 메일로 메일함이 아주 난리. 어느 패밀리 세일 전문 사이트에서 75% 세일하는 상품을 장바구니에 담으니 “세 개 사고 15% 추가 할인을 받으세요!”란 메시지가 떠서 세 개 채우니 다시 “다섯 개 사고 20% 추가 할인을 받으세요!”로 바뀌었다. 근 90% 할인이 가능한 상황. 다섯 개를 억지로 채우고 나니 문득 의문이 들었다. ‘곧 입을 옷들인가?’ 아니었다. 특별한 날이나 바캉스 가서나 한두 번 입을 스타일이고, 시국이 시국인지라 곧 그럴 일이 없었다. ‘진심으로 마음에 드나?’ 역시 아니었다. 한두 군데씩 마음에 안 들어서 수선을 하거나 보완할 스타일을 생각해 내야 했다. ‘다 합친 가격이 지갑에 표도 안 날 만 한가?’ 아무리 할인율이 커도 원래 저렴하진 않은 브랜드고 다섯 개나 돼 합치니 꽤 큰 금액이었다. 아니 그럼 대체 왜 사나? 결국 다 포기하고 로그아웃.
나를 위시한 쇼핑 중독자들은 일단 ‘안 사기’란 신공을 학습해야 한다. 영국 환경청이 에코백은 최소 131회 써야 비닐봉지보다 환경에 이롭다고 해 충격을 안긴 적이 있다. 섬유에 따라 다르지만 옷도 비슷하다. 가능한 적게 사고 오래 입어야 한다.
만약 산다면 유행을 크게 타는 브랜드, 디자인은 피하는 게 좋다. 감각적이되 비슷한 기조를 유지하는 브랜드, 몇 년 후 중고 시장에 내놓아도 곧 팔릴 만한 모델, 빨아도 쉽게 후줄근해지지 않아 십 년은 쓸 수 있는 원단과 봉제일 것. 자신에게 확실히 잘 어울려서 거리낌 없이 손이 가는 것, 기존 옷들과 스타일링하기 쉬우며 비슷한 건 갖고 있지 않은 것. 나아가 친환경 생산 노력이 엿보이거나 누군가에게 사랑받았던 중고와 빈티지… 이런 기준을 세우면 쇼핑 때마다 조금 더 자금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체적으론 가짓수가 주니 결국 더 경제적이다. 물건이 옷장에서 금방 보이고 스타일링이 쉬워지는 건 덤.
믿거나 말거나 ‘파리지엔느의 옷장은 작다’는 속설이 있는데 적어도 카롤린 드 미그레, 루 드와이옹 등 디자이너들의 파리지엔느 뮤즈들은 시그너처 스타일이 분명하며 유행에 따라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자신만의 패션 원칙을 따를 뿐.


“패션은 정신이다. 지금보다 진보하기 위해 반드시 갖추어야 할 정신적 가치다”, 작고한 칼 라거펠트가 남긴 말이 뇌리를 떠도는 세일 시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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