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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선, 자칭 2인자 그리고 롤 모델

박미선은 항상 자신은 2인자였다고 말한다. 괜한 겸손함이 아니다. 스스로 당당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진짜 자신감, 진짜 스웨그다.

BYELLE2020.03.08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엘르〉가 초대한 7명의 여성. 자기다운 방식으로 세상을 탐구하고, 멋진 창조물을 만들며, '나'를 완성해 가는, 멈추지 않는 여자들의 꿈과 도전에 관한 이야기. 마지막, 박미선의 스웨그. 
 
드레이프 장식의 롱 드레스는 COS. 이어링과 브레이슬렛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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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크한 드로잉 패턴의 트렌치코트와 스카프 디테일의 블라우스, 플리츠스커트는 모두 Ports 1961. 샌들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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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이로그 채널 〈나는 박미선〉에 이어 본격 예능 프로그램 〈미선 임파서블〉까지, 두 개의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어요. 3월에는 토크 콘서트 〈여탕Show〉 공연을 앞두고 있고요. 어디서 이런 열정이 나오는 걸까요 마음이 끌리는 일,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나에겐 중요해요. 고여 있기 싫다는 불안감 때문에 항상 긴장 상태인 것 같기도 하고요. 방송에서 덜 보일 때는 집안일한다고 엄청나게 바빴거든요. 오늘도 어머니와 밥 먹고, 아버지가 입원한 병원에 들러 집에 왔더니 행거가 무너진 거예요! 황급히 다시 사서 조립해 놓고 촬영장에 왔어요. 늘 이렇게 분주하고 할 일이 자꾸 생겨요.
조금 힘을 빼고 쉬어 가도 좋지 않을까, 생각한 적은 없으세요 피곤하니까 오늘은 일찍 자볼까? 딱 이 정도예요. 영화를 보면서 머리를 비우거나, 넋 놓고 ‘ASMR’ 영상을 보거나, 쉬기 위해서 또 뭔가를 하죠. 쉴 수 있는 순간이 생겼을 때 쉬면 되기 때문에 평소에 휴식을 갈구하지는 않아요.
〈미선 임파서블〉의 주 구독자는 20대예요. 20세기 시트콤 〈순풍산부인과〉 때의 영상이 10~20대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고요. 예상하지 못한 반응 아닌가요 젊은 친구들이 나를 왜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언니 멋있어요’ ‘언니처럼 되고 싶어요’ 같은 반응을 보면 롤 모델이 워낙 없어서 그런가 싶기도 해요. 미래가 불안한 20대들의 눈에는 나름 성공한 것 같은 제 삶이 안정감 있어 보이는 것 아닐까요. 비약일 수도 있겠지만요.
요즘 세대의 불안감을 느끼기도 하나요 그럼요. 통계적으로도 지금 젊은 세대가 부모 세대만큼 잘살 수 없는 사회 구조라잖아요. 딸이 26세, 아들이 24세인데 딸이 특히 고민이 많아요. 연기자 지망생인데 오디션은 계속 떨어지고, 친구들과 비교되고, 엄마 아빠는 뭔가 좀 쉽게 이룬 것 같고…. 평생 네가 하고 싶은 일이고 그 일을 하는 게 즐겁다면 지치지 말고 믿음을 가져보라는 말밖에 해줄 게 없죠. 말로 하기에는 쑥스러우니까 문자로(웃음).
데뷔 이후 34년 동안 항상 대중에게 친근한 존재였어요. 그럼에도 여전히 거리로 나가 사람들 속으로 직접 뛰어들려는 의지가 보입니다. 박미선에게 대중이란 무엇인가요 일을 계속할 수 있는 가장 큰 힘. 근본적으로는 그렇죠. 바라보는 시선이 없으면 이 일은 할 수 없거든요. 지금도 그래요. 프로그램 개수가 줄고, 주류에서 물러난 나이 든 선배처럼 느껴질 때 ‘내가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하는 힘을 얻게 된 것도 사람들의 지지와 관심 덕분이거든요. 가끔 어떤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모를 때도 있지만요. 아니, 열심히 방송할 때는 재미 없다, 지겹다고 하다가 좀 안 보이면 제일 재밌다, 보고 싶다 그러니까(웃음).
유튜브 영상에 달린 댓글을 보면 응원의 말이 많더군요 여자 후배들이 정말 잘해준 덕에 가능성이 열렸지만 여성 예능인에게는 여전히 ‘나이’라는 장벽이 존재해요. 나이 든 남자들은 그 옆에 꽃 같은 여자들을 두고 자리를 유지하지만, 중년 여성 옆에 젊고 아름다운 남자를 두진 않거든요. 그런 한계를 아니까 직접 하는 거예요. 내가 할 수 있을까, 가능할까, 의심이 생겨도 이 시도 자체가 후배들에게 선례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실제로 많은 사람이 당신을 롤 모델로 꼽기도 해요 내가 롤 모델이라는 건 나처럼 오래 일하고 싶다는 뜻일 거예요. 정말 어느 순간 보니까 TV에 나오는 여자 예능인 중에 내 나이가 제일 많더라고요. 이성미 선생님도 홈쇼핑 채널에만 나오고요.
 
 
핑크 테일러드 코트와 셔츠, 팬츠는 모두 Hugo B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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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MBC 연예대상〉은 김숙, 박나래, 장도연 같은 여자 개그우먼들의 연대를 보여줬어요. 이런 흐름에서 선배의 역할이나 책임감에 대해 의식하나요 방송인끼리 서로 밀어준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개인적으로 그런 책임감은 별로 없어요. 선배라서 후배를 키워주는 게 아니라, 내가 자리를 양보하고 싶지 않아도 그만 나오라고 하면 그만해야 하거든요. 모두가 프로페셔널이고, 경쟁 상대이기도 하니까요.
짐짓 냉정한 발언과 달리 실제로 후배들을 잘 챙기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걸로 알려져 있어요 동료애죠. 항상 여성 개그우먼과 예능인들이 잘되길 바라요. 선후배라는 수직 관계와 동료애는 또 다른 것이고요. 그런데 그거 알아요? 의외로 후배들이 나를 따르지 않아(웃음).
나보다 나이가 많은 여자 선배나 롤 모델이 없다는 데서 막막함과 외로움을 느낀 적도 있었을까요 잘난 척이 아니라 정말 그런 생각할 틈도 없이 바빴어요. 라디오 생방송에 시트콤에 예능에…. 애들 학교에 일이 생기면 거기도 가야 하고, 시부모님도 돌봐야 하니 닥치는 대로 일을 해내는 것만으로도 정신없었거든요. 여유가 있어야 목표든, 버킷 리스트든 챙길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때가 바로 지금이고요. 또 뭐 할 게 있나 기웃거리다 보니까 이렇게 〈엘르〉 화보 촬영도 하는 거죠.
가장 즐겁게 일했다 싶을 때는 갓 데뷔했을 때요. 정말 엄청난 열정으로 하루 10시간씩 아이디어 회의를 했으니 결과가 좋을 수밖에요.
당시 〈별난 여자〉라는 코너로 1988년 MBC 코미디 부문 신인상과 연기대상을 수상했죠. 코너가 인기를 얻으며 이상은, 소방차 등이 게스트로 출연했던 당시 영상을 유튜브에서 볼 수 있더군요 어떻게 보면 그것도 일종의 스탠드업 코미디였죠. 생각해 보면 스물한두 살밖에 안 됐는데 노처녀 역할만 했어요(웃음). 얼마 전 박나래가 진행하는 〈스탠드UP!〉이라는 프로그램에도 출연했는데 5분 방송을 위해 1주일 동안 만나 미팅하는 게 너무 힘들더라고요. 두 번 출연하고는 미안하지만 더 못하겠다고 고사했어요.
마침 그 프로그램에서 ‘나는 평생 2인자였다’ ‘젖은 낙엽처럼 버텼다’는 표현을 사용했어요.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비애가 느껴지기도 했는데 왜요? 안돼 보였어요? 그런데 난 전혀 아니에요. 모자란 사람한테 ‘모자라다’고 하면 욕이지만 난 스스로 당당하거든요. 인기 스타나 연예인이 아니라 항상 직장인이라고 생각하고 일해 왔기 때문에 그런 묘사는 내겐 전혀 상처가 되지 않아요.
젖은 낙엽은 한번 바닥에 달라붙으면 좀처럼 떨어지지 않죠. 그야말로 버텼던 시기가 있었을까요 정말 힘들 때도 있었죠. 내게 기대하는 모습이 그냥 ‘아줌마’일 때. 남편 욕하길 바라고, 젊은 남자 게스트 나오면 좋아하는 척해야 하는데 나랑 맞지도 않고 괴로운 거예요. 만날 복근 보여달라고 해야 하는데 아니, 아들뻘 애들 복근 봐서 내가 뭐 하겠어요.
그럼에도 계속 버텼죠. 노력한 사람만이 아는 성취감이 분명 있지 않았을까요 아이들에게도 항상 네가 최선을 다했으면 됐다고 이야기해요. 나는 뭐든 할 때는 정말 열심히 해요. 하지만 결과물은 신경 쓰지 않아요. 지금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경력은 저보다 훨씬 적죠. 그래도 그들의 능력을 믿고, 결과물을 맡겨요. 오늘 촬영도 마찬가지로 열심히 했으니 사진은 어떻게 나왔든 상관없어요. 정말 아닌 것 같을 때는 넌지시 이야기하지만요.
인스타그램 계정을 보면 개그우먼 이성미, 김성은, 이경실, 배우 선우용녀, 가수 양희은 씨 등 오랜 인연들이 꾸준히 등장하더군요. 관계를 오래 유지하는 비결은 뭘까요 내가 일단 선택했으면 집중하자, 인내를 갖고 노력해 보자는 게 좌우명이에요. 오래 지켜보다가 이 사람이 내 옆에 오래 있어줬구나, 앞으로도 옆에 있어주면 좋겠다 싶은 마음이 들면 정말 나도 충성해야죠. 가족은 가족이니까 또 최선을 다해야 하는 거고요.
많지 않은 과거 인터뷰를 보면 남편 이봉원 씨에 대한 질문이 빠지지 않던데 어쩔 수 없는 숙명이죠. 우리가 이혼하면 또 이혼한 대로 그 질문을 할 거예요(웃음).
〈거리의 만찬〉을 보며 감탄했던 건 어떤 사람이 패널로 등장해도 매끄럽게 진행을 잘한다는 점이었어요. 박미선에게도 만나면 긴장할 것 같은 사람이 있을까요 아뇨. 전 카메라만 돌아가면 누구와도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어요. 이건 34년 동안 숙련된 자신감이에요. 마이크를 잡고 진행하는 건 내가 제일 잘하는 일이거든요. 사람들이 신기해 할 정도로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지, 방송이 원하는 그림을 어떻게 유도해야 할지 구획 정리가 되거든요.
과거 〈해피투게더〉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할 때는 개성 강한 출연자 사이에서 ‘중재자’처럼 보였지만 지금 다시 보면 그때도 할 말은 다 하더군요 맞아요. 제가 원래 조곤조곤 할 말 다 하면서 사람 죽이는 스타일이거든요(웃음).
 
크림 컬러 블레이저 원피스와 스트레이트 팬츠는 모두 Z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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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드레스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볼드한 체인 링크가 돋보이는 드롭형 이어링은 Ports 1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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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을 때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에 위축되는 경우가 많잖아요. 내가 발언권과 힘을 가졌다는 것을 느낀 시기가 있나요 20~30대 때는 바빠서 정신없이 보내다가 40대부터 할 말을 하게 된 것 같아요. ‘아니다’ 싶은 걸 못 참는 성격 탓도 있고요. 그런데 또 50세가 넘으니 말을 줄이게 되더군요. 내 존재 자체를 사람들이 어렵게 여기는 나이가 됐으니까요. 요즘은 괜히 억지로 더 많이 웃으려 해요.
그 유명한 ‘억지웃음’ 사진이 떠오르네요(웃음). 〈까칠남녀〉 〈거리의 만찬〉 같은 시사 교양 프로그램과 〈따로 또 같이〉 〈둥지 탈출〉 같은 가족 예능 프로그램을 넘나드는 비결은 마구 웃기는 느낌의 개그우먼이 아니다 보니 교양 프로그램과도 인연이 닿은 게 아닐까 싶은데 개인적으로는 예능 프로그램이 더 좋아요. 〈미선 임파서블〉 촬영이 너무 신나는 이유죠. 전동 킥보드를 타고, 거리에 나가 세배를 받는 영상을 보고 사람들이 저한테 ‘많이 내려놓은 것 같다’고 해요. 그런데 하고 싶은 걸 하다 보니 감추고 있던 모습이 나오는 거예요. 오히려 그간 방송을 통해 교양 있는 척, 알은 척 그럴싸한 옷을 입었다고 봐야죠.
〈여탕Show〉나 2018년 선보인 〈홈쇼핑주식회사〉처럼 한국 여성의 삶과 밀착된 키워드의 쇼를 무대에 올리는 게 의미심장하게 느껴집니다 〈여탕Show〉는 지난 코미디 페스티벌에서 재미 삼아 올렸던 건데 반응이 엄청났어요. 미친 듯 무대에 올라와 춤추고 한풀이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여자들이 이렇게 자기 말을 할 창구가 없었구나, 더 많은 이야기를 들어봐야겠다 싶더라고요. 스스로 중년 여성을 대표한다는 거창한 마음보다 공감하는 자리가 되길 바라요.
관객들은 어떤 고민이 대부분이던가요 행복하고 싶은데 불행해요, 자식이 말을 안 들어요, 남편과 가족 때문에 힘들어요…. 다 그런 이야기죠. 정말 특별한 사연은 하나도 없어요. 다만 실컷 이야기를 들어주고 답을 주려고 말하다 보면 스스로도 그게 진짜 정답인 것처럼 느껴지더라고요. 저도 배우는 거죠.
지금 박미선이 꾸는 꿈이 있다면 강경화 장관처럼 멋스러운 백발을 갖고 싶어요. 자연스러운 얼굴에 백발을 한 채로 인터뷰 토크쇼를 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예전 〈명랑 히어로〉라는 프로그램에서 묘비명을 지어주는 코너가 있었는데, 그때 방송에 나온 문구가 아주 마음에 들었어요. ‘평범하게 살고자 했으나 비범하게 사랑받았던 별난 여자.’ 그렇게 기억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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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사진 정지은
  • 에디터 이마루
  • 스타일리스트 정장조
  • 헤어 조영재
  • 메이크업 정서윤
  • 디자인 전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