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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균, 정려원이 하고 싶은 이야기

"또 검사야?"라는 질문을 받은 드라마 <검사내전>의 두 주인공 이선균과 정려원의 답변이 궁금하다면?

BYELLE2020.01.04
 
려원이 입은 그린 컬러의 레더 트렌치코트는 Bottega Veneta. 화이트 앵클부츠는 Jimmy Choo. 이선균이 입은 가죽 재킷과 이너 웨어는 Hermès. 바지는 Neil Barrett. 슈즈는 Tod’s.

려원이 입은 그린 컬러의 레더 트렌치코트는 Bottega Veneta. 화이트 앵클부츠는 Jimmy Choo. 이선균이 입은 가죽 재킷과 이너 웨어는 Hermès. 바지는 Neil Barrett. 슈즈는 Tod’s.

려원이 입은 톱과 베이지 컬러의 수트는 Moon Choi. 이선균이 입은 수트는 Sandro Homme. 셔츠는 Jil Sander.

려원이 입은 톱과 베이지 컬러의 수트는 Moon Choi. 이선균이 입은 수트는 Sandro Homme. 셔츠는 Jil Sander.

코트와 터틀넥 톱은 Versace.

코트와 터틀넥 톱은 Versace.

생활인으로서의 배우, 이선균

‘독기 없이 선한 인상은 영 검사 같지 않다.’ 〈검사내전〉의 이선웅을 설명하는 첫 문장이에요 솔직히 캐릭터에 끌려서 한 선택은 아니었어요. 그보다 드라마의 구성이 흥미로웠어요. 극이 지닌 전체적인 인상이 좋았죠. 
극의 첫인상은 어땠나요 가벼웠어요. 이 드라마는 참 가벼워요. 검사들이 주인공이지만 무겁지 않고. 팀 전체가 함께 ‘하드 캐리’하는 드라마라 인물 간의 호흡과 케미스트리에서 오는 재미가 상당해요. 검사 김웅이 쓴 원작 〈검사내전〉처럼 하나의 에피소드가 한 회로 구성되고요. 검찰개혁 이슈가 있는 시국에 검사 드라마를 하게 돼 아주 부담스럽긴 해요. 우리가 대본을 받은 건 지난봄이었어요. 이런 상황이 전개될 줄은 전혀 몰랐죠. 
〈검사내전〉을 ‘생활감 넘치는 검사들의 이야기’라 하더군요. 지금껏 보여진 유사한 소재의 서사와는 어떻게 다른가요 검사 드라마라고 보기도 어려워요. 특정 직업군을 미화하지도 않고요. 어쩌면 검찰 쪽에서 싫어할 수도 있어요. 검사들이 멋지기보다 찌질하게 나오니까요. 이건 오히려 오피스 드라마예요. 대부분 통영에서 촬영을 진행했어요. 바다를 면한 작은 지역에서 법무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무원들의 이야기거든요. 사무실에서 일하고 밥 먹고 깨지는 그런 내용이에요. 코믹한 일본 드라마 같기도 해요. 려원 씨는 영국 드라마 같다고도 했어요. 
〈미생〉의 검사 버전인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 면이 있죠. 려원 씨가 연기하는 차명주를 제외하고는 아주 오합지졸, 아웃사이더들이에요. 이선웅도 적당한 정의감을 가진, 평범하다 못해 찌질한 캐릭터고요. 리액션도 많고 질투도 많고 감정이 얼굴에 다 드러나요. 촬영하면서 제가 조금 더 그렇게 만든 것 같기도 합니다. 코믹한 부분을 살리려다 보면 찌질해지더라고요. 
려원은 파트너로서 어떤 장점을 지닌 배우인가요 굉장히 밝은 사람이에요. 대체로 ‘하이 텐션’이고요. 정말 열심히 하고, 잘 웃어요. 싫은 소리나 내색을 하지 않아요. 현장에 좋은 기운과 에너지를 줘요.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해요. 마음에 안 들면 티가 나죠. 려원 씨는 티 내지 않아요. 멋지죠. 
좋은 에너지를 주는 파트너와의 협업을 선호하나요 사실 누구와 잘 맞는지 판단하기보다 그냥 내가 잘 맞추면 된다고 생각하는 쪽입니다. 언제든 내가 맞추면 돼요. 작품에 투입된 모든 사람은 각자 주어진 바를 가지고 모인 거잖아요. 서로 배려하고 맞춰가야죠. 
느긋한 기운, 태평한 느낌, 일상이 단단한 사람의 얼굴. 데뷔 초 배우 이선균에게서는 이런 것들이 보였어요. 그런 이미지 때문인지 영화 〈미옥〉(2017) 이전의 이선균은 대부분 ‘보통 남자’였죠. 그 이후부터 이선균은 빈칸을 채우고 있는 것 같아요 내가 가진 이미지와 특징을 분명히 알았던 것 같아요. 가진 걸 극적으로 변주하면서 작품 활동하는 건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고요. 그렇다고 같은 자리에만 있을 수는 없으니까 장르적으로 변화를 준 거죠. 모든 선택의 기준은 전작들이었고요. 느긋해 보이는 이미지는 드라마에서 많이 비쳐진던 것 같습니다. 영화에서는 나름의 시도를 조금씩 했어요. 홍상수 감독님 영화도 하고, 〈미옥〉도 누아르를 하고 싶어서 선택했고요. 
얼마 전에는 이례적으로 예능 프로그램 〈시베리아 선발대〉에 출연했는데요 〈시베리아 선발대〉 기획자는 송창의 감독님이었어요. 제가 송창의 감독님 덕분에 데뷔했거든요. 감독님과 10여 년 전부터 종종 연락하기 시작해 가끔 밥을 먹어요. 그러다 어느 날 제안하시더라고요. 친구나 후배들과 함께 가고 싶은 여행이 있냐고요. 〈시베리아 선발대〉는 제가 여행지도 직접 고르고 동행할 친구도 구성할 수 있었죠. 촬영이 시작되고 공항에 도착한 순간부터 제작진은 아무것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나는 속으로 그랬죠. ‘두고 봐라, 우리도 아무것도 안 하리라.’ 
기차 한 칸에서 함께 부대끼며 여행한 후배 배우들에게 ‘연기가 1번은 아니다’라고 말하던 순간에는 꽤 멋진 형이더군요 나중에 다시 이야기했어요. 연기가 1번이라고요(웃음). 사실 그때는 밤 11시가 넘은 시각이었어요. 그 장면과 소리가 담기고 있는지 몰랐어요. 연기를 잘하는데 잘 안 풀려서 힘들어하는 후배에게는 연기가 1번이 아니라고 말해 줘요. 배우로서 삶을 지속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게 자존감이거든요. 연기는 결국 한 끗 차이예요. 자신을 내보여야 할 때 얼마나 적극적으로, 자연스럽게 말하고 움직일 수 있는지가 중요하죠. 자신감, 자존감. 그런 게 꺾일 때 가장 힘들어지고요. 
본인은 자존감을 어떤 식으로 지켜왔나요 신인 때부터 큰 목표가 없었어요. 그러다 보니 자존감 떨어질 일도 없었고요. 정말요. 연예인이 되고 싶다, 스타가 되고 싶다, 그런 꿈을 꿔본 적 없어요. 단지 좋은 연기를 하고 싶었죠. 좌절하고 힘든 순간이 많았지만, 주어진 연기를 제대로 하고 싶다는 게 이유였어요. 배우들은 늘 자존감의 ‘업 앤 다운’을 겪어요. 본인의 한계점을 무척 잘 알고요. 스스로에게 질려서, 내가 나를 보는 것도 싫을 땐 정말 힘들죠. 
이선균에게도 ‘내가 나를 보는 것도 싫을 때’가 있었던 건가요 그럼요. 내가 지닌 호흡과 자주 하는 움직임 같은 것이 싫을 때가 있었어요. 그런데 작품을 하다 보면 치유되더라고요. 
자존감 회복에 도움이 된 작품이 궁금하네요 배우 일을 계속해도 될까? 고민할 때 어떤 작품이 선물처럼 다가오곤 해요. 가깝게는 〈나의 아저씨〉가 그랬죠. 
언젠가 〈태릉 선수촌〉과 〈나의 아저씨〉를 다시 ‘정주행’하고 싶은 드라마로 꼽은 적 있죠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어서요. 〈태릉 선수촌〉으로 내 연기 인생이 시작되었다고 생각해요. 그런 작품에 참여했다는 게 정말 좋아요. 
스타가 되고 싶다는 마음은 없었지만 〈커피프린스 1호점〉과 〈하얀 거탑〉, 〈파스타〉 등을 거치며 스타덤에 올랐잖아요. 그때도 자신이 지닌 스타성을 의식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나요 그냥, 그땐 당황스러웠어요.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고 인터뷰 요청이 쏟아지는 상황이 익숙하지 않아서 ‘갑자기 나에게 왜 이러지? 왜 주목하지?’ 이렇게 생각했죠. 들뜨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도 솔직하고 싶었고요. 그러다 보니 까칠하다는 이야기도 좀 들었죠. 
자기 객관화를 잘하는 편인가요 그러려고 노력해요. 신인 때부터 그랬어요. 다른 사람의 평가보다 내 만족이 중요했죠. 사람들이 잘한다고 해도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꽝이었어요. 
지금껏 연기한 인물 중 이선균의 소울메이트라 할 만한 사람이 있을까요 원래는 〈나의 아저씨〉의 박동훈을 정말 싫어했어요. 답답해서요. 캐릭터에 반해서 시작한 드라마가 아니거든요. 그 먹먹한 침잠에 숨이 막힐 것 같았어요. 게다가 김원석 감독님은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주문을 했어요. 표현도 하지 말라고. 온몸이 다 묶여 있는 것 같았죠. 처음엔 나와 너무 달라 힘들었는데, 점점 그에게서 위로받게 됐어요. 박동훈이 이지안(아이유)에게 한 대사가 제 마음을 달래주더라고요. 
누구와 함께하는 작업인가를 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봉준호 감독과 작업한 〈기생충〉은 어떤 경험이었나요 대단한 기쁨이고 영광이죠. 〈기생충〉으로 인해 벌어진 모든 일이 남의 일 같아요. 나에 관한 언급이 너무 없어서 실감 나지 않는 것일 수도 있지만(웃음). 너무 좋은 경험이라 빨리 털고 다음 작품을 시작하고 싶었어요. 취해 있고 싶지 않아서요. 굳이 털고 말고 할 것도 없었던 것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요. 
늘 싫은 것은 빨리 털고 좋은 것은 짧게 누리려는 편인가요 지난 일이니까요. 지난 걸 붙들고 있어서 뭐 하겠어요. 그렇다고 미래지향적인 사람은 아니에요. 그냥 현재를 충실하게 살아요.  
〈검사내전〉 속 생활인으로서의 검사처럼 매일 현재와 고군분투하나요 그럼요. 멋없게도 내겐 작품이 늘 숙제예요. 주어진 것을 잘해내기 위해 고군분투하죠. 그게 언제나 굉장한 동력이었어요. 또 다른 동력은 돈이고요. 일하면 돈을 벌 수 있으니까. 이 일은 나에게 생활이고 직업이에요. 
 
테일러드 블랙 점프수트와 벨트는 모두 Bottega Veneta. 다이아몬드 태슬 이어링은 Ellepeut.

테일러드 블랙 점프수트와 벨트는 모두 Bottega Veneta. 다이아몬드 태슬 이어링은 Ellepeut.

착하다는 말은 싫은 정려원

촬영 때문에 통영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을 텐데 어때요, 도시의 매력을 찾았나요 단막극을 촬영하러 갔던 2003년과 비교했을 때 엄청나게 달라졌더라고요. 작정하고 도시를 바꾼 것처럼 예뻤어요. 극중 설정에서는 좌천당한 건데 이 정도면 호강 아니냐 싶어요. 
〈검사내전〉의 차명주를 보고 많은 사람이 전작 〈마녀의 법정〉 마이듬을 떠올릴 수밖에 없을 거예요. 배우로서는 어떤 점이 다르게 느껴지던가요 저도 검찰 드라마는 다시 안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1화 대본을 보는 순간 느낌이 왔어요. 원작도 하루 만에 다 읽었고요. ‘검사라고 해서 매번 사건에 매몰된 삶을 사는 게 아니구나. 워킹 맘도 있고, 점심 메뉴가 가장 큰 고민이기도 하고, 직장 생활을 하는 거구나’라고 생각하니까 전혀 다른 이야기로 느껴지더라고요. 출연진이 많다 보니 시트콤처럼 회당 주인공도 조금씩 달라요. 선균 오빠는 내레이션 위주로 나올 때도 있어요. 
드라마 티저 영상에도 ‘세상의 이목이 이곳으로 쏠린 왜 지금 와서 검사 이야기냐 하시겠지만…’이라는 표현이 나와요. 부담은 없었나요 주변에서도 그런 말을 많이 했어요. 왜 하필 지금이냐고. 하지만 이건 원래 있던 이야기고, 실제로 있는 상황을 없다고 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우리가 하려던 얘기를 하되 타이밍이 겹쳤으니 굳이 숨기지는 말자며 제작진도 정면 돌파를 택한 것 아닐까요. 
함께 출연하는 사람이 작품을 택하는 데 영향을 미칠까요 대본을 보는 순간 이건 선균 오빠가 해야 할 것 같았어요. 마침 감독님도 오빠를 생각했다고 하더라고요. 문자를 했는데 답이 없어서 페이스북 메시지를 몇 번이나 보냈어요. 알고 보니 번호 끝자리가 하나 달랐어요. 잘못 저장했던 거죠(웃음). 
극중 차명주는 실없이 설렁설렁 사는 검사 이선웅을 좋아하지 않지만 실제로 정려원은 그런 사람에게 관대할 것 같기도 해요 일할 때는 일 잘하는 사람이 좋죠. 하지만 일을 잘해도 주변을 불편하게 하는 사람과 일도 어느 정도 하면서 같이 있을 때 기분 좋은 사람 중 하나를 고른다면 전 후자예요. 분위기가 깨지는 걸 잘 못 참는 편이거든요. 
공효진, 손담비 등과 돈독한 우정도 유명해요. 관계를 잘 유지하는 비결은 싫은 것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해요. 좋은 이야기는 누구나 할 수 있잖아요. 별로인 것, 불편한 것에 대한 이야기를 서로 잘 나눌 수 있어야 하죠. 
지난봄에는 각자 어머니를 모시고 제주도에 다녀왔더군요 감사한 시간이었어요. 저희 나이에 엄마와 딸 둘이서 여행을 가는 게 쉽지 않잖아요. 불행인지 다행인지 우리 모두 결혼하지 않았고, 저희 어머니도 마침 호주에서 한국에 들어오셨어요. 방도 엄마들 방, 딸들 방 따로 잡고 1박2일을 열심히 돌아다녔죠. 어머니들의 이야기를 듣는 게 정말 재미있었어요. 배울 것도 많고요. 지금은 엄마들의 단체 채팅방이 생겼을 정도예요. 
이제 후배들도 많이 생겼을 텐데 당신도 세대 차이 같은 걸 느끼나요 그들도 나이를 먹으면 다 알게 될 걸 제가 먼저 알려주려고 하지는 않아요. 오히려 제가 배우는 게 많죠. 코첼라 페스티벌에 갔을 때 마침 LA에 있던 (김)고은이 혼자 운전해서 두 시간 거리를 오는 걸 보고 멋지다고 생각했어요. 요즘 무슨 스마트폰 앱이 좋은지 추천도 받아요. 그래도 트렌드에 뒤처지는 편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제가 선배들에게 알려드렸던 걸 언젠가부터 제가 물어보고 있더라고요(웃음). 
지난 시간을 돌아봤을 때 진짜 중요했던 기점이 있다면 스물다섯 살 때 1년 동안 봤던 연기 오디션에 정말 다 떨어졌어요. 직장이나 수입이 없으면 이곳에 남을 이유가 없기 때문에 필사적이었는데도 거절만 당하니까 내 길이 아닌가 싶었거든요. 호주로 돌아가기로 거의 결정했을 때, 덜컥 붙은 작품이 바로 〈내 이름은 김삼순〉이었죠. 
정말 터닝 포인트였네요 몇 년 전에도 슬럼프가 있었어요. 해낼 수 있다는 자신이 없어서 작품을 거절했는데,  1년 뒤에 〈마녀의 법정〉 대본을 받은 거예요. 예전에 고사했던 작품보다 대사도 더 많고, 역할도 더 센데 이번에도 안 하면 다음 번에는 아예 내가 끼어들 엄두도 못 내겠구나, 현장에서 죽더라도 해보자 생각하고 덤볐어요. 그때 알았어요. 실재하는 것보다 내가 갖고 있던 공포가 더 컸다는 것, 뭘 하든 미리부터 겁 먹을 필요가 없다는 걸요. 
주로 인터뷰 질문을 받는 당신도 직접 인터뷰하고 싶은 사람이 있나요 말하면 이뤄지나요?(웃음) 샤를로트 갱스부르를 정말 좋아해요. 물어보고 싶은 건 많아요. ‘언니, 코첼라 때 입었던 그 바지 뭐예요?’ ‘인스타그램에 사진은 왜 만날 세 개씩 올리는 거예요?’ 이런 거. 
파리를 좋아하죠? 그러고 보니 〈엘르〉와의 가장 최근 인터뷰도 파리였어요 지난해 4월이었죠. 파리는 걸을 때 심심하지 않은 도시라서 좋아요. 한국도 즐길 게 많지만 파리는 시대극을 찍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분위기나 풍경이 그대로잖아요. 이런 도시에 살면서 예술적 기질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요? 
자라난 환경이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면 10대 시절을 보낸 호주는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요 다양한 인종과 다양성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해줬어요. 그때만 해도 인종 차별이 심했거든요. 내가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라는 걸 열한 살짜리도 바로 느낄 수 있을 만큼요. 싸우려고 영어를 미친 듯 배웠는데 대화가 되기 시작하니까 또 괜찮더라고요. 덕분에 지금도 낯선 환경을 두려워하지는 않아요. 
다른 사람의 ‘대변인(Spoke Person)’이 돼주라는 어머니의 조언처럼 실제로 드라마 제작 환경 개선이나 성범죄자 처벌 강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도 했어요. 당신에게도 용기를 주는 사람이 있을까요 엄마를 사랑하는 동시에 존경해요. 엄마는 흔들릴 때도 명확한 곳을 바라보는 분이에요. 엄마처럼 일견 평범해 보이는 사람이 그런 힘을 가졌다는 건, 다른 사람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희망이기도 하죠. 친구인 (임)수미도요. 연예인이 된 이후 만난 사람들의 대부분은 저와 관계가 안 좋아질까 봐 싫은 말을 잘 안 하거든요. 그런데 수미는 제가 꼭 들어야 할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멀어질 걸 무릅쓰고 말해요. ‘찐’이죠. 
처음 그런 조언을 들었을 때 거부감은 없었나요 지구가 부서져라 싸웠죠! 그런데 싸우다 보면 이게 애정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걸 서로 알아요. 자매 같은 거예요. 
본인만의 확고한 취향을 갖고 있어요. 좋아하는 것들의 공통점이 있나요 일단 목적성이 있는 건 싫어요. 내가 좋아해야 좋은 거지, 그게 아니라면 아예 언급을 안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해요. 확실한 건 나이가 들수록 취향이 분명해진다는 거예요. 책에서 읽은 이야기인데요, 10대 때는 우정, 20대에는 사랑 때문에 나를 못 보다가 30대가 돼서야 비로소 자신을 보게 된대요. 그런데 대부분 그때쯤 가정을 이루고, 아이에게 집중해야 하다 보니 그 시기가 더 늦춰지고요. 전 지금 제 자신을 속속들이 보는 것 같아요. 
책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삼국지〉를 세상 모든 남자 캐릭터를 만날 수 있다고 표현한 게 재미있었어요. 어떤 캐릭터가 특히 취향인가요 ‘여포’요. 적토마를 길들이고, 한 여자에게도 절대적인 사랑이었고, 무예도 뛰어난데 리더를 잘못 만나 삶이 피폐해지는 게 안타깝지 않나요? 물론 나이가 드니까 왜 사람들이 제갈량을 좋아하는지 알겠어요(웃음). 
여자들이 많이 나오는 이야기 중 좋아하는 건 뭐가 있을까요 〈디아워스〉. 등장인물이 많진 않지만 정말 멋진 배우들이 나오잖아요. 〈스틸 앨리스〉도요. 작품 속에서 다양한 여성 캐릭터를 접할 수 있어서 좋아요. 
가까운 사람들에게 어떻게 기억되고 싶나요 어머, 마침 안 그래도 주변 사람들에게 ‘난 어떤 사람이야?’ ‘어떤 친구야?’라고 집요하게 물어보고 있어요. 그중에서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말이 참 좋아요. ‘착하다’는 말은 별로고요. 
이유는요 가장 큰 특징이 착한 거라면 개성 없다는 말 아니에요? 나한테 잘하면 착한 사람이라고들 하잖아요. 저는 ‘착하다’는 표현 자체가 좀 과대평가된 것 같아요.
 
려원이 입은 그레이 울 수트는 Lemaire. 펌프스는 Sam Edelman. 이선균이 입은 그레이 코트는 Wooyoungmi. 블랙 수트는 Jill Stuart.

려원이 입은 그레이 울 수트는 Lemaire. 펌프스는 Sam Edelman. 이선균이 입은 그레이 코트는 Wooyoungmi. 블랙 수트는 Jill Stu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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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 목정욱
  • 에디터 이마루/이경진
  • 디자인 오주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