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전설, 프랭크 게리와 나눈 이야기 || 엘르코리아 (ELLE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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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전설, 프랭크 게리와 나눈 이야기

한국과 인연이 깊은 그이기에 더욱 특별했던 '루이 비통 메종 서울'에 관한 비하인드 스토리.

ELLE BY ELLE 2019.12.09
 
살아 있는 전설, 프랭키 게리와 나눈 이야기

살아 있는 전설, 프랭키 게리와 나눈 이야기

“기원전 470년에 제작된 청동 조각상 앞에 서 있자니 눈물이 나오더군요. 조각가가 불어넣은 감정이 매우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그대로 전해진다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저 역시 그렇게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왼쪽부터 구겐하임 뮤지엄 빌바오(1997), 빌바오 / 댄싱 하우스(1996), 프라하

왼쪽부터 구겐하임 뮤지엄 빌바오(1997), 빌바오 / 댄싱 하우스(1996), 프라하

비트라 뮤지엄(1989), 바젤

비트라 뮤지엄(1989), 바젤

DZ 은행 건물(1999), 베를린

DZ 은행 건물(1999), 베를린

월트 디즈니 콘서트 홀(2003), 로스엔젤레스

월트 디즈니 콘서트 홀(2003), 로스엔젤레스

한국과 특별한 인연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한국인 손녀가 둘 있는데, 한 명은 네 살인 오펄(Opal)이고 다른 한 명은 한 살 반인 데이지(Daisy)입니다. 똘똘한 아이들이지요. 애들은 사무실에 놀러 와 제가 일하는 동안 옆에 앉아 그림을 그리기도 합니다. 또 다른 인연을 떠올려본다면 수년 전에 프로젝트가 성사되진 않았지만, 삼성미술관 리움과 관련한 일로 방문한 적 있습니다. 한국에 올 때마다 저는 종묘를 찾습니다. 한국 전통 의상과 제례 의식 사진을 보면서 상상했던 그대로 무척 아름답다고 생각하며, 방문할 때마다 큰 감동을 받지요.
아무래도 파리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과의 연관성이 이번 루이 비통 메종 서울을 설계하게 된 직접적인 이유가 될 것 같습니다 
물론입니다. 파리에서 성공을 거둔 요소들을 서울에서도 시도하고 싶었습니다.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을 지을 때 유리라는 건축자재를 고려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어요. 유리에는 그림을 걸 수 없기에 두 개의 건물을 세워야 했죠. 우선 벽이 있는 건물을 만들고 유리 구조물을 세워야 했는데, 유리와 벽 사이의 공간이 외부 작품 전시 공간이 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무라카미 다카시와 제프 쿤스 등 몇몇 아티스트에게 의견을 구했고, 다들 조사를 해보더니 큰 관심을 보여주었어요. 실제로 첫 작품은 제 친구 다니엘 뷔랑이 건물에 그림을 그려서 프랭크 게리의 건축물이라는 게 보이지 않도록 했습니다. 그가 엉뚱한 발상을 선보일 것으로 처음부터 기대하고 있었죠.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은 두 겹의 구조라는 약점을 장점으로 바꿔 또 다른 전시 공간을 만들었다는 데 특별한 의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후 미술관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이 공간을 활용하는 방법을 찾아내고 있어요. 청담 메종 역시 이런 실험의 연장 선상에서 설계되었습니다.
커리어를 이어오는 내내 유리 소재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 왔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유리는 물론 벽돌에 이르기까지 모든 자재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만, 유리가 건축 자재로써 흥미로운 점은 고층 건물 관련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했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유리 공장에 가서 자세하게 살펴보고 이를 건축에 적용하는 걸 즐깁니다.
청담 메종의 내부 디자인은 피터 마리노가 맡았습니다 
저는 컬래버레이션에 매우 열린 자세를 갖고 있습니다. 피터 마리노의 작업을 존중할 뿐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그를 좋아합니다. 이번에는 그와 아주 긴밀하게 작업하진 못했는데, 다음엔 좀 더 가깝게 일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의견 충돌이 별로 없었겠네요(웃음) 
네, 물론 그의 설계에 몇 가지 수정을 가하거나 그 역시 몇 가지 수정 사항을 제안하긴 했습니다.
설계할 때 주변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많이 고려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청담 메종 주변은 럭셔리 거리로 유명한데 이 건물이 주변과 어떤 대화를 나누며 살아 숨 쉬기를 원합니까 
건물을 설계할 때 이 부분에 가장 큰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많은 건물이 주변 건물과의 조화를 전혀 생각하지 않고 지어집니다. 예전에 뉴욕에 타워 빌딩을 건축한 적 있는데, 직접 봐야 이해하겠지만 옆에 있는 건물이 박스를 단계별로 얹은 형태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그 형태에 맞춰 움직임을 표현해야 했죠. 그 건물이 제 작품 중 주변과의 조화를 보여주는 가장 좋은 예가 아닐까 싶습니다. 청담 메종 역시 이 길의 가로수와 주변 건물을 고려하면서 그 조화를 훼손시키지 않으려 했습니다. 이번 작업은 한 가지 이상의 언어를 담는 작업이었어요. 처음에 매우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갖고 시작했는데, 진행하면서 스토리가 달라지거나 중요시하던 것들이 사라지기도 했습니다. 종국에는 최대한 아름다운 건축물을 완성하자는 자세로 임했어요.
 
레이 앤 마리아 스타타 센터(2014)

레이 앤 마리아 스타타 센터(2014)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2014)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2014)

파리 8 구겐하임 아부다비(예정)

파리 8 구겐하임 아부다비(예정)

청담 메종을 세 단어로 표현한다면 
세 단어라…. ‘Lovingly Conceived and Executed(아름답게 고안되어 완성되다)’가 어떨까 싶네요.
부산 동래 지방에서 학의 동작을 표현해 추는 ‘동래학춤’에서도 영감을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동래학춤을 본 적 있는데, 남성 한복의 너울거리는 소매가 무척 아름다웠습니다. 제가 춤을 좋아하고 관심을 두는 이유는 바로 조각처럼 움직임이 표현되는 데 있습니다.
당신에게 깊은 영감을 준 또 다른 작품이 있을까요 
30대 후반에 그리스 델포이 고고학 박물관에 갈 일이 있었어요. 아주 오래전 일이지요(웃음). 그때 기원전 470년에 제작된 청동 조각상 ‘델포이의 전차 경기 선수(Charioteer of Delphi)’를 보았습니다. 머리카락의 디테일, 눈의 흰자위 등이 온전히 남아 있는 이 조각상 앞에 서 있으니 눈물이 나오더군요. ‘작자 미상’이라고 표기된 이 작품에 조각가가 불어넣은 감정이 매우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나처럼 그곳을 찾은 사람에게 그대로 전해진다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그 조각가가 그랬던 것처럼 저 역시 그렇게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건물 4층에도 청동으로 인간의 나약함과 고귀함을 표현한 또 다른 조각가 자코메티의 작품이 견고하게 서 있습니다 
네, 그리스 이래로 많은 아티스트가 청동 조각을 완성해 왔죠. 피카소도, 마티스도 청동 조각을 만들었어요. 자코메티의 청동 조각 작품도 풍부한 감정을 자아냅니다. 캐나다 토론토의 온타리오 미술관(토론토에서 자란 게리가 증축을 맡아 2008년 완공됐다)에 가면 헨리 무어의 석고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이 있습니다. 그 작품을 보면 무어의 감정을 느낄 수 있는데, 소재가 청동으로 바뀌면 아름답기는 하지만 감정의 교류가 사라지죠. 빌럼 더코닝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그만큼 청동으로 감정을 표현하기 어렵다는 얘기겠지요? 유리, 목재, 철 등 건축자재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자재를 통해 감정을 전달하는 것이 최대 관건입니다.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죠. 저에게 건축물을 설계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느낌을 전달하는 일입니다.
건축가는 내면에 생명력을 불어넣기에 가장 적합한 직업입니다만, 다른 직업을 선택한다면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요 
건축은 수많은 사람이 매달려야 하고,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지 않나요? 무용수가 어떨까 싶네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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