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주의 물건] #10. 여든이 되어도 컨버스를 신을 테야 || 엘르코리아 (ELLE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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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주의 물건] #10. 여든이 되어도 컨버스를 신을 테야

10대에도, 20대에도, 그리고 30대가 되어서도 내가 사랑한 신발. 할머니가 되어서도 신고 싶은 신발. 오늘은 컨버스 척 테일러 올스타에 관한 이야기다.

장수영 BY 장수영 2019.12.04
 
어두운 극장에 앉아 생각했다. 나는 오늘 큰 실수를 저질렀구나. 애니메이션을, 토요일 오후에, 그것도 자막이 아닌 더빙 버전으로 보러 오다니. 그러니까 십수 년 전, 영화 <스튜어트 리틀>을 보러 갔던 오후, 나는 귀를 막지도 열지도 못하는 상황에 부닥치고 말았다. 귀를 막으면 대사가 들리지 않았고 귀를 열면 어린이 관객들의 고함이 들렸다. 작은 생쥐 주인공에게 감정을 이입한 어린이들은 고양이가 나올 때마다 울음을 터뜨렸고 목청을 높여 생쥐를 응원했다. 도망쳐! 도망쳐!
도망치고 싶은 건 나였다. 자신의 감정을 무방비로 드러내는 어린이들의 천진함을 품기에 그 시절의 나는 너무 어렸다. 육천 원짜리 관람료를 포기하기에 그때 난 너무 가난했고. 원망과 자책과 후회로 범벅된 마음을 억누르며 어찌어찌 스튜어트라는 이름의 작은 생쥐 주인공의 탐험을 함께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내 눈에 들어온 물건이 있었다. 그 애의 빨간 스니커즈. 컨버스 척 테일러 올스타였다.  
 
<스튜어트 리틀> 2000 @mbd.com

<스튜어트 리틀> 2000 @mbd.com

1908년에 설립된 ‘컨버스 러버 슈 컴퍼니’. 테니스화와 농구화, 자동차용 타이어 등을 생산하던 이 회사는 찰스 척 테일러의 합류 이후 본격적으로 농구라는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된다. 시카고 지사의 세일즈맨으로 합류한 척 테일러는 컨버스 농구팀의 선수이자 감독으로 미국 전역을 누비며 홍보하고 농구 교실을 열었고, 컨버스는 <배스킷볼 이어 북>이라는 책을 출판하기도 했다.
이후 기능성 농구화 컬렉션의 이름을 ‘CONS ERX 컬렉션’으로 변경하면서 척테일러 올스타 제품은 농구화 카탈로그에서 빠졌지만, 그 시절의 디자인 요소들, 이를테면 피벗 단추와 통풍을 위한 아일릿, 밑창을 감싸는 방식, 발목의 패치 등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1919년, 컨버스 논 스키드 농구화 광고 @컨버스 제공

1919년, 컨버스 논 스키드 농구화 광고 @컨버스 제공

1925년, 컨버스 올스타 농구화 광고 @컨버스 제공

1925년, 컨버스 올스타 농구화 광고 @컨버스 제공

컨버스의 스니커즈는 운동화라는 정체성을 뛰어넘는 어떤 이미지를 가진다. 그리고 그 이미지는 지금까지 여러 영화에서 사용됐다. 먼저 1976년 영화 <록키>의 명장면, 필라델피아 미술관의 계단을 오르며 훈련하던 신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배경 음악이 떠오른다 “빠밤빠암~ 빠밤빠아암~~~(칙칙!!)” 그다음은 두툼한 회색의 트레이너 상·하의 세트, 그리고 신발이다. 컨버스 하이탑 스니커즈를 신은 가난한 이민자 록키 발보아. 그는 많은 결점을 끝내 극복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1993년 영화 <쿨 러닝>의 상카는 어떤가. 자메이카 최초의 봅슬레이팀의 선수인 그도 록키 발보아와 비슷한 인물이다. 용감한 약자다. 불가능해 보이는 꿈을 꾸는 바보다.  
영화 속에서 척 테일러를 신는 또 다른 부류는 바로 삶을 통제하지 못한 채 방황하는 젊음이다. 1985년 영화 <조찬 클럽>과 1983년 영화 <아웃사이더>의 소년들, 1995년 영화 <바스켓볼 다이어리>의 짐 캐롤(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2017년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엘리오 등의 십 대들은 제각각의 이유로 위태롭고 아름다웠다.  
 
<바스켓볼 다이어리> 1995 Ⓒ imdb.com

<바스켓볼 다이어리> 1995 Ⓒ imdb.com

<기묘한 이야기> 2016 Ⓒ imdb.com

<기묘한 이야기> 2016 Ⓒ imdb.com

<록키> 1976 Ⓒimdb.com

<록키> 1976 Ⓒimdb.com

<스튜어트 리틀> 사건이 있던 날, 그러니까 작은 존재들의 아우성을 견뎌야 했던 그 오후가 지나고 몇 년 후, 첫 아르바이트를 해서 받은 첫 돈 봉투를 들고 시내로 나갔다. 그날 나는 큰맘 먹고 두 개의 물건을 샀는데 그중 하나는 쏘베이직(이 브랜드 기억하는 독자가 있으려나?)의 줄무늬 티셔츠였고, 다른 하나는 컨버스의 척 테일러 올스타였다. 3만 원대의 컨버스를 살 수 있던 그 날로부터 많은 시간이 흘렀고, 나는 훨씬 더 비싼 구두를 살 수 있는 사람이 되었지만, 여전히 컨버스를 즐겨 신는다.  
구글에 컨버스 척 테일러 올스타를 검색하면 이런 질문을 쉽게 볼 수 있다.  
“Am I too old for chuck taylors?”  
자신의 나이를 밝히며 척 테일러 올스타를 신어도 괜찮겠냐고 묻는 사람들. 그리고 20대까지는, 혹은 30대까지는 괜찮지 않겠냐고 답하는 사람들. 무용한 질문과 답변을 읽으며 나는 엉뚱하게도 할머니가 되어서도 컨버스를 즐겨 신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이 어울리는 사람으로 늙어가고 싶다. 이제 세상을 다 안다고 여기며 시들어가지 않고, 안전해졌다고 확신하지 않고. 언제나 조금씩 방황하는 사람으로, 낡은 운동화를 신고서 낯선 문을 벌컥벌컥 여는 사람으로 늙어가고 싶다.♡
 
☞ 트렌드를 뛰어넘어 시대를 관통하는 가치를 지닌 물건 뒤에 숨은 흥미로운 이야기, 김자혜 작가의 ‘요주의 물건’은 매주 수요일에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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