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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업작가로 살고 있는 재니스 리

“네? 직업이 소설가시라고요?” 우리가 소설가 이웃을 만나면 이렇게 되묻을지도 모른다. 상대가 네 아이의 엄마라면 더더욱. 뉴욕에서 <엘르> 미국판의 에디터였고, 지금은 홍콩에서 이사와 엄마로, 아내로, 또 전업작가로 살고 있는 재니스 리가 이 질문에 답한다.

프로필 by ELLE 2009.11.30

재니스 리는 <엘르> 미국판 에디터를 거쳐 <엘르> <글래머> <트래블&레저> 등에 글을 기고하고 있으며, 올해 첫 소설 <피아노 교사>를 출간했다. 다음 달 한국어 버전이 국내에 출간될 예정.


뉴욕에서 홍콩으로 이사온 네 명의 어린 아이들을 키우는 유부녀가 어떻게 소설을 쓸 수 있었는지 사람들은 내게 종종 묻곤 한다.답은 이렇다. “천천히”.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러면서도 때로는 뭐를 하든 그것 때문에 내 인생의 다른 부분을 빼앗겼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일에 시간을 쏟아부으면 아이들은 애정 결핍으로 힘들어했고, 내가 아이들에 집중했을 때는 남편과 의미 있는 시간을 갖지 못했으며, 내가 가족과 충분한 시간을 가지면 글쓰기가 언제나 두 번째(혹은 세 번째, 네 번째)로 밀려났다. 스스로 삶을 능동적으로 제어하지 못한다는 느낌이 소용돌이처럼

밀려왔다. 엄마로서 첫 해는 끔찍했다. 유모가 있었지만 모든 것을 내가 하고 싶었다.  오웬(Owen)을 먹이고 목욕시키고 입힐 옷 하나하나를 결정하는 것까지 내가 하고 싶었다. 하얀 양말 신길까, 파란 양말을 신길까 하는 중요한 결정들을 나말고 누구에게 맡길 수 있을까. 엄마가 된다는 것은 인생에 유머가 가장 필요한 시기에 그것을 잃어버리는 일이었다. “함께 영화 보러 가겠냐?”고 묻는 남편은 그 질문 자체를 의심하는 듯한 나의 표정과 맞닥뜨려야 했다. 외출? 나는 지쳐 있었다. 우울했다. 오웬과 관계되지 않은 일은 할 수가 없었고 남편도 이런 나 때문에 힘들어했다. 초보 엄마로서 겪은 극도의 진지함을 이제는 웃어넘길 수 있는 정도가 됐지만 당시는 아이에 관해서라면 어느 것 하나 소홀하게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회사에 다니는 일이 아니다 보니 글쓰기야말로 첫 번째로 소홀해지는 대상이었다. 소설을 쓰겠다는 생각은 마치 우주선을 타고 달을 정복하겠다는 것만큼이나 불가능해 보였다. 대신 유모차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 무농약 재배에 대한 기사들을 읽는 것에 집중했다. 초보 엄마의 애정 어린 독성으로부터 해독되는 방법은 시간이 흐르거나 둘째가 생기는 것인데 고맙게도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이뤄졌다.
대니얼(Daniel)은 나를, 애 하나에 모든 걸 바치는 자신을 구해줬다. 이제는 하나가 아니라 둘을 위해 헌신해야 하고, 지쳐 쓰러지지 않으려면 내 삶의 밸런스를 회복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동네 커피숍으로 한두 시간씩 글을 쓰러 다니기 시작했을 때, 운이 좋게도 노트북을 끼고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 옛친구를 만났다. 이메일 교환 후 우린 매주 만나기 시작했다. 서로가 집을 나섰는지 확인하고 만나서는 일에 몰두할 수 있도록 서로를 격려했다. 이와 같은 일상의 사소한 결정들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변화시킨다. 당시 친구는 아이가 없었는데 엄마로 산다는 것이 어떤 건지 일말의 감도 없는 친구가 주변에 있다는 것은 신선함이었다. 친구는 나를 예전의 나로, 소녀에서 여자로 성장한 작가가 되기를 원하는 나를 보았고, 그녀의 시각은 내게 믿을 수 없을 영향력을 발휘했다. 그것 때문에 나는 예전의 나처럼, 내 안 어딘가에 잠재돼 있다고만 여겨온 나처럼 행동할 수 있었다. 글쓰기가 삶에서 가장 중요하고 좋은 일이라 믿던, <제인 에어>를 읽을 때마다 눈물을 흘리던, 글을 쓰는 일이라면 그 어떤 다른 것도 포기할 수 있었던 바로 그 사람말이다.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집필 5년 후, 뱃속에 7개월이 된 쌍동이를 임신한 채로 <피아노 교사>를 완성했고, 그와 동시에 세계 각지로 팔려나갔다. <피아노 교사>는 내 인생의 새로운 챕터를 열어주었다. 내 책을 도와주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부지런히 글을 써야 했다. 편집자는 매우 훌륭했고, 출산 후 3개월 이상은 글을 쓸 수 없을 것을 염두해 마감 날짜를 미리 정해야 했다. 침상에 몸을 옆으로 기대 누운 채로 온종일 규칙적으로 글을 써야 했을 때, 오웬과 다니엘은 동화책을 읽어주고 축구와 수영하는 것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엄마는 어디로 가버린 건지 의아해했다. 그러나 아이들은, 원래 모든 아이들이 그렇듯이 상황에 적응해나갔다.
책을 홍보하기 위해 아이들을 두고 각지를 돌아다녀야 했다. 길 위에서 나는 혼자인 여자, 일하는 여자, 여행가방을 든 여자였다. 공항에서 나는 익명의 누군가가 된다는 것에, 업무상 출장을 다니는 내 모습이 어떤가 하는 것에, 새로운 자신에게 감격했다. 호텔에서는 아침으로 크루아상을 먹었고, 관심을 끌려고 아우성 치는 네 명의 아이들 없이 여유롭게 신문을 읽으며 커피로 하루를 시작하는 호사를 누렸다.집에 돌아오면 아이들은 여전히 잘 살고 있었다. 아이들이 나 없이도 잘 지낼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남편과 둘만의 여행도 떠났다. 둘다 늦게 자고, 장장 다섯 시간 동안의 디너를 먹으러 다니며, 아이가 생긴 이후로 불가능했던 일들을 함께 즐길 수 있게 됐다. 더 바쁘게 지낼수록 더욱 생산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난 이 말을 믿는다. 이제는 각기 다른 나를 위해 내 안에 자리를 만들었다. 비록 쉽게 그리고 빨리 이뤄지지 않는다 해도 그 모든 내 역할들에게 나눠줄 시간을 찾으려 한다. 언젠가 내가 마감에 쫓기고 있고 아이들은 엄마는 더 이상, 전혀, 책을 읽어주질 않는다며 인생이 진저리가 난다고 울고 불고 하는 끔찍한 상황에 봉착하게 될 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도 사랑하는 사람의 잘못을 용서해야 하고, 아이들도 나를 용서해야 한다. 다 주고 받는 것이다. 그저 최선을 다해 내 자신의 모습이 사라지지 않도록 지켜야 한다. 요즘은 어떻게든 시간을 내서 요가도 다니고 있다.그래서 나는 작가이기도, 아내이기도, 엄마이기도, 그리고 여성이기도 한 것이다. 그 모습들은 서로 살아남기 위해 세상 속에서 맞싸우고 있지만 정해진 답은 없다. 단지 무엇이 나와 맞는가 하는 것일 뿐.  그리고 이것들이 내가 배운 것이다. 관대할 것. 타인에 대해 평가하지 말것. 최선을 다할 것.다음날 아침이 되면 모든 게 더욱 명료해진다는 것.매일 조금씩 쌓이면 언젠가 많은 것을 이룰 수 있다는 것.





*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11월호를 참조하세요!

Credit

  • Words JANICE LEE
  • Editor 김보미
  • 번역 및 현지 진행 이재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