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리단 길 서울살롱 루프톱에서 친한 동생의 즉흥적인 소개로 처음 만났다.
결혼에 대한 환상을 가질 나이는 아니었기에 떠들썩한 프러포즈보다 평범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일상에서 서로에게 늘 말해 왔다. ‘우리 평생 함께 살자’ ‘결혼하자’.
평범한 것은 싫어하는 터라 웨딩 홀이나 호텔은 싫었고 친구들과 자연이 있는 가든에서 눈높이를 맞추고 눈빛을 나눌 수 있는 소규모 가든 파티를 하고 싶었다. 그 모든 것에 적당한 장소가 충무로에 있는 라비두스였다.
친분이 있는 제이백 쿠튀르의 디자이너 제이백이 야외식에 어울리는 내추럴하면서도 클래식하고, 빈티지 감성의 디자인에 내 체형과 취향을 반영한 완벽한 웨딩드레스를 제작해 줬다. 파워 숄더로 드레스에 힘을 실어주었고, 보디 실루엣이 아름답게 보이는 머메이드 라인의 빈티지풍 디자인으로 우아함을 강조했다. 몸의 단점은 커버해 주고, 길고 가는 다리는 슬릿을 넣어 은근히 드러나게 한 건 커스텀 메이드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특히 2부 때 입었던 턱시도 스타일의 미니드레스는 허리를 강조하기 위해 커머 번드로 포인트를 주었고, 미니스커트로 날씬한 다리를 드러냈다. 디자인 스케치부터 여러 번의 피팅을 거친 제작 과정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서로 취향이 비슷해서 내가 원하던 멋진 드레스가 나올 수 있었다.
헤어스타일과 메이크업, 모두 오랜 기간 알아왔던 이들이 해주었다. 헤어는 아우라 뷰티의 임철우 원장이 도도한 업두 스타일로 베일과 자연스럽게 매칭됐고, 메이크업은 서울베이스 최시노 실장의 작품. 늘 하고 다니는 시그너처 아이템인 검정 뿔테 안경을 벗기가 쉽지 않았지만, 온전한 나를 보여주고자 안경을 벗고 평소 즐겨 하던 캐츠 아이 메이크업에서 아이라인을 더 강하고 시크하게 강조해 섹시하면서도 우아하게 표현했다.
야외 정원 곳곳에 그린과 화이트 컬러를 메인 조합으로 빈티지하면서도 시크한 매력이 느껴지는 플라워 데커레이션을 배치했다.
하객은 우리의 여름 가든 파티에 초대해 다 같이 기분 좋게 놀다 갈 수 있는 무드를 원했다. 신부대기실에 앉아 있는 게 아니라 하객을 맞이하며 사진도 찍고 담소도 나눌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었다. 전통 예식의 틀에서 벗어난 웨딩을 위해 친척이나 어른들을 제외하고 패션 업계 지인들만 초대해 더욱 파티스러운 결혼식을 할 수 있었다.
친한 가수 정엽이 일렉트릭 기타와 함께 코모도스의 ‘Easy’를 노래해 한껏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둘 다 매일 착용할 수 있는 심플한 링을 원했고, 까르띠에 러브링 로즈골드가 우리 취향에 딱이었다. 대신 신부 반지는 다이아몬드가 세팅된 디자인으로 골랐다.
결혼식이 열릴 7월의 가든을 떠올리며 싱그러운 나뭇잎과 결혼식 날짜인 0707을 매치해 디자인했다.
주례와 화촉을 생략하고 혼인서약서를 서로 읽었다. 또 오랜 지인인 패션 매거진 <데이즈드> 이현범 편집장이 신랑신부 룩의 패션 브랜드를 짚어주는 유쾌하면서 센스 넘치는 사회를 봐주었고 20년 가까이 스타일링을 맡으며 가족 같은 관계를 이어온 배우 신민아의 감동적인 축사로 우리는 물론이고 하객 모두에게 웃음과 눈물 가득한 시간이었다.
웨딩 플래너 없이 모든 것을 스스로 알아보고 정해야 하는 것이 힘들었지만 드레스와 헤어, 메이크업 등을 지인과 함께했기에 잊지 못할 결혼식이 됐다. 전형적인 예식 스타일에 얽매이지 않고 내가 원하는 컨셉트를 흔들림 없이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