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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가슴살 구이/ 전어 세비체/ 왕새우 라비올리
새벽 5시. 가락동농수산물 시장은 한낮의 열기로 가득하다. 분주히 오가는 수레용 전기차와 오가는 상인들. 주파수 안 맞는 라디오의 잡음을 연상케하는 경매상들의 목소리. 돌고래가 보내는 모르스부호 같다. 자주 나오는 편은 아니지만 재료를 고르기 위해 시장만큼 좋은 학습장은 없다. 모든 재료가 깔끔하게 포장되어 나오는 마트 물건만 가지고서는 어떤 재료가 좋은지 가늠할 수가 없다. 좋은 음식을 많이 먹어본 사람이 좋은 맛을 알 듯 좋은 재료를 고르려면 시장에 많이 나와봐야 한다. 책에서 본 사진이나 그림을 가지고 좋은 물건을 구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착각이다. 무엇보다 시장에 나오면 요즘 어떤 것이 새로 나오는지 뭐가 잘 안 좋은지 금방 알 수가 있다. 요즘 공부를 시작하는 젊은 셰프들은 배우려는 의지가 옛 선배들보다 훨씬 강하다. 하지만 그런 열정에 비해서 일은 열심히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 같다. 아무리 잘 나가는 외국 셰프들도 수년간 하루 17시간의 중노동을 거치고 태어난 사람들이다. 하루 8시간 근무를 원한다면 셰프는 꿈도 꾸지 말아야 할 직업 중 하나이다. 아. 이야기가 옆길로 샌다. 아무튼 오늘 재료들은 가을에 맛이 오르는 것들로 정했다.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는 전어와 대하, 그리고 오리다.
며느리는 왜 집을 나갔을까 사실 전어는 그리 비싼 고급 어종이 아니다. 전어가 붐이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좋은 생선을 잡을 때 그물에 걸리면 버려야 할 지 말아야 할 지 어부들을 헷갈리게 했던, 무던히도 많이 잡히던 생선이다. 도시에서 전어를 이야기할 때면 빠지지 않는 말이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만드는' '전어 머리엔 참깨가 서말' '바다의 깨소금' 등이다. 전어를 구울 때 향이 너무 고소해서 자식도 버리고 남편도 버리고 집을 나간 며느리가 돌아온다는 말인데, 며느리의 가치가 그것밖에 안되나 싶어 가끔 실소가 지어지곤 한다. 가을 전어가 맛있는 건 고소한 지방 때문인데 껍질과 살 사이에 있는 빨간 부분이 바로 지방이다. 가을이 되면 그 지방층이 두꺼워지면서 고소하고 풍미가 좋아진다. 좀 큰 전어는 구이로 먹고 작은 것은 뼈째 썰어 세꼬시로 먹는데, 뼈를 그대로 붙여 통째로 먹는 것을 뼈꼬시라 부르기도 한다. 생선을 날 것 그대로 먹는 것은 우리나라와 일본 정도인데 요즘 유럽에서도 음식 좀 안다, 트렌드를 좀 안다는 사람들은 '회'를 먹는 것이 유행이 되었다. 이번에 만든 전어는 세비체란 요리다. 원래 칠레 음식인데 프랑스로 넘어가 아주 흔한 요리가 되었다. 우리나라 물회처럼 생선을 잘라 각종 야채와 함께 먹는 음식이다. 올리브오일과 화이트와인 비니거, 머스타드를 넣어 만든 비네그레이트로 맛을 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