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자와 한 남자의 단상 | 엘르코리아 (ELLE KOREA)

남자의 마음은 돌덩이가 아니다. 터져나오는 감정을 속으로 삼킬 만큼 참을성도 많지 않다. 그래서 남자도 눈물을 흘린다. 표정을 구기고 입술을 깨물며 때론 목 놓아 운다. 남자의 눈에 맺힌 눈물에 대한 한 여자와 한 남자의 단상.::원빈,엘르,엣진,elle.co.kr:: | ::원빈,엘르,엣진,elle.co.kr::

쿨하지 마, 남자답지 마내 생애 최초의 기억은 뜻밖에도 아빠가 우는 장면이다. 내가 태어나던 순간의 감격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아빠를 기억하는 것이라면 나의 비상한 기억력에 놀라고 말 텐데, 아빠가 길을 잃어버린 나와 경찰서에서 힘들게 조우하면서 터져나온 눈물이어서 어린 나이에 했을 나의 마음고생을 상상하며 아빠를 놀리고 싶어진다. 당시 지금의 내 나이와 비슷했을 아빠는 그날 따라 친척 모임에 나를 데리고 갔다. 과자도 사주고 무릎에 앉혀 친척 어른들께 재롱을 부려 용돈을 타게 하고 낯선 동네를 구경시켜 주었더라면 좋았을 텐데(어쩌면 그 모든 일을 했고, 그것이 너무 빨리 끝난 것인지도 모르지만) 아빠는 친척 어른들과 하는 색색의 고풍스런 카드 놀이에 빠져 그만 과자 값을 몇 푼 쥐어주고 어린 나를 방치하고 말았다. 어린 나이에도 나는 돈이라면 써야 하는 것이고, 과자는 가게에서 사야 하는 것이며, 길이라면 걸어가야 하는 것이고 문이라면 열어봐야 하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문을 열었고 좁은 골목으로 이어진 길로 걸어나갔고, 가게에서 과자를 샀고, 먹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한 번 간 길은 되돌리기 어렵다는 걸 실감하려 했는지 길을 잃었다. 길을 잃은 네 살배기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길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헤매면서 발악하듯 눈물을 흘리는 것뿐이기에 나도 그렇게 했고, 그런 나를 누군가 경찰서에 데려다줬다. 아빠 말로는 잠깐 게임 한판하고 돌아보니 내가 없어졌다고 하지만 아빠가 나를 잃어버렸다는 걸 깨닫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렸는지는 알 수 없다. 지금 내 나이와 비슷한 아빠라면 아무리 딸자식을 가진 아빠였다고 해도 마음을 홀릴 만한 놀이 앞에서는 그저 한 명의 사내가 되는 건 당연한 일 아닌가 싶다. 아마도 내가 헤매고 다녔을 여러 골목길은 고만고만해서 서로 분간이 안 되는 그 길을 나보다 더 많이 헤매고 다녔을 아빠는 경찰의 연락을 받고 미아가 될 뻔한 나를 만나서는 눈물 범벅이 돼 꾀죄죄하고 시커먼 얼굴로 엉엉 울음을 터뜨렸다. 경찰서에서 겁에 질려 울고 있던 나는 아빠를 보자 안도의 눈물을 터뜨렸을 것이고 아빠는 멀쩡한 자식을 고아로 만들 뻔했다는 자책과 고아로 만들지 않아 다행이라는 안도가 뒤섞인 울음을 터뜨렸을 것이다. 나는 종종 아빠한테 그 얘기를 하며 아무리 화투가 재밌어도 그렇지 딸자식을 잃어버린 줄도 모르냐고 타박했고, 그럴 때마다 아빠는 돈만 생기면 뭘 사러 나가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라고 잔소리했다. 그 사이좋은 타박과 잔소리가 가능한 것은 순전히 눈물로 뒤엉킨 순간을 공유하고 있어서라고 생각한다. 만약 아빠와 울음을 섞지 않았다면 그 날의 기억은 길을 잃은 두려움으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아빠의 울음 덕분에 다 큰 어른이 엉엉 울 만큼 내가 귀한 존재라는 걸 알았다. 아빠가 나 때문에 크게 울어준 것이 지금까지도 고맙다. 눈물로 인한 최초의 공감 때문인지 나는 남자들이 쏟아내는 눈물이 아주 자연스럽다. 오히려 어떤 일이 있어도 울지 않는다고 자부하는 남자가 있다면 그 사람은 마음에 이는 다양한 감정의 결을 이해할 능력이 결여된 게 아닌가 하고 의심한다. 나는 드라마 에서 손예진이 열리지 않는 피클 병을 내던지며 “이런 거 하나 내 맘대로 안 돼. 나보고 어쩌라고. 만날 나만 이래.”라고 소리칠 때 가슴이 먹먹해지면서 알지 못하는 사이 눈가가 젖어드는 남자가 좋다. 영화 에서 용광로에 빠지기 직전 손을 꼭 잡는 장난감들의 모습을 보고 가슴 한쪽이 뭉클해지며 코끝이 찡해지는 남자가 좋다. 줌파 라히리의 에서 헤마가 죽은 코쉭을 떠올리며 “우리는 조심스러웠고, 너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갔어.”라고 말할 때, 책을 읽어가는 동안 차곡차곡 쌓였던 울음을 터뜨리는 남자가 좋다. 그때의 눈물은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흘리는 눈물이다. 자기가 언제 우는지, 어떤 상황에서 울 만큼 슬퍼지는지, 먹먹해지는지, 애틋해지는지, 무엇을 지키기 위해 눈물을 흘리는지 아는 사람이라야, 남들이 언제 우는지 알 수 있다. 그런 사람이라야 어떤 상황이 누군가에는 울 만큼 슬픈 일이 되는지 알 수 있고 먹먹해진 가슴이 어떻게 눈물로 번져드는지 알 수 있으며 사람들은 때로 무엇을 지키기 위해서 홀로 어두운 밤 울음을 터뜨리는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니 사람답게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되도록 쿨하지 말아야 하고 남자답지 말아야 한다. 울고 싶을 때는 참지 말고 울어야 한다. 쿨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울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거나 남자다워야 한다고 생각해서 울지 않으려고 하는 남자는 단순히 울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할 줄 모르는 사람이기 쉽다. 자신을 억압하고 제어하는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도 억압하고 제어하고 싶어지는 법이다. 도대체 인간은 이기적이고 또 이기적이어서 자기가 할 줄 알면, 자기가 참았다고 생각하면, 다른 사람도 당연히 할 줄 알아야 하고 참을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 버린다. 좀 더 인간다워지려면 자신의 실패를 목격하는 수밖에 없다. 자신이 실패하고 자신이 못하는 것을 많이 가져야 남들이 실패하고 남들이 자기만큼 못하는 걸 이해하게 된다. 다른 사람이 우는 걸 보고 ‘나는 그럴 때 참고 안 우는데, 너는 왜 못 참고 울어? 나는 안 슬픈데, 너는 왜 슬퍼?’라고 생각하는 남자야말로 찌질하다. “네가 우니까 나도 울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 그런 사람만이 다른 사람의 고통과 아픔, 상처와 쓸쓸함, 고독에 공감할 줄 안다. 아직도 남자가 일생 동안 울어야 할 때가 세 번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러니까 태어났을 때와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나라가 망했을 때만 울려고 작정한 사람이 있다면, 가슴으로 우는 게 진심으로 우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에게는 쿨하지 못해 미안한 일이지만 제발 쿨하지 말고 남자답지 말라고 충고하고 싶다. 가슴이 아니라 눈물로 울자. 울 수 있는 사람만이 우는 사람을 위로할 수 있는 법이니까. 글쓴이 편혜영은 삶의 어두운 그림자를 외면하려 드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일상에 존재하는 공포와 불안을 끄집어내 이야기할 줄 아는 작가다. 단편집 와 에 이어 올해 펴낸 첫 장편소설 이 핫하다. 눈물, 삶의 체온만큼 뜨겁다주먹을 휘둘렀다. 날아간 주먹은 정확히 상대 녀석의 콧잔등에 작렬했다. 반작용으로 코피가 터져 나왔고 피를 본 녀석은 금세 눈물을 터뜨렸다. 초등학생의 싸움에서 눈물을 보이는 것은 백기를 흔드는 것과 같다. 패배를 인정하는 꼴이다. 그러나 승리의 감흥은 오래가지 않았다. 마침 싸움이 벌어진 놀이터를 지나가던 녀석의 엄마가 그 광경을 본 것이다. 녀석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온 아주머니의 뚜껍고 모진 손이 내 가슴팍을 향해 날아들었다. 뭐라 꾸짖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억울한 마음이 강했던 건 분명했다. 녀석은 내가 어렵사리 훔친 ‘나이키’ 신발과 만화책을 가로채는 동네 폭군이었다. 또래 아이들의 길목인 문방구를 점령한 채 학용품을 사러온 아이들에게 쫀드기와 바나나 맛 아이스크림을 사오라고 협박하던 파렴치한이었다. 초등학생에게 누군가와의 싸움은 좁게는 반에서, 넓게는 전교에서 자신의 서열을 확고히 하는 중대한 이벤트자 자존심을 건 투쟁이다. 싸움이 있기 전 일주일 내내 콩닥거리는 마음으로 ‘싸운다’와 ‘안 싸운다’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던 것도 그런 까닭에서였다. 그렇게 어려운 결정 끝에 일을 저질렀고 싸움에서 이겼지만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그날 밤 일을 마치고 피곤한 얼굴로 귀가하신 엄마는 불도 켜지 않은 채 반 지하방에서 훌쩍이던 나를 발견했다. 무슨 일이 있었냐며, 왜 우냐고 묻는 엄마의 질문에 나는 대답없이 서럽게 눈물만 흘렸다. 엉엉 우는 나를 위로하고 달래는 엄마가 반가워서가 아니었다. 아까 놀이터에서 내 편이 돼 녀석의 엄마와 머리끄덩이를 부여잡고 삿대질하고 같이 싸워주지 않았던 엄마의 부재에 대한 서러움에서였다.90년대 중반, 대학을 다니던 나는 과 생활에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학교란 공간은 쇼펜하우어 입문서 한 권을 옆에 달랑 끼고 등교해 당구와 술에 절어 하교하는 내겐 일종의 놀이터였다. 술자리에서 누군가 학생운동이 어떻고 일장 연설을 하기 시작하면 그를 향해 독설과 주먹부터 날렸다. 그렇게 가슴에 돋아난 삐뚤어진 칼날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던 날들이 이어졌다. 그 날도 그랬다. 다른 날들과 다를 바 없이 술에 취한 나는 여자친구와 비디오방으로 향했다. 비디오방은 막 사귀기 시작한 연애 초보들이 끈적끈적한 밀어와 스킨십을 나눌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었다. 눈에 들어오는대로 진열대에서 비디오 하나를 골랐다. 영화 내용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내가 집은 영화의 주연은 니콜라스 케이지였고 감독은 마이크 피기스란 사람이었다. 감독의 전작 을 봤던 기억이 떠올랐다. 감독 특유의 시니컬한 시선이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별다른 기대와 망설임 없이 비디오방에서 여자친구와 함께 를 봤다. 영화가 시작되고 얼마가 지났을까. 가슴 깊숙한 곳에서 한 움큼의 울컥임이 치올랐고 목젖이 메었다.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여자친구 앞에서 울지 않으려 꾸욱 참았다. 참고 또 참았다. 마침내 영화가 끝났다고 안도하는 순간 니콜라스 케이지가 연기한 주인공이 죽기 전 환하게 웃던 모습이 플래시백으로 다시 보여지고 화면이 정지됐다. 그 순간이었다. 참고 참았던 눈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한 번 터진 눈물은 멈출 줄 모른 채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휴지를 건네는 여자친구 얼굴에는 당혹스러움이 어려 있었다. 고개를 들고 밖으로 나갈 수 없을 만큼 두 눈이 퉁퉁 부어 올랐다. 급기야 여자친구는 을 빌려왔고 두 시간이 지난 뒤에야 그곳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나오는 길에 그녀는 아까 왜 그렇게 울었는지 묻지 않았다. 아마 물어봤어도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조차 북받쳐 울었던 이유를 알지 못했으니까. 얼마 뒤 난 군 입대를 했고 비디오방에서 웅크려 울던 남자의 무너진 어깨를 지켜보던 여자친구는 지금 내 아내가 됐다. 흔히 남자는 가슴으로 운다고 한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남자는 남몰래 숨죽여 흐느낀 뒤에 자리에서 일어나 눈가의 눈물을 털어냄과 동시에 그 기억까지 지워낸다. 남자는 우는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들켜서는 안 된다. 그 모습이 초라하거나 속된 말로 ‘가오’가 상해서가 아니다. 운다는 행위는 참회의 일기를 쓰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눈물을 쏟아내고 나면 이유야 어쨌든 내 자신이 이렇게까지 힘들었다는 것을 온몸으로 깨닫게 됐다. 그리고 항상 무언가 새로운 결심을 하고 몸을 움직였다. 눈물의 대가로 가파른 삶의 질곡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뚫고 갈 수 있는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영상원을 졸업하고 변변한 일자리 없이 떠돌던 시절에 차에 치어 길가에 죽어 있는 개를 본 적 있다. 거리의 차들은 당장이라도 개의 주검을 짓이길 것처럼 내달리고 있었지만 그곳의 누구 하나도 치울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근처 포장마차로 가 주인에게 휴지를 빌려 달라고 했다. 돈을 내고 가져가란 말이 돌아왔다. 그런 주인을 애써 무시하고 휴지를 낚아챘다. 그 휴지를 돌돌 말아 거리에 방치된 싸늘한 주검을 들어올려 인도의 쓰레기 더미로 옮겼다. 피 냄새가 훅하고 풍겨왔고 그 앞에서 한참을 울었던 것 같다. 내 안의 모든 눈물을 다 쏟아낸 뒤 포장마차로 돌아가 욕설을 날리며 주인에게 돈을 던졌다. 그리고 포장마차를 반쯤 부셔놨다. 왜 그랬냐고?나는 울어본 놈이니까. 글쓴이 이정범은 영화 에서 설경구와 조한선을 울렸고 영화 에서는 원빈을 눈물짓게 했다. 거칠고 강한 남자 이야기를 잘 다루는 감독의 차기작 역시 선 굵은 남성 영화라고. 남자의 눈물이 얼마나 아름답고 힘있는 것인지를 보여준 영화 의 한 장면. *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10월호를 참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