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렴한 취향이라 욕해도 어쩔 수 없다 | 엘르코리아 (ELLE KOREA)

케이블 프로그램의 선정성에 혀를 차면서도 왠지 채널 고정. 패널들의 저속한 입담에 속이 후련하다면, 당신은 이미‘Guilty Pleasure’의 세계로 들어온 것. 저렴한 취향이라 욕해도 어쩔 수 없다.::김양수,김균,오유숙,위근우,김나랑,장군,이경아,차우진,김도훈,신예희,케이블 프로그램ㅡ엘르걸,엘르,엣진,elle.co.kr:: | ::김양수,김균,오유숙,위근우,김나랑

복불복쇼 단순한 것은 아름답다내가 처음 이 단순무식한 오락 프로그램에 애정을 갖게 된 것은 1년 전 어느 새벽이었다. 뭔가 먹기 힘들고 보기 괴로운 것을 서로 먹여가며 낄낄대는 가학적인 프로그램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세상에서 가장 악취가 심한 음식으로 알려진 스트뢰밍(청어) 통조림을 먹는 편을 보면서 나는 그야말로 넋이 나가버렸다. 스튜디오 촬영을 포기하고 건물 옥상에서 촬영을 감행할 만큼 엄청난 악취의 음식을 먹는 개그맨 이병진의 모습은 그래, 차라리 아름다웠다고 해야겠다. 그 순간만큼은 프로그램의 천박함도, 단순무식함도, ‘먹는 것 갖고 장난치지 말라’는 부모님의 훈계도, 다 필요 없었다. 그야말로 시선 고정. 그래, 어차피 인간은 본디 점점 더 자극적인 것을 원하는 단순한 존재가 아니던가. 카메라 앞에서 거짓 눈물을 흘리고, 싸구려 고백을 하며, 경험하지도 않은 일을 꾸며내고, 엉덩이를 들이밀며 흔들어대는 수많은 싸구려 프로그램에 비하면, 차라리 ‘그래, 우리가 보여줄 수 있는 건 이것밖에 없다. 그러니 대신 끝까지 보여주겠다’는 ‘복불복쇼’의 정공법은 충분히 아름답고 박수 받을 만했다. 사람들은 때로 오해를 한다. 자신이 보는 프로그램이 다큐멘터리도, 뉴스도 아닌 그저 즐겁게 웃으면 그만인 오락 프로그램임에도 뭔가 감동을 받고 교훈을 얻길 바라는 오해. 오락 프로그램의 순수성은 그 지점에서부터 변질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복불복쇼’는 시쳇말로 쿨하고 명쾌하다. 단지 그것만으로도 큰 점수를 주고 싶다. 바로 그런 명쾌함이 ‘복불복쇼’라는 수준 낮다고 평가되는 프로그램을 시즌 2까지 이어올 수 있게 했던 힘이 아닐까. (개인적으로 ‘복불복쇼’가 벌칙 선정을 위한 의미 없는 게임을 싹 덜어내고, 아예 먹는 것에만 오롯이 집중하면 더 재미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김양수·만화가, 칼럼니스트패션 오브 크라이 패션 오브 개그‘패션 오브 크라이’를 근사한 패션 정보 얻어보겠다고 보기 시작한 건 절대로 아니었다. 마침 쉬는 날이었고, 또 마침 그 프로그램이 ‘오방’인지 ‘육방’째 하는 걸 틀게 되었고, 또 좋아하던 개그우먼 안영미가 패션 프로그램 MC로 나오는 의아함에 보던 게 그 시작이었다. 명품 숍 갈 때 매장 직원에게 꿀리지 않는 의상을 비롯해 동창회에 갈 때, 직장 첫 출근할 때 등 말이 좋아 TPO에 맞는 옷차림이지 그 면면이 저렴한 구성을 갖춘다. 처음에는 제작비 모자란 케이블 방송국이 심사숙고해 마련한, 어렵게 협찬받아 찍는 프로그램이라는 악플을 달려 했다. 내가 예쁜 옷 못 입는 한 많은 몸매라 그랬다는 반성은 이 자리에서 필요치 않으니 그건 혼자 조용히 하도록 하고, 실은 요즘 꽤 열광하면서 보고 있다는 고백을 하고자 한다. 다만 패션 정보 프로그램이 아니라 개그 프로그램으로 말이다. 비꼬는 말이 아니다. 팀장의 포스로 첫 출근한 신입의 복장이나 동창회에 가겠다며 두른 엄마표 꽃무늬 스카프, 특히 친구 결혼식의 은갈치 수트를 워스트 복장으로 소개하는 그 디테일. 누구든 저지를 수 있는, 하지만 저지르는 순간 얼굴을 붉혔을 상황을 패션이란 이름의 개그로 승화하는 것이다. ‘패션 오브 크라이’의 멤버는 장신영(이제 홍수현으로 바뀌지만), 신봉선, 안영미, 김빈우다. 여기에선 장신영의 예쁜 척 퍼레이드조차 안영미의 저질 워킹 혹은 핑크 미니드레스에 클러치로 뱃살을 가리고 방송하던 신봉선 못지않게 가벼워 보인다. 화룡점정은 스스로 옷을 무척 잘 입는다고 굳게 믿고 있는 김빈우의 근거 없는 자신감. 이들의 조화는 분장실 강 선생님으로 디테일 개그의 정점을 찍은 개그우먼 안영미를 가장 안 웃긴 캐릭터로 만들 정도다. 그렇게 ‘패션 오브 크라이’는 진정한 패션 개그 프로그램으로 나를 열광케 한다. 김군·필름 마케터 화성인 바이러스 의외로 안전한 바이러스대체 왜 프로그램 제목이 ‘화성인 바이러스’일까? ‘뭐 저런 사람이 다 있나’ 싶은 인물들이 출연하니 ‘화성인’은 얼추 공감 간다. 그런데 그 뒤에 붙은 ‘바이러스’가 기이하다. 화성인에게 전염되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경고인가? 그러나 흉내조차 힘든 화성인이 태반이니 시청자가 그들에게 전염될 것 같지는 않다. 무엇보다 세 명의 MC(김성주, 김구라, 이경규)가 백신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지 않은가. 케이블 프로그램치고 꽤 높은 시청률을 얻고 있는 ‘화성인 바이러스’는 화성인이 주인공이 아니라, 화성인 앞에서 당황하며 화내고 어이없어 하는 사회자가 주인공인 프로그램이다. 사회적으로 가장 보수적이라는 40~50대 기혼 남성. 그중에서도 특히 김구라와 이경규는 막말과 호통의 상징적 존재다. 이들은 출연자를 배려하기보단 그들의 기이함을 질책하고, 세상이 어찌 되는 것인가 진심으로 걱정하는 표정을 내비침으로써, 화성인에게 노출된 시청자를 보호하는 완충제로 기능한다. 카메라는 또박또박 자신의 가치관을 설명하는 화성인보다, 그런 화성인을 향해 거짓 없는 표정을 지어 보이는 MC들을 더 정성스럽게 촬영한다. 그래서일까? 왜 이런 걸 먹느냐며 화내는 김구라나, 막상 먹어보니 끌린다며 지칠 때까지 매운 라면을 삼키던 이경규에게서 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한다. 요즘 아이들은 이해 안 된다며 혀를 차면서도 그들을 이해해보려 노력하는 아버지. 이 남자들은 세상에서 손가락질 받는 화성인을 이해하기 위해 끝없이 질문한다. 누구보다 보수적일 것 같은 이들이 선입견을 배제하고 타인의 취향에 관심을 기울이려 하는데, 우리라고 못할 게 무엇인가. ‘타인의 취향을 존중하고 다양성을 인정하자’란 구호에 고개는 끄덕이지만 너무 추상적이어서 실천 방안은 떠오르지 않는다. ‘화성인 바이러스’는 이해 안 되는 취향을 지닌 타인과의 소통에 대해 한 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이해하는 척 거짓된 표정을 짓지 않고서도, 무조건 비난하거나 동정하지 않으면서도 그들과 대화하는 방법. 타인에 대한 호기심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어떠한 화성인을 만나더라도 대화가 불가능할 것 같지는 않다. 오유숙·칼럼니스트 켠 김에 왕까지 누가 이걸 잉여력이라 말하는가TV 관련 비평 혹은 기사를 쓰는 일을 하며 가장 화가 날 때는 지인에게 이런 말을 들을 때다. “그냥 TV 보는 일인데 뭐가 힘들다는 거야?” 아하, 그리도 쉬워 보이셨군요.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하룻밤 안에 KBS ‘결혼해주세요’를 전편 본 뒤, 캔커피 세 개 먹이고 아침까지 리뷰 마감을 시키고 싶은 심정이다. 아마 온게임넷의 ‘켠 김에 왕까지’의 허준 역시 누군가 “그냥 게임하는 일인데 뭐가 힘든 거야?”라고 말한다면 비슷한 감정을 느낄 것이다. 단순히 포맷만을 봤을 때, ‘켠 김에 왕까지’는 아마 최근 케이블 프로그램 중 가장 단순무식한 프로그램으로 꼽을 만하다. 제목 그대로 이 프로그램은 어떤 게임을 골라 게임을 스타트한 뒤, 끝판을 클리어할 때까지 게임을 멈추지 않는다. ‘슈퍼스타 K’나 ‘화성인 바이러스’, ‘순위 정하는 여자’처럼 공중파에 근접한 스타일로 업그레이드 중인 케이블의 추세를 봤을 때, 이 쇼는 시대에 역행하는 듯 보인다. 프로그램의 패턴 역시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게임을 시작한다. 처음엔 재밌어 한다. 생각보다 게임이 잘 풀리면 의기양양해한다. 제법 오래 한 것 같아 시계를 보면 시간은 예상 클리어 시간에 근접해 있고, 게임은 아직 반도 클리어하지 못한 상태다. 한숨을 쉬고 다시 한다. 하다가 잔다. 자다가 한다. 하다가 잔다. 하지만 이렇게 게임을 노가다 수준으로 하는 바로 이 단순무식함이 극단에 이를 때 이 프로그램의 미덕을 느낄 수 있다. 허준의 개기름으로 번들거리는 피부와 충혈된 눈을 보며 나 역시 어느 순간 그 육체적 고난에 감정 이입하게 된다. 그리고 이때부터 ‘켠 김에 왕까지’는 그 어느 스포츠 중계보다 살 떨리는 박진감을 획득한다. 가령 얼음 마리오가 불구덩이 위를 달리다 아이스 기능이 사라질 때 혹은 소닉이 물에 빠질 때, 허준도 울고 나도 운다. “아악! 제발 좀 넘어가란 말이야!” 어쩌면 밤새 키보드를 두들기며 글 쓰는 일에 지성보다 중요한 건 체력이란 걸 뼈저리게 느낀 스스로의 경험을 자극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하여, 그 단순함에도 ‘켠 김에 왕까지’에 대한 애정은 쉽게 식을 것 같지 않다. 아, 리뷰를 위해 1회부터 27회까지 몰아서 볼 일만 없다면. 위근우· 기자UV 신드롬 정색하는 페이크 다큐유세윤은 사실 HOT와 핑클의 멤버였고, ‘UV’는 태양이 견제하는 강력한 가요대상 후보다. ‘UV 신드롬’은 이 말도 안 되는 ‘뻥’을 정색하고 친다. 일명 ‘페이크 다큐’로 UV가 월스트리트 저널 선정 영향력 8위의 톱 그룹이라는 전제 아래(음반 시장의 불황 때문에 홈쇼핑에서 음반을 팔지라도, 김수미의 간장게장보다 많이 팔리는 파급력의 그룹) 그들의 일상사를 보여준다. UV는 사회적 책임감이 강해 아이돌 대기실을 ‘부킹’하는 웨이터 고용에 관한 ‘아이돌 자유연애법’을 국회에 통과시키려 애쓰며, 황복순 할머니를 코디로 채용해 실버 세대의 노동력 활용에 대안을 제시한다. UV와 인터뷰했던 기억을 더듬으니 유세윤이 말했다. “아이돌아, 난 하기 싫으면 안 한다 부럽지?” 그렇게 하고 싶은 것만 한다. 가요 프로그램 출연 대신 게릴라 콘서트를 하고 싶다던 그는 양천고등학교 점심시간 방송에 출연했고, 톱 뮤지션을 대놓고 패러디한다. UV가 인디밴드의 곡을 베꼈고, 심지어 그 인디밴드의 공연 영상이 나돌아도 표절을 부인한다는 것, UV가 청소년들이 보는 무대에서 음란한 침대 퍼포먼스를 하는 바람에 출연 정지 중이라는 것. 그들의 거짓말은 특정 가수를 연상시킨다. 이쯤에서 우린 유세윤이 천재냐 아니냐를 놓고 이야기를 나눈다. 정작 그는 이런 접근을 비웃을 거다. 그는 개코원숭이 흉내를 내듯 그저 놀고 있을 뿐이니까. 그 노는 물이 솔직해서(하고 싶은 대로 하니까) 후련하다는 거다. 알다시피 우린 스타들의 허세 다큐멘터리에 지치지 않았나. 이효리는 본인이 광고하는 음료수를 습관처럼 마시고, 티아라는 잠옷 차림에도 아이라인을 한다. 이런 세태에 ‘UV신드롬’의 뮤지는 무척 개탄할 거다. “뉴욕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에요” 뮤지? 충남 공주 출신이지만 필리핀 어학연수 다녀왔다니까. 김나랑·피처 에디터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 믿고 보는 엠넷표 연애오락엠넷은 내게 음악 전문 채널이라기보단 연애오락(연예 말고 ‘연애’)의 명가로 인식돼 있다. 케이블 연애오락의 효시인 ‘아찔한 소개팅’부터, 장근석이 제법 훌륭한 MC임을 각인시켰던 ‘추적, X-Boyfriend’, 다시 보고 싶은 케이블 오락의 영순위 ‘총각 연애하다’까지 그간 히죽거렸던 프로그램은 놀랍게도 대부분 엠넷표였다. 난 케이블의 연애오락 프로그램을 좋아한다. 유명 연예인들의 정치적인 계획과 대본이 뻔히 보이는 공중파의 것보다는 비교적 리얼한 일반인의 연애 세태를 관찰하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이다. 최근 케이블은 너무 점잖아져서 여간 실망이 아니지만 요즘엔 엠넷의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이하 그당반)를 즐기고 있다. SBS의 장수 프로그램이었던 ‘진실게임’의 연애 버전이라 할 수 있는 ‘그당반’은 좋은 남자를 만나고 싶다는 여성 출연자 두 명이 자신이 좋은 남자라고 주장하는 열두 명의 남성 출연자들 중에서 나쁜 남자를 색출해내고 좋은 남자를 선택하는 연애오락물이다. 물론 다른 목적 없이 좋은 만남을 원해서 출연했다는 사실만으로 좋은 남자로 단정 짓기엔 무리가 있지만, 뜨악할 정도의 나쁜 남자들을 배치해 간극을 넓혀놓으니 일차적인 구분에 납득이 간다. 프로그램의 끝에선 여성 출연자가 본인의 선택에 따라(나쁜 남자를 고르면) 자기 엉덩방아를 찧는 반전이 있어, 나쁜 남자를 선택했을 경우의 현실을 쇼와 동일 선상에 놓는 의미도 내포한다. ‘그당반’은 MC의 배치도 재미있다. 한눈에도 남자 볼 줄 알 것 같은 현명한 큰언니 김원희와 ‘부드러운 남자는 과연 좋은 남자일까’라는 의문이 붙는 알렉스의 조합은 꽤 적절해 보인다. 재미있게도 동명의 영화 에서도 진정한 사랑을 꿈꾸는 지니퍼 굿윈의 조언자, 저스틴 롱의 극 중 이름도 ‘알렉스’였다. 장군·칼럼니스트, 백수감독 슈퍼스타 K2 보통 사람을 마주하는 설렘대국민 오디션 프로젝트 ‘슈퍼스타 K’가 시즌 2로 돌아왔다. 우승 상금 2억! 135만 명의 지원자 등 시즌 1을 능가하는 어마어마한 스케일로 시작 전부터 엄청난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뚜껑 열린 ‘슈퍼스타 K2’는 아쉬움이 있다. 시즌 1의 성공에 대한 부담 때문이었을까, 시즌 2는 시작부터 기 센 출연자들로 가십을 만들기 시작했다. 아이돌 전 여친, 전 걸그룹 멤버, 유명 피처링 가수 등 기자들이 기사 쓰기 좋은 출연자들이 대거 등장했지만, 그 실력이나 사연은 기대 이하다. 심사위원도 실망스럽긴 마찬가지. 마치 독설 의무감에 시달리는 듯 자극적인 심사평을 앞 다투어 쏟아낸다. ‘슈퍼스타 K’에 기대했던 건 사이먼 코엘의 독설이나, 존 박 같은 유명 인사의 출연이 아니었다. 시각 장애인 김국환의 노래에 눈물 흘리던 이효리나 노래할 때 한없이 행복해 보였던 조문근의 얼굴이 아직까지 잊히지 않는 건, 그것이 바로 ‘슈퍼스타 K’만이 그릴 수 있는 그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슈퍼스타 K2’에 끌리는 이유는 분명히 있다. 매회 마주하게 되는 보통 사람들, 그들의 설렘과 행복함이 여전히 전해진다는 것. 이제 3회 방송에 불과하기에 아직까지 감동을 주거나 눈에 띄는 출연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슈퍼스타 K2’에도 반드시 숨은 진주는 있을 것이다. 그 보물을 찾아나서는 여정에 빠지고 싶지 않다. 이것이 바로 내가 ‘슈퍼스타 K’를 놓칠 수 없는 이유다. 꿈만 있다면 누구든 참여할 수 있는 무대, 실력이 외모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오디션 장소! 그렇기에 시즌 2 역시 반드시 성공해야 하고, ‘한국의 아메리칸 아이돌’로 오래도록 명맥을 이어가길 바란다. 이번에는 서인국을 넘는 대형 스타, 한국의 켈리 클락슨이 탄생할지도 모를 일이다. 이경아·방송작가순위 정하는 여자 쇼 같은 순정일지라도순위란 단순하다. 1위부터 10위까지의 결과가 정해지는 순간 무소불위의 절대 권력이 행사된다. 그것이 어떤 조건이든, 1위를 차지한 이름과 10위를 차지한 이름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거리가 생긴다. 실제로 1000만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것이든, 열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것이든 순위는 그것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오로지 1위와 10위 사이의 거리가 존재할 뿐이다. 가혹하고 냉정하다. 인정사정없고 가차 없다. 케이블의 ‘막장’을 언급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QTV의 ‘순위 정하는 여자’(순정녀)는 바로 그 순위를 출연자들이 정하는 프로그램이다. 기준은 매주 달라진다. 주로 ‘굳이 순위까지 정하지 않아도 되지만 왠지 궁금한 것들’이다. 요컨대 ‘연예인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출연자’라든가 ‘남자 밝힐 것 같은 출연자’ 따위다. 그렇다. 이 순위의 대상은 함께 출연한 사람들이고 순위를 매기는 것 또한 함께 출연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 프로그램은 관점에 따라 ‘솔직당당’과 ‘막말행패’를 넘나든다. 개인적인 입장은 이 프로그램을 좋아하는 쪽이다. 이런 프로그램을 좋아한다고 말하니 왠지 도덕성을 의심받을 것 같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리얼리티 쇼에 캐릭터가 필수로 자리 잡은 건 하루 이틀 일이 아니기에, 여기에 나오는 여자들이 막 나가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즐기게 됐다. 그러니까 내게 이건 처음부터 끝까지 쇼, 특히 ‘길티 플레저’ 같은 쾌감을 주는 쇼다. 특히 ‘김바닥’이란 별명으로 불리는 김새롬과 출연자 중 나이와 경력이 가장 많은 현영을 좋아한다. 늘 순위권에 오르며 뭇매를 맞는 김새롬과 나이 들어 비로소 자신에게 솔직해진 큰누나 같은 현영을 보면서 깔깔거리고 웃는다. 그게 딱히 이상하지는 않다. 오히려 스스로가 아니라, 타인에게 착하게만 살라고 강요하는 게 더 이상하지 않은가. 차우진·칼럼니스트토크 앤 시티 토크 앤 싼티한 달에 한 번 나는 쇼핑 도우미가 된다. 성형외과의인 동생은 한 달에 한 번 서울로 기어올라와 편집매장들을 순례한 뒤 가죽이 지나치게 보들보들해서 서너 달 신으면 구멍이 뚫리는 마르지엘라 스니커즈나 80% 세일가로 아웃렛에 넘어온 YSL 트렌치코트 따위를 구입한 뒤 남쪽으로 돌아간다. 의사 동생과 주말 편집매장 쇼핑이라니, 럭셔리하시다고? 그럴 리가. 지방 출신 30대 독신남 형제의 쇼핑은 보통 이런 대화로 이어진다. 동생이 말한다. “이건 뭐기에 양복에 테니스 라켓을 자수로 박아놨노?” 나는 답한다. “톰 브라운 신상인데 테니스 코트의 신사가 테마라더라. 요런 거를 누가 사입는다꼬….” 동생이 뭐라고 형언할 수 없는 코트를 입어본다. 나는 말한다. “의 네오다”. 동생이 몸을 젖히고 팔을 휘젖는다. 그걸 지켜보는 점원의 표정이 아리까리하다. 이토록 구린 쇼핑 애티튜드를 지닌 나는 패션 케이블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기분이 묘해졌다. 유럽 디자이너들의 너붓너붓한 거적을 걸친 패셔니스타들이 신상을 논하고 있는 걸 보노라면, 어제 먹은 청국장과 그제 먹은 알리오올리오가 대장에서 뒤섞여 죄책감의 복통이라도 일으킬 지경에 종종 이른다. 그러던 어느 날 ‘토크 앤 시티’를 목도했다. 김효진과 하유미, 우종완이 청담동의 한 수제 백 숍으로 들어갔다. 갤러리아백화점에 쌀 사러 왔다가 샤넬 백 사 들고 나올 법한 강남 사모님풍으로 빼입은 하유미가 백에 대해서 열심히 설명한다. “이거는 변형이 되니까 활용도가 높네.” 갤러리아백화점에 사모님 옷 빌려 입고 정말 쌀만 사러 온 식모풍의 김효진이 백을 차곡차곡 접어서 겨드랑이 사이에 끼더니 말한다. “옴머머머머머! 이렇게 하니까 일수 가방이 되네?” 나는 그 대목에서 랑방 코트를 입고 팔을 휘젖는 동생을 떠올리며 데굴데굴 방바닥을 구르고야 말았다. 그들은 청담동의 우아함을 동대문식 저렴함으로 승화하는 동시에 하이패션을 하이유머로 변태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얼마 전 하유미가 하차하고 새 MC 이승연이 들어왔다. 아직 실망하긴 이르다. 김효진의 빛나는 저렴함을 애써 고상한 척 막아 세우려는 그녀의 눈빛은, 분명히 조금씩 흔들리고 있다. 김도훈· 기자러브스위치 나 대신 잘근잘근 씹어주세요아직 이 재미난 걸 보지 못하신 분들을 위한 간략한 설명. 서른 명의 기세등등하고 의기양양한 싱글 여성들이 안광을 번뜩이며 기다리는 스튜디오에 홀연히 싱글 남성 한 명이 등장. 일단 아무 말 없이 외모만으로 1차 평가를 받은 후 간단히 자기 소개하고 평소 모습을 담은 VCR을 보여주며 다시 2차 평가를 받는다. 방법은 초간단. 얘 아니다 싶으면 버튼을 삐익 눌러버리면 끝. 모 아니면 도, 개걸윷 같은 것은 없다. ‘아쉬울 것 없어’라는 표정으로 버튼을 누른 여성들에게 진행자 신동엽과 이경규가 묻는다. 아니 왜 버튼을 누르셨어요? “엉덩이가 바지를 먹었더라고요”, “월세 사는 남자 별로예요” 칼 같은 언니들의 대답에 모두들 박장대소, 싱글남은 대략난감. 하지만 우린 이미 알잖아요. 인연보단 매스컴 타러 온 거라는걸. 독한 말 뱉으며 까르르 웃는 언니들도 마찬가지잖아. 한 마디라도 더 해서 비호감 딱지가 붙어야 화면에 한 번이라도 더 잡힌다는 거 다 알아. 거기 언니, 쇼핑몰은 잘돼가? 이쪽 언니는 연기자 지망생이라며? 그대들은 매스컴에 노출되어 이득을 얻고, 보는 나는 즐거우니 이거야 말로 윈윈. 지난 주말 소개팅에서 만난 그 남자가 떠오른다. 대뜸 내 연봉부터 묻던 싸가지 없는 그 남자. 서른 명의 무서운 언니들이 하이힐 굽으로 자근자근 밟으며 나 대신 복수를 해주는 느낌이다. TV에 나와 밟히는 분께는 미안. 멀쩡하게 생긴 데다 학벌도 직장도 모두 빵빵한 그대는 죄가 없답니다. 하지만 초콜릿 케이크는 달수록 맛있고 새우는 튀겨야 제맛이며 인신공격은 해야 맛이잖아요. What a guilty pleasure! 어릴 적부터 받아온 교육 혹은 세뇌의 효과일까? 조신하고 얌전하게, 무엇보다 욕망을 대놓고 드러내면 못 써! 여자잖니! 그래요, 나 대한민국 여자예요. 그러니 소개팅에서 아무 말 못했지. ‘싸가지는 없지만 좋은 점이 있을 거야’라며 꾹꾹 참았지. 아마 애프터가 들어오면 난 또다시 입 가리고 호호 웃으며 재미없는 얘기도 끝까지 다 들어주겠지. 그리고 기운 쪼옥 빠진 채 비틀비틀 집으로 돌아와 맥주캔 손에 들고 이 프로그램을 보며 웃겠지. 저거야 저거! 바로 저 말을 아까 내가 해줬어야 했어! 신예희·카투니스트 *자세한 내용은 엘르걸 본지 9월호를 참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