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인 바이러스 의외로 안전한 바이러스 대체 왜 프로그램 제목이 ‘화성인 바이러스’일까? ‘뭐 저런 사람이 다 있나’ 싶은 인물들이 출연하니 ‘화성인’은 얼추 공감 간다. 그런데 그 뒤에 붙은 ‘바이러스’가 기이하다. 화성인에게 전염되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경고인가? 그러나 흉내조차 힘든 화성인이 태반이니 시청자가 그들에게 전염될 것 같지는 않다. 무엇보다 세 명의 MC(김성주, 김구라, 이경규)가 백신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지 않은가. 케이블 프로그램치고 꽤 높은 시청률을 얻고 있는 ‘화성인 바이러스’는 화성인이 주인공이 아니라, 화성인 앞에서 당황하며 화내고 어이없어 하는 사회자가 주인공인 프로그램이다. 사회적으로 가장 보수적이라는 40~50대 기혼 남성. 그중에서도 특히 김구라와 이경규는 막말과 호통의 상징적 존재다. 이들은 출연자를 배려하기보단 그들의 기이함을 질책하고, 세상이 어찌 되는 것인가 진심으로 걱정하는 표정을 내비침으로써, 화성인에게 노출된 시청자를 보호하는 완충제로 기능한다. 카메라는 또박또박 자신의 가치관을 설명하는 화성인보다, 그런 화성인을 향해 거짓 없는 표정을 지어 보이는 MC들을 더 정성스럽게 촬영한다. 그래서일까? 왜 이런 걸 먹느냐며 화내는 김구라나, 막상 먹어보니 끌린다며 지칠 때까지 매운 라면을 삼키던 이경규에게서 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한다. 요즘 아이들은 이해 안 된다며 혀를 차면서도 그들을 이해해보려 노력하는 아버지. 이 남자들은 세상에서 손가락질 받는 화성인을 이해하기 위해 끝없이 질문한다. 누구보다 보수적일 것 같은 이들이 선입견을 배제하고 타인의 취향에 관심을 기울이려 하는데, 우리라고 못할 게 무엇인가. ‘타인의 취향을 존중하고 다양성을 인정하자’란 구호에 고개는 끄덕이지만 너무 추상적이어서 실천 방안은 떠오르지 않는다. ‘화성인 바이러스’는 이해 안 되는 취향을 지닌 타인과의 소통에 대해 한 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이해하는 척 거짓된 표정을 짓지 않고서도, 무조건 비난하거나 동정하지 않으면서도 그들과 대화하는 방법. 타인에 대한 호기심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어떠한 화성인을 만나더라도 대화가 불가능할 것 같지는 않다. 오유숙·칼럼니스트
켠 김에 왕까지 누가 이걸 잉여력이라 말하는가 TV 관련 비평 혹은 기사를 쓰는 일을 하며 가장 화가 날 때는 지인에게 이런 말을 들을 때다. “그냥 TV 보는 일인데 뭐가 힘들다는 거야?” 아하, 그리도 쉬워 보이셨군요.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하룻밤 안에 KBS ‘결혼해주세요’를 전편 본 뒤, 캔커피 세 개 먹이고 아침까지 리뷰 마감을 시키고 싶은 심정이다. 아마 온게임넷의 ‘켠 김에 왕까지’의 허준 역시 누군가 “그냥 게임하는 일인데 뭐가 힘든 거야?”라고 말한다면 비슷한 감정을 느낄 것이다. 단순히 포맷만을 봤을 때, ‘켠 김에 왕까지’는 아마 최근 케이블 프로그램 중 가장 단순무식한 프로그램으로 꼽을 만하다. 제목 그대로 이 프로그램은 어떤 게임을 골라 게임을 스타트한 뒤, 끝판을 클리어할 때까지 게임을 멈추지 않는다. ‘슈퍼스타 K’나 ‘화성인 바이러스’, ‘순위 정하는 여자’처럼 공중파에 근접한 스타일로 업그레이드 중인 케이블의 추세를 봤을 때, 이 쇼는 시대에 역행하는 듯 보인다. 프로그램의 패턴 역시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게임을 시작한다. 처음엔 재밌어 한다. 생각보다 게임이 잘 풀리면 의기양양해한다. 제법 오래 한 것 같아 시계를 보면 시간은 예상 클리어 시간에 근접해 있고, 게임은 아직 반도 클리어하지 못한 상태다. 한숨을 쉬고 다시 한다. 하다가 잔다. 자다가 한다. 하다가 잔다. 하지만 이렇게 게임을 노가다 수준으로 하는 바로 이 단순무식함이 극단에 이를 때 이 프로그램의 미덕을 느낄 수 있다. 허준의 개기름으로 번들거리는 피부와 충혈된 눈을 보며 나 역시 어느 순간 그 육체적 고난에 감정 이입하게 된다. 그리고 이때부터 ‘켠 김에 왕까지’는 그 어느 스포츠 중계보다 살 떨리는 박진감을 획득한다. 가령 얼음 마리오가 불구덩이 위를 달리다 아이스 기능이 사라질 때 혹은 소닉이 물에 빠질 때, 허준도 울고 나도 운다. “아악! 제발 좀 넘어가란 말이야!” 어쩌면 밤새 키보드를 두들기며 글 쓰는 일에 지성보다 중요한 건 체력이란 걸 뼈저리게 느낀 스스로의 경험을 자극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하여, 그 단순함에도 ‘켠 김에 왕까지’에 대한 애정은 쉽게 식을 것 같지 않다. 아, 리뷰를 위해 1회부터 27회까지 몰아서 볼 일만 없다면. 위근우·<10아시아> 기자
UV 신드롬 정색하는 페이크 다큐 유세윤은 사실 HOT와 핑클의 멤버였고, ‘UV’는 태양이 견제하는 강력한 가요대상 후보다. ‘UV 신드롬’은 이 말도 안 되는 ‘뻥’을 정색하고 친다. 일명 ‘페이크 다큐’로 UV가 월스트리트 저널 선정 영향력 8위의 톱 그룹이라는 전제 아래(음반 시장의 불황 때문에 홈쇼핑에서 음반을 팔지라도, 김수미의 간장게장보다 많이 팔리는 파급력의 그룹) 그들의 일상사를 보여준다. UV는 사회적 책임감이 강해 아이돌 대기실을 ‘부킹’하는 웨이터 고용에 관한 ‘아이돌 자유연애법’을 국회에 통과시키려 애쓰며, 황복순 할머니를 코디로 채용해 실버 세대의 노동력 활용에 대안을 제시한다. UV와 인터뷰했던 기억을 더듬으니 유세윤이 말했다. “아이돌아, 난 하기 싫으면 안 한다 부럽지?” 그렇게 하고 싶은 것만 한다. 가요 프로그램 출연 대신 게릴라 콘서트를 하고 싶다던 그는 양천고등학교 점심시간 방송에 출연했고, 톱 뮤지션을 대놓고 패러디한다. UV가 인디밴드의 곡을 베꼈고, 심지어 그 인디밴드의 공연 영상이 나돌아도 표절을 부인한다는 것, UV가 청소년들이 보는 무대에서 음란한 침대 퍼포먼스를 하는 바람에 출연 정지 중이라는 것. 그들의 거짓말은 특정 가수를 연상시킨다. 이쯤에서 우린 유세윤이 천재냐 아니냐를 놓고 이야기를 나눈다. 정작 그는 이런 접근을 비웃을 거다. 그는 개코원숭이 흉내를 내듯 그저 놀고 있을 뿐이니까. 그 노는 물이 솔직해서(하고 싶은 대로 하니까) 후련하다는 거다. 알다시피 우린 스타들의 허세 다큐멘터리에 지치지 않았나. 이효리는 본인이 광고하는 음료수를 습관처럼 마시고, 티아라는 잠옷 차림에도 아이라인을 한다. 이런 세태에 ‘UV신드롬’의 뮤지는 무척 개탄할 거다. “뉴욕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에요” 뮤지? 충남 공주 출신이지만 필리핀 어학연수 다녀왔다니까. 김나랑·피처 에디터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 믿고 보는 엠넷표 연애오락 엠넷은 내게 음악 전문 채널이라기보단 연애오락(연예 말고 ‘연애’)의 명가로 인식돼 있다. 케이블 연애오락의 효시인 ‘아찔한 소개팅’부터, 장근석이 제법 훌륭한 MC임을 각인시켰던 ‘추적, X-Boyfriend’, 다시 보고 싶은 케이블 오락의 영순위 ‘총각 연애하다’까지 그간 히죽거렸던 프로그램은 놀랍게도 대부분 엠넷표였다. 난 케이블의 연애오락 프로그램을 좋아한다. 유명 연예인들의 정치적인 계획과 대본이 뻔히 보이는 공중파의 것보다는 비교적 리얼한 일반인의 연애 세태를 관찰하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이다. 최근 케이블은 너무 점잖아져서 여간 실망이 아니지만 요즘엔 엠넷의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이하 그당반)를 즐기고 있다. SBS의 장수 프로그램이었던 ‘진실게임’의 연애 버전이라 할 수 있는 ‘그당반’은 좋은 남자를 만나고 싶다는 여성 출연자 두 명이 자신이 좋은 남자라고 주장하는 열두 명의 남성 출연자들 중에서 나쁜 남자를 색출해내고 좋은 남자를 선택하는 연애오락물이다. 물론 다른 목적 없이 좋은 만남을 원해서 출연했다는 사실만으로 좋은 남자로 단정 짓기엔 무리가 있지만, 뜨악할 정도의 나쁜 남자들을 배치해 간극을 넓혀놓으니 일차적인 구분에 납득이 간다. 프로그램의 끝에선 여성 출연자가 본인의 선택에 따라(나쁜 남자를 고르면) 자기 엉덩방아를 찧는 반전이 있어, 나쁜 남자를 선택했을 경우의 현실을 쇼와 동일 선상에 놓는 의미도 내포한다. ‘그당반’은 MC의 배치도 재미있다. 한눈에도 남자 볼 줄 알 것 같은 현명한 큰언니 김원희와 ‘부드러운 남자는 과연 좋은 남자일까’라는 의문이 붙는 알렉스의 조합은 꽤 적절해 보인다. 재미있게도 동명의 영화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에서도 진정한 사랑을 꿈꾸는 지니퍼 굿윈의 조언자, 저스틴 롱의 극 중 이름도 ‘알렉스’였다. 장군·칼럼니스트, 백수감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