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곡선에 바치는 찬사 “Very Woman, Just Woman. Woman, That’s all.” 루이 비통 홍보 팀에서 건네준 2010 F/W 컬렉션 자료의 타이틀을 보고 생각에 빠졌다. 우먼. 우먼이라…. ‘여성스럽다’는 표현의 의미를 새삼스레 의심해 본다. ‘보기에 여자의 성질을 가진 데가 있다’는 사전의 말을 곱씹는다. ‘여성스럽다’와 ‘섹시하다’, ‘멋지다’와 ‘쿨하다’의 경계에 대해 고민해본다. 래티시아 카스타(Laetitia Casta)가 문을 열고 엘 맥퍼슨(Elle Macpherson)이 문을 닫은 루이 비통의 2010 F/W 컬렉션. 마크 제이콥스가 이번 시즌에 선보인 룩을 지난 시즌의 그것과 비교해 보면 그 변화는 거의 유턴(U-Turn)과 같았다. 미하엘 엔데의 모모를 연상시키는 엉뚱한 소녀들이 반 년이 지난 후 ‘짠’ 하고 숙녀로 변신해 나타난 것이다. 1950년대의 ‘레이디’들을 연상시키는 포니테일 헤어와 코르셋, 플레어 서클 스커트와 페플럼 재킷. 쇼에는 납작한 가슴의 깡마른 모델 대신 바 라파엘리와 캐롤리나 쿠르코바 등 커비한 몸을 가진 이들이 등장했는데 최근 ‘육덕진’ 몸이 돼버린 코코 로샤(그녀는 지난 S/S 컬렉션 이후 <뉴욕 타임스> 등을 통해 제로 사이즈(Zero Size)가 되길 거부한다며 ‘이제 햄버거가 먹고 싶으면 먹겠다’고 선언했다)가 상대적으로 왜소해 보일 정도였다. 마크가 보여준 우아한 실루엣은 여성들의 여성성, 정확히 말해 그녀들의 몸을 타고 흐르는 곡선에 대한 찬사로 보였다. 가슴은 풍만하게, 허리는 더 잘록하게, 스커트는 풍성하게! 이보다 앞서 열린 밀란의 프라다 쇼에도 라라 스톤과 캐서린 맥닐 등 커비한 몸매의 모델들이 등장했다. 높은 허리선 밑으로 엉덩이를 극도로 강조했고, 굵은 짜임의 니트 소재를 사용해 몸을 커 보이게 했다(심지어 굵은 니트 소재 스타킹까지 등장했다!). 깡마른 모델들의 경우 가슴에 풍성한 러플 장식이 달린 드레스를 입었다. 여성의 몸을 다루는 방식이 전혀 달라졌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건 직선적인 실루엣의 옷을 깡마른 모델들에게 입히는 방식이 지배적이었던 지난 몇 시즌 동안의 쇼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정숙과 도발 사이의 줄타기 조금 더 과거로 돌아가 보자. 지난 2월 15일, 뉴욕에서 마크 제이콥스 쇼가 열렸을 때, 관객들은 깜짝 놀랐다. 박스의 포장을 벗겨내는 오프닝 이벤트도, 꿈같은 쇼 음악 ‘Somewhere Over the Rainbow’도 그랬지만 그 중 가장 놀라웠던 건 그가 사용한 컬러 팔레트였다. 첫 번째 룩은 그레이 스웨트 셔츠와 그레이 A라인 스커트, 그레이 삭스와 그레이 스틸레토힐. 그 다음 룩 역시 온통 그레이였고, 그 다음 룩은 옅은 샌드 컬러 일색이었다. 간혹 반짝이는 소재감이 눈에 띄었을 뿐 쇼는 얌전한 숙녀처럼 보이는 룩으로 계속 이어졌다. 미디 길이의 풀 스커트와 스리 버튼의 긴 재킷, 앵클 삭스 등은 매우 보수적인 느낌이었다. 지난 시즌, 멀미가 날 만큼 많은 요소를 뒤섞은 쇼로 그리 좋지 않은 평가를 받았던 그가 왜 갑자기 이토록 심플함에 심취한 걸까? 그는 “Sometimes beautiful is enough.”라는 간단한 말로 설명한다. ‘판타지’가 없는 이 잔잔한 컬렉션이 지루했냐고? 그럴 리가! 디테일 없이 그저 보디라인을 따라 흐르는 풀 스커트와 A라인의 코트는 충분히 아름다웠다. <우먼스 웨어 데일리 Women’s Wear Daily, WWD>가 쇼 다음날 신문 표지에 커다란 글자로 적은 ‘조용한 폭풍(Quiet Storm)’처럼 강렬한 힘을 느끼기에 충분한 쇼였다. 지난 1년여의 시간 동안 런웨이를 휩쓸었던 룩을 되돌아보면 이같은 룩이 대두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극단적인 80년대 스타일(2009 F/W)이 폭풍처럼 지나가고, 육감적인 란제리 룩과 남성적인 테일러링(2010 S/S)이 훑고 지나간 자리에 이토록 보수적인 룩이 자리 잡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으니까. 몸을 훤히 공개하는 레이스 룩도 아니고, 강력한 ‘포스’를 덤으로 안겨주는 ‘뽕어깨’ 룩도 아닌 이 ‘숙녀’ 룩이 선사하는 힘은 작지 않다. 여성의 몸을 가장 아름답게 표현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50년대에 디올이 A라인을 발표했을 때 여성들이 열광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물론 한국인의 체형으로는 소화하기 쉽지 않은 실루엣이다. 종아리 중간에서 ‘뚝’ 끝나버리는 미디스커트를 입고도 난쟁이처럼 보이지 않을 수 있는 여성은 한반도에 흔치 않으니까. 스모키 아이에 검은 브래지어를 입고 킬힐을 신던 이들이 과연 이 대열에 합류하게 될지는 아직 미지수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여성들의 옷차림은 변화하기 시작할 것이다. 여성을 진짜 여성스러워 보이게 하는 모범 답안은 이미 제시됐으니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