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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미슐랭 스리 스타 셰프를 인터뷰하기 위해 호텔을 찾은 적이 있다. 당시 에디터가 그에게 던진 첫 번째 질문은 이랬다. “미슐랭 스리 스타까지 받은 당신이 앞으로 성취해야 할 것이 또 있을까?” 세계적인 미식 평가단 미슐랭 가이드에서 최고 평점을 받은 셰프라면 실력에서 경지에 오른 수준이니 더 이상 무엇을 바랄 게 있을까 싶어 넌지시 물어본 거였다. 그러나 그의 답은 의외였다. “받고 나서가 더 문제지요. 매해 미슐랭으로부터 평가를 받잖아요. 한 번 스리 스타가 되면, 그것을 얼마나 오랫동안 잘 유지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스리 스타 받았는데 그 다음에 투 스타, 원 스타로 뚝뚝 떨어지다가 아예 별을 받지 못하자 자살한 셰프가 있었단 거 아시죠? 전문 평가단의 냉정한 평가, 이에 대한 대중의 기대치는 셰프에게 상당한 스트레스로 다가옵니다. 그러나 셰프에게 좋은 채찍질 구실을 하지요.” 셰프에겐 잔인할지 모르겠지만, 객관적이고 엄정한 미식 평가단의 존재는 이래서 필요하다. 단순히 레스토랑에 손님이 줄고 늘고를 가지고 셰프가 자신의 실력을 다지는 계기를 갖기란 쉽지 않다. 따라서 셰프가 스스로 실력을 쌓고 다지는 적절한 동기 부여가 필요한데, 그러한 것 중 미슐랭 가이드와 같은 검증된 미식 평가단은 셰프에게 목적 의식과 실력 개발의 의지를 줄 수 있는 확실한 존재다. 한마디로 잘하면 상을 주고, 잘못하면 꾸짖어주는 선생님의 ‘사랑의 매’ 같은 것이 미식계에도 필요하다는 소리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나라에는 그 검증된 미식 평가단이란 게 존재하지 않는다. 미식 문화가 아직 덜 성숙되었고, 셰프라는 직업 세계에 대한 대중의 인식은 여전히 낮은 데다가 요리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실력 있는 셰프가 내는 접시 한 그릇에 감탄하며 시식의 즐거움을 맛보는 삶의 여유를 가진 이들도 많지 않다. 이렇다 보니 레스토랑과 셰프, 나아가 미식 문화 전반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진 전문 미식 평론가도 없는 편이다. 신문과 잡지 등에서는 기자나 칼럼니스트들이 굳이 전문성을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음식에 대한 기사를 쓴다. 대개는 레스토랑의 보도자료와 비슷하게 쓰거나 필자의 주관적인 의견이 녹아 있다. 그리고 음식에 대한 냉정하고 엄격한 시선보다는 레스토랑의 분위기나 스타일, 접근성에 치중하며 결국 ‘이 레스토랑은 좋다, 괜찮다’ 정도로 평가한다. 셰프의 이력을 꼼꼼하게 체크하는 것도 드물다. 음식 문화에 대한 이런 주관적인 평가는 인터넷이 사실 더 심각하다. 미식 블로거들은 마치 자신들이 미식 문화의 성실한 ‘자객’인 양 기세등등하게 국내 유명 레스토랑을 휘젓고 다닌다. 레스토랑과 셰프에 관해 이들이 블로그에 올리는 내용들은 상당히 주관적이며, 사실이나 정보, 진지한 평가를 담은 글을 쓰기보다는 음식 사진 올리기에 더 열중한다. 대중적인 평가가 레스토랑의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는 되어도 미식 문화의 발전을 도모하는 밑거름 구실을 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엄중한 미식 평론이 자리 잡지 못한 현실은 사실 국내 미식업계, 레스토랑 오너와 셰프, 미식 관련 종사자들에게 불리한 것만은 아니다. 결국 미식에 관한 진지한 접근과 연구, 평가가 없는 실정에서 검증되지 않은 사람들이 미식업계에 버젓이 존재할 수 있게 함으로써 피해를 입게 되는 쪽은 바로 대중이다. 제아무리 잘나가는 레스토랑이라도 국내에서 10년 이상 버티는 곳이 드문 이유, 실력 있는 셰프가 정당한 대우를 받기 어려운 이유, 셰프들 사이에 사제 관계가 형성되지 못하는 이유, 셰프 스스로 실력을 쌓으려는 동기 부여를 받지 못하는 이유, 좋은 음식을 즐기며 이에 대해 정당한 대가를 치르는 것에 사람들이 여전히 인색한 이유 등을 곰곰이 따져보면 이는 우리나라의 미식 문화가 완전히 성숙하지 못한 것과 관련 있다. 또 이는 미식 문화 전반에 대한 연구와 성찰, 비평과 수용이 안팎으로 공론화되지 않는 이상은 쉽게 해결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한국영화산업이 지금처럼 커진 것에는 진지한 영화 평론과 그것을 수용하는 매체, 평론을 가르치는 학교, 이를 수년간 전공한 평론가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한국 영화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끌어내는 데 영화 평론이 조금이라도 기여했던 것처럼 우리나라 미식 문화에도 이런 작은 변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한식 세계화처럼 거국적인 포부를 가진 나라라면 더더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