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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식객의 맛집 놀이 청국장 유감

연일 계속되는 폭염주의보와 가마솥 더위에 지쳐갈 무렵, 한겨울 쿰쿰한 내음으로 입맛을 돌게 했던 청국장이 생각난다. 온몸에 삼겹살 냄새를 뒤집어쓰며 쓴 소주를 입 안에 탁 털어넣을 때의 쾌감처럼 청국장 냄새로 더위를 이겨볼까나. 근데 아쉽다. 고린내 폴폴 나는 청국장은 대체 어디로 갔단 말이냐

프로필 by ELLE 2010.08.16


아직도 선명한 기억 하나. 어린 시절 엄마가 손수 끓여주신 청국장. 뽀얀 국물에 콩 알갱이가 그대로 살아 있는 청국장 국물에 두부 송송 파 송송 단출하게 들어간 그 음식의 강한 후각적 충격은 머릿속에 한 편의 영상처럼 각인되어 있다. 이게 웬 발 고랑내야 하면서 도망갈 법도 한데, 전두엽과 후두엽을 동시에 후려치는 강렬한 냄새에도 번뜩이는 호기심은 그 진한 국물 가까이로 몸을 다가서게 만들었다. 음식에서 어찌 이런 향기가. 대여섯 살 무렵 삼계탕을 끓여주면 꼬물꼬물 손가락을 움직여 조용히 닭 껍질을 골라 먹었다고 하는 엽기적인 식성 탓인지 웬만한 아이들은 울면서 도망가는 음식 앞에서 본 식객은 감히 ‘진미’를 경험하고 말았다. 한 번 꽂히면 석 달 열흘 한 놈만 패는 성정 탓에 하루가 멀다 하고 “엄마 청국장 끓여주세요”를 외쳤으니 청국장 사랑은 가히 눈물겨웠다고 할 만하다. 식객의 나이가 초로에 접어든 것도 아닌데 그때 먹었던 콩은 참 맛있었던 것 같다. 고소하고 풍미가 살아 있는 맛과 향이 콩에도 있었고, 콩으로 만든 두부에도 있었다. 동네마다 있는 두부 공장에서 금방 만든 두부는 과자보다 고소하고 달콤했다. 뻥튀기 기계에 콩을 넣고 볶아내면 계속 먹어도 질리지 않는 요긴한 간식거리가 탄생했다. 근데 요즘 콩은 당최 맛이 없다. 고소한 풍미도 없고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하고 단맛이 살아나는 느낌도 없다. 질감만 남았다고 할까. 분명히 생긴 건 두부인데 두부 맛이 나지 않고 콩을 아무리 삶아도 온 집 안에 감도는 구수한 콩 내음이 없다. 마치 비닐하우스에서 키운 야채에서 향기와 맛을 느낄 수 없는 것처럼. 냉이와 달래를 샀는데 아무 향이 안 나는 것처럼. 우리가 먹는 콩의 80퍼센트 이상이 유전자 변형콩이라는 것도 찜찜하다. 콩이 몸에 좋다는 것은 귀가 닳도록 들은 얘기. 아무리 몸에 좋으면 뭐 하나. 내 몸에서 어떤 화학적 반응을 일으킬지 검증되지 않은 유전자 변형콩이 내 몸뿐 아니라 내 다음 세대의 유전자에도 영향을 미칠 것을 생각하면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다이어트한다고 청국장 가루로 한 끼 식사를 대용했던 경험들이 없지 않을 터. 식품 중에서 단백질 함유량이 가장 높은 식품인 콩은 소고기에 비해서도 단백질함유량이 2배에 달한다. 콩을 그대로 섭취하면 소화흡수율이 65퍼센트에 불과하지만 자연 발효시켜 먹으면 10g당 100억 마리의 생리활성물질과 소화효소균이 있어 단백질 소화흡수율이 98퍼센트까지 올라간단다. <제3의 물결>의 저자 앨빈 토플러는 세계를 사로잡는 맛이 제1맛의 소금, 제2맛의 양념에서 제3의 맛인 발효음식으로 옮겨갈 것이라고 예언한 바 있다. 세계 5대 건강식품으로 꼽히는 김치, 낫토, 요구르트, 렌틸콩, 올리브유 중 발효식품들의 포진을 보면 그 예언이 헛말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는 콩의 신화가 전 세계 곡류 유통 회사가 만들어낸 허구임을 역설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매일 먹는 두부나 콩나물을 안 먹을 수도 없는 일. 아는 게 병이라고 이소플라본의 효능에 관한 논쟁이 귓가에 맴돌아 즐겨 먹던 두유와 낫토를 구입할 때 몇 번씩 들었다 내려놓으며 고민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수십 년 지켜온 입맛을 바꿀 수도 없는 노릇. 완벽주의와 결벽증은 텃밭에 왕창 콩을 뿌려 심는 것으로 어느 정도 심정적 보상을 노려보았으나 텃밭에서 자란 콩들로 과연 두부 몇 모를 만들어 먹을 수 있을지 쩝. 아무튼 콩이 맛있으면 청국장에 묵은지를 썰어넣을 필요가 없다. 콩 본연의 맛을 그대로 먹는 것이 가장 맛있고 부가 재료는 두부 조금 파 조금이면 된다. 요즘 여느 식당에서 청국장을 주문하면 된장찌개인지 청국장인지 심지어 강된장찌개인지 모르게 갖은 재료 듬뿍 넣어 조미료로 맛을 낸 찌개를 받을 때가 있다. 된장찌개와 청국장의 차이는 바로 소금이다. 메주를 빚어 간장을 띄우고 거기서
걷어낸 메주로 염장한 된장과 콩을 무르게 익혀 볏짚과 함께 뜨끈한 아랫목에서 발효시킨 청국장은 같은 발효음식이라도 차원이 다르다. 청국장의 유래는 만주 지방의 기마 민족들이 단백질 섭취를 위해 콩을 삶아 말 안장에 넣고 다녔다는 데서 찾는다. 청나라의 누룩 국(麴) 같다고 하여 청국장(淸麴醬) 또는 전쟁터에서 빨리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장이라 하여 전국장(戰國醬)이라고 불리게 되었다는 주장도 있으며, 지방에 따라 담복장, 품품장이라 부르기도 한다. 청국장은 중국 서역 지방과 동남아시아 널리 부탄, 아프리카까지 퍼져나가게 되었으며 가까운 일본에서는 낫토란 형제 음식을 만날 수 있다. 낫토와 청국장의 차이는 인공 발효냐 자연 발효냐에 따라 나누어볼 수 있다. 청국장을 발효시킬 때
볏짚을 넣는 이유는 몸에 유익한 고초균이 볏짚에 가장 많기 때문인데 낫토의 경우 몸에 좋은 유익한 바실러스 서브틸리스균만 인공 접종해 발효시키는 경우이고, 청국장은 공기 중에 떠돌아다니는 여러 종류의 균들이 더 복잡한 화학 작용을 일으킨다. 단일종의 인공 발효 시 냄새가 적고 위생관리가 용이하다는 점에서 요즘은 청국장 발효 시에도 그 방법을 이용해 냄새를 잡고 있다. 그러다 보니 한 번 끓이면 온 동네 사람이 그 집 저녁 식사 메뉴를 알 만큼 강력한 위세를 떨치던 청국장 냄새가 조용히 자취를 감추고 있다. 파는 청국장도 그렇고 집에서 직접 띄우는 청국장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안국동 골목길에 있는 별궁식당의 청국장은 냄새 없이 부드러운 맛으로 유명한 집이다. 장모님이 직접 만들어주셨다는 문구를 당당히 내걸고 청국장 하나로 오랜 세월을 이어오고 있다. 국물에 들깨가루를 갈아 넣어 냄새는 없어도 국물이 고소하고 콩 알갱이 하나하나가 부드럽게 살아 있어 독특한 식감을 자극한다. 하지만 냄새 없이 깔끔한 청국장이 왠지 너무 세련돼서 정이 안 들 때도 있다. 그렇다고 사직공원식당의 구수한 청국장은 너무 하드코어로 나간 면이 있어 또 저어된다. 허영만의 <식객>에 나와 유명세를 치르고 있는 집인데 뚝배기가 아닌 국그릇에 한 사발 퍼 나오는 것까지는 이해한다 하더라도 아무래도 식당 분위기가 너무 어수선하고 비좁아 쫓기듯이 먹어치워야 하기 때문이다. 맛 또한 청국장의 원형질이 살아 있다고 얘기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 동네 백반집 정도랄까. 식객이 이 집 저 집 다녀본 바 요 집은 한번 드셔보시라 권하고 싶은 집은 성북동에 있는 안동할매청국장 집이다. 전국 맛집 사장님들의 표본처럼 얼굴에 재복과 고집이 붙어 있는 할매가 주인장이다. 그 집의 청국장을 먹으면 깜짝 놀란다. 적당하게 옛날 청국장 냄새를 피우며 걸쭉하고 고소한 국물에 담긴 강력한 항암 작용과 정정 작용의 청국장 효능이 몸 전체에 고루 퍼지는 듯
건강해지는 느낌이 난다. 이거다. 시골 부뚜막에서 퀴퀴한 냄새 풍기는 청국장까지는 아니더라도 쿰쿰하게 식욕을 불러일으키는 정도의 자극. 맛의 포인트를 잘 집어낸 실력은 가지런히 담긴 밑반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오, 그리운 이름 청국장. 네가 곁에 있어도 나는 네가 그립다.

Information
안동할매청국장 743-8104. 한성대입구역 5번 출구 앞. 그 유명한 나폴레옹과자점 옆에 위치한다. 쿰쿰한 냄새가 식욕을 자극하는 청국장 못지 않게 손끝 여문 밑반찬도 강추. 오전 9시 반부터 밤 10시까지, 주말도 영업.

Profile
이름
낭만식객
성별 스테레오 타입을 거부하는 양성성 소유자
취미 한 종목에 꽂히면 석 달 열흘간 한 놈만 팬다.
특징 사주팔자에 맛 미(味) 자가 있다고 용한 점쟁이가 일러줌
과제 어지러운 중원에 맛의달인, 진정한 고수 찾기



*자세한 내용은 엘라서울 본지 8월호를 참조하세요!

Credit

  • 에디터 김헤진
  • 일러스트 최경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