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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방자전>의 변학도, 송새벽의 첫 번째 패션지 인터뷰

영화 <방자전>의 변학도, 12년의 연기 경력을 가진 배우, 블로그 배경 음악으로 이미자의 ‘가시나무새’를 걸어둔 남자. 이건 송새벽의 첫 번째 패션지 인터뷰이자 <엘르>만을 위한 1인극 <송새벽전>이다.

프로필 by ELLE 2010.07.28


박시한 블랙 재킷은 칩 먼데이, 화이트 슬리브리스 티셔츠는 제너럴 아이디어, 빈티지한 워싱의 카키 컬러 팬츠는 카이아크만, 골드 펜던트 네크리스와 스컬 모양의 링은 H.R, 레더 브레이슬릿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팬츠에 연결한 체인 액세서리는 H.R.


8시 40분, 도곡동. 한여름 해의 기운은 사라지고 어둠이 하늘에 자작하게 뿌려져 있었다. 파란색 트럭이 뒤뚱거리며 인도 모퉁이에 몸을 풀었다. 트럭은 파란 천을 두르고 나무 발을 늘어뜨려 포장마차 폼을 갖췄다. 금요일 밤이었지만 주변은 휑뎅그렁했다. 9시. 포장마차에서 모락모락 김이 피어나왔고 송새벽이 차에서 내렸다. “죽죠!” “특이한 애 좋아하느냐”는 이몽룡의 질문에 냉큼 대답하던 변학도. 표정 하나 안 바꾸고 몽니를 부리는 변학도. 영화 <방자전>에서의 변학도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서른둘, 큰 키와 듬직한 체구, 유난히 보얀 피부를 가진 남자 송새벽이 서 있었다. 뿌연 밤 공기 아래, 그의 피부는 할로겐처럼 흰 빛을 발했고, 눈은 검고 검었다. 10시. 나무 발을 들추며 남자가 들어왔다. 촬영을 마친 후 티셔츠와 반바지로 갈아입은 송새벽이었다. 우리는 그날 첫 손님이었다. 몇몇 온기 있는 음식과 술 네 병, 담배 한 갑을 앞에 두고 <송새벽전>의 막이 올랐다. 첫 장면은 군대를 갓 제대한 스물네 살의 봄, 서울이다.


#1 군산 청년의 서울 상경기
“너 진짜 왔나? 연극한다고?” 서울에 와 있던 형이 그러더라고. 내가 고향이 군산인데, 거기서부터 알던 형이야. 군산엔 극단이 딱 두 개야. 단원 수도 적지. 그러니 대극장 공연을 하려면 두 극단이 합쳐서 해야 돼. <겨울, 그리고 봄 사이>라는 공연을 같이하면서 알게 됐어. 서울에 왔지만 먹고 잘 곳이 없었어. 그 형을 통해 얘기 좀 잘해 달라고 해서 ‘열린극장’이란 델 갔어. 극장주한테 그랬지. 내가 청소하고 문 열고 문 닫고 관리 다 할 테니까 잠만 자게 해달라고. 극단 옆 사무실에 나무 평상에 이불 깔고 잤어. 그런데 극장에 귀신이 많잖아. 내가 겁이 되게 많아. 밤마다 앓다가 겨우 잠들고 그랬어. 귀신을 본 건 아니지만 왜 그런 거 있잖아. 세수하다가 갑자기, 머리 감다가 갑자기 휘둥그레 주변을 보게 되는 거.
극단 생활은 스무 살부터 했어. 시작은 아주 단순했어. 수능 끝나고 커피숍에서 서빙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같이 일하는 형이랑 친해졌어. 그 형이 대학교에 들어가면 동아리라는 걸 해야 하니까 자기네 동아리에 들어오래. 그런데 또 진짜 같은 대학교엘 가게 됐어. 형 따라 가보니 연극 동아리더라고. 그러다 극단까지 갔어. 우리 동아리 선배가 차린 극단이었고 선배들이 몇몇 단원으로 있었거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하루하루가 재미있었어. 직업적으로는 생각 못했지. 군대 제대하기 전에 ‘앞으로 뭘 할까’ 생각하잖아? 나는 이걸 해야겠다 싶더라고. ‘내가 정말 이게 하고 싶은가?’ ‘후회 안 하려나?’ 이런 고민들을 제대 직전까지 했어. 잘해 보겠다고 의지를 다진 것까진 아니었는데 그랬다면 더 좋을 뻔했다 싶어.
동아리 사람들은 “고생하겠다.” 정도의 반응이었는데, 우리 엄마는 깜~짝! 놀랬어. 어릴 때 우리 엄마가 항상 하던 말씀이 “넌 남자 새끼가 욕심도 없냐?”는 거였어. 애들 장난감 가지고 싶으면 막 떼쓰잖아? 난 장난감 한참 바라보고 엄마 한 번 슬쩍 쳐다보고 그것이 끝이었어. 학교 다닐 때도 한 반에 50명이면 학년이 끝나도록 애들 이름을 다 외우지 못했어. 우리 분단, 내가 앉은 자리 주변 애들하고만 잘 알고 지내. 날라리도 아니었고 말썽도 안 부렸어. 가장 큰 일탈이라고는 고등학교 때 술을 마셔본 것 정도니까. 아무튼 우리 엄마는 내가 금방 그만두고 내려올 줄 알았나 봐. 사실 서울에 딱 왔는데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쪽박 차고 내려가면 어쩌지?’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 그래도 군바리 정신으로 했지. 아니, 뭐 사지 멀쩡하면 됐잖아? 그게 스물네 살, 봄이었어.



 


#2 극단 연우와 신입 단원 송새벽
2002년 겨울에 극단 연우에 입단했어. 오디션 한다는 얘기에 부랴부랴 갔지. 무슨 대기업처럼 3차까지 시험을 봐. 1차는 면접, 2차는 쪽 대본을 받아서 20분간 연기해야 돼. 3차는 워크숍을 통해 공연을 해. 시험 보러 가서 객석에 앉아서 기다리는데 온통 여자더라고. ‘왜 이렇게 여자들이 많지?’ 속으로 생각하는데 막 속닥속닥 얘기가 들렸어. “이번엔 남자 단원은 안 뽑고 여자만 뽑는다며?” 이미 연극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런 정보가 돌았던 거야. 총 8명이 뽑혔는데 여자가 일곱, 남자는 나 혼자였어. 강신일 선배 말씀이 하려는 의지를 보고 뽑아주셨대.
연우에 위계질서가 아예 없는 건 아니야. 하지만 선배들이 자유롭게 방목했어. 그게 더 무섭잖아. 편안하게 술자리를 이어가다가 한마디 쿡 찌를 때가 있어. 그럴 때 긴장하고 들어야 돼. 아침 해뜰 때까지 술자리가 참 많았는데 에피소드도 참 많아. 동기들이 다 여자들이다 보니 뒤치다꺼리는 내 몫이었지. 환갑 넘은 대표님 앞에서 스물 서너 살 막내들이 맞담배를 피웠어. 대표님이 그렇게 하래. 초반엔 ‘아니, 어떻게? 아버님보다 연세가 많은 선생님 앞에서 담배를? 오버 아니야?’ 생각했지. 그런데 이유가 있었어. 후배라고 주눅이 들면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그걸 꺼내지 못한다는 거야. 괜히 서울대 출신이 아니더라고? 연우에 서울대 출신이 많아.
연우가 나한테 어떤 의미인지, 어떤 말이 기억에 남는지, 글쎄, 너무 많아. 뭘 얘기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연기에 있어서 세세한 부분을 일러주는 그런 게 아니야. 낙오되지 않도록 격려하고 잡아준 거지. 조선 팔도에서 연극 하겠다고 올라와. 1년에 1천명 잡으면 9백명은 도로 빠져나가. 그런데 내가 연극 오래했다고 하면 남들은 “완전 힘들었겠다!” 그러더라? 나 의외로 힘들지 않았어. 선배들 덕에 잘 먹고 다녔지. 물론 내가 그 위치가 되면 그만큼 후배들에게 돌려줘야겠지.


#3 연기와 작품, 문화산업에 대한 철학
“난 평생 연극만 해야지!” 이런 생각은 해본 적 없어. 그거야말로 인간문화재 급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생각 아니겠어? 작품을 볼 때는 ‘이야기’를 봐. 보는 눈은 우리 모두 9단이야. 이야기의 의도가 진실로 다가오는지, 요즘 유행하는 요소들을 짬뽕해서 한방에 때려 맞추려는 건지 알 수 있어. 기교 부리는 건 싫어. 그리고 신선함을 봐. 전에 없던 것, 생뚱맞은 것이 신선한 게 아니야. 우리가 잘 알고 있고, 많이 경험하는 것인데 그 안에서 신선함을 찾아야지. 이게 평생 숙제 같아.
연기도 있고, 산업도 있지. 난 둘은 나뉘어져야 한다고 생각해. 연기자가 스스로 상품이라는 건 위험한 발상 같아. 상품으로서 어떤 코드가 먹힌다고 해서 그렇게 하겠다고 마음먹는 순간, 연기자의 매력은 훅 떨어진다고 생각해. 그러려고 시작한 인생이 아니잖아? 작품 안에서 내가 하고자 하는 것들을 하고, 그게 관객의 공감을 얻으면 금상첨화지. 영화 <아라한 장풍대작전> 마지막 장면에 음식을 머리에 가득 얹고 배달하는 아주머니 등등 온갖 사람들이 지나가. 이를테면 생활의 달인들이지. 각자 직업이 다르고 삶이 달라도 나는 모든 사람들이 매일 짤막한 공연을 한다고 생각해. 누군가의 앞에서건 자기 삶의 드라마를 연기하는 거야. 쇼! 끝은 없는 거야! 이런 거지.
누가 그랬지? 21세기는 문화 전쟁이라고. 난 그 말을 1천 퍼센트 이해해. 미키마우스가 수익을 얼마 내고 이런 얘기가 아니야. 일상에 치이고 힘들게 살다가도 드라마 속 인물 하나에 위안을 얻기도 하잖아. 그게 얼마나 큰 힘이야. 단 하나의 관객, 시청자에게라도 그런 메시지를 주는 일원이 되고 싶어. 난 그런 의지로 버텼어. 한 번은 아동극을 하는데 엄마랑 애기들까지 다해서 셋이 왔더라고. 분장실에서 우리끼리 짧은 회의를 했지. 배우보다 관객이 적으면 양해를 구하고 안 하기도 하거든. 그런데 하나같이 다들 하자는 거야. 아, 아주머니가 또 인천에서 왔다네? 공연하는데 애기들이 너무 미안해 하면서 보는 거야. “엄마~ 나가자~” 막 이러면서. 오히려 더 엔도르핀이 돌았어. 시선을 맞추지 않는 장면에서도 시선을 주고 어깨도 두드리고 악수도 청하면서. 극 중반이 지나니까 마음을 열더라. 사람 마음이 다 그렇잖아, 안 그래?


#4 구식 남자, 오늘의 배우
세상이 점점 살기가 힘들지. 그래도 정은 있다고 생각해. 사회 시스템이 안 그래서 그렇지. 의지하고 살면 좋겠어. 언제 죽을지 모르잖아? 뉴스를 보니, 태어난 지 몇 달 안 된 애기가 TV에 깔려 죽었대. 전쟁도 아니고 일상에서 그렇게 죽다니. 하느님은 계신가? 살아남는 사람들은 왜 살아남는 거지? 아프가니스탄 같은 데서는 왜 사람들이 죽는 거지? <닥터스> 봐도 그래. 불치병에 걸린 사람들 보면 술 담배를 한 것도 아니고 아무 이유가 없어. 보통 성선설을 믿잖아? 그러니까 가슴이 더 아파. 성악설이 맞다 생각하면 차라리 마음이라도 편하잖아. 무슨 죄가 있어서 그러려니 하고.
3년 전에 한 해에 친할머니,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어. 그런데 얼마 전에 <슈렉 3>를 보는데 슈렉이 죽는 줄 알고 슈렉 마누라가 슬퍼하는 장면에서 눈물이 나더라. 이 세상과의 이별 같아서. 아무것도 아닌 일에 콱 영감받고 그래. 지금 유난히 감성적이라기보다 원래 좀 그래. 내가 어떤 남자냐고 물으면 잘 모르겠지만 난 옛날식 사랑이 좋아. 내가 제일 재미있게 본 영화가 <포레스트 검프> 하고 <백발마녀전>이야. <백발마녀전>에서 홍콩영화 특유의 하늘을 붕붕 날아다니는 분위기에 매료되기도 했겠지. 당시에 임청하를 안 좋아하는 남자도 없었고. 그런데 난 장국영과 임청하의 지고지순한 사랑이 좋았어. 그런 연애를 하려고 해. 부모님 시대의 사랑, 옛날식 사랑. 클럽 가서 원 나잇하고 이런 거 매력 없잖아. 그런데 마음 맞는 사람, 내 사람 만나는 게 힘들지.
서른둘이지만 스물넷이나 서른둘이나 ‘오늘’이야. 물론 변화들은 있어. 하지만 삶은 상대적이고 산 너머 산이야. 나중에 결혼하고 아이를 가지면 그제서야 ‘지금 내 삶은 어떻지?’라는 생각이 들 것 같아. 현재 내 삶은 항상 ‘지금’ ‘오늘’이야.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지 물으면, 좋은 배우가 되고 싶어. 상투적인 얘기지만 어쩔 수 없어. 내 생각이, 내 마음이 그래. 연기라 해도 거짓말은 들통이 나.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연기에서 다 보여. 그래서 나는 ‘좋은’ 배우가 되고 싶어.


HIS moments
●2006 연극 <사랑합니다>  
●2007 연극 <사건발생 일구팔공> 
●2009 연극 <날 보러와요> 영화 <마더>
●2010 영화 <방자전> ●NEXT 영화 <해결사> <시라노;연애조작단> <부당거래> <제7광구> 


*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8월호를 참조하세요!

Credit

  • 에디터 김보미
  • 포토 YU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