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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한 평 짜리 방에서 출발하는 홈 바캉스

억만금을 줘도 사서 고생은 싫다는 사람, 최고급 호텔 방보다 내 집이 최고라는 사람, 돈 없어 여행 못 가는 사람, 모두 여기 모여라. 모래사장을 구르고 지구 반대편을 활보하는 이들이 부럽지 않다. 내 방, 우리 집, 서울. 사랑스러운 내 작은 세계에서 잘 먹고 잘 노는 법 탐구생활.

프로필 by ELLE 2010.07.26


1 지난 4년 간은 운이 좋았다. 휴가철마다 1년에 한번씩은 꼭 지구 어딘가에서 재워준다는 사람이 출몰했다. 비행기표에 30만원 달랑 들고 간 짧고 가난한 여행들이었다. 그래도 좋았다. 올해는 기약이 없다. 운이 다하려나 보다. 아, 출장이라도 가고 싶다. 옆자리 선배의 출장 소식만 들려온다. 이런, 그 운도 없나 보다. 마음을 접는다. 돌연 스스로에 대한 설득에 몰입한다. 휴양지로 여행 가고 물놀이해야 휴가고 바캉스야? 집에서는 왜 못 놀아, 더 신나게 놀면 되지.
사실 바캉스라고 떠나봐야 도로 위에서,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옴쭉달싹 못하기가 부지기수다. 쉬자고 있는 게 바캉스다. 심지어 어원은 라틴어 ‘vacatio’에는 ‘자유로워지다’라는 뜻이 있단다. 하지만 복잡한 해수욕장에서 이리 한번 밀리고 저리 두번 치이다 보면 자유를 획득하긴커녕 근무일 못지 않게 ‘쩔기’ 일쑤다. 몸은 부대껴도 마음이라도 자유로워지면 말을 말지. 무더위에 옆사람 살결만 닿아도 짜증지수가 고속으로 치솟는다. 그런데도 우리는 늘 바캉스를, 여행을, ‘지금 이곳’이 아닌 어딘가를 꿈꾼다. 똑같은 스타벅스 커피 한잔도 외국에서 마실 때 더 특별하게 느껴지는 건 민망한 진실이다. 지난 달 인터뷰했던 누군가가 그랬다. 왜 파리쯤 가야 비로소 삶의 여유를 느끼는 거냐고. 낡은 동네, 엄마가 잔소리하는 집, 지저분한 내 방에서 먼저 행복이 완성돼야 하는 거 아니냐고. 그렇지 않으면 밖으로 아무리 돌아다녀봐야 무슨 소용이 있냐고.
어쩌면 바캉스나 여행은 일상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가진 것에 만족할 줄 모르는 자들의 현실 도피인 걸까. 아니면 무의미한 환상, 실속 없는 허영이거나. 어떤 것이어도 달라지는 건 없다. 어디를 가도 돌아와야 하는 곳은 있는 법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다른 어딘가’가 아닌, 지금 여기에서 행복해지는 연습이다. 스미스 틀어놓고 혼자 춤추기, 욕조에서 선글라스 끼고 레몬 꽂은 칵테일 마시기, 올나이트 영화 상영회 열기. 어떻게 놀면 잘 놀았다 소문 날지 연구해봤다. 그리고 떠나기로 했다. 내 한 평 짜리 방에서 출발하는 홈 바캉스.



2 Healing Myself

온몸의 뼈와 관절은 늘 삐그덕댄다. 자신감 게이지 0, 눌어붙은 껌딱지처럼 움츠러든 몸을 끌고 다니기도 진절머리 난다. 너절한 몸과 마음. 이건 재난이다. 도와줘요, 수퍼맨. 하지만 포마드 바른 머리에 팬티를 밖으로 꺼내 입는 그에게 빨간불 들어온 내 심신을 고쳐줄 기술 같은 게 있을리 없다. 내 몸은 내가 안다. 휴가라는 소중한 시간을 여행이나 모임 대신 스스로에게 온전히 반납하는 건 충분한 가치가 있다. 요가는 우리 몸의 자연 치유력을 끌어낸다. 수업료와 출석일을 저울질하며 스트레스 받기 싫다면 ‘홈요가(
www.homeyoga.co.kr)’를 선택한다. 척추 교정, 변비 해소 등 신체 부위별, 증상별로 원하는 힐링요가 동영상을 고를 수 있다. 친환경 소재의 요가 매트는 영국에서 온 요가 브랜드 ‘이지요가(511-2417)’에서 구입 가능하다. 땀이 좀 식으면 족욕이나 반신욕을 한다. 발에는 오장육부에 해당하는 경혈점이 있어 족욕을 하면 긴장이 이완된다. 반신욕은 어깨 결림과 허리 통증에도 좋다. 반신욕 커버와 ‘무인양품(www.mujikorea.net)’의 반신욕 후드숄은 필수 아이템. 물에 아로마 에센셜 오일을 떨어뜨리면 효과가 배가된다. 주의할 점은 아로마도 체질에 맞게 쓰지 않으면 독이 된다는 것. 진정 효과가 있는 라벤더는 혈압이 낮은 사람에게 위험할 수 있다. 아로마 테라피스트와의 상담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성격과 체질, 심리 상태와 신체 증상을 낱낱이 묻는 체크 리스트를 작성하면 내게 맞는 천연 아로마 에센셜 오일을 찾아준다. 천연 밀랍초에 오일을 떨어뜨려 발향시키면 더 좋단다. 특히 레몬그라스 향은 모기들이 싫어하므로 천연 모기퇴치제가 되고 샌달우드는 마음을 차분하게 해 아유베다에서 명상에 자주 쓰인다. 명상이 뭐 있나. 눈을 감고 나름 명상을 시도해본다. 세상의 모든 불이 꺼진듯 평안과 고요가 찾아온다. 가끔 모든 걸 멈추고 고장난 몸과 상처 받은 마음을 어루만질 줄 아는 게 현명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우리 몸은 배터리가 방전돼 꺼졌다가도 충전기에 꽂으면 빵긋 켜지는 휴대폰이 아니니까.




3 Cultureholic

남들은 짐 잔뜩 지고 땀 흘리며 뒤뚱뒤뚱 공항으로 향하지만 상관없다. CD와 DVD와 책으로 차곡차곡 쌓아올린 벽 안의 아늑한 세계만큼 근사한 곳이 또 어디 있을까. 최우선 과제는 마츠모토 타이요 완전 정복. <철콘 근크리트> 재독으로 시작한다. 숨은 명작이라는 <제로>와 최근작 <죽도 사무라이>까지 어록을 만들고도 남을 명대사와 영화 못지 않은 근사한 연출력을 보여주는 그의 만화는 시간을 내서 파고들 가치가 있다. 고전 영화 복습도 투 두 리스트의 상위권 랭크. 얼마 전 김기영의 <하녀>가 고전이 왜 고전인지를 보여주지 않았나. 막상 보기 시작하면 정신 못 차릴 거면서 볼 때까지 두번 세번 손이 망설이는 게 고전 영화다. 휴가만한 기회는 없다. 히치콕 <이창>, 안토니오니 <욕망>, 고다르의 <네멋대로 해라>. 맘 바뀌기 전에 재빨리 디스크를 꺼내 ‘빛의 속도로 꽂아버리기’ 비법을 쓴다. 며칠만이라도 일상에서 한 발짝 발을 떼보기엔 소설 속의 비현실도 괜찮다. 세스 그레이엄 스미스의 <뱀파이어 헌터, 에이브러햄 링컨>처럼 완전히 다른 세계도 쿨하지만 어맨더 필리파치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연애> 같이 현실에 걸쳐진 뒤틀린 코미디도 흥미롭다. 7월의 행사와 공연 일정을 물끄러미 들여다 보면 드는 생각. 왜 이걸 두고 서울을 떠나지? 이건 뭐 스크린만 쳐다보고 있어도 한 달이 순식간에 지나갈 지경이다. 서울아트시네마의 페데리코 펠리니 회고전(6월 10일~7월 4일)과 미쟝센 단편영화제(6월 24일~7월 1일), 서울 국제 청소년영화제(7월 8일~14일), 부천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7월 15일~25일)까지. 축제는 대학로에서도 벌어진다. 젊은 연극제(6월 19일~7월 4일)와 피지컬 시어터 페스티벌(6월 29일~7월 4일)이다. 기꺼이 방콕의 달콤함을 포기하고 한달음에 차를 몰고픈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록의 향연도 있다.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7월 23~25일)과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7월 30일~8월 1일). 설령 버스와 지하철을 엉금엉금 갈아타고 가더라도 도착하는 즉시 ‘떼창’과 슬램으로 정신줄 놓아버리게 만드는 요주의 아이템이자 최고의 빅샷이다.




4 Cooking Time

먹다 죽은 귀신이 때깔도 고운 법이랬다. 한번 사는 인생, 잘 먹고 잘 사는 게 최고의 미덕이다. 생존 본능에만 의존한 어설픈 반찬이나 한그릇 요리는 이제 그만. 휴가 끼고 일주일에 한번씩 쿠킹 클래스를 수강해 ‘요리하는 녀자’로 거듭나리라 결심한다. 라 퀴진(
www.lacuisine.co.kr)의 커리큘럼이 독창적인듯. 특히 ‘유학생을 위한 퀵 & 이지 쿠킹’을 보라. 유학은 커녕 서울 죽순이라고 해도, 이건 뭐 딱 그냥 싱글족을 위한 거다. ‘초록잎 홍합 쿠킹 클래스’ 같은 1회성 클래스는 귀엽고, 무엇보다 궁금증을 유발시킨다. 조금 더 고급화된 과정을 원한다면 까사스쿨(www.casaschool.com)의 ‘코리안 푸드 쿠킹 클래스’나 ‘츠지원(www.tsujione.com)’의 재패니즈, 프렌치, 이탤리언, 차이니즈 등 나라별 푸드 과정을 추천한다. 이곳에도 역시 1회 과정이 마련되어 있다. 쿠킹보다 베이킹이라면 가로수길 마망갸또(www.momsbaking.com)나 창성동 카페 고희(www.goghi.kr)의 1~3명으로 이뤄지는 소규모 클래스도 괜찮다. 기왕 클래스도 수강하는 김에 이번 휴가를 주방 새단장에 올인해볼까도 싶다. 글씨 못 쓰는 사람이 붓 탓 한다지만 예쁜 도구가 있어야 요리도 잘 될 것 같은 게 인지상정. 남대문 중앙상가 C동이나 대도상가 D, E동에서 이딸라, 웨지우드 등의 수입 브랜드를 백화점보다 20~70% 싸게 살 수 있다. 르 크루제의 화사한 원색 주물 냄비, 이딸라의 타이카 플레이트나 볼을 갖추면 요리할 마음의 준비, ‘다 이루었다’. 온라인으로는 ‘쉐어마인드(share-mind.com) 같은 곳에서 르 크루제, 이딸라, 아라비아 핀란드 등의 프리미엄 브랜드를 비롯해 다양한 수입 주방용품을 판매한다. 구하기 힘든 수입 식재료는 역시 한남동 한남체인(702-3313)이나 옥수동 하든 하우스(2297-8618), 베이킹 도구는 대치동 리치몬드 상가나 을지로 방산시장이 편리하고 저렴하다.




5 Party People

힙한 라운지에서의 DJ 파티도 좋지만 한번쯤은 한여름밤의 호스트가 되어보기로 마음먹는다. 없으면 후회하는 강력 추천 필수 파티 아이템은 단연 미러볼! 40cm 이하 사이즈라면 을지로 조명 상가 곳곳에서 구할 수 있다. 천장에 동동 하나만 떠있어도 분위기는 덩달아 알아서 뜬다. 3~4개를 같이 달거나 바닥에 늘어놓으면 열 싸이키 조명이 안 부럽다. 큰 사이즈는 미리 주문해야 따로 제작에 들어간다. 다만 그만큼 가격도 뛰게 마련이다. 음식 준비로 스트레스 받을 필요는 없다. 포트럭 파티임을 미리 공지하자. 귀찮다고 볼멘소리해도 다들 은근히 준비해온다. 경쟁 논리에 의해 음식의 평균 퀄리티가 상승할 확률이 다분하다. 호스트는 인원에 맞게 커트러리와 약간의 술만 준비하면 된다. ‘다함께 꽐라’ 파티가 아닌 이상 독주보다 샴페인, 맥주, 칵테일이 적당하다. 칵테일이라면 베이스별로 레서피를 쉽게 알려주는 책 <스타일리시 칵테일>(중앙북스)을 참고하길. 사실 맥주에 과일 시럽이나 리큐어만 적당히 섞어도 맥주 칵테일 급제조가 가능하긴 하다. 안주 하나쯤은 내가 해야 마음이 편하겠다면 과일 퐁듀가 괜찮다. 과일을 손질해 중탕한 초콜릿과 함께 내면 끝이니 하는 거 없이 생색내기에 딱이다. 파티의 중심은 역시 사람. 음식 맛있고 음악 좋고 분위기 근사한데 정작 사람들이 즐겁지 않다면 그 파티는 실패다. 어떻게 노느냐가 관건이다. 한두 명의 분위기 메이커나 술기운에 의존하는 건 별로. 모두가 시공간을 나누고 교감하려면 같이 즐길 수 있는 도구가 필요하다. 간단한 보드 게임이나 ‘닌텐도 위’는 어떨까. 또는 무선 헤드폰을 끼고 채널을 설정하면 선택한 채널에 따라 각기 다른 음악을 들을 수 있는 ‘크레이지 디스코(3285-1590)’를 대여해볼 것. DJ와 DJ박스 없이 믹싱 파일만 재생해도 된다. 조용한 방에서 누구는 살풀이를 추고 누구는 디스코를 추는 그림 같은 장면이 연출된다. 신기한 안경이나 모자, 가발이나 반짝이 재킷이라도 있으면 난리나는 거다. W호텔의 ‘위시스(2022-0508)’나 ‘파티피아(
www.partypia.co.kr)’ 등의 파티용품점에서 구할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엘라서울 본지 7월호를 참조하세요!

Credit

  • 에디터 김경민
  • 포토 김정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