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잃어버린 빛을 찾아 <파괴된 사나이>

내일의 태양이 뜨지 않더라도 인간은 살아야 한다. <파괴된 사나이>는 아버지가 딸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잃어버린 빛을 찾아 어둠 속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아버지의 뒷모습에서 희망을 보길 바라는 영화다.

프로필 by ELLE 2010.06.11


감독
우민호 출연 김명민, 엄기준, 박주미 개봉 7월 1일

소리 없는 표정에서 더 많은 감정이 쏟아지기도 한다. 그것이 가슴 절절할 땐 더욱 더. 영화 <파괴된 사나이>의 티저 포스터가 그 예를 실감나게 보여준다. 강렬한 스틸 컷 속 김명민의 표정은 영화 속 그의 감정을 A부터 Z까지 모두 담아내고 있다. 보여지는 그의 표정만으로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정직한 영화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딸을 잃은 피 끓는 아버지의 부성애라는 통한의 감정선은 그대로 유지한 채, 유괴 8년 후 딸이 살아있다는 소식을 들은 순간부터 극의 전개가 시작된다. 신을 사랑한 남자가 신을 버리고 타락해가는 과정과 제자리로 돌아오는 모습들을 통해 처절함과 인간의 나약함도 보여준다. 영화는 제 1회 서울기독교영화제 단편경쟁부문에서 <누가 예수를 죽였는가>로 특별상을 수상한 우민호 감독의 장편영화 데뷔작이다. 그는 이번 작품에서 신에 대한 남다른 관심을 또 한 번 표출하며, 패기 넘치는 신인 감독답게 새로운 패러다임과 저돌적인 면모로 다른 영화와의 차별화를 선언했다.

신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행복한 주영수 목사(김명민)에게 5살 된 딸 혜린이가 유괴되는 일생일대의 시련이 찾아온다. 결국 돌아오지 않은 딸로 인해 그의 인생은 송두리째 달라진다. 신과 믿음, 사랑 모든 것을 거부하고 타락한 사업가로 변신한 그에게 8년 만에 딸을 유괴한 놈으로부터 연락이 온다. 영화는 딸을 찾기 위한 단 한번의 기회를 잡은 그의 필사적인 사투를 벌이는 과정을 그린다.

<파괴된 사나이>는 특별한 기교나 기술보다 주영수라는 한 인물의 디테일한 감정을 따라 쭉 풀어져서 나가는 영화다. 그렇기에 무엇보다 캐릭터에 완벽히 녹아들 수 있는 베테랑 배우들이 필요했다. <하얀 거탑> 천재 외과의사, <베토벤 바이러스> 마에스트로, <내사랑 내곁에> 루게릭 환자 등을 연기하며 출연 작품마다 신드롬을 일으킨 ‘연기 본좌’ 김명민이 단숨에 이 시나리오를 읽고 출연을 자청했고, 브라운관과 무대를 오가며 연기력을 검증 받은 엄기준마저 이 작품으로 첫 스크린 신고식을 치룬다. 이 정도면 신인 감독의 데뷔작치고 ‘대박 캐스팅’과 ‘미친 연기력’만큼은 탄탄히 보장된 셈이다. 명품 배우들이 선택한 탄탄한 구성의 시나리오와 사실감을 주는 차갑고 리얼한 영상에 감독이 자신하는 배우들 보는 재미까지 더해졌으니 못해도 본전은 찾을 요량치고 그들의 안목을 믿어보는 것도 괜찮다.


영화 <파괴된 사나이>는 어떤 영화인가?

우민호: 이 영화는 8년 전 죽었다고 생각한 아이를 다시 찾아나서는 영화다. 전반적으로 아이를 찾으려는 아버지와 아이를 돌려줄 생각이 없는 유괴범의 이야기다. 스릴러적 장치가 곳곳에 있기는 하지만, 오히려 중점을 둔 부분은 극단적 상황에서의 주영수라는 인물의 심리적 변화다. 나중에 영화를 볼 때 스릴러 영화라고 해서 거대한 반전은 기대하지 마라. 아이를 잃고 8년 후 상처와 고통에 사는 부모, 범인을 잡고 싶은 형사, 그리고 아이 유괴한 유괴범과 혜린이의 변화된 모습을 보면 색다른 매력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외과의사, 마에스트로, 루게릭병 환자 등 많은 역을 연기했다. 이번 영화에서 목사 역할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점이 있나?
김명민: 어렸을 적부터 모태신앙이라 항상 봐 온 목사님의 모습이 설교하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처음 시나리오를 받고 자신 있는 부분이 목사님 설교하는 모습이었다. 촬영 전 교회에 가서 전과 다르게 목사님을 쳐다보며 설교하시는 모습을 보고 왔고, 그 외에는 특별히 준비한 건 없다.

연기를 하기 전 철저히 준비하기로 유명한데, 이번 영화를 위해 PC방에서 3일 밤을 샜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김명민: 그 부분이 유괴범과 메일을 주고 받으며 한 순간도 한눈을 팔면 안 되는 장면이다. 그래서 영화에서도 잠을 자면 안 되는데, 실제 주영수가 아니라 졸렸다. 분장을 해도 티가 나서 연기하는 입장에서도 불편해서 잠을 안 잤다. 좋더라. 졸리고… 그래서 리얼하게 나온 것 같다.

오랜만에 보는데 아름다운 미모는 여전하다. 이번 영화에서 어머니의 모습으로 등장하는데, 이번 역할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점과 그런 내추럴한 스타일이 부담스럽진 않았는지?
박주미: 솔직히 8년 만에 나오다 보니 부담이 됐다. 오랜만에 나오는 거라 예쁘게 나오고 싶었지만, 아이를 잃어버린 엄마이기 때문에 그러지 못했다. 감독님께 화장을 하지 말까 하고 말씀 드렸는데, 오히려 시커먼 화장을 시키더라. 그리고 나름대로 머리 결이 생명이라고 생각해왔다. 태어나서 파마를 3번 해봤는데, 그 3번째가 바로 이번이었다. 상한 머리 결을 표현하기 위해서. 그렇게 외모를 준비했다.

이번 복귀작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지, 앞으로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는 것인가?
박주미: 데뷔 후, 일 할 때에도 작품이 잘 안되고 두 개를 동시에 잘 안 했다. 사실 영화 시작할 때 두 작품이 한번에 들어와서 고민을 많이 했다. 김명민씨냐 김남길씨냐였는데, 지금 선택이 옳았던 것 같다. 8년 만에 컴백이라는 건 부담이 된다. 정말 잘하는 분들 사이에서 내가 잘할 수 있을지 걱정했는데 잘 적응 할 수 있는 좋은 분위기였다. 이게 첫 영화이기도 한데, 차기작도 천천히 생각하며 다른 모습으로 인사 드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제까지 지적이고 젠틀한 이미지였는데, 이번엔 냉혈한 살인마를 맡았다. 이미지 변화를 위해 일부러 노력했나 그리고 살인마 역을 연기하며 주안점을 둔 것은 무엇인가?
엄기준: 특별히 변신하려고 한 게 아니라 사람 죽이는 연기를 해보고 싶었다. 평상시에 못 해보는 거니깐 한번 해보고 싶었다. 주안점을 두고 그런 건 따로 없었다.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했다.


독실한 기독교신자인데 영화 후반에는 신을 저버린다. 연기에 있어 힘들지는 않았나?

김명민: 오랫동안 크리스천이고 지금은 교회 집사다. 아버님은 장로이시고 어머닌 권사시고, 집안에 목사님만 2분이 계신다. 아들이 영화에서 목사 역할을 맡았다고 하니깐, 주변에선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드러났다고 좋아하셨는데, 그 이후는 말 안 했다. 부모님께서 예고편 안 보셨다면 다행이고, 보셨다면 앞으론 영화에 대한 말을 안 하실 듯 하다. 기독교 이야기에 예민하신 분 많은데, 맡은 영화 속 인물의 직업일 뿐이고 개인적인 사상 같은 건 없다.

<하얀거탑> 이후 감정적으로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번 영화는 끝나고 난 후에 어땠나?
김명민: <하얀거탑>은 주인공이 쓸쓸한 죽음을 맞이해서 정신적으로 힘들었다. 마치 내가 죽어가는 것처럼… 그리고 캐릭터가 죽어서 촬영도 끝이 나니 내일부터는 뭘 해야 하나 하는 우울감도 밀려왔다. 78년도인가 일본의 <하얀거탑>의 배우가 자살을 한 심정을 이해할 것 같았다. 그러나 난 의지가 강한 편이라 잘 견뎠다. <파괴된 사나이>는 해피엔딩이라서 영화가 끝나면 어떤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영화가 끝나며 같이 역할 안의 인물도 밝아지고 김명민도 그렇게 될 수 있겠다 싶어서 큰 짐을 벗어버린 듯 끝나고 나서는 기분이 좋았다.

드라마, 뮤지컬, 연극 등 다방면에서 활동 중인데 영화는 처음이다. 다른 분야와 다른 점이나 힘든 점이 있다면.
엄기준: 힘든 점은 딱히 없었고 티 테이블이 있어서 좋았다. 한 컷을 찍을 때마다 감독님과 모니터할 수 있다는 게 좋았다. 공연이나 드라마는 모니터를 못하니깐.

굉장히 연기를 잘하는 배우들과 영화를 찍었다. 연기 잘하는 배우일수록 예민할 것 같은데, 배우들과의 작업이 힘들진 않았나?
우민호: 안 힘들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 얘기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웃음) 농담이고. 배우는 어려운 직업이라 순간적으로 촬영장 안에서 예민하지 않을 순 없다. 그런 방식에서 배우들, 특히 김명민씨는 모두 스탭들에게 배려를 많이 해주고 편하게 해줬다. 서로 많은 얘기를 하며 조금씩 촬영을 풀어나갔다. 그다지 어려운 건 없었다.

Credit

  • ELLE 인턴 웹에디터 박은희
  • COURTESY OF 언니네홍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