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르' 편집부 사람들의 반려동물 이야기 | 엘르코리아 (ELLE KOREA)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득한 <엘르> 편집부 사람들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하고 싶었던 이야기::반려동물,펫,강아지,고양이,집사,편집부,스토리,엘르,elle.co.kr:: | 반려동물,펫,강아지,고양이,집사

편집장 최순영 언제쯤이면 가슴 한구석이 묵직하게 아려오는 느낌을 거둬내고 이 아이들을 떠올릴 수 있을까? 마지막까지 내 곁에 남아 있던 도이는 2년여의 뇌종양 투병 끝에 지난해 7월, 열여덟 살의 나이로 우리 가족 곁을 떠났다. 그날은 내 생일이기도 해서, 살아 있는 한 도이와의 이별은 생일마다 떠오를 기억이 됐다. 도이보다 몇 달 앞선 봄날엔 열일곱 살이었던 미유와 이별해야 했다. 1주일간의 해외 출장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다음 날이었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버텨준 걸까? 그리고 한참 전에 몇 차례의 대장 수술 후유증으로 떠나보냈던 까미. 미유는 도이 오빠보다 까미 오빠를 더 좋아했지…. 한동안 사람 많은 대로변에서 뜬금없이 도이의 귀 쫑긋거림이 떠오르거나, 길에서 삼색 고양이를 마주치면 미유가 떠올라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도이까지 떠나보낸 지 1년도 되지 않은 탓에 아이들 하나하나의 뒤통수와 발바닥 젤리를 만질 때의 감촉, 잠들 때면 내 겨드랑이에 얼굴을 파묻고 갸르릉거리던 울림과 소리까지 너무도 생생하다. 부디 무지개 다리 건너의 세상에서 우다다 하며 아프지 않고 행복하길. 다시 또 고양이와 함께 살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 사랑과 에너지를 당분간 세상의 모든 길냥이들과 사라져가는 안타까운 동물들의 삶이 나아질 수 있는 일에 기여하는 것으로 대신하고 싶다. 이달 <엘르> 지면을 통해 공감대를 넓히는 것을 시작으로.  뷰티 디렉터 정윤지 1월 11일은 숙희의 ‘새로운’ 생일이다. 매주 토요일 녹사평역 근처에 열리는 유기견 캠페인장에서 숙희를 데려온 날. 함께 산 지 5년이 넘은 지금의 숙희는 나보다 더 주인 같다. 조금이라도 퇴근이 늦으면 종이나 비닐을 뜯어먹으며 반항하질 않나, 산책 가자며 왕코로 계속 허벅지를 치질 않나, 사료와 닭 가슴살을 섞어놓으면 사료만 귀신같이 퉤 뱉어내질 않나…. 그러던 중 숙희의 견생에 큰 위기가 닥쳤다. 때는 바야흐로 2017년 6월. 옷에 돌돌 쌓인 채 회사 앞에 버려져 있던 새끼 고양이를 ‘냥줍’하게 된 것. 눈곱까지 덕지덕지 붙은 채 죽은 듯 웅크리고 있던 고양이가 바로 우리 집 새로운 상전, 똘복이다. 집에 온 첫째 날은 옷장 깊숙이 숨어 꼼짝도 않더니 밤이 되자 내 머리맡에 와서 첫 ‘쉬야’를 하는 맹활약을 펼쳤다. 그리고 둘째 날엔 당당히 거실을, 셋째 날엔 드디어 숙희를 접수했다. 잽과 훅이 자유로운 ‘냥 펀치’의 매운맛을 보여주는 것으로! 개와 고양이를 같이 키운다고 하면 십중팔구 듣는 질문이 “둘이 안 싸워요?”인데, 아직까지는 괜찮다. 여기저기 날리는 털도, 동물병원에 바치는 돈도, 사료와 간식도 모든 게 두 배 이상이지만… 괜찮다. 남편과 단둘이 보내는 휴가는 꿈도 못 꾸고, 가끔 시부모님이 쇠고기 먹으러 가자면 메뉴를 바꾸기 위해 핑곗거리를 만들어야 하고, 아이스라테만큼은 끊지 못해 우유를 마실 때마다 일말의 죄책감을 느껴야 하고, 동물복지 인증을 받은 자연방사란과 방목 버터를 찾아 마트를 헤매지만… 정말 괜찮다. 내가 힘들 땐 어찌 알아차리고는 쓱 다가와 엉덩이를 밀착시키는 ‘츤데레’ 숙희니까. 숙희가 몸을 피하면 더 이상 장난 걸지 않고 대신 내 앞에 와서 배를 까뒤집는 ‘낄끼빠빠’ 똘복이니까. 분명 앞으로도 쭉 괜찮을 거다. 그저 건강하게, 지금처럼 서로의 곁을 내어주며 살아갈 수 있길 바란다.사진가 우창원루와는 2014년 설날에 만났다. 지인이 유기견 보호소에 이런 개가 있다고 데려갈 사람이 나타나지 않으면 안락사를 해야 한다며 연락했을 때는 내 알 바가 아니다 싶었다. 앞서 래브라도 리트리버 두 마리를 떠나보낸 이후, 이제 개는 싫다고 마음을 단단히 먹은 차였다. 그러나 결국 강릉에 가서 돌아오는 차 안에는 루가 있었다. ‘애 하나 살려달라’는 문자까지 모른 척할 수 없었다. 나와 루 사이는 꽤 덤덤하다. 하지만 덤덤하든 좋아 죽든 간에 일단 개를 데려온 이상 해야 할 책임은 정해져 있는 법이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자기 인생에 정해진 걸 어떻게 할 수는 없지만, 루와 만나서 내가 루를 조금 도와주게 된 거라고 생각한다. 자기가 필요한 게 있을 때는 애교를 부리다가도 눈치를 쓱 보고 자기 자리로 돌아갈 때나, 선물해 준 사람 보기 머쓱할 정도로 장난감에 별 관심을 갖지 않는 걸 볼때면 루가 좀 더 활발하고 싹싹한 개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차분한 사람에게 억지로 흥을 내라고 할 수 없는 것처럼 루는 루다. 참을성 많은 성정 때문에 아프지만 않다면 아무래도 좋지 않을까. 그래도 스튜디오에 여러 번 놀러 온 사람들은 루를 보고 “예전보다 밝아졌다” “루랑 친해진 것 같다”고 한다. 그럴 때면 나는 속으로 ‘칫! 지가 주인 행세를 하네’ 하고 말지만. 피처 에디터 이마루인생은 레벨업이 아니라 스펙트럼을 넓히는 것. 어디선가 본 이 문장을 종종 떠올린다. 적어도 동물에 관해서만은 내 세계는 훌륭하게 확장하고 있으니까. 시골에서 보낸 어린 시절, 동물에 대한 내 경험은 폭력에 가까웠다. 뿔 잘린 녹용 농장 사슴들, 복날 나무에 매달린 개, 두더지를 돌로 내리치던 남자애들….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지만 원래 끔찍한 기억은 강렬한 법이다. 그러나 정작 동물권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건 대학생 때 과제를 하다 알게 된 2006년 한강맨션 사건이다. 길고양이들의 터전인 아파트 지하실을 봉쇄해 수십 마리의 고양이가 몰살당했단 그 사건 이후 예전엔 관심 없었던 길고양이들이 눈에 보였고, 얼마 뒤 내 첫 반려묘 라르장을 데려오게 됐다. 식구는 계속 늘어났다. 동네에서 울던 아기 고양이 장수를 만났고, 수년 전쯤 귀농한 부모님 댁에는 사람들이 별 상의도 없이 맡기고 간 개 두 마리 소리와 뽕띠가 생겼다. 돌이켜보면 나 역시 부족한 점도 많았고(혹시 내가 장수를 ‘냥줍’이 아닌 ‘납치’한 건 아닐까?), 나와는 동물에 대한 인식이 다른 부모님과 트러블도 있었지만(암컷 뽕띠와 수컷 소리의 중성화 문제) 개통령 강형욱조차 과거에는 부족함이 있었다. 우리 모두 좀 더 나아질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은 희망이 된다. 동물을 사랑할수록 보이는 현실은 대개 마음 아프다. 그러나 몰랐던 때로 돌아갈 순 없다. 조만간 인생 목표 중 하나인 비건에 재도전하려 한다. 그때 바라보는 세상은 또 조금 다른 색을 띠고 있겠지.아트 디자이너 김려은어쩌다 보니 고양이 세 마리와 살고 있다. 지금의 나는 털 지옥에서 살아남기 위한 청소왕이자, 작은 물건 하나도 마음대로 사지 못하는 정리왕이다. 누군가가 내게 왜 그렇게 사느냐고 물으면 이렇게 답한다. “시간이 없다고.” 신싱은 회사 선배가 임신한 것을 모르고 데려온 길고양이의 아이 중 하나였다. 출산 후 집을 나간 어미를 대신해 선배와 정신없이 새끼 고양이 다섯 마리를 돌보다가 삼색 냥이 한 마리와 정이 들었다. 그게 내 첫 고양이 신싱이다. 뽀송은 전주 출신으로 원래 이름은 누룽지였다. 신싱이가 외롭지 않을까 싶어 고양이 분양 글에 댓글을 단 지 몇 주가 지난 뒤 갑자기 원래 주인이 떠맡기듯 두고 갔다. 무슨 일을 겪었는지 아직도 사료를 주면 허겁지겁 먹고 토하고 다시 먹는 뽀송이를 보며 남한테 절대 상처 주지 않고 살리라 다짐한다. 막내 소금이는 원래 회사 뒤 주차장에 살던 아이였다. 아이가 사나흘 보이지 않아 걱정하던 무렵 다시 나타난 모습이 가관이었다. 몸에는 곰팡이가 피고, 한쪽 눈을 아예 뜨지도 못하는 상태. 치료하고 돌려보낼 목적으로 집에 데려와 함께 사는 한 달 동안 귀가 들리지 않고 지능이 살짝 떨어지는 걸 알게 됐고, 결국 가족이 됐다. 생각해 보면 세 마리 모두 내 인연이었다. 고양이의 수명은 길어야 20년, 심지어 체감 시간은 훨씬 더 빨리 간다. 그러니 정말 나는 시간이 없다. 내가 집에 가면 벌러덩 배를 보이고 눕는 이 따뜻하고 동그란 생명체로부터 받는 맹목적인 위로와 편안함에 힘껏 보답하고, 맘껏 사랑할 시간이.패션 에디터 이재희고백하자면, 동물과 함께 산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두는 편은 아니다. ‘초딩’ 시절 집 마당에는 개 여섯 마리가 있었고 토끼, 다람쥐와도 함께 살았지만 정작 나는 데면데면했다. 어쩌면 정을 주고 떼는 일이 두려웠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 우리 집에는 나만 따르는 잘생긴 호랑이를 포함해 아홉 마리의 고양이가 있다. 처음 함께 살게 된 고양이는 흰색 털이 예쁜 나비다. 임신을 이유로 이웃집에서 파양된 아이. 상황은 안타까웠지만 역시 크게 정을 주지는 않았다. 그러다 호랑이를 만났다. 학교 선배가 방치하던 고양이를 동생이 데려온 것이다. 처음이었다. 동물의 예민함과 슬픔의 존재를 느낀 것은. 물조차 마시지 않는 녀석이 안쓰러워 몇 시간이고 눈을 맞추고 손을 내밀었다. 마음을 연 걸까, 나만 따라다니며 내 목소리에 귀를 쫑긋 세우고, 슬그머니 다가와 머리를 부비는 녀석을 보며 내 마음의 한 부분도 ‘몽글몽글’, 변한 것 같다. 그렇게 같이 지내기를 5년, 나비의 중성화를 미루던 엄마는 나비의 신부 졸리를 데려왔다. 희한하게도 졸리는 호랑이는 쳐다보지도 않고 나비만 따랐고, 사랑의 결실로 아이들이 태어났다. 새벽에 침실 문을 열면 고양이들이 방문 앞에 옹기종기 모여 자다 깬 얼굴로 말을 건다. 허공에 건네는 말에도 녀석들은 대답한다. 어느덧 독립한 두 딸 대신 집을 지켜주는 녀석들 덕에 마음이 조금 놓인다. 그러고 보니 언제부터인가 나는 우리 식구 사료 공급 담당. 책임져야 할 입이 아홉이니 열심히 녀석들의 밥값을 벌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