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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의 사이. 예전에는 좋은 모습, 뭐든지 잘하는 모습만 보여주려고 했다. 힘들어도 안 힘든 척, 몰라도 아는 척, 짜증나고 포기하고 싶어도 성숙한 척. 그러다 보니 엄마한테 나를 숨기게 되더라. 엄마랑 멀어지는 것 같아서 있는 그대로의 나를 내보이기 시작했다. 엄마는 ‘우리 딸 아직 애기구나’ 걱정하실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친근감과 유대감이 큰 게 좋잖아. 한편으로는 ‘우리 딸은 아직 내가 지켜줘야 할 내 딸’ ‘우리 딸이 아직도 나를 의지하는구나’ 이런 인식도 심어드리고! 그리고 엄마랑 재미있게 잘 노는 것 같다. TV 보고 뭐 해먹고 수다 떨고. 무슨 할 얘기가 그렇게 많은지, 주제를 안 가리고 수다에 또 수다다.
집에서는 어떤 차림? 영화에 나오는 것 같은 섹시한 란제리를 입…고도 싶지만, 그래서 남자 독자들에게 판타지를 심어주고 싶지만, 늘 파자마를 입게 된다. 남자 파자마를 박시하게 입는 게 좋다. 하지만 애인이 생기면 그러지 않을 거다! 옷장에 모아둔 란제리 컬렉션이 얼만데! 애인 되시는 분,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하하.
평소 좋아하는 옷은? 티셔츠에 레깅스. 심플하고 중성적인 옷이 좋다. 패턴도 화려한 것 거의 없고, 컬러도 블랙, 화이트, 모노 톤. 옷장에도 티셔츠와 레깅스가 제일 많지만, 전혀 입고 다니지 않을 걸 뻔히 알면서도 그냥 너무 예뻐서 산 옷들도 많다. 시상식이나 파티, 큰 행사에 입을 법한 드레스들. 외국에 갔을 때 사오는 편인데, 국내에 아직 바잉이 안 된 옷들, 패션 피플들도 궁금해 할 만한 나만의 옷을 가지고 있는 즐거움이 있다. 엄마가 “입지도 않는 옷들을!” 하시지만, “기다려, 엄마. 언젠가 입을 거야!” 이러지. 앗, 그런데 도저히 시도 못하는 옷이 있다. 하렘 바지, 흔히 똥싼 바지라고 하지. 보기엔 멋있는데 도무지 내가 소화할 수 없을 것 같다.
외출할 때 꼭 챙기는 것. 핸드크림하고 립밤. 이 두 가지는 휴대전화처럼 챙긴다. 손발 건조한 걸 못 견딘다. 핸드크림 없으면 손도 못 씻겠어!
참, 일한 지 꽤 됐다. 데뷔한지 10년이라 하면 왠지 올드한 느낌이잖아. 아직은 이 업계의 베이비라 하고 싶다. 하지만 연기 인생, 엔터테인먼트 인생에서 터닝 포인트를 잡을 시점이 되긴 됐다. 대중이 나에게 원하는 모습이 있다는 걸 안다. 일정한 모습을 보여주는 게 어떻게 보면 맞는데, 내 안에는 다양한 모습, 다른 모습을 표현하고 싶은 갈증이 있다. 예전엔 막연히 ‘가야 할 길’을 갔다고 생각하면, 요즘 들어서는 ‘가고 싶은 길’을 가자는 생각이 있다. 여유를 가지고, 미련 없이, 용기 있게.
일하는 나와 평소의 나. 되게 다르다. 일에 있어서는 진취적이고 대범하고 욕심도 많다. 꼼꼼하고 까다로운 면도 있다. 예전엔 “신인인데 왜 그렇게 고집이 세냐” 이런 얘기를 많이 들었다. 이 부분에 대해 생각이 많았다. ‘난 대체 왜 그럴까? 좋은 게 좋은 건데, 좀 아니다 싶어도 넘어가고 타협하면 좋을 텐데.’ 그런데 그렇게 작업하고 나면 후회한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내 성향과 내 성격이 그러니까 내 스타일대로 밀고 가자.’ 프로로서 내 할 일을 명확히 하고 의견도 내는 거지. 결과가 좋으면 모두 인정해주니까.
인간 관계에서 데인 적은? 내가 당돌하고 적극적이고 활달할 거라는 선입견이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실제로는 굉장히 신중하고 겁도 되게 많다. 상처 받는 걸 두려워하고. 큰 용기를 내서 걸어나갔다가 상처 받을 기미가 보이거나 상처를 받으면 36계 줄행랑 치는 스타일이다. 상처 받을 것 같은 감이 있다면 사전에 차단하려고 하고. 지금은 내 인생에 있어서 정말 중요한 시점이다. 다른 쪽에서 상처를 받거나 에피소드가 생겨서 내가 흔들리면 안 된다. 그걸 감당할 여력이 없다.
초기와 현재를 비교해 본다면? 막 데뷔했을 땐 그냥 끌려 다니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내가 주도하는 편이다. 이제는 내가 하고 싶은 걸 명확히 아니까. 그때는 누가 이끌어주면 그대로 따라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배우로서 인정 받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컸고 배우의 길만이 정석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연기뿐 아니라 다양한 각도, 다양한 장르에서 인정 받고 싶다. 배우, 예능, 사업, 엔터테인먼트 등등. 요즘엔 멀리 플레이어가 시대의 흐름이잖아. 옛날부터 내려온 고정관념을 깨고 시대 변화에 맞게 활동하고 싶다.
여배우 하면 떠오르는 신비주의 장막 밖으로 나오는 것으로 이해해도 되나? 그런 접근보다는 원하는 즐거움을 충족시켜주겠다는 뜻이다. 대중이 나를 좋아할 땐 이유가 있다. 내 패션 스타일을 보고 시각적으로 즐거움을 얻을 수도 있고, 내 연기를 보고 캐릭터에서 즐거움을 얻을 수도 있다. 나한테 원하는 것을 알고 그걸 정확히 해주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엔터테인먼트는 연기뿐 아니라 모든 걸 포함하는 개념이잖아. 그런 면에서 봤을 때, 작품, 스타일링, 메이크업, 쇼, 노래 등등 뭔가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롤 모델이 있는지? 존경스럽고, 닮고 싶고 그런 사람들은 있다. 하지만 지금은 누군가를 따라가기보다는 내 자신에 대해 더 알아가자는 생각이다. 내가 어떻게 인생을 살아갈 건지, 어느 방향으로 가고 싶은지에 대해. 인생이 매 순간 명쾌하게 결정되는 게 아니잖아. 잘 모르겠다. 내가 성스러운 사람이 되고 싶은지, 멋진 커리어우먼으로 살고 싶은지, 베일에 감추어진 야리야리한 한송이 꽃이 되고 싶은 건지. 사람마다 자기에게 맞는 삶의 모양이 다 다르다고 생각한다. 어떤 모양으로 살 때 내가 가장 행복할 수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 뭐가 맞다, 이 시대에 그런 건 없다.
삶의 우선 순위. 옛날엔 정말 사랑이 전부라고 생각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거라고 생각했지. 내가 사랑하는 사람한테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멋진 사람이 되자, 이런 거. 지금은, 음…. <목적이 이끄는 삶>이라는 책을 좋아하는데, 삶 안에서 목적을 가지느냐 안 가지느냐가 얼마나 중요한지 얘기하는 책이다. 이제는 내 삶에 목적이 있는 게 제일 중요해졌다. 사랑이 됐든 일이 됐든 가족이 됐든 그 순간 그 시점의 목적.
지금 내 모습이 편한가? 예전에는 미성숙한 면들이 있어서 삶 자체도, 일하는 현장도 힘들었다. 지금은 그때보다 성숙해져서 편안해진 부분도 있다. 힘들 때 나를 타이르는 법도 알고, 인내하는 지구력도 생겼고. 그래도 한예슬 나 자신에 대한 편안함을 얘기하자면, 아니, 불편하다. 나는 나한테 절대 관대하지 않다.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숨을 헐떡이면서 달리고 있기 때문에, 나는 내가 힘들다. 내가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고 믿고 따를 수 있는 소울메이트가 나타나면 그제서야 더불어 편안함을 누릴 수 있겠지.
편안함과 별개로 지금 내 모습에 얼마만큼 만족하나? 항상 욕심은 있다. 하지만 성과에 만족한다. 어쨌든 아직까지는 포기하지 않고 달리고 있기 때문에. 나는 내가 만족스럽고 대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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