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여배우 한예슬 | 엘르코리아 (ELLE KOREA)

불멸의 여배우, 욕정의 수녀, 팜므파탈 킬러. 세 편의 단편 영화 같은 촬영이 끝나고, 한예슬이 숨을 고른다. 캐릭터에서 빠져나온 그녀는 우리가 익히 아는 얼굴의 한예슬로 돌아온다. 하지만 우리가 알지 못했던 그녀의 이야기는 이제 시작된다. ::한예슬, 길다, 리타 헤이워드,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 엘르, 엣진, elle.co.kr:: | ::한예슬,길다,리타 헤이워드,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엘르

여배우로 사는 걸까, 태어나는 걸까?어떤 사람들은 얘기한다. 타고나는 게 노력보다 중요하다고. 또 다른 사람들은 노력이 타고나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 점에 대해 많이 생각해 봤다. 첫째는 일단 일에 대한 열정인 것 같다. 여기에 천재성이 있다면 너무 좋겠고 후천적인 노력까지 곁들여지면 이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최상의 조건을 갖췄다고 할 수 있겠지? 나는 딱 어떤 쪽이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일을 해보니 내가 타고나서 잘하는 경우도 있었고, 노력해서 잘하는 경우도 있었다. 나한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정말 패션(passion)이다. 배우 일이 가장 고될 때는?사실 체력적으로 힘든 건 문제가 아니다. 하고자 하면 아무리 힘들어도 초인적인 힘이라는 게 나오잖아. 내가 지금 일을 즐기고 있지 않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 그 때가 가장 비참하고 고통스럽다. 또, 반복적인 일, 이미 내가 해봤던 일이라고 생각될 때. 우리는 감성과 창의성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들이잖아. 어떻게 보면 예술이라고 할 수 있겠지. 그런데 일에 루틴이 생기면 지루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정신적인 슬럼프도 그럴 때 찾아온다. 슬럼프에 대해 좀 더 얘기한다면?평화롭고 순조로울 때 생긴다. 소위 얘기하는 대박, 그러니까 시청률이 좋으면 ‘좋겠다’ ‘행복하겠다’ 생각하잖아? 그런데 난 공허감과 부담감이 같이 생긴다. 나한테 의욕을 넘치게 해줄 수 있는 뭔가를 찾아야 하고, 사람들의 기대를 넘어설 수 있는 걸 찾아야 하니까. 나는 오히려 잘 안 되고 있을 때 앞뒤 안 보고, 물불 안 가리고 일만 하는 것 같다. 그래도 안 되는 것보다는 잘 되는 쪽이 좋지. 어찌 보면 공허함, 고독함 이런 걸 얘기한다는 건 복에 겨운 불평, 행복한 고민이다. 일할 때 중요시 하는 것.의미가 있어야 한다. 그 의미는 다 다르다. 연기 공부가 되는 작품일 수도 있고, 너무 좋아하는 감독님과 작업을 하고 싶어서일 수도, 상업성일 수도 있다. 막상 들어가보니 예상과 달라지는 경우들도 있잖아.많다. 하지만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인생 살면서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경우는 없잖아. 일도 처음 기획대로 간다면 사실 모든 게 대박을 쳐야 된다. 하지만 결과에 너무 연연하지 않는다. 잘되면 잘되는 대로 더 책임감이나 성취감을 얻고, 안되면 또 그대로 배울 게 있다. 이쪽 일은 수학 공식처럼 계산해서 뽑아내는 게 아니니까. 캐릭터를 소화하는 방식은?캐릭터를 그대로 입는 것과 내 몸에 맞추는 것. 양쪽이 있는 것 같다. 내 경우엔 내 색깔을 많이 반영하는 편이다. 예를 들면, 기쁠 때 웃는 모습이 다 다르잖아. 이 사람이 웃는 방식, 저 사람이 웃는 방식…. 시놉시스에 있는 대로 캐릭터는 서있지만, 누가 들어가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발랄한 캐릭터라 해도 사람마다 발랄함의 농도와 수위가 다르다. 내가 표현하고 있는 방식, 내 룩에 물음표가 들 때면?그런 상황 굉장히 좋아하지 않는다. 최선의 방법은 집에 가는 거겠지만, 그럴 수는 없고…. 오히려 모든 걸 내려놓는다. 이상은 높은데 거기에 내 자신이나 상황이 못 미치는 것 같을 땐 작아지는 느낌이다. 그러면 일은 잘 풀리지 않는다. 그러니까 차라리 내 이상을 낮추는 거지. 작아진 마음을 급히 수습하는 주문은 이런 거다. ‘나는 미친년이야’ ‘나는 속도 없는 계집애야’ ‘나는 이 상태 그대로 마음을 열 테야’ 이러면 좋아진다.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 잘 온 것 같은지?나는 전혀 예상치 않은 부분에서 사랑을 많이 받았던 경험들이 많다. 이 얘기를 왜 하느냐면, 내가 의도한 길을 걸었는지 아닌지는 상관 없다. 지금까지 흡족한 결과를 얻었고, 사람들한테 인정 받고 사랑 받는 위치에 있는데 투덜거릴 여지가 전혀 없잖아. 연기뿐 아니라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이것도 마찬가지다. 계획하지 않은 곳에서 나에게 많은 기회가 왔고 내 길이 더 명확해진 경우가 많았다. 모든 가능성을 훑어보고 싶고, 항상 많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 드라마나 영화 등의 작품은 영원히 남는 결과물이 있다. 그리고 완성된 작품을 보면 마치 내 아이가 나온 것처럼 애정이 간다. 무대는 현장에서의 열기, 희열, 관객과의 소통이 있지. 나한테 주는 즐거움은 다 다르지만 결국 같다. 항상 타인의 시선이 있고 평가 받는 삶은 어떤지.처음엔 나에게 관심 가져주는 게 신기하고 행복했다. 사랑 받는 것 같고 특별한 존재 같고. 시간이 지나면서 무감각해지는데 이게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는 것 같다. 아니, 어떻게 보면 더 조심하게 되는 부분도 있다. 처음엔 마냥 좋고 만약 내가 실수해도 만회할 수 있는 기회도 주어질 것 같고, 마냥 용서해줄 것 같고…. 어찌 됐든 관심 받는 것만으로도 좋아, 이런 식의 개념이었다면 지금은 실망시키지 말고, 더 조심하고, 좋은 모습만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이 크다. 사소한 것에도 신중해진다. 그런 조심스러움 때문에 일상이 위축되는 면은?사실은 일상이랄 게 없다. 특별히 따로 즐기는 게 없으니 집에서 쉬면서 에너지를 비축한다. 연애는?예전에는 소소한 일상을 즐기고 알콩달콩 연애하고 싶은 열망이 늘 있었다. 먼 미래를 바라봤던 것 같다. 10년 후 엄마가 되고, 아이가 있고 이런 것들. 하지만 요즘에는 당장 눈 앞에 보이는 일주일치 스케줄을 어떻게 소화할지 생각한다. 예전엔 이상주의자였다면 이제는 건조한 현실주의자가 된 거지. 그러다 보니 연애까지 관심 없어지려고 한다. 떨림이 없다. 건어물녀 같다. 강아지나 키우며 살까 봐. 남자들이 가만 두지 않을 텐데!그랬으면 싶기도 하지만, 여유가 없기도 하다. 시작할 수가 없다. 연애를 하면서 그 과정을 통해 서로 맞는지 안 맞는지 알아낼 수 있는데, 그게 잘 안 된다. 과정을 즐기는 게 연애의 묘미인데, 미리 스트레스를 받으니까. 누구 한번 만나면 “어디서 누구랑 있더라” “둘이 만난대” “둘이 사귄대” 이렇게 되니까. 몇 번 만났다가 스캔들이 나면 사귀기도 전에 이미 나는 ‘품절녀’가 되는 거다. 이런 걸 다 생각해보면, ‘에이, 내가 좀 외롭고 말지.’ 이렇게 된다. 엄마가 예전에 이러셨다. “어쩌냐, 네 청춘에 연애도 하고 싶겠지만 하나를 얻으면 하나는 버려야지. 나중에 후회 안 할 자신 있으면 해봐.” 후회할 걸 아니까 더 못하지.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 일명 지인은 누군가?하느님! 내가 가장 힘들 때 의지하고 싶은 지인이라 하겠다. 엄마는 힘들 때나 좋을 때나 내 곁을 지켜주는 지인. 소소한 일들을 함께 하는 이들은 어릴 적 친구들이다. 지금은 엄마가 같이 와계셔서 안 그렇지만 가족과 친구들이 모두 미국에 있다 보니, 얼마 전까지만 해도 너무 외로웠다. 정말 하아~ 앞이 깜깜하고 어쩔 줄 모르겠고 끝이 안 보이는 고독. 지금은 생활도 생각도 단순해졌다. 익숙해져서 그런가? 아니면 초월한 걸까? 포기한 걸까? 성숙해졌나? 모르겠다. 마음이 아줌마 된 것 같다. 이래도 흥, 저래도 흥. 신경 많이 갈 만한 일들은 시작하지도 않고 만들지도 않는다. 엄마와의 사이.예전에는 좋은 모습, 뭐든지 잘하는 모습만 보여주려고 했다. 힘들어도 안 힘든 척, 몰라도 아는 척, 짜증나고 포기하고 싶어도 성숙한 척. 그러다 보니 엄마한테 나를 숨기게 되더라. 엄마랑 멀어지는 것 같아서 있는 그대로의 나를 내보이기 시작했다. 엄마는 ‘우리 딸 아직 애기구나’ 걱정하실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친근감과 유대감이 큰 게 좋잖아. 한편으로는 ‘우리 딸은 아직 내가 지켜줘야 할 내 딸’ ‘우리 딸이 아직도 나를 의지하는구나’ 이런 인식도 심어드리고! 그리고 엄마랑 재미있게 잘 노는 것 같다. TV 보고 뭐 해먹고 수다 떨고. 무슨 할 얘기가 그렇게 많은지, 주제를 안 가리고 수다에 또 수다다. 집에서는 어떤 차림?영화에 나오는 것 같은 섹시한 란제리를 입…고도 싶지만, 그래서 남자 독자들에게 판타지를 심어주고 싶지만, 늘 파자마를 입게 된다. 남자 파자마를 박시하게 입는 게 좋다. 하지만 애인이 생기면 그러지 않을 거다! 옷장에 모아둔 란제리 컬렉션이 얼만데! 애인 되시는 분,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하하. 평소 좋아하는 옷은?티셔츠에 레깅스. 심플하고 중성적인 옷이 좋다. 패턴도 화려한 것 거의 없고, 컬러도 블랙, 화이트, 모노 톤. 옷장에도 티셔츠와 레깅스가 제일 많지만, 전혀 입고 다니지 않을 걸 뻔히 알면서도 그냥 너무 예뻐서 산 옷들도 많다. 시상식이나 파티, 큰 행사에 입을 법한 드레스들. 외국에 갔을 때 사오는 편인데, 국내에 아직 바잉이 안 된 옷들, 패션 피플들도 궁금해 할 만한 나만의 옷을 가지고 있는 즐거움이 있다. 엄마가 “입지도 않는 옷들을!” 하시지만, “기다려, 엄마. 언젠가 입을 거야!” 이러지. 앗, 그런데 도저히 시도 못하는 옷이 있다. 하렘 바지, 흔히 똥싼 바지라고 하지. 보기엔 멋있는데 도무지 내가 소화할 수 없을 것 같다. 외출할 때 꼭 챙기는 것.핸드크림하고 립밤. 이 두 가지는 휴대전화처럼 챙긴다. 손발 건조한 걸 못 견딘다. 핸드크림 없으면 손도 못 씻겠어! 참, 일한 지 꽤 됐다.데뷔한지 10년이라 하면 왠지 올드한 느낌이잖아. 아직은 이 업계의 베이비라 하고 싶다. 하지만 연기 인생, 엔터테인먼트 인생에서 터닝 포인트를 잡을 시점이 되긴 됐다. 대중이 나에게 원하는 모습이 있다는 걸 안다. 일정한 모습을 보여주는 게 어떻게 보면 맞는데, 내 안에는 다양한 모습, 다른 모습을 표현하고 싶은 갈증이 있다. 예전엔 막연히 ‘가야 할 길’을 갔다고 생각하면, 요즘 들어서는 ‘가고 싶은 길’을 가자는 생각이 있다. 여유를 가지고, 미련 없이, 용기 있게. 일하는 나와 평소의 나. 되게 다르다. 일에 있어서는 진취적이고 대범하고 욕심도 많다. 꼼꼼하고 까다로운 면도 있다. 예전엔 “신인인데 왜 그렇게 고집이 세냐” 이런 얘기를 많이 들었다. 이 부분에 대해 생각이 많았다. ‘난 대체 왜 그럴까? 좋은 게 좋은 건데, 좀 아니다 싶어도 넘어가고 타협하면 좋을 텐데.’ 그런데 그렇게 작업하고 나면 후회한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내 성향과 내 성격이 그러니까 내 스타일대로 밀고 가자.’ 프로로서 내 할 일을 명확히 하고 의견도 내는 거지. 결과가 좋으면 모두 인정해주니까. 인간 관계에서 데인 적은?내가 당돌하고 적극적이고 활달할 거라는 선입견이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실제로는 굉장히 신중하고 겁도 되게 많다. 상처 받는 걸 두려워하고. 큰 용기를 내서 걸어나갔다가 상처 받을 기미가 보이거나 상처를 받으면 36계 줄행랑 치는 스타일이다. 상처 받을 것 같은 감이 있다면 사전에 차단하려고 하고. 지금은 내 인생에 있어서 정말 중요한 시점이다. 다른 쪽에서 상처를 받거나 에피소드가 생겨서 내가 흔들리면 안 된다. 그걸 감당할 여력이 없다. 초기와 현재를 비교해 본다면?막 데뷔했을 땐 그냥 끌려 다니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내가 주도하는 편이다. 이제는 내가 하고 싶은 걸 명확히 아니까. 그때는 누가 이끌어주면 그대로 따라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배우로서 인정 받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컸고 배우의 길만이 정석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연기뿐 아니라 다양한 각도, 다양한 장르에서 인정 받고 싶다. 배우, 예능, 사업, 엔터테인먼트 등등. 요즘엔 멀리 플레이어가 시대의 흐름이잖아. 옛날부터 내려온 고정관념을 깨고 시대 변화에 맞게 활동하고 싶다. 여배우 하면 떠오르는 신비주의 장막 밖으로 나오는 것으로 이해해도 되나?그런 접근보다는 원하는 즐거움을 충족시켜주겠다는 뜻이다. 대중이 나를 좋아할 땐 이유가 있다. 내 패션 스타일을 보고 시각적으로 즐거움을 얻을 수도 있고, 내 연기를 보고 캐릭터에서 즐거움을 얻을 수도 있다. 나한테 원하는 것을 알고 그걸 정확히 해주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엔터테인먼트는 연기뿐 아니라 모든 걸 포함하는 개념이잖아. 그런 면에서 봤을 때, 작품, 스타일링, 메이크업, 쇼, 노래 등등 뭔가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롤 모델이 있는지?존경스럽고, 닮고 싶고 그런 사람들은 있다. 하지만 지금은 누군가를 따라가기보다는 내 자신에 대해 더 알아가자는 생각이다. 내가 어떻게 인생을 살아갈 건지, 어느 방향으로 가고 싶은지에 대해. 인생이 매 순간 명쾌하게 결정되는 게 아니잖아. 잘 모르겠다. 내가 성스러운 사람이 되고 싶은지, 멋진 커리어우먼으로 살고 싶은지, 베일에 감추어진 야리야리한 한송이 꽃이 되고 싶은 건지. 사람마다 자기에게 맞는 삶의 모양이 다 다르다고 생각한다. 어떤 모양으로 살 때 내가 가장 행복할 수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 뭐가 맞다, 이 시대에 그런 건 없다. 삶의 우선 순위.옛날엔 정말 사랑이 전부라고 생각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거라고 생각했지. 내가 사랑하는 사람한테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멋진 사람이 되자, 이런 거. 지금은, 음…. 이라는 책을 좋아하는데, 삶 안에서 목적을 가지느냐 안 가지느냐가 얼마나 중요한지 얘기하는 책이다. 이제는 내 삶에 목적이 있는 게 제일 중요해졌다. 사랑이 됐든 일이 됐든 가족이 됐든 그 순간 그 시점의 목적. 지금 내 모습이 편한가?예전에는 미성숙한 면들이 있어서 삶 자체도, 일하는 현장도 힘들었다. 지금은 그때보다 성숙해져서 편안해진 부분도 있다. 힘들 때 나를 타이르는 법도 알고, 인내하는 지구력도 생겼고. 그래도 한예슬 나 자신에 대한 편안함을 얘기하자면, 아니, 불편하다. 나는 나한테 절대 관대하지 않다.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숨을 헐떡이면서 달리고 있기 때문에, 나는 내가 힘들다. 내가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고 믿고 따를 수 있는 소울메이트가 나타나면 그제서야 더불어 편안함을 누릴 수 있겠지. 편안함과 별개로 지금 내 모습에 얼마만큼 만족하나?항상 욕심은 있다. 하지만 성과에 만족한다. 어쨌든 아직까지는 포기하지 않고 달리고 있기 때문에. 나는 내가 만족스럽고 대견하다. HOW WE MADE IT…지난해 11월이었다. 한예슬과의 작업 얘기가 처음 나온 때는. 하지만 이때는 아무도 몰랐다. 그 얘기가 이렇게 발전될 줄은. 또 그 즈음이었다. 는 물론 영화계와 엔터테인먼트 업계 주변에서 “요즘 우리나라 영화에 부쩍 남자 캐릭터들이 두드러지고, 여자의 시각에서 얘기하는 작품들이 줄어들었다.”는 말이 오고 간 때는. 하지만 ‘한예슬’과 ‘영화 속에서 사라진 여성들’은 두 개의 우주는 뱅글뱅글 따로 돌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둘은 하나로 통했다. “영화감독들과 배우 한예슬이 힘을 합쳐 여성 캐릭터가 중심이 되는 얘기를 만들어보겠다. 는 그 사이에서 접점을 찾아 그 얘기를 비주얼로 구현해 보겠다.” 보무도 당당하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걸까. 얼만큼의 긴 여정(?)이 될 줄은 몰랐으나 어쨌든 공은 던져졌다.1월. 한예슬은 드라마 촬영이 한창이었다. 영화 쪽 접촉을 시작해 보기로 했다. 감독들의 근황을 알음알음 조사하던 중 이병원 PD에게 SOS를 청했다(나중에 들어보니 그녀는 몇 번이고 “아이고, 도저히 못하겠습니다!” 도망가고 싶었으나, 번번이 의 설득에 가로막혔다고).2, 3월은 훌쩍 지나갔다. 의 윤종석, 의 장훈, 의 박신우. 세 감독들이 ‘재미있어 보이지만 낯설고 고된’ 작업에 손을 내밀어주었다. “처음 시도되는 의미있는 프로젝트” “같이 작업해보고픈 매력적인 배우” “비주얼 작업에 대한 관심”을 이유로(한예슬이라는 배우의 일당백 파워가 가장 컸으며, PD와 의 근성 넘치는 읍소가 곁들여졌다고 얘기할 수 있겠다). 어느새 “영화감독들이 스토리 속 캐릭터로 분해 촬영하자!”는 조건이 은근슬쩍 따라붙었으니 감독들 입장에서는 ‘낚였다’는 기분이 들었을 수도….그 다음엔 영화 만들 듯 시놉시스와 캐릭터 구축 작업이었다. 어느 정도 뼈대가 나오면 수많은 논의가 오갔다. “과거 캐릭터를 오마주할 것인지, 새로운 캐릭터를 창조할 것인지” “스토리가 패션적으로 구현 가능한지” “움직이는 영상과 달리 2차원의 지면에서는 느낌이 어떻게 달라질지” 등등. 이런 과정을 통해 영화감독과 사진가, 의 크리에이티브는 치열하고도 우아하게 접점을 찾을 수 있었다. 한예슬에게도 줄거리와 캐릭터가 전달됐다. 짧은 시간 안에 마치 세 편의 영화를 찍듯이 세 인물에 몰입하는 만큼 그녀도 준비할 시간이 필요했다. 현장 에너지들의 어울림과 우연에 의한 변수를 맞닥뜨리는 일은 촬영 당일의 과제로 남겨두었다. 그리고 4월 4일 일요일 저녁 7시. 윤종석 감독의 ‘리타 헤이워드의 오마주’ 촬영날이 됐다. 메이크업 룸에서는 마침내 한예슬이 세트로 들어섰다. 4개월 넘도록 준비해온 일이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가장 편한 자세로 앉아봐요.” 윤종석 감독의 얘기와 함께 한예슬은 포즈를 취하기 시작했고, 사진가 홍장현의 손놀림이 빨라졌다. 촬영은 자정이 다 돼 끝났다. 스튜디오엔 환청이 들리는 것 같았다. “고전적인 여배우 역할이 정말 잘 어울린다.”는 감독, “아주 만족스러운 작업”이라는 사진가, “정말요? 호호호~” 웃는 한예슬의 목소리가.4월 6일 화요일 낮 12시. 우리는 다시 스튜디오에 모였다. 장훈 감독과 함께 작업한 ‘욕정의 수녀’, 박신우 감독이 준비해준 ‘팜므파탈 여성 킬러’, 두 가지 촬영을 위해서. 창백한 얼굴에 불타는 듯한 빨간 머리를 한 한예슬이 메이크업 룸에서 나왔고 다시 촬영이 시작됐다. “표정이 참 좋다” “어떻게 해도 아름답다” 장훈 감독의 칭찬에 한예슬도 더욱 힘을 냈다(장훈은 주로 남자 배우들과 작업해 와서 여배우들과 소통할 기회가 많지 않았던 터라 더욱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 마지막 촬영은 저녁 7시가 되어 시작됐다. 사진 속에서 형사 역할로 등장하는 박신우 감독은 캐릭터 소화를 위해 무려 스모키 아이 메이크업을 받기도! 그리고 드디어 마지막 컷이 끝났다. 짝짝짝! 모두 ‘후련하다’ 보다는 ‘정말 끝난 건지’ 반신반의, 꿈 꾸는 듯한 표정이었다.다음 날 오후 3시, 와 한예슬은 인터뷰를 위해 다시 만났다. 그녀는 생기 넘치는 얼굴, 들으면 기분 좋아지는 목소리, 우리가 아는 한예슬로 돌아와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한없이 사랑스럽고 솔직하면서도 때론 진중하고 철학적으로 자신의 얘기를 들려줬다.이제 정말 끝, 끝, 끝! 의 뚝심을 믿고 함께 고민하고 준비하고 참여해준 모든 이들의 전심이 이 지면을 통해 고스란히 전달되길 바라면서, 소감을 말하자면? “숙제 끝낸 아이, 수능 시험 마친 학생 같다. 내가 원해서 한 작업이고 재미있었다.”는 한예슬의 소감과 이하 동문! *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5월 호를 참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