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인도 출입 가능한 헬싱키 대학 도서관 (Kaisa House)은 아름다운 건축으로 이름 높다.
핀란드 디자인 브랜드 제품으로 꾸며진 알론코티 아파트.
알바 알토의 삶과 취향을 고스란히 간직한 알토 하우스.
사우나와 바다 수영, 술과 요리를 즐길 수 있는 로일리.
키치한 매력의 헬싱키 아트 뮤지엄.
전시 공간 자체가 매력적인 키아즈마 현대미술관.
반타 공항에 내려 핀에어 로고가 새겨진 하얀색 공항버스에 올랐다. 40분쯤 달려 헬싱키 중앙역에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눈을 사로잡은 건 역내에 자리한 웅장한 버거킹이었다. 1919년에 지어진 헬싱키 중앙역은 핀란드를 상징하는 건물 중 하나다. 이 유서 깊은 건물의 거대한 모자이크 타일 벽화 아래에 햄버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줄 서 있는 광경이라니! 낯설고 멀게만 느껴졌던 도시가 단번에 친근해졌다. 당장 두툼한 버거를 손에 쥐고 싶은 마음은 나중에, 일단 숙소로 향했다. 헬싱키에서 보낼 일주일 동안 머물 알론코티 아파트먼트 (Aallonkoti Apartment)는 탁 트인 테라스와 세탁기, 부엌 용품 그리고 핀란드식 사우나까지, 그야말로 생활에 필요한 모든 걸 갖춘 콘도미니엄이다. 중앙역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인 아파트까지 걷는 동안 왼편으로 넓은 잔디와 탁 트인 하늘이 펼쳐졌다. 그리고 시야에 들어온 부드럽고 웅장한 곡선을 가진 흰색 건물. 이럴 수가, 핀란디아 홀(Finlandia Hall)이다! 핀란드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하는 건축가이자 디자이너 알바 알토(Alvar Aalto)의 대표작. 일부러 찾아가서 봐야 할 기념비적인 건물을 헬싱키에 도착한 지 1시간 만에 마주한 거다. 아파트에 들어서자 그야말로 핀란드 디자인이 ‘일상 패치’된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알바 알토의 조명 아래 아르텍 식탁 위를 이딸라 물병과 마리메꼬 찻잔이 장식하고 침대 커버를 비롯해 방 곳곳에 놓인 패브릭은 모두 마리메꼬 패턴이다. 그리고 귀여운 무민이 그려진 지도까지. 우리에게도 꽤 익숙한 핀란드 디자인을 헬싱키에서 머무는 동안 곳곳에서 마주할 것이라는 걸 이때는 몰랐다(특히 마리메꼬 에코백은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하도 많아서 나중에는 한국의 노란색 이마트 장바구니 같은 존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 알바 알토의 흔적을 좇는 것은 헬싱키를 여행하는 꽤 괜찮은 방법이지만, 특히 알바 알토의 스튜디오와 집은 꼭 방문할 것을 권하고 싶다. 시내에서 버스로 20분 정도 거리에 자리한 알바 알토 스튜디오와 하우스는 서로 5분 거리인데, 홈페이지(www.shopalvaraalto.fi)에서 티켓을 미리 구입하고 약속한 시간에 문을 두드리면 친절한 재단 직원의 설명과 함께 10~15명 규모의 소규모 견학이 시작된다. 알바 알토는 20세기 진입을 앞둔 1898년에 태어나 1976년에 세상을 떠났다. 평생 간결하고, 실용적이면서도 아름다운 디자인을 추구한 그는 특히 핀란드의 자연에 애정을 가지고 집과 외부 환경을 연결하기 위해 노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생을 마감할 때까지 머물렀던 알바 알토 하우스는 그의 공간 철학과 함께 평생 공들여 디자인한 제품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완벽한 장소다. 1935년에 알바 알토가 직접 설립한 가구 회사 아르텍은 지금도 건재하지만 그래도 더 이상 구하기 힘든 빈티지 체어와 가구를 비롯해 소품과 조명, 장식품들이 한데 놓인 풍경은 각별할 수밖에 없다. 알바 알토가 사보이 레스토랑을 위해 만든 꽃병 알토 베이스(Aalto Vase), 아이노 알토가 디자인한 유리잔 라시(Lasi)처럼 이딸라의 시그너처 제품도 구석구석을 차지한다. 헬싱키 디자인 디스트릭트에 자리한 디자인 뮤지엄(Design Museo)도 좋은 행선지다. 전시 자체도 다채롭지만 100여 개의 로컬 디자이너와 아티스트 공방이 들어선 디자인 디스트릭트를 거닐며 나만의 특별한 제품을 만날 수도 있을 테니까. 디자인을 벗어난 또 다른 범주의 핀란드 아트 신이 궁금하다면? 꼭 찾아야 할 세 개의 미술관이 있다. 아테네움(Ateneum)은 핀란드 국립미술관이라는 위용에 걸맞은 장소로, 1층의 우아한 비스트로는 평일 점심에는 뷔페로 변신한다. 미술관의 자랑인 르 코르뷔지에와 레핀 그리고 뭉크의 작품 외에 2020년까지 칼 라르슨과 피카소, 핀란드를 대표하는 두 여성 화가인 토베 얀손과 헬레나 세르프백의 작품을 좀 더 보강할 예정. 핀란드의 국립현대미술관 키아즈마(Kiasma)는 아마 헬싱키에서 가장 인기 있는 미술관 중 하나일 거다.
19세기 낡은 건물에 카페와 바, 식당이 들어섰다.
시내 중심에 자리한 아카데미아 서점 역시 알바 알토가 디자인한 것.
사우나와 수영,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으로 가득한 알라스 시 풀의 데크.
아기자기한 카페 레가타.
1998년에 문을 연 5층 건물은 공간과 배열이 전시를 감상하는 데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깨닫게 한다. 위트 있고 모던한 젊은 작가들의 전시가 주를 이루는 키아즈마가 마음에 들었다면 보다 키치한 매력의 HAM(Helsinki Art Museum)으로 향할 것. 1950년 헬싱키 올림픽을 위해 지어진 테니스 경기장 건물 1·2층은 멀티플렉스로, 3·4층은 전시장으로 활용 중이다. HAM이 특별한 또 다른 이유는 9천 여 점의 작품을 대대적으로 모아 그중 절반을 공원과 사무실, 도서관과 헬스 센터 등 평범한 핀란드 사람들의 생활 속에 배치하는 대작업에 착수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그래피티를 주제로 전시를 펼치기도 했다. 심지어 이 세 미술관은 헬싱키 중앙역을 기점으로 모두 도보 5~10분 거리이니. 한 군데라도 들르지 않을 이유가 없다. 헬싱키를 설명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 하나는 바다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사실인데도 헬싱키의 여름을 직접 대면하기 전에는 몰랐다. 이렇게 곳곳에서 바다를 만나게 될 줄은! 보트와 서핑보드를 타는 사람들을 보며 호수라고 생각했던 곳도 나중에 알고 보면 바다였다. 하얗게 쌓인 눈과 얼음, 오로라가 없는 대신 8월의 핀란드는 반짝이는 바다와 벌겋게 달아오른 피부로 여름을 만끽하는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낮이면 28℃까지 오르는 기온은 헬싱키 기준으로는 폭염이지만 이런 날씨를 싫어하는 사람은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 유럽의 소규모 브루어리들이 모이는 ‘크래프트 비어 가든 페스티벌’ 주최자인 알렉시는 “이건 이상기온이야!”라면서도 즐거운 표정으로 맥주를 꿀꺽꿀꺽 마셨고, 헬싱키 시 관계자인 엘리자베스는 “이때 오다니 넌 행운이야”라고 말했다. 엘리자베스가 겨울이 되면 사우나를 한 뒤 얼음 바다로 뛰어들 정도로 ‘강인한’ 핀란드인이라는 건 나중에 알았지만 말이다. 그렇다. 사우나! 사우나야말로 핀란드 사람들이 여름을 활용하는 가장 근사한 방식이다. 온돌과 찜질방의 후손으로서 이곳에 오기 전까지 핀란드 사우나 문화를 내심 얕봤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인구 540만 명의 나라에 크고 작은 사우나가 330만 개나 있을 정도로 핀란드인의 사우나 사랑은 따라잡을 수 없다는 걸 말이다. 8월의 헬싱키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장소인 사우나 로일리(Loyly)와 알라스 시 풀(Allas Sea Pool)은 수증기가 푹푹 올라오는 전통 핀란드 사우나에서 땀을 쭉 뺀 후, 수영복을 입고 바다나 수영장으로 ‘풍덩’ 뛰어들 수 있는 곳이다. 대중탕과 수영장이 낯설더라도 헬싱키를 찾는다면 사우나는 반드시 경험해 보길 바란다. 바다 수영만큼이나 다양한 연령과 체형, 각기 다른 피부색의 사람들이 완전히 개방된 장소를 자유롭게 다니는 것을 구경하는 것 또한 엄청난 해방감을 선사해 줄 테니까. 헬싱키는 현재 유럽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도시 중 하나다. 현재 60만 명이 조금 넘는 헬싱키 인구는 2050년까지 86만 명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그 사실을 증명하듯, 곳곳에서 공사 중인 풍경을 쉽게 볼 수 있지만 번잡하거나 소란스럽다는 표현은 이 도시와 어울리지 않는다. 수준 높은 음악을 연주하는 거리의 음악가들, 반려견과 느긋하게 산책을 즐기는 이들 사이로 휠체어와 목발을 짚은 이들 또한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헬싱키에 머무는 동안 나는 ‘휘바휘바’가 아닌, 핀란드어를 몇 개 더 배웠다. ‘모이모이(Moi; 안녕)’ ‘키토스(Kiittos; 고마워)’ 그리고 핀란드를 의미하는 수오미(Suomi). 몇 가지 외운 단어들의 부드럽고 간결한 음절을 꼭 닮은 이 도시의 다른 계절은 어떨는지, 지금도 궁금하다.
TRIP TO TALLINN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의 올드타운은 유럽에서 중세의 흔적이 가장 잘 보존된 돋시로 꼽힌다. 크루즈에 몸을 싣고 두 시간만 지나면 모던한 헬싱키와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질 것. 당일치기 크루즈 여행은 헬싱키 사람들에게도 인기인데, 구석구석 도시를 돌아보기 위한 체력 비축이 필요하다면 탈링크 실리아 라인(Tallink Silja Line)의 크루즈 비즈니스 라운지 이용을 권한다. 올드 타운의 성벽을 벗어나 발티 역(Balti Jaam) 쪽으로 나가면 공장을 개조한 바와 가게가 보인다. 로컬 마켓은 동유럽 앤티크 제품을 구입하기도 좋다. 나는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마스코트 인형을 구입했다!
WHERE TO EAT
SAVOY 1936년에 지어진 건물 최고층에 자리한 사보이는 헬싱키에서 가장 완벽한 장소다. 테라스에서 전경을 감상하고 싶다가도, 실내에 앉아 알토 부부의 가구와 디자인을 바라보며 컨템퍼러리 퀴진을 맛보고 싶기도 하다. 물론 이 모든 걸 누리기 위한 대가는 꽤 비싸다.
EKBERG 1852년에 문을 연, 핀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베이커리 겸 카페. 최근에 레너베이션을 마쳤지만 우아한 공기는 여전하다. 매일 아침 시간 카페에서 즐길 수 있는 뷔페에서 현지인과 브런치를 즐길 것. 바로 옆에 있는 베이커리 & 델리 숍도 훌륭하다.
JUURI 핀란드 전국에서 조달한 재료의 식감, 싱싱한 허브 향이 이국적인 느낌을 더한다. 3코스로 구성된 런치 코스를 추천. 핀란드식 타파스를 의미하는 사파스(Sapas)에 골고루 도전해도 좋다. 달걀과 양파를 곁들인 청어, 핀란드의 소규모 치즈 농장에서 만든 치즈 등이 메뉴에 올라 있다.
KUUMA 개성 넘치는 세 여자가 함께 운영하는 카페. 흰색과 하늘색 타일을 이용한 경쾌한 공간은 센스 좋은 친구의 거실에 초대받은 분위기다. 아보카도 토스트와 유기농 스크램블드에그, 치아 시드 푸딩, 요거트 같은 건강한 음식을 올 데이 브렉퍼스트로 즐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