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 스킨케어를 하게 된 이유? 어쩌다, 아니 ‘어쩔 수 없이’라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할 듯싶다. 한 달 간의 꿀 같은 휴가를 맞아 오랜 숙원사업이던 눈매 교정 수술을 감행한 에디터. 화장 솜에 클렌징 워터를 적셔 눈가를 피해 살살 닦는 고양이 세수를 한 뒤, 워터 에센스를 화장 솜에 적셔 역시 눈가를 피해 슬슬 흡수시키는 것이 한동안 할 수 있는 최선의 스킨케어였다. 발단은 여기서 시작됐다. 퉁퉁 부어 손끝 하나 건드리지 못하는 눈가 피부는 논외로 치고, 클렌징 워터로 피부 표면의 유분기를 닦은 뒤 워터 에센스만 여러 번 덧바른 피부 상태가 예상 외로 괜찮았던 것. 피부가 살짝 땅긴다고 느낀 건 잠시뿐, 수십 분이 지나자 천연 피지가 올라오면서 유수분 밸런스가 자연스럽게 맞춰지기까지?! 수술 후 5일이 지나 실밥을 풀고 물 세안을 해도 된다는 성형외과 의사의 허락을 받았음에도 난 여전히 클렌징 워터를 사용한 고양이 세수법과 워터 에센스를 화장 솜에 적셔 서너 번 덧바르는 스킨케어 루틴을 유지했다. 아직도 그러냐고? 헤어 라인을 따라 올라온 지성 피부의 숙명, 화이트 헤드가 거슬려 어쩔 수 없이 클렌저를 쓴다는 게 딱 하나 달라졌을 뿐, 워터 에센스 하나만 다섯 번 정도 시간차를 두고 덧발라 수분을 공급하거나 토너와 에센스, 모이스처라이저(아침엔 SPF 지수가 포함된) 등 3단계로 축소된 스킨케어에 정착했다. 흥미롭게도 에디터처럼 스킨케어 미니멀리스트의 길에 접어든 지구 반대편 뷰티 에디터의 스토리를 발견했다. <엘르> 영국 1월호 ‘적을수록 좋다(Less is More)’는 제목의 기사를 쓴 기자는 런던의 스킨케어 전문가 케이트 커(Kate Kerr)로부터 “건강한 콜라겐으로 가득한 탄력 넘치는 피부지만, 전반적으로 피부가 게을러진 상태”라는 다소 황당한 얘기를 듣게 된다. 다양한 신제품을 가장 먼저 접하는 데다 나름 엄격한 관리를 한다고 자부하는 뷰티 에디터의 피부가 ‘게으르다’니? 케이트의 설명에 의하면, 제품을 지나치게 많이 바르면 제 기능을 잘 수행하던 피부가 이에 안주하면서 스스로 역할에 게을러진다는 것. “우린 보습의 중요성에 대해 어릴 적부터 숱하게 들어왔어요. 피부 타입에 상관없이 보습은 필수라고 굳게 믿지만, 사실 피부는 자체적으로 수분 레벨을 맞출 수 있는 능력을 갖고 태어났어요. 오히려 과도한 보습 성분이 주어지면 피부는 수분 저장을 멈추라는 신호를 보내죠. 상대적으로 수분이 부족하게 느껴지니 더욱 리치하고 크리미한 포뮬러를 찾게 돼 악순환을 거듭하게 되죠.” 우리에게 필요한 건 ‘투 머치 케어’로 게을러진 피부가 자체적으로 갖고 있는 기능을 되찾도록 하는 제품이라는 것이 그녀의 ‘단호박’ 솔루션이다. 피부과 전문의 스테파니 윌리엄스(Stefanie Williams) 역시 같은 의견이다. “지나치게 많은 제품을 두텁게 쌓듯이 바를 경우 피부 위에 필름 막을 형성해 모공을 막고 피부 호흡을 방해해요. 산소가 부족한 피부 세포는 본연의 재생 기능을 잃게 되죠.” 그녀는 탄력 저하, 건조, 칙칙함, 트러블 같은 문제들은 대개 세포 재생이 저하된 탓으로 본다. 기능을 상실한 기존 세포가 새로 태어난 젊은 세포를 바리케이드처럼 막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 스테파니 박사는 이를 근거로 바르는 제품의 개수를 늘리는 것이 결코 피부 고민을 해결해 줄 열쇠가 아님을, 오히려 반대로 피부가 외부의 도움 없이도 제 기능을 할 수 있는 상태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항간에 유행하는 10단계 이상의 스킨케어 루틴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어요. 제품을 너무 많이 바르면 활성 성분이 효율적으로 흡수되기는커녕 피부가 제품 안에 갇혀버리는 꼴이거든요. 성분 간의 상호작용이 되레 피부에 해를 끼치기도 하고요. 피부를 건조하지 않게 하는 범위 내에서 최소한의 제품만 바른다는 대원칙을 세우세요.” 물론 리치한 크림으로 혜택을 보는 경우도 있다. 극건성 피부에 한하여! 다만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 지성 피부 타입마저 스스로를 민감한 극건성으로 간주해 많이 바를수록 피부가 편안해진다고 착각한다는 게 문제다. “유전적으로 건조한 피부는 10~15%에 불과해요. 글리세린, 히알루론산 등 피부에 이미 존재하는 천연보습인자 덕분에 스스로 적정량의 수분을 보유할 수 있어요. 묵직하고 두터운 크림 없이도 피부는 결코 헐벗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세요.” 다단계 스킨케어를 하기로 유명한 한국 여성들. 에디터 역시 그중 하나였다. 다양한 신제품을 테스트해 본다는 미명 하에 바르는 제품을 하루가 멀다 하고 갈아치우거나, 많은 제품을 계속 덧바르면서 기자로서 책임을 다하고 있다는 뿌듯함마저 느끼곤 했으니. 화장대 위엔 3분의 1도 쓰지 않은 에센스와 크림이 한 무더기. 하지만 워터 에센스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사실을 ‘엉겁결에’ 몸소 깨달은 뒤 생각이 180도로 바뀌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역시 단지 심리적 만족감을 위해 고집하던 과도한 스킨케어 단계가 있다면 부디 덜어내길 바란다. 피부가 제 기능을 하는 데 필요한 건, 새로운 젊은 세포가 윤기 잃은 낡은 세포 위로 모습을 드러내도록 방향성을 제시해 주는 AHA, BHA, PHA 등의 성분, 적당량의 히알루론산과 장기적으로 피부 건강을 지켜줄 항산화 성분, 마지막으로 피부 속 수분 증발을 제어해 줄 세라마이드 정도면 충분하다. 물론 갑자기 줄어든 제품 가짓수로 인해 일시적으로 피부가 땅기고 건조할 수 있지만 적어도 한 달간의 과도기를 거친다면 피부가 분명 건강하게 바뀌고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 중도에 다시 맥시멀리스트로 돌아가고 싶은 순간도 있겠지만 이것만 명심하길. 스킨케어 미니멀리스트가 되는 과정은 단거리 질주가 아니라 마라톤이라는 사실을.(왼쪽부터) 미세 버블이 피부에 닿자마자 물처럼 터져 빠르게 확산, 흡수되는 이드라뷰티 마이크로 리퀴드 에센스, 13만원, Chanel.고분자, 저분자 히알루론산이 더 깊이 침투하는 하이알루론 컨센트레이트, 5ml×6, 6만8천원, Eucerin.세 가지 AHA를 배합해 모공 속 노폐물, 불필요한 각질을 제거하는 페이셜 트리트먼트 클리어 로션, 160ml 8만원대, SK-II.항산화와 보습 성분을 듬뿍 담은 퓨리티 메이드 심플 울트라 라이트 모이스처라이저, 3만5천원, Philosophy.피부 표면의 죽은 각질을 부드럽게 제거하는 젠틀 엑스폴리에이터 브라이트닝 토너, 5만8천원, Clarins.투명한 젤 타입의 퍼스트 에센스. 아쿠아 레오티에 모이스처 프렙 에센스, 3만5천원, L’Occitane. 거친 피부에 수분과 생기를 부여하는 슈퍼 7 모이스처 하이드레이팅 젤, 4만1천원, Julla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