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란 디자인 위크에서 모두의 발길을 멈추게 한 로즈우드 전시
밀란 디자인 위크에 등장한 로즈우드의 비밀스러운 전시장. 그곳에서 안드레아 브란치의 마지막 빛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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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구와 조명, 텍스타일과 오브제가 도시 곳곳의 쇼룸과 팔라초로 흘러들고, 전 세계에서 모여든 사람들은 그 사이를 분주히 오가는 지난 4월의 밀란. 비아 카를로 데 크리스토포리스 1번지의 문을 열고 들어서니 바깥의 소란은 거짓말처럼 멀어졌다. 로즈우드 호텔이 처음으로 밀란 디자인 위크 무대에 데뷔하며 선보인 'Objects That Speak: A Conversation Continued with Andrea Branzi'의 현장. 밀란의 전설적 디자인 아이콘, 안드레아 브란치(Andrea Branzi)를 소환한 전시다.
브란치는 1960년대 이탈리아 급진주의 디자인 운동을 이끈 인물이자, 산업 디자이너이면서 동시에 이론가, 한 시대의 양식보다 디자인이라는 행위 자체를 끊임없이 의심한 사람이었다. 대량생산이 만들어낸 동일한 풍경 속에서 그가 평생 좇은 것은 ‘반복되지 않는 것’에 대한 감각이었다. 자연의 재료, 손의 작업 그리고 사물에 깃든 이야기까지. 디자인을 개별 경험으로 되돌려놓으려는 그의 태도는 그가 세상을 떠난 지금에 와서 더 또렷하게 읽힌다.
안드레아 브란치를 주제로 장인 정신과 장소성에 대한 대화를 이어간 로즈우드 호텔의 전시.
이번 전시 큐레이션을 맡은 데얀 수지치(Deyan Sudjic) 디자인 뮤지엄 런던의 명예관장은 이렇게 말했다. “브란치는 아이디어에 매혹된 사람이었고, 디자이너이자 이론가라는 두 정체성을 살아낸 드문 사례입니다. 그는 어떤 것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았고, 디자인과 시스템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어요. 지금 우리에게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선이죠.” 그의 표현을 빌리면 이번 로즈우드 전시는 트리엔날레 밀란에서 열린 거대한 회고전의 ‘친밀한 메아리(Intimate Echo)’이기도 하다.
로즈우드의 밀란 전시장 한복판에 놓인 것은 브란치의 시그너처 램프 시리즈. 일본 화지(和紙)와 벨기에산 블루 스톤 그리고 대나무와 단풍잎까지, 자연에서 온 재료들이 최대 3m 높이로 곧게 서 있는 거대한 램프 시리즈 중 15점의 등(燈)이 한자리에 모인 건 이번이 처음이다. 디자인 위크 한가운데, 잠시 멈춰 호흡할 수 있는 고요가 거기 있었다. 로즈우드가 전 세계 자사 호텔에 의뢰한 덕에 동시대 작가 9인의 작품 역시 밀란 디자인 위크에서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였다.
밀란 도심에 펼쳐진 전시장 외관.
자연을 통제하려는 인간의 욕망을 청동 분재로 응축한 마크 퀸(Marc Quinn)의 작품부터 플레이풀한 마르텐 바스(Maarten Baas)의 ‘스위핑’ 시계, 화려하게 만개한 안젤리카 마리아 슈티글러(Angelika Maria Stiegler)의 세라믹 등 매체와 언어는 다르지만 모두 브란치가 평생 붙들었던 질문인 ‘사물이 어떻게 말을 거는가’를 자기 방식으로 이어받은 작품들이다. 브란치의 가장 깊은 영향력은 특정한 양식이 아니라 대화하게 만드는 태도에 있다는 사실을 동시대의 작품들이 또렷하게 보여준다.
마크 퀸의 청동 분재 조형. 전시는 동시대 디자이너와 아티스트의 작업을 통해 사물과 공간의 서사를 탐구했다.
로즈우드의 최고 디자인 책임자 트리시 루익스(Trish Luyckx)는 이 전시의 출발점에 관해 이렇게 덧붙였다. “지역의 문화와 역사는 우리 디자인의 심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재료 선택부터 공간이 품을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모든 결정이 그 위에서 이뤄지죠. 저에게 이 작업은 목적지와 진정한 관계를 맺는 일, 그 땅의 전통과 장인 정신, 사람을 함께 기리는 일입니다.” 밀란은 안드레아 브란치가 평생 머문 도시였다. 그 도시의 한복판에서 브란치가 남긴 작품과 그 곁에선 다음 세대의 사물을 보며 생각했다. 사물은 정말 말을 건다. 잠시 멈춰 듣는 사람에게.
Credit
- 에디터 이경진
- 아트 디자이너 강연수
- 디지털 디자이너 민경선
- COURTESY OF ROSEWOOD HOT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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