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지금 당신이 부산으로 가야하는 예술적 이유

부산은 지금 파도 대신 아트신이 일렁입니다.

프로필 by 전혜진 2026.04.28

지금 부산은 파도 대신 움직이는 이미지가 일렁입니다. 빛으로 만든 서사, 데이터로 직조된 감정, 스크린 위를 떠도는 또 하나의 세계... 이 계절의 부산은 단지 휴양지가 아닌 디지털 감각으로 재구성된 하나의 거대한 전시장에 가깝죠. 바다와 호텔 룸에서, 들판과 전시장에서 펼쳐진 ‘보는 법’을 새로 배우게 하는 마법 같은 전시들을 따라가 보았습니다.

마이어리거울프 '클레멘스 폰 베데마이어'의 작품 <서피스 컴포지션>.

마이어리거울프 '클레멘스 폰 베데마이어'의 작품 <서피스 컴포지션>.

에스더쉬퍼 '도미니크 곤잘레스 포에스터'의 작품 <메테오리움 III>.

에스더쉬퍼 '도미니크 곤잘레스 포에스터'의 작품 <메테오리움 III>.

LOOP LAB BUSAN 2026

도시 전체가 스크린이 되는 순간이죠. 세계적인 미디어아트 페스티벌 <루프 바르셀로나>를 착안한 <루프랩 부산 2026>은 하나의 전시가 아니라 도시를 가로지르는 경험에 가깝습니다. 부산 전역의 35개 공간, 25개국 130여 명의 작가가 참여한 이 페스티벌에는 명확한 동선도, 단일한 주제도 없습니다. 관람자는 스스로 이동하며 자신의 감각과 속도로 이야기를 만들어갑니다. 갤러리에서, 거리에서, 낯선 공간에서 이미지는 예고 없이 등장하고 사라질 뿐이죠. 서진석 부산시립미술관 관장은 “수장도, 수직적 조직도, 예술감독도, 주제도 없는 행사이자 저마다의 생각을 디지털 미디어아트로 선보이는 수평형 아트 축제”라며 “35개 문화 공간에서 약 25개국 130여 명의 작가들이 디지털 아트의 과거, 현재, 미래를 아우르는 작품을 선보인다”고 소개했습니다.


하이라이트는 부산시립미술관 야외 조각공원에서 대형 스크린 14개와 함께 펼쳐지는 <디지털 서브컬처: 디지털 시대의 내러티브와 스토리> 전시입니다. SNS에서 활동하는 디지털 크리에이터 14팀의 숏폼 기반 작품들은 이곳에서 다시 길어지고 깊어집니다. AI와 알고리즘을 활용해 자신의 세계를 구축한 크리에이터들은 더 이상 단순한 콘텐츠 제작자가 아니라 새로운 시대의 스토리텔러로서 자신의 꿈과 세계를 이야기합니다. 마치 광장에서 담소를 나누듯 말이지요.

<디지털 서브컬처: 디지털 시대의 내러티브와 스토리> 전시 전경.

<디지털 서브컬처: 디지털 시대의 내러티브와 스토리> 전시 전경.

<무빙 온 아시아: 포스트 참여 예술>은 4월 23일부터 6월 18일까지 열린다.

<무빙 온 아시아: 포스트 참여 예술>은 4월 23일부터 6월 18일까지 열린다.

부산문화회관에서 열린 <무빙 온 아시아: 포스트 참여 예술>은 아시아 젊은 작가들이 바라보는 동시대의 풍경을 보여줍니다. 14개국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라고 불리는 16명의 작가 작업은 국가 이기주의, 환경 문제, 이념 갈등 등 복잡하게 얽힌 현실 속에서 이들의 진실과 허구의 경계를 유연하게 넘나듭니다. 특히 1980년대 공장 이전 뒤 약 40년간 방치됐던 부산 동일고무벨트 옛 동래공장에서는 중국 작가 쉬빙의 근래 대표작인 장편영화 <잠자리의 눈>이 상영 중인데요. 중국 거리와 시장 등의 공공 폐쇄회로TV(CCTV) 영상 클립의 1만1천시간 분량을 편집해 81분 길이로 만든 이 작품은 디지털 시대의 통제상을 실감나게 드러냅니다. 정혜련 작가는 <마이그레이션>이라는 작품을 통해 실시간 지역 기후 및 환경변화 데이터를 검은 띠 위를 움직이는 불빛으로 번안했습니다.


아트버스 갤러리의 '제네시스 카이' 작가의 룸.

아트버스 갤러리의 '제네시스 카이' 작가의 룸.

마이어리거울프 갤러리의 '클레멘스 폰 베데마이어' 작가의 룸.

마이어리거울프 갤러리의 '클레멘스 폰 베데마이어' 작가의 룸.

갤러리아 컨티뉴아 갤러리의 '한스 옵 드 빅' 작가의 룸.

갤러리아 컨티뉴아 갤러리의 '한스 옵 드 빅' 작가의 룸.

LOOP PLUS 2026

호텔이 가장 사적인 전시장으로 탈바꿈하는 시간. 해운대 그랜드 조선 부산의 호텔룸의 문을 여는 순간, 그 익숙하던 풍경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26개의 객실은 각각 하나의 갤러리가 되고, 침대와 소파는 관람의 도구가 되니까요. 4월 23일부터 26일 4일간 성료한 호텔 아트페어 <루프 플러스>는 미디어 아트를 가장 사적인 방식으로 경험하게 만들었습니다. 지난해 <루프 랩 부산(Loop Lab Busan)>으로 첫선을 보인 이후, 올해 새로운 이름으로 미디어 아트의 가치와 시장적 잠재력을 조명하고, 동시대 미디어 아트의 현재와 미래를 조망하는 중요한 아트 행사입니다.

조질다 다 콘세이상 갤러리의 작가 '퀸투스 글레럼'의 룸.

조질다 다 콘세이상 갤러리의 작가 '퀸투스 글레럼'의 룸.

2026년 <루프 플러스>에는 지난해에 이어 독일의 에스더 쉬퍼(Esther Schipper), 갤러리 징크(Gallery Zink), 타이완의 치웬 갤러리(Chiwen Gallery) 등 해외 주요 갤러리는 물론 국내 백아트 갤러리까지 총 26개의 국내외 갤러리가 참여했습니다. 짧게는 2분, 길게는 1시간에 이르는 작품을 누워서 혹은 기대어 온전히 마주하는 시간, 그 시간을 통해 이곳은 단순한 아트페어를 넘어, 지금 미디어 아트의 흐름을 압축해 보여주는 하나의 명장면이 됩니다. 루프 플러스는 파트너인 <루프 바르셀로나(Loop Barcelona)>와의 지속적인 협력을 통해 국내 작가와 갤러리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는 플랫폼으로서의 역할도 성실히 이어가고 있습니다.



국제갤러리 부산. 홍승혜 개인전 <이동 중(On the Move)> 설치전경.

국제갤러리 부산. 홍승혜 개인전 <이동 중(On the Move)> 설치전경.

국제갤러리 부산. 홍승혜 개인전 <이동 중(On the Move)> 설치전경.

국제갤러리 부산. 홍승혜 개인전 <이동 중(On the Move)> 설치전경.

홍승혜의 <On the Move>

국제갤러리 부산에서는 홍승혜 작가의 개인전 <On the Move>가 열리고 있습니다. 움직인다는 건, 살아 있다는 증거. 1997년, 디지털 픽셀이라는 가장 작은 단위에서 출발한 그의 작업은 약 30년간 ‘움직임’이라는 개념을 집요하게 탐구해왔습니다. 선 몇 개와 원 몇 개, 최소한의 형태들은 반복과 변주를 거듭하며 하나의 리듬을 형성합니다. 그 움직임의 동력이 되는 것은 노래. 작가가 직접 아이패드 음악 창작 및 녹음 앱인 ‘개러지밴드’를 통해 작곡한 사운드가 전시장에 흐르고, 이미지와 소리는 서로를 밀어내고 끌어당기며 공간을 움직임으로 물들입니다. 이동성 개념을 기반으로 한 평면, 영상, 조각 등 24점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6월 14일까지 진행됩니다.


국제갤러리가 위치한 복합문화공간 F1963의 석천홀에서는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러시아 출신 미디어아티스트 그룹 에이이에스플러스에프(AES+F)의 대형 영상전이 관객들의 시선을 끕니다. 공항 대합실부터 비행기, 난민, 근세 서양회화의 희생자 도상, 아이와 청년 이미지 등이 부유하는 대형 영상은 글로벌리즘, 탈식민주의, 이주, 지역 분쟁, 기후위기 등 현재 지구촌 현실을 상징적으로 드러내죠.


F1963의 석천홀에서 진행되는 러시아 출신 미디어아티스트 그룹 AES+F의 전시.

F1963의 석천홀에서 진행되는 러시아 출신 미디어아티스트 그룹 AES+F의 전시.

부산에서 펼쳐지고 있는 이 모든 전시는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합니다. 지금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있으며, 어떻게 보고 있는가를 말이죠. 스크린은 더 커지고, 이미지의 속도는 더 빨라졌지만, 분명 그 안에서 우리는 오히려 더 오래 머물게 될 겁니다.


Credit

  • 에디터 전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