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다시 쓰고 싶은 당신에게 웹툰이 보여주는 것
현실은 늘 한 번뿐이지만 웹툰의 세계는 언제든 다른 삶을 허락한다. 당신은 왜 회귀하고 싶은가? 왜 나쁜 놈에게 끌리는가? 이유가 무엇이든, 한 번쯤 다시 쓰고 싶은 삶을 꿈꾸는 당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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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을 하나 열었다. <정크? 정크!>라는 19금 로맨스로, 모든 걸 다 가진 기혼자인 남주가 대학생 여주와 불륜, 아니 스폰 혹은 ‘사랑’을 이어가는 이야기다. 오랜만에 눈에 띄는 그림체와 흥미로운 전개에 스크롤은 빠르게 미끄러졌다. 물론 나는 불륜을 하고 싶지 않다. 백화점을 쓸어 담듯 물질적 보상을 건네는 아저씨와 사귀고 싶지도 않다. 그럼에도 늘 자신이 2순위이기에 상처받는 여주는 왠지 안쓰럽다. 그와 헤어지길 바라면서 동시에 그 잘생긴 아저씨가 늘 여주 곁에 있어 주길 바란다. 진짜 싫은데 잘생겼다. 문득 궁금해졌다. 나는 왜 이 웹툰이 업로드되는 날을 목 빠지게 기다리는 걸까?
현실은 늘 한 번뿐이다. 어떤 선택은 너무 빨리 우리를 다음 장면으로 밀어 넣고, 한 번 지나간 감정은 결코 되돌릴 수 없다. 현실의 사랑은 끝난 뒤에야 정확한 이름을 얻고, 관계는 지나고 나서야 그 문제점이 선명해진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너무 쉽게 손끝을 움직여 또 다른 세계를 연다. 회귀하고, 빙의하고, 복수하며, 사랑해 보지 않은 그 누구든 다시 사랑할 수 있는 세계. 웹툰이라는 콘텐츠가 지금 가장 강력한 이야기의 원천이 된 이유는 단순히 읽기 쉬운 속도감이나 편의성, 작화의 매력 때문은 아니다. 그 안에는 현실에서 끝내 써보지 못한 감정을 다시 배치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실패 이전으로 돌아가 더 나은 선택을 하고 싶은 마음, 한 번쯤 다른 얼굴과 다른 조건으로 사랑받고 싶은 욕망, 현실에서 허락되지 않는 복수를 안전하게 예행연습해 보고 싶은 충동까지. 스크롤 아래 펼쳐지는 세계는 그 모든 사적 결핍을 우아하게 채운다.
글로벌 웹툰 시장은 2026년 약 87억 달러 규모로 성장했고, 2030년에는 147억 달러를 넘어설 전망이다. 그중 특히 강력하게 소구되는 장르는 ‘회귀물’과 ‘환생물’이다. 주인공이 과거로 돌아가 미래를 바꾸거나, 다시 태어나거나, 인생을 다시 쓰는 설정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즉 ‘인생 2회차’ 서사다. 대표작으로 <재벌집 막내아들> <내 남편과 결혼해줘> <이재, 곧 죽습니다> 등 이미 저력을 증명한 작품들이 존재한다. 우리는 왜 이토록 회귀하고 싶을까?
회귀물만 골라 읽는 마니아 A는 이렇게 설명했다. “돌아가고 싶은 건 사실 어느 시간대가 아니라 그때의 감정인 것 같아요. 이미 끝난 관계에서 미처 하지 못한 말, 더 단단한 자아로 다시 시작해 보고 싶은 순간을 누리고 싶거든요.” 그러니 회귀물은 이 시대 독자에게 가장 정직한 판타지다. 너무 많은 선택지와 너무 적은 확신 속에 살아가는 세대에게,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서사는 그 자체로 보상이다. 현실의 모든 선택에는 리셋 버튼이 없지만, 웹툰 속 인물들은 언제든 실패 이전으로 돌아가고, 더 유리한 조건과 더 강한 능력으로 다시 판을 짠다. 그래서 회귀는 장르적 장치가 아니라, 어쩌면 오늘의 불안이 스스로에게 허락하는 일종의 치유와 치료의 도구일지도 모른다.
로맨스 판타지와 BL, 이세계(異世界) 물과 헌터/성장형 판타지까지 이 또한 장르는 달라도 욕망의 구조는 놀랍도록 회귀물과 닮아 있다. 하반기 드라마화가 확정된 <재혼 황후> 같은 로맨스 판타지는 이혼과 재혼, 왕권을 통해 현실에서는 좀처럼 허락되지 않는 절대적 사랑과 권력의 재배치를 약속한다. <나 혼자만 레벨업>과 <전지적 독자 시점>등 헌터/성장형 판타지에서 약자는 최강자가 되고, 계급은 역전되며, 시스템 보상으로 즉각적 성장감을 선사한다. 현실의 무력감을 가장 빠르게 뒤집는 구조로 말이다. 오피스 로맨스는 권력과 계약관계가 자리하는 현실의 회사 대신 나를 선택해 줄 사람이 존재하는 새로운 세계를 독자에게 선물한다. 어느 하나 예측되지 않는 사회 생활보다 웹툰이라는 익숙한 구조 안에서 새로운 얼굴과 새로운 관계를 만나는 일은 더 큰 위안으로 작용한다. 예측 가능한 감정의 궤적은 불확실한 현실과 정반대의 안정감을 선사하면서 말이다.
그래서 웹툰은 더 이상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의 욕망을 가장 빠르게 보상하고 치료하는 ‘인터페이스’가 되고 있다. 실패는 다시 시작할 수 있고, 상처는 더 매혹적인 얼굴로 회복되며, 결핍은 반드시 보상받는다. 독자들은 더 이상 장르를 골라 읽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필요한 감정의 처방전을 선택하는 셈인 것. 그러니 어쩌면 지금의 독자들은 이야기 자체보다 웹툰 ‘구조’가 약속하는 감정의 보상을 더 사랑하는지도 모른다. 이미 어떤 장르가 어떤 결핍을 채워줄지 너무나 잘 아는 채로 말이다. <현혹>의 홍작가 또한 이렇게 설명한다. “사람들은 은밀한 것에 끌립니다. 나만 모든 정보를 알고 있고,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나만 알고 있는 상태에서 느끼는 쾌감이 이세계물이나 환생물, 회귀물, 먼치킨물 같은 장르로 이어지는 것 같아요.” 웹툰 리뷰어 리웹도 덧붙였다. “웹툰은 이제 장르 단위가 아니라, 아주 구체적이고 개인적인 취향으로 나뉘죠. 머리 색과 눈 색, 성격, 말투까지 조건을 붙여 캐릭터를 찾는 경우도 많아요. 작품 수가 많아진 만큼, 그 안에서 자신의 취향을 세밀하게 찾아가는 과정인 거죠.”
결국 우리가 밤마다 스크롤하는 것은 타인의 사랑도, 허구의 복수도 아니다. 그 세계에 비친 또 다른 나의 가능성이다. 더 늦기 전에 사랑하고, 더 완벽하게 복수하고, 더 강한 얼굴로 세상을 다시 통과하는 삶. 그래서 우리는 늘 그곳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 끝에서 마침내, 지금의 내가 진짜 다시 쓰고 싶은 삶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게 된다. 그러니 웹툰은 더 이상 판타지가 아니다. 오늘의 독자가 가장 사적으로 자신의 삶을 다시 설계하는, 아주 내밀하고 흥미로운 일상의 방식이다.
Credit
- 에디터 전혜진
- 아트 디자이너 강연수
- 디지털 디자이너 오주영
엘르 비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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