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폼 세계의 비밀 아닌 비밀을 공개합니다
언젠가 숏폼 콘텐츠도 최악의 발명품으로 여겨질 날이 올까? 선택하는 힘을 빼앗고 머리를 멍하게 만드는 이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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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쯤 뒤엔 숏폼 영상이 최악의 발명으로 기록될 것 같지 않아?” 요즘 일상을 힘들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얘기하던 점심 자리에서, 아는 언니가 대뜸 이렇게 말했다. “왜 근대에 애들한테 먹이는 진정 물약(모르핀이 함유돼 있었다)이 유행한 것처럼?” 내가 냉큼 덧붙였다. 인간이 만들어낸 끔찍한 것들은 많고 많지만, 멍하니 휴대폰을 들여다보다 퍼뜩 정신을 차리면 언젠가 이 세로 영상 역시 그 리스트에 들어가지 않을까 생각하곤 한다.
꽤 오래 숏폼 중독 때문에 힘들어하던 시절이 있었다(지금도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 보고 싶은 것도, 궁금한 것도 없는데 끊임없이 나오는 영상을 스크롤하다 보면 새벽이 왔다. 30초짜리 영상을 수백 개 넘기며 꼬박 밤을 새운 적도 허다하다. 그렇게 보고 나면 내가 살아 있는 것 같지 않고 VR 세상에 들어가 나라는 아바타를 조정하고 있는 것처럼 모든 것이 뿌옇게 느껴졌다.
동시에 나는 크리에이터 일을 한다. 내가 벗어나지 못하는, 정확히 그 포인트를 이용해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내 영상에 3초 이상 머물게 할지를 고민한다. 조회 수가 높으면 기쁘고, 저조하면 슬프다. 나는 그러니까, 진정 시럽을 먹고 까무룩 잠이 드는 아기였다가 아이를 재우기 위해 시럽을 먹이는 엄마가 됐다가 한다.
©unsplash
숏폼을 즐겨보는 이들이 여기까지 이 칼럼을 읽었다면 묻고 싶다. 언젠가부터 상품을 소개하고 구매를 유도하는 콘텐츠가 많아졌다고 느껴지진 않나요?
크리에이터로서 비밀 아닌 비밀을 이 칼럼에 폭로하려 한다. 그 이유는 상품 구매가 창작자의 수익에 보탬이 되는 커미션 시스템 때문이다. 얼마 전 영상 스트리밍 플랫폼 컨퍼런스에 간 적 있다. 새로운 ‘상품 태그’ 시스템을 소개하는 자리였다. 방법은 간단하다. 창작자가 브랜드 상품 영상을 만들고 구매 링크를 영상에 태그하면, 판매액의 일정 비율을 수수료로 받는 식이다.
높은 수익률을 자랑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당장이라도 시작해 채널에 보탬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동시에 의구심이 들었다.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라고 소개됐지만 누구보다 많은 상품을 사야 하는 소비자가 된 기분이었다. 올려놓은 링크를 통해 물건이 팔리든 팔리지 않든 기업 입장에서는 잃을 게 없다. 오히려 아무런 추가 지출 없이 무료로 다수의 크리에이터가 광고를 해주는 셈이다.
©unsplash
그렇게 범람하는 광고성 콘텐츠는? 플랫폼을 이용하는 시청자가 본다. ‘이용하는 것이 무료라면 당신이 상품’이라는 말은 10여 년 전부터 나온 말이라는데, 지금의 영상 스트리밍 플랫폼을 서늘하게 설명하는 문구인 줄 알았다. 잠시 쉬기 위해 스마트폰을 켜는 이들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계속해서 광고를 보고, 심지어 돈을 쓰고 물건을 산다. 당신은 상품이 된다. 알고리즘에 의해 나에게 맞춰진 영상을 끊김 없이 보면서.
광고하는 창작자가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아무튼 무언가를 지속하기 위해서라면 돈은 꼭 필요한 것이니까. 나 역시 영상에 광고 링크를 넣는다. 꾸준히 짧은 영상을 만들고 영상을 소비한다. 하지만 때때로 생각해 봐야 할 때가 있다. 숏폼 콘텐츠를 끊임없이 소비하면 끝내 누가 웃을까? 누구에게 가장 큰 이득이 돌아갈까? ‘진정 물약’을 생산하는 곳은 어디일까?
언젠가 이 숏폼 콘텐츠도 최악의 발명품으로 여겨질 날이 올까? 선택하는 힘을 빼앗고 머리를 멍하게 만드는 이것이? 그러면 나도 이 끔찍한 발명에 이바지한 사람으로 평가될까? 미래의 평가를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오늘도 편집을 한다.
김지우
‘구르님’이라는 이름으로 글을 쓰고 영상을 만든다. 뇌병변장애인의 삶을 담은 ‘굴러라 구르님’ 채널을 운영하고 있으며, <우리의 활보는 사치가 아니야>를 펴냈다.
Credit
- 에디터 전혜진
- 글 김지우
- 사진 unsplash
- 아트 디자이너 민홍주
- 디지털 디자이너 오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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