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ETY

AI는 여성인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요

AI 기술이 상상해 낸 ‘완벽한 여자’의 뒤편에서 현실의 우리가 대면하는 것들.

프로필 by 전혜진 2025.10.29

최근 해외 미디어 업계를 뒤흔들고 있는 한 배우에 대해 친구와 이야기한 적 있다. 데뷔조차 하지 않은 신인이자, 공개된 정보라고는 앳된 얼굴과 동료들의 극찬이 담긴 PR 영상뿐이지만, 그녀는 혜성처럼 등장해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언론은 그녀의 등장이 업계에 미칠 파장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했다. 그녀의 이름은 ‘틸리 노우드(Tilly Norwood)’. 현재 소속사들이 영입을 앞다투고 있는 ‘AI 여배우’다.


네덜란드의 유명 AI 제작사 ‘파티클6(Particle6)’가 개발한 인공지능 여배우 틸리의 존재는 인류가 우려해 온 ‘AI의 인간 노동 대체’로 초점이 맞춰지곤 했지만, 여성인 우리가 느낀 불안은 다른 데 있었다. 홍보 영상 속의 그녀는 이상하리만큼 생생했고, 영상에 함께 등장한 AI들은 그녀가 “촬영장의 한계를 해방할 존재”라며 웃었다. 한 남성이 덧붙였다. “틸리는 내가 원하는 건 뭐든 할 수 있죠.” 제작자가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무저항의 ‘젊은 여성’이라는 것이다. 그 말이 불쾌하게 메아리쳤다. 실제 틸리는 사회의 오래된 욕망의 형상을 닮았다. 감정의 여백이 없고, 불편함을 드러내지 않으며, 언제나 ‘좋아요’를 말할 준비가 된 여자. 혁신이라는 결과값은 사실 낡은 판타지가 새 언어를 얻은 것일 뿐. 효율과 통제, 순응과 매혹이라는 단어가 나란히 서 있는 풍경 속에서 친구가 물었다. “그럼 진짜 여배우들은 이제 어디로 가는 걸까?”



AI가 여성을 ‘사랑’하는 방식은 늘 기묘하다. 존중이라기엔 지나치게 관찰적이고, 보호라기엔 집착과 데이터 수집에 가깝다. 얼굴 인식 기술과 음성 비서, 추천 알고리즘의 대부분은 여성의 데이터를 흡수하며 이미지를 학습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카메라가 여성을 인식하는 순간, 기록이 아닌 측정값이 되는 것. 디지털 시대 이전에도 여성은 늘 프레임에 갇혀 있었다. 화보 속 이미지, 광고 속에서 미소 짓고 있는 여성이나 스크린 속 여성 캐릭터들은 하나의 이상을 재현하는 존재였다. 그들은 언제나 시대가 요구하는 얼굴로 등장하며, 사회가 기대하는 여성의 역할을 시각적으로 요약한 결과물처럼 보였다. ‘여성다움’은 늘 누군가의 시선에 의해 정의됐고, 그 시선은 시대에 따라 형태만 달리했을 뿐, 본질은 여전히 여성을 포장하는 틀이었다. 지금은 그 틀을 잡는 ‘손’이 달라졌을 뿐이다.


과거엔 기획자가 이상적인 여성을 설계했다면, 지금은 알고리즘이 그 역할을 대신한다. AI와 SNS는 한 사람의 얼굴과 말투, 취향을 수집하고 반복 학습해 이상적인 여성 모델을 만들어낸다. ‘클린 걸’ ‘댓 걸’ 그리고 한국식으로 변형된 ‘테토녀’ ‘에겐녀’ 같은 이름은 단순한 밈이 아니라 알고리즘이 만든 새로운 신분증, 기술이 부여한 페르소나다. 영화배우와 팝 스타, 아이돌 등을 통한 여성성의 상품화와 모방 소비는 낯선 개념이 아니지만, 지금 AI는 그 과정을 무서우리만큼 정교하고 효율적으로 통합한다. 이미지가 흩어져 있던 과거와 달리 현재 알고리즘은 그것들을 한데 엮어 완벽히 통합된 ‘롤 모델’을 만드는 것이다.


자연스럽고 미니멀한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클린 걸’은 단순히 깨끗한 피부를 가진 여성이 아닌, 말차 라테를 마시며 우윳빛 애슬레저 룩을 입는 하나의 서사적 존재다. 이는 곧 광고의 구조이기도 하다. 그녀가 사용하는 모든 제품에는 링크가 달려 있고, 그녀의 삶 전체는 클릭 가능한 하나의 상점이 된다. 더 흥미로운 건 사람들은 그 이미지를 ‘가짜’로 온전히 인식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인플루언서들은 일상을 연출하고, 브랜드는 협찬을 얹고, AI는 그 데이터를 학습해 더 정교한 표준을 만든다. 그렇게 만들어진 이상형은 현실의 기준이 되고,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그 ‘인간성’을 모방하기 시작한다. 이는 단순한 유행을 넘어 정체성이 프로그래밍되는 방식의 변화다.


여성들은 이 시스템의 중심에 서 있다. 학습 데이터의 주요 원천이자, 동시에 이런 구조 속에서 가장 강력한 소비자이니까. 아이러니하게도 여성의 구매력은 다시 여성성을 규정하는 데 사용된다. 알고리즘은 클릭과 구매율, 체류 시간 같은 숫자로 여성성을 환산해 하나의 가치 단위로 만든다. 여성은 생산 자산이자 소비 대상으로서 기능하며, 이 이중성은 여성을 주체이자 재료로서 동시에 다룬다. 결국 AI에게 여성은 ‘사회적 존재’가 아닌 ‘인센티브의 유무’로 측정되는 데이터로 전락하는 것이다. AI 훈련 데이터에는 수억 개의 여성 얼굴이 포함되며 패션 화보와 셀카, 유튜브 섬네일, 심지어 동의 없이 수집된 이미지까지 패턴으로 분석해 더 하얗고, 매끄럽고, 어려 보이는 미의 표준을 만든다. 이렇게 생성된 이미지는 알고리즘을 통해 ‘현실’이 되고, 우리가 느끼는 ‘예쁨’은 결국 본질적 취향이 아닌, 데이터가 계산한 평균값이 된다.


이런 편향은 소비를 넘어 노동과 권력의 구조로 스며드는 게 문제다. AI 채용 시스템은 여성의 이력을 불안정한 변수로 분류하고, 결혼과 출산 가능성을 리스크로 간주한다. 기계는 중립적이지만, 학습한 현실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남성 중심의 산업구조, 전통적인 성 역할, 여성 노동을 부차적으로 여겨온 사회의 관습이 그대로 담긴 코드를 통해 AI는 인간의 편견을 복제할 뿐 아니라 데이터의 질서로 고정시킨다. AI 설계 과정에서도 불균형은 이어진다. 여성 AI 개발자는 여전히 30% 남짓에 불과하다. 기술은 인간의 경험을 반영하지만, 그 경험이 한쪽으로 기울면 결과 역시 편향적이다. 그래서 AI가 만들어낸 여성상은 종종 순종적이고 비현실적이다. 이는 ‘남성적 시선’이 반영된 세계의 산물이기 때문. AI는 단순히 사회의 편견을 비추는 거울이 아니라, 그 편견을 증폭시키는 확성기가 될 위험성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전적으로 현실은 비관적이지 않다. 기술이 편향될수록 그 편향을 감지하고 해체하려는 감각도 함께 자라니까. 여성이 스스로 시선을 되찾고, 그 시선이 기술과 세계로 향할 때 우리는 마침내 이 구조를 다른 언어로 읽어낼 수 있다. AI를 두려워하거나 맹목적으로 소비하기보다 작동의 원리를 이해하고 비틀어내는 힘.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여성적 시선(Female Gaze)’의 확장이다. ‘바비 인형’과 ‘펑크 록’을 결합한 밈, 강렬한 드릴 랩이 얹힌 <파워퍼프 걸>영상, ‘여성적’ 캐릭터를 해학적으로 비트는 인터넷 서브컬처 속에서 우리는 변화의 씨앗을 본다. 이들은 알고리즘이 만든 틀에 균열을 내며, 기술이 만든 여성다움을 해체하고 자기만의 언어로 다시 그린다. 거창한 혁명이 아닌, 일상의 작은 저항이다.


여성을 지우면서 동시에 그녀로 세상을 채우는 AI. 미국 페미니즘 철학자 도나 해러웨이는 “기계와 여성은 모두 근대가 통제하려 한 경계의 존재”라고 말했다. 데이터와 이미지, 욕망과 알고리즘이 교차하는 자리의 중심에서 여성은 동시에 객체이자 주체이며, 관찰되면서 관찰하는 존재로 살아간다. 딥 페이크의 피해자 다수가 여성이라는 사실은 여전히 잔혹하지만, 동시에 많은 여성이 AI를 통해 새로운 자아와 서사를 실험한다. 기술의 소비자가 아닌, 감각의 설계자로 재탄생하는 것이다.


AI가 놓치고 있는 것은 단순 데이터의 결핍이 아닌, 맥락의 부재와 감정의 결여다. 기술은 얼굴 윤곽을 정교하게 재현하지만, 그 표정이 만들어진 이유는 복원하지 못한다. AI가 만든 여성은 언제나 완벽하지만, 그 속에는 시간과 고통, 관계와 기억이 없다. 바로 그 지점에서 인간의 감정은 다시 빛난다. 프레임 밖의 여성들은 불완전하고, 흔들리며, 모순으로 가득하지만 바로 그 불완전함 속에 현실이 있다. AI가 결코 학습할 수 없는 것은 결핍을 견디는 힘과 예측 불가능한 인간성이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기술이 완성하려 한 결핍 그 자체다. 중요한 것은 ‘AI가 나를 어떻게 보는가’가 아니라 ‘내가 AI를 어떤 시선으로 다시 바라볼 것인가’ 하는 거다. 기술은 여성을 지워왔지만, 결국 여성의 감각을 흉내 내며 진화를 꿈꾼다. 그러니 AI 시대의 여성에게 필요한 것은 두려움이 아닌 감각의 확장. 기술이 제시하는 완벽함 속에서도 스스로를 잃지 않고, 여전히 불완전한 얼굴로 세계를 마주할 용기. AI가 만든 세계 바깥에는 여전히 살아 있는 인간과 그녀들의 목소리가 있다.


반휘은

칼럼니스트 글로벌 AI 거버넌스와 신기술을 전문으로 하는 정책 컨설턴트이자 저술가. 미국 세라 로런스 칼리지에서 인문학을,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디지털 인문학과 미디어 철학, AI 윤리를 전공하며 석사 과정을 마친 후, 뉴욕 유엔본부의 디지털과 신기술사무국에서 AI 정책 연구와 분석을 주도했다. 구글 · 마이크로소프트(MS) · 메타 등 주요 산업 리더들과 협력해 AI 거버넌스의 글로벌 표준을 마련하는 데 기여했으며, 현재는 AI 거버넌스를 주제로 집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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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 전혜진
  • 아트 디자이너 이아람
  • 디지털 디자이너 정혜림
  • COURTESY OF MIDJOURN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