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쇼에서 디자이너가 옷만큼 공들이는 '이것'은?
조명이 꺼지고 모델이 등장하기 직전, 런웨이 사운드트랙이 정의하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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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시즌, 런웨이 위에서 패션 디자이너의 비전을 완성하는 마지막 퍼즐이 있습니다. 바로 사운드트랙이죠.
관객들은 눈으로 한 번, 귀로 한 번 쇼를 감상합니다. 단순하고 정제된 쇼가 있을 수도 있고, 반대로 화려한 아뮤즈 부쉬처럼 강렬한 첫인상을 남기는 무대도 있죠. 그중 음악은 런웨이라는 세계관을 만드는 데 있어 없어서는 안 될 도구입니다. 하지만 종종 옷만큼 주목받지 못하는 존재이기도 하죠. 과거 파리의 인디 음반 숍에서 일하며 DJ로 활동했던 사운드 디렉터 미셸 고베르는 거의 모든 하우스의 쇼 사운드트랙을 설계한 인물입니다. 예컨대 칼 라거펠트가 전통적인 글래머에 위트를 결합한 샤넬 1995 S/S 컬렉션 쇼에 그는 20 Fingers의 'Short Dick Man (Club mix)'을 절묘히 매치했죠. 이처럼 런웨이의 사운드트랙은 단순히 쇼의 전체적인 무드를 완성하는 것을 넘어 관객의 기대를 완전히 뒤엎는 장치로 쓰이기도 합니다.
버버리 2026 S/S 컬렉션
지금처럼 패션쇼의 아이덴티티가 중요해진 적도 없을 겁니다. 거의 대부분의 런웨이는 유튜브, 인스타그램, 틱톡을 통해 생중계되는 덕분에, 누구나 무료로 쇼를 즐길 수 있게 됐기 때문이죠. 그렇기에 사운드트랙은 쇼의 분위기를 즉각적으로 설정하는 역할을 도맡습니다. 가령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에서 영감을 얻은 버버리 2026 S/S 컬렉션 쇼에서는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오지 오스본을 기리기 위해 블랙 사바스의 음악이 흘러나왔죠. 이는 버버리의 CCO인 다니엘 리의 미학이 과거 하우스 특유의 프레피한 무드와는 묘하게 모습을 달리하고 있음을 사운드를 통해 보여주는 장치이기도 했습니다.
무대부터 사운드, 옷까지, 런웨이는 그 어느 때보다도 지금 관객과 가까이 맞닿아있습니다. 미라발 스튜디오의 공동창립자 다미앵 킨타르는 “쇼를 보는 모든 이에게 온라인, 오프라인을 통틀어 자신만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을 제공하고 싶다”고 말했죠. 그는 이어 “가령 같은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을 듣더라도 어떤 사람은 행복함을 느끼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슬픔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최대한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습니다.
특히 2026 S/S 시즌처럼 수많은 디자이너의 데뷔작이 쏟아지는 달에는 사운드트랙이 디자이너의 비전을 소개하는 더욱 핵심적인 도구로 올라섭니다. 루이스 트로터는 그의 보테가 베네타 데뷔 컬렉션에서 아카데미 수상 감독인 스티브 맥퀸을 기용했죠. 그는 각각 1966년과 1976년에 녹음된 니나 시몬과 데이비드 보위의 ‘Wild the Wind’를 교차 편집한 뒤 거기서 따온 제목인 '66-76'을 붙였습니다. 한 편의 오페라를 연상케 하는 사운드트랙은 하우스에 첫발을 내디디는 그의 데뷔 쇼에 특별함을 더해줬습니다.
메종 마르지엘라 2026 S/S 컬렉션
음악은 옷에 깃든 감정을 이끌어내기도 하지만, 동시에 과거를 잇기도 합니다. 예컨대 글렌 마틴스의 메종 마르지엘라 데뷔 쇼에서 그는 무려 7세부터 15세까지, 다양한 연령대로 이루어진 음악 교육을 막 받기 시작한 61명의 어린이로 오케스트라를 구성했습니다. 아이들이 일군 서툰 셋리스트에는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와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14번' 등이 포함되었죠. 의도된 불협화음이 불쾌감을 줄 수도 있었지만, 이것이야말로 글렌 마틴스가 사랑하는 전복의 미학이었습니다. 당장 과거 메종 마르지엘라의 아카이브를 조금만 둘러봐도, 어느 낙후된 지역의 놀이터에서 열린 1990 S/S 컬렉션 쇼에선 아이들과 노숙자들이 한데 어울려 런웨이를 완성했으니까요. 그런가 하면 1997 F/W 컬렉션 쇼에서는 라이브 오케스트라로 더없이 클래식한 쇼를 완성했습니다.
발렌시아가 2026 S/S 컬렉션
피에르파올로 피치올리는 발렌시아가 데뷔 쇼에서 사운드트랙을 가장 개인적인 언어로 사용했습니다. 그는 미라발 스튜디오 팀과 함께 소닉 쿠튀르 스코어를 작곡했는데, 이는 컬렉션 제목 ‘Heartbeat’처럼 그의 심장 박동에서 출발한 작업이었습니다. 피치올리는 “지극히 독특하고 감정적이고, 많은 시간과 자원이 들어간 작업이었다. 심장 박동을 표현할 새로운 방식을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온라인과 대형 세트장에서 생중계할 수 있는 형태로 완성해야 했다”고 설명했죠. 여기에 로린 힐의 ‘Can’t Take My Eyes Off of You’와 레이의 ‘I’m Feeling Good’이 더해지며 완벽한 서사가 구축되었고, 이는 같은 시즌에 니나 시몬의 음악이 두 번째로 등장한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음악은 어느새 런웨이에서 초월적인 힘을 지니게 됐습니다. 비록 관객이 옷의 소재나 바느질의 섬세한 결을 직접 만지지 못하더라도, 옷 위로 흐르는 음악은 관객으로 하여금디자이너의 세계로 깊이 빠져들게 하죠. 다미앵 킨타르는 “어떤 컬렉션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옷이 런웨이 위에서 어떤 형태로 구현되는지 잘 이해해야만 가능한 작업이다”고 말합니다. 그는 이를 두 예술의 절묘한 만남에 비유합니다. “아티스트를 프로듀싱하든,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스코어를 만들든 나는 늘 쿠튀르 하우스의 작품을 떠올린다. 멀리서 보면 보이지 않던 정교한 디테일이 가까이 갈수록 드러나는 순간이 있지 않나. 사운드도 정확히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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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글 ALEXANDRA HILDRETH
- 사진 IMAXtree
엘르 비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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