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X' 김도훈이 포도 네 알만 먹고 찍은 화보
내뱉는 말은 당찬데, 안에 담긴 진심은 묵직하다. 김도훈은 스스로를 믿을 권리가 있다.
전체 페이지를 읽으시려면
회원가입 및 로그인을 해주세요!
도훈이 말했다. “어제 먹은 거라고는 포도 네 알이 전부예요. 오랜만의 화보라 제 몸에도 긴장감을 불어넣을 필요가 있었거든요.” 솔직히 놀랐다. 카메라 앵글에서 움직이는 그의 리듬감은 상상 이상이었다. 화보를 찍은 경험도 많지 않다는데, 몸에 센서가 부착된 듯 자연스럽고 익숙했다. 이 모든 걸 한 마디로 규정한다면 “김도훈은 ‘끼’가 많다”이다. 활동 반경만 살펴봐도 그렇다. 연기한 캐릭터도 다양하지만 드라마와 영화, 연극, 예능 프로그램, 오디오 북까지 전달 방식의 경계가 없다. ‘재능 부자’. 새로운 것에 반짝이고 흥미로운 일을 좇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중요한 건 어느 선 이상에서 유지되는 안정적인 실력. 어떤 자리에 갖다 놔도 이질감 없이 스며드는 기본기. 꾸준히 라이징 스타로 언급되면서도 뾰족하게 올라오지 못한 건 그 다양성의 깊이가 아직 시간차를 두고 있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재미있게 느껴지는 캐릭터나 안 해본 역할 위주로 선택해 왔어요. 작품의 인기나 흥행지수로 제 선택을 잘한 것과 그렇지 못한 것으로 규정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제가 완전히 밀착됐으면 그 시간은 이미 완성된 거라고 생각해요.”
레드 재킷과 팬츠는 모두 Ernest W. Baker by 10 Corso Como Seoul. 실버 & 골드 로고 링은 모두 Diesel. 실버 카메로 링은 Enfants Riches Déprimés. 골드 이어 커프는 모두 Diesel.
캐멀 코트와 쇼츠는 모두 YCH. 스트라이프 하이넥 셔츠는 Ami. 캐멀 어그 뮬은 Fendi. 안경은 Manomos. 삭스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배우는 취향을 타는 직업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 예민한 직업은 과학고등학교 입시를 준비하던 김도훈에게 변수로 작용했다. 결과만 보고 사는 세상에서 벗어나 과정 그 자체로 행복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시작된 변수. 김도훈은 그렇게 흥미로운 탈주를 시작했다. “과학고 입시 공부가 조금 힘들었던 것 같아요. 시작은 단순했죠. 공부와 관련 없는 일을 하고 싶다, 지루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명쾌하게 찾아낸 정답인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예고 입시를 준비하는 한 달 남짓한 시간만큼은 바람처럼 자유로웠다. 마음이 배가 부르니 어렵다던 예고 입시도 단 2주 연기학원 수업으로 가뿐히 통과했다. 그것도 수석으로. “단언컨대 실기로 입학했다고 볼 수 없습니다. 말이 안 되죠. 얼마나 재능 있는 친구들이 넘쳐나는데요. 운도 좋았고, 성적 도움도 받았죠.” 입학한 첫 주에 자퇴를 떠올린 건 지나친 자기 객관화 혹은 이상과 현실에서 오는 몹쓸 괴리감이 원인이었다. 잘나도 너무 잘난 친구들, 자유를 찾아 이곳에 왔는데 상상 이상의 규율과 통제가 기본이 된 학교생활. “연기라는 게 어떤 새로운 인물을 창조하는 과정에 있는 작업이잖아요. 당연히 자율성이 보장될 거라고 생각했죠. 마음껏 풀어져 선 밖에 있는 행동들을 경험하며 감정적 욕구를 채울 거라고 생각한 건 완벽하게 제 오판이었습니다. 그때 깨달았죠. 배우라는 직업의 유연함 이면에 불안전하고 위태로운 작업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선생님들은 바로 그 엄격함을 바탕으로 저희가 스스로 깨닫게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재킷과 니트는 모두 Celine. 가죽 팬츠는 Dries Van Noten. 오른쪽 골드 이어 커프와 왼쪽 골드 로고 이어 커프는 모두 Diesel. 왼쪽 골드 이어 커프는 Thiers.
2016년 독립영화 <미행>으로 연기를 시작했으니 어느새 데뷔 9년 차. 역할의 크기와 상관없이 매년 한두 작품을 꾸준히 선보여 온 성실파 배우다. 감당하기 힘든 인기와 유명세를 누린 적은 없지만, 나름의 호흡으로 자신의 자리를 지켜내며 연기 제법 하는 배우를 논할 때 또래보다 늘 앞서 있기도 했다. “동기부여는 내 자신이에요. 누군가가 나를 칭찬한다면 그 평가가 납득되는 사람이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가장 경계하는 사람이 ‘꼴값 떠는 사람’이거든요.” ‘내가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내가 하는 일도 대단한 일이 아니다’라는 생각으로 스스로 조련하고 다듬는 사람. 자기 객관화가 제법 잘된 편이랄까. 데뷔와 동시에 연극영화과 합격, 거기에 소속사 합류까지 김도훈의 꽃길이 시작되는 것 같았다. 우쭐했던 적은 없지만, 순탄하게 잘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 무렵 약간의 틈새가 생기기 시작했다. “친구들은 한 번에 두세 계단씩 오르는데, 저는 계단 하나를 몇 개씩 나눠 오르는 기분이었어요. 배우라는 직업의 지속성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고, 부정적 생각이 지배하면서 긴 터널이 시작됐죠. 오디션에는 갔지만, 연기에 적극성은 없었어요.” 그렇게 6개월 남짓한 시간을 제자리걸음하며 혼란의 시간을 보냈다. 인간은 마주하고 싶지 않은 순간을 마주해야 진정으로 성장한다고 했다. 전력을 다해 자신을 몰아붙이니 애매한 시간이 정리되기 시작했다. “급하지 않다. 차근차근 하나씩 정리하면서 시작하면 된다며 스스로 다독였어요. 애초에 문턱을 낮춰버리면 문제가 없는 건데, 저도 모르게 욕심을 냈던 거죠.”
시폰 블라우스 셔츠는 McQueen. 가죽 팬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오늘의 웹툰> <무빙> <유어 아너> <나의 완벽한 비서> 그리고 공개를 앞두고 있는 <친애하는 X>까지 자신을 조였다 풀었다를 반복하며 꺼내놓은 작품들. 가장 최근작인 <나의 완벽한 비서>의 ‘우정훈’은 김도훈 자체라 봐도 무방할 만큼 일상의 김도훈이 잘 담겨 있다. “카메라 밖의 저와 싱크로율이 높은 캐릭터죠. 모두와 함께할 때 가장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 혼자일 때 예민하고 섬세해져요. 우정훈이 가진 밝고 유쾌한 면에 맞추다 보니 로맨스적 감정을 잘 들여다보지 못한 것 같아 아쉬운 작품이에요.” <나의 완벽한 비서>는 김도훈의 작품 선택에 많은 변화를 불러왔다. 지금까지는 간접적으로 많이 접한 캐릭터 위주로 작품을 선택했다. 드라마나 영화로 간접 체험했던 것들이 대부분이라 본인의 취향이 많이 묻어난 것. <유어 아너>가 대표적이다. “연기는 김도훈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상상을 보여주는 작업이니까, 제가 상상하기 수월한 쪽이 연기하기 편했어요. 그래서 로맨스보다 장르물을 선호했던 것 같아요. <나의 완벽한 비서>를 하면서 사람들이 왜 로맨스에 반응하고 공감하는지 알게 됐죠. ‘연애’라는 감정이 사실은 가장 섬세하고 감정 전달의 폭이 넓은 건데, 앞으로 좀 더 유연하게 대면해 보고 싶어요.”
점퍼는 We11done. 파자마 스타일의 셔츠와 팬츠는 모두 Burberry. 볼 캡은 Dumaro.
이쯤 되면 11월 6일 공개되는 티빙 오리지널 <친애하는 X>가 궁금해진다. ‘김재오’라는 캐릭터를 받아들인 건 그저 대본을 읽었을 때 ‘느낌이 좋아서’였지만, 작업하는 내내 새로움에 눈뜨고 관계의 깊이에서 오는 감정의 기승전결을 경험했다. “이 작품을 촬영하면서 저에게 떨어진 미션은 단 하나, 재오가 지닌 무조건적 강함도 물론이지만 스스로도 지금까지 보여온 이미지와 다른 결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극중 캐릭터로서 걸음걸이와 말투, 손동작까지 고민했죠. 많은 걸 경험했고, 앞으로 제가 나아가야 할 지점에 대해 느낀 작품이에요.” 드라마가 공개된 후 우리는 김도훈이 가진 다정함과 유쾌함을 그리워하게 될지도 모른다. 조금 날이 서 있고, 감정적 직구를 던져오는 모습이 낯설지도 모른다. “<친애하는 X>를 끝낸 후 처음으로 캐릭터와 분리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재오를 보내고 제 감정을 찾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죠. 매일 날카로운 감정을 품고 있다 보니 일상의 제가 잘 기억나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행복했죠. 아, 내가 ‘재오’의 감정선을 잘 따라갔구나 싶어서.”
핑크 카디건과 버건디 팬츠는 모두 Kenzo. 오렌지 & 그레이 슈즈는 Dior Men. 실버 나이트 펜던트 네크리스는 Burberry. 아이스트리오페 펜던트는 Celine. 골드 체인 네크리스는 Diesel. 실버 & 골드 로고 네크리스는 Emporio Armani. 실버 큐빅 네크리스는 Lost in Echo.
<친애하는 X>와 이별하는 방법은 간단했다. 내 사람들과 함께하기, 그들과의 일상으로 스며들기. 김도훈의 일과 사랑의 끝엔 항상 사람이 있다. 군중 속에 있을 때 고독을 느끼는 게 아니라, 무리와 함께할 때 가장 ‘나’다운 안정감을 느낀다. 공항에만 가면 마법처럼 J의 기질이 사라지는 통에 여행 가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두 달 사이 제주도와 대만, 일본을 다녀왔으니 이쯤에서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이 언행불일치처럼 느껴지지만, 이 또한 사람이 먼저이기에 이런 불편함 정도는 기꺼이 감수할 수 있는 일이다. “내 사람들과의 여행은 언제나 환영이죠. 목적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어떤 사람이랑 어떤 대화를 나누며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가 더 중요해요. 그 모든 것엔 서로에 대한 존중이 깔려 있어야 하죠. 내 사람을 구별하는 가장 중요한 차이는 언행입니다.”
플라워 패턴 수트는 McQueen. 스터드 포인트의 블랙 더블 몽크는 Jimmy Choo. 오른쪽 골드 로고 이어 커프와 왼쪽 골드 로고 이어 커프는 모두 Diesel. 왼쪽 골드 이어 커프는 Thiers.
김도훈이란 사람은 멀리서 보면 유쾌하고,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한없이 예민한 사람이다. 이건 우리가 보는 김도훈과 스스로 들여다보는 자신의 모습과도 닮아 있다. 완벽한 ‘인싸’의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지만, 의외로 낯설거나 결이 다른 사람이 있는 곳은 애써 피한다. 날카롭고 사나운 칼은 다루기 어려운데, 그보다 더 감당하기 어려운 건 누구에게나 쓰임을 다하는 보통의 칼날이다. 김도훈이란 사람이 그렇다. 본인의 기질과 상관없이 언제 어디서나 제 몫을 해낸다. 품고 있는 재능이 넘치니 결국 쓰임의 공개 범위는 스스로 정해야 할 것이다. 밝지만 가볍지 않고, 진지하지만 무겁지 않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가끔 한없이 예민함을 끌어 모아 단호한 걸음걸이로 자신의 목적지를 설정해도 괜찮다. 그 정도는 스스로를 믿어도 된다. 김도훈은 정신적 근육이 단단한 사람이다.
Credit
- 에디터 김명민
- 사진가 최문혁
- 스타일리스트 이민형
- 헤어&메이크업 김환
- 아트 디자이너 이아람
- 디지털 디자이너 김민지
2026 봄 필수템은 이겁니다
옷 얇아지기 전 미리 준비하세요, 패션·뷰티 힌트는 엘르에서.